FAZER LOGIN서령은 처음에 발소리를 알아듣지 못했다.오랫동안 매를 맞고 무릎을 꿇고 있던 탓에 귀 안쪽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났고, 눈앞의 돌바닥도 자꾸만 흔들리는 듯했다.그런데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졌다.궁인들이 일제히 엎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전하 납시오!”서령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회랑 끝에서 도겸이 걸어오고 있었다.검은 곤룡포의 금빛 용이 햇빛 아래 선명하게 빛났으나, 왕의 얼굴에는 분노를 드러내는 기색조차 없었다.그럼에도 그를 맞이한 상궁들의 어깨가 눈에 띄게 떨렸다.도겸은 서령을 보았다.뜰 한가운데 무릎을 꿇은 채 몸을 가누지 못하는 여인.피로 젖은 손바닥과 붉게 번진 치맛자락, 형장의 흔적이 남은 종아리.그리고 자신을 보며 겨우 고개를 드는 얼굴.도겸은 걸음을 멈췄다.서령은 입술을 달싹였다.“전하…….”도겸은 곧장 그녀 앞으로 다가와 아무 말 없이 한쪽 무릎을 굽혔다.궁인들 사이에서 억눌린 숨소리가 터졌다.왕이 돌바닥에 무릎을 대고 앉은 것이었다.도겸은 서령의 손을 잡았다.손바닥에 묻은 피가 자신의 손가락에 번지자 그는 그 붉은 흔적을 한참 내려다보았다.“누가 이리 만들었느냐?”서령은 대답하지 못했다.도겸은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서령아. 나를 보아라.”서령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으나 그의 얼굴이 흐릿했다.“전하께서 어찌 이곳까지…….”도겸은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서령의 허리와 어깨를 받쳐 일으키려 하자 그녀가 통증에 얼굴을 찡그렸고, 왕의 손은 즉시 멈췄다.“다리가 아프냐?”서령은 고개를 저으려 했지만 일어서려는 순간 무릎이 꺾였다.도겸은 즉시 그녀를 안아 들었다.“전하!”서령은 놀라 그의 옷깃을 붙잡았다.도겸은 그녀를 품에 안은 채 일어섰다.“가만히 있거라. 네가 더는 이 돌바닥에 발을 딛지 않게 할 것이다.”서령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왕의 심장이 거칠게 뛰고 있었다.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오래 버티고 있었는지 깨달았고, 온몸에서 힘이 풀렸다.도겸은 서령을 더욱
정난희는 쓰러진 서령을 한참 바라보았다.최 상궁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마마, 저 아이가 더는 몸을 가누지 못하는 듯하옵니다.”중전은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죽기라도 하였느냐?”“그것은 아니오나…….”“그렇다면 아직 배울 것이 남았겠구나.”최 상궁은 입을 다물었다.정난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령에게 다가갔다.피 묻은 손을 내려다보던 그녀는 몸을 굽혀 서령의 귀 가까이 속삭였다.“서령아. 네가 오늘 이리 된 까닭을 알겠느냐?”서령은 힘겹게 눈을 떴다.“마마…….”“네가 전하의 사랑을 믿었기 때문이다.”서령의 눈빛이 흔들렸다.“전하께서 너를 아끼실수록 너는 더 많은 사람의 미움을 받게 될 것이다. 오늘은 내가 네게 법도를 가르쳤지만, 내일은 누가 너를 기다리고 있을지 누가 알겠느냐.”서령은 떨리는 손을 움켜쥐었다.정난희는 말을 이었다.“연화도, 옥분도, 오늘 네게 물을 주려 했던 아이도 마찬가지다. 네가 그들을 아낀다는 사실을 내가 알게 되었으니, 이제 그들이 얼마나 안전할 것 같으냐?”서령의 얼굴이 창백해졌다.중전은 그 반응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그러니 네가 진정 그 아이들을 지키고 싶다면, 전하의 곁에서 물러나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서령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입술이 떨렸으나 끝내 고개를 저었다.“마마…….”“아직도 거역하겠다는 것이냐?”“소인이 전하를 은애하는 마음을 버린다고 하여, 마마께서 그 아이들을 반드시 지켜 주시겠사옵니까?”정난희의 표정이 굳었다.서령은 숨을 골랐다.“마마께서는 오늘 소인에게 벌을 내리셨사옵니다. 그러나 소인이 물러나면 연화와 옥분을 지켜 주시겠다는 약조는 하지 않으셨사옵니다.”중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네가 감히 나를 의심하느냐?”서령은 고개를 숙였다.“소인은 마마께 거짓 약조를 청하고 싶지 않사옵니다.”그 말에 정난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령은 더 이상 몸을 가눌 힘이 없었지만 중전이 원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물러나면 모든 사람이 안전해질
