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수요일 아침, 은채는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을 떴다.
휴대전화에는 새 호출이 없었다. 오늘 거즈를 꺼낼 임기석의 이름을 떠올리며 은채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전날 밤보다 몸은 가벼웠지만, 첫 거즈를 걷어낼 순간이 자꾸 앞서 떠올랐다.
병원에 들어가서는 혜린의 경과부터 확인했다. 밤사이 수술 계획을 다시 바꿀 만한 큰 변화는 없었다. 혜린은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자세를 바꾸며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많이 당겨요?”
“안 움직이고 싶어요.”
은채는 통증 조절과 현재 상태를 확인하고, 움직일 때 도움을 받도록 말했다. 혜진은 침대 옆에서 필요한 물건을 챙겼다.
혜린이 휴대전화를 가리켰다.
“오늘은 언니가 들고 있어요.”
“잘 맡기셨네요.”
“잠금까지 걸어놨어요. 제 건데.”
은채가 작게 웃었다. 농담할 수 있다는 사실은 반가웠다. 그것만으로 회복을 다 평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전날 수술실로 갈 때의 얼굴과는 달랐다.
그녀는 필요한 내용을 확인하고 중환자실로 향했다.
임기석은 여전히 인공호흡기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흉관과 복부의 임시 폐쇄 장치도 그대로였다. 체온과 검사 결과, 출혈 추이를 밤사이 담당팀과 함께 확인했다.
미경이 오전 근무로 돌아와 있었다.
“오늘 다시 들어가시죠?”
“네. 문 교수님하고 최종 확인하고 있습니다.”
미경은 이전에 적어둔 메모와 현재 기록을 나란히 놓았다. 이틀 전부터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짧게 짚어줬다. 은채는 필요한 부분을 받아 적고 수술실에 전달할 내용을 정리했다.
태오도 흉부 상태를 다시 확인했다. 당장 흉부를 재수술해야 할 소견은 없었다. 그는 문정원과 계획을 맞춘 뒤 은채에게 말했다.
“가슴 쪽은 계속 추적하겠습니다. 복부 수술 중 호흡 상태 변화 있으면 연락 주세요.”
“알겠습니다.”
은채는 흉부 계획을 인계 항목에 덧붙였다. 서로 맡을 범위가 분명해지자 복부 재수술 준비에 집중할 수 있었다.
면회가 허용된 짧은 시간 동안 선옥이 남편 옆에 섰다. 전날 밤보다 신발 뒤축이 가지런했다. 손가방 대신 작은 천 가방을 들고 있었다.
“여보, 나 여기 있어.”
그녀는 남편의 손등을 한 번 쓸었다. 의료진이 이동을 준비하자 먼저 비켜섰다.
“다녀오세요.”
환자에게 한 인사인데 은채도 대답했다.
“다녀오겠습니다.”
***
오전 9시, 재수술을 시작했다.
첫 수술을 마친 뒤 약 37시간이 지났다. 환자의 생리 상태를 되돌리기 위해 여러 사람이 지킨 시간이었다.
은채는 임시 폐쇄 장치 아래를 확인하며 문정원과 계획을 다시 맞췄다. 의도적으로 남겼던 거즈를 회수하고, 지혈이 유지되는지 살핀 뒤 다른 손상과 배 안의 상태를 재평가한다. 오늘 배를 닫을 수 있을지는 그 결과에 달려 있었다.
첫 거즈를 확인하는 순간 은채의 어깨가 조금 긴장했다. 전날 밤 기록에서 보던 6장이 이제 손앞에 있었다.
무조건 빨리 제거할 수는 없었다. 압박이 풀리는 순간 다시 출혈이 생기는지 보면서 움직여야 했다. 문정원은 은채가 손댈 범위를 정하고 함께 확인했다.
1장이 회수됐다. 수술실 간호사가 수를 세었다.
은채는 다음 부위로 눈을 옮겼다. 첫 수술에서는 차오르는 피 때문에 자세히 보기 어려웠던 간의 윤곽이 이제는 구분됐다.