다시 형장이 떨어지자 이번에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앞으로 쓰러졌다.손바닥이 돌에 쓸리고 팔꿈치가 바닥에 부딪히는 순간, 회랑 아래에서 누군가 작게 비명을 삼켰다.정난희는 그 소리가 들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누가 감히 소리를 내었느냐?”궁인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중전은 잠시 그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서령에게 눈을 돌렸다.“일으켜라.”상궁 둘이 서령의 팔을 붙잡았다.서령은 일어서려 했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몸이 다시 기울자 상궁들이 양쪽에서 붙들었다.“마마…….”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정난희는 서령을 내려다보았다.“전하께서 너를 그리도 아끼신다지. 그런데 어찌 아직도 오시지 않는 것이냐?”중전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왕의 총애라는 것이 참으로 덧없구나. 네가 이리 피를 흘리고 있는데도 전하께서는 정사를 보고 계시니 말이다.”서령은 눈을 감았다.그 말이 가슴을 찔렀다.도겸이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왕은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었고, 자신이 어디에서 무슨 일을 겪는지 매 순간 알 수는 없었다.그 사실을 서령도 알고 있었으나, 알고 있는 것과 견디는 것은 달랐다.그녀는 피 묻은 손으로 돌바닥을 짚었다.“전하께서는…….”말을 잇지 못하자 정난희가 몸을 기울였다.“무엇이라 하였느냐?”서령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전하께서는 소인을 속이지 않으실 것이옵니다.”정난희의 눈빛이 번뜩였다.“아직도 그리 믿느냐?”서령은 대답하지 않았다.중전은 차갑게 웃었다.“그렇다면 끝까지 믿어 보거라.”***형벌은 그 뒤로도 쉽게 끝나지 않았다.중전은 서령이 쓰러질 때마다 다시 자세를 바로잡게 했다. 허리를 세우지 못하면 불손하다 꾸짖었고, 고통을 참느라 고개를 숙이면 중전의 얼굴을 피한다고 나무랐다.서령은 어느 순간부터 형장이 내려오는 소리보다 그것을 기다리는 시간이 더 두려워졌다. 상궁이 팔을 움직이는 기척만으로도 어깨가 움츠러들었다.손바닥에는 피가 말라붙었고, 무릎 아래로는 치맛자락이 젖어 들었다. 종아리
정난희가 가져오게 한 것은 작은 문서 한 장이었다.서령은 처음에 그 문서가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했다.중전은 상궁에게 그것을 펼치게 한 뒤 서령의 발치에 떨어뜨렸다.“읽어 보거라.”서령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먹으로 적힌 글자 사이에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연화.서령의 가슴이 내려앉았다.“마마…….”“네가 그토록 걱정하는 아이의 이름이 맞느냐?”“그러하옵니다.”“독향 사건에 연루되어 격리되었다지.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았으니 처분도 정해지지 않았을 것이다.”정난희는 서령의 얼굴을 살폈다.“조사가 길어지면 어린아이에게는 참으로 고된 일이겠구나. 누구 하나 찾아오지 못하고, 언제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 채 기다려야 하니 말이다.”서령은 두 손을 모았다.“부디 연화의 억울함을 살펴 주시옵소서.”“내가 어찌 그 아이의 억울함을 아느냐. 아직 죄가 밝혀지지 않았다면서.”중전은 웃음을 지웠다.“다만 내가 관심을 두면 조사가 더욱 엄격해질 수도 있겠지.”서령의 숨이 멎는 듯했다.정난희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네가 전하의 침전에 드는 일을 스스로 삼간다면, 나 또한 그 아이의 일에 굳이 관심을 둘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서령은 문서 위에 적힌 연화의 이름을 바라보았다.그 아이는 어둠을 무서워했다. 향방에서 함께 지내던 때에도 늦은 밤 혼자 창고에 들어가기를 꺼렸고, 겨울이면 손등이 갈라져도 아프다는 말을 잘 하지 않았다.서령이 따뜻한 물을 건네면 두 손으로 그릇을 감싸 쥐고 웃던 아이였다.그 아이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견디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서령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마마, 소인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소인에게 벌을 내려 주시옵소서.”“그렇다면 전하의 침전에 들지 않겠다고 말하거라.”서령은 입술을 깨물었다.“그것은 소인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옵니다.”정난희의 얼굴이 굳었다.“아직도 그 말을 하느냐?”“전하께 거짓을 아뢸 수는 없사옵니다.”중전은 한동안 서령을 내려다보더니 갑자기 부
회초리를 거둔 뒤에도 서령은 일어날 수 없었다.중전이 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최 상궁은 그녀의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게 하고 허리를 똑바로 세우라 했다. 손바닥의 상처에서 피가 배어 나왔지만 닦을 천조차 주지 않았다.서령은 손가락을 조금씩 오므렸다 폈다. 피가 말라붙으며 피부가 당겼고, 무릎 아래로는 차가운 기운이 파고들었다.처음에는 돌바닥의 냉기가 고통스러웠지만, 시간이 흐르자 오히려 뜨거운 통증이 시작되었다. 무릎뼈가 거친 돌에 눌리고 다리가 저려 왔으며, 허리를 곧게 세우려고 힘을 줄 때마다 종아리가 떨렸다.해가 높아졌다.중궁전의 궁인들은 평소처럼 물을 나르고 마루를 닦았다. 누군가는 서령의 곁을 지나면서 시선을 피했고, 누군가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상궁과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중전은 안으로 들어가 아침 수라를 들었으나, 서령은 뜰 한가운데 남겨졌다.어느새 무릎의 감각이 둔해졌다.그녀가 몸을 조금 움직이려 하자 곁을 지키던 상궁이 어깨를 눌렀다.“누가 자세를 바꾸라 하였느냐?”“다리에 감각이 없어 잠시…….”“마마께서 일어나라 하시지 않았다.”서령은 이를 악물고 다시 허리를 세웠다.그때 회랑 아래에서 물동이를 들고 지나던 어린 나인 하나가 멈춰 섰다. 아이는 서령의 마른 입술을 바라보다가 주변을 살폈고, 상궁이 다른 쪽을 보는 사이 작은 바가지에 물을 떠 다가왔다.“나인님, 조금이라도…….”서령이 고개를 들기도 전에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무엇을 하는 것이냐!”아이는 놀라 바가지를 떨어뜨렸고, 물이 돌바닥 위로 흘렀다.최 상궁이 달려와 아이의 뺨을 때리자 어린 나인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마마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는데 감히 물을 주려 하느냐?”아이는 울음을 삼키며 엎드렸다.“소인이 잘못하였사옵니다. 너무 목말라 보이셔서…….”서령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상궁마마, 저 아이는 제게 물을 주지 않았사옵니다. 제가 마시지도 않았으니 부디 꾸짖지 말아 주시옵소서.”최 상궁이 서령을 돌
“네 주변에는 어찌 그리 죄에 연루된 사람이 많으냐. 연화도, 옥분도, 모두 너와 가까운 아이들이 아니더냐.”“두 사람의 잘못이 밝혀진 것은 아니옵니다.”“네가 조사관이더냐?”정난희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감히 중전 앞에서 죄의 유무를 판단하려 드느냐?”서령은 고개를 숙였다.“소인은 다만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 두 사람을 죄인으로 단정하지 말아 주십사 청한 것이옵니다.”중전은 차갑게 웃었다.“그 말이 바로 네 오만함이다.”그녀가 최 상궁을 돌아보며 손짓하자 상궁은 계단 아래에 놓인 회초리를 집어 들었다.서령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마마, 소인이 무례하였다면 꾸짖어 주시옵소서. 그러나 연화와 옥분의 일은…….”“아직도 그 아이들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구나.”정난희는 손가락으로 의자의 팔걸이를 두드렸다.“손을 내밀어라.”서령은 잠시 움직이지 못했다.최 상궁이 다가와 그녀의 손목을 붙잡자 서령은 천천히 손을 폈다.전날 밤 도겸이 기름을 발라 주었던 손이었다.왕은 두레박 줄에 쓸린 작은 상처를 보면서도 얼굴을 찌푸렸고, 앞으로는 물 긷는 일을 다른 궁인에게 맡기라고 당부했다.그 손바닥 위로 회초리가 떨어졌다.서령은 숨을 삼켰다.손끝까지 날카로운 통증이 번졌다.두 번째 매가 내려오자 손바닥의 상처가 다시 벌어졌고, 세 번째에는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을 움츠렸다.최 상궁이 손목을 더욱 세게 붙잡았다.“움직이지 마라.”서령은 입술을 깨물었다.정난희는 계단 위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전하께서는 네 손을 그리도 귀하게 여기신다지. 향을 만드는 손이라며 아끼신다 들었다. 그리 귀한 손이니 오늘 배운 법도도 오래 기억하겠구나.”다시 회초리가 떨어지자 서령의 어깨가 움찔했다.손바닥에 피가 맺히기 시작했지만 중전은 그 붉은 흔적을 보고도 눈을 돌리지 않았다. 오히려 찻잔을 내려놓고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어찌 울지 않느냐?”서령은 고개를 숙였다.“전하께서는 네 눈물에 약하시다던데, 내 앞에서는 울고 싶지 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