출혈이 완전히 사라진 그림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손상 부위가 어디까지 안정됐는지, 다시 치료할 부분이 남았는지 보는 수술이었다.
거즈를 더 확인하던 중 좁은 부위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은채의 손이 멈췄다.
“여기 먼저 보겠습니다.”
문정원이 같은 곳을 봤다. 은채는 시야를 확보하면서 필요한 압박을 유지했다. 한꺼번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출혈 위치를 다시 놓칠 수 있었다.
민재가 보조 기구를 움직이려다 멈췄다.
은채가 말했다.
“지금 위치 유지해주세요. 제가 바꿀 때 말씀드릴게요.”
첫 수술 때 문정원에게 들었던 것과 비슷한 지시였다. 이번에는 은채가 다른 사람의 손을 함께 이끌고 있었다.
문정원과 그녀는 남은 출혈 부위를 평가하고 필요한 처치를 했다. 마취팀은 그동안 환자의 반응을 알려줬다. 출혈은 앞선 수술처럼 여러 곳에서 계속 번지는 양상이 아니었다.
은채는 새로운 피가 올라오는지 기다렸다. 흡인으로 드러난 부위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민재가 유지한 기구 위치도 살폈다. 다음 거즈로 손을 옮기는 건 그 뒤였다.
“유지됩니다.”
문정원이 직접 확인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6번째 거즈가 회수됐다. 간호사가 기록과 맞춰 수를 다시 확인했다. 은채도 첫 수술에서 남겨둔 위치를 하나씩 대조했다.
일치했다.
그녀는 그제야 한 번 길게 숨을 내쉬었다. 회수한 거즈에서 다시 배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남은 복부 평가와 닫을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이어졌다.
문정원이 물었다.
“지금 어떻게 보여?”
“큰 출혈은 통제된 상태입니다. 남겨둔 압박 없이도 유지되는 것 확인했고요. 다른 부위도 다시 살폈습니다.”
“닫는 건?”
은채는 장의 부종과 배 안의 상태를 다시 봤다. 마취팀의 보고까지 확인한 뒤 생각을 말했다.
“지금 상태라면 시도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무리해서 당기지 않고, 닫는 과정에서도 반응 확인해야 합니다.”
문정원이 동의했다.
배를 닫는 단계로 넘어가자 은채는 손에 익은 동작만 따라가지 않으려고 신경 썼다. 처음부터 여기까지 오기로 정해져 있던 수술이 아니었다. 중간에 다른 판단이 필요했다면 그대로 멈춰야 했다.
소민의 목소리가 머리맡에서 들렸다. 이번 재수술의 마취는 첫 수술을 함께했던 그녀가 다시 맡고 있었다.
“현재 호흡하고 순환은 유지됩니다.”
은채는 그 말을 듣고 문정원과 다음 진행을 맞췄다. 최종 확인을 마칠 때까지 큰 변화는 없었다.
배가 닫혔다.
은채는 봉합을 마친 부위를 다시 살폈다. 첫날 임시 폐쇄 장치가 있던 자리를 오늘은 닫을 수 있었다.
문정원이 손을 뗐다.
“됐어.”
은채는 대답을 늦게 했다.
“네.”
은채는 첫날 자신이 임시 폐쇄를 제안했던 자리를 봤다. 그때의 선택을 오늘 여기까지 이어왔다. 고개를 들자 문정원도 같은 곳을 보고 있었다.
“서 선생이 멈추자고 한 수술, 오늘 여기까지 왔네. 오늘 목표는 이뤘어. 다음 경과는 중환자실에서 이어서 보면 돼.”
은채는 그제야 어깨를 풀었다.
***
선옥은 설명실 문이 열리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정원이 먼저 말했다.
“복부 다시 확인했고, 오늘은 닫았습니다.”
선옥의 입술이 벌어졌다. 곧바로 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은채는 압박용 거즈를 모두 회수했고 필요한 지혈을 확인했다는 점, 여전히 중환자실 치료가 필요하다는 점을 설명했다. 폐 손상과 수술 후 경과도 계속 살펴야 했다.
선옥은 끝까지 들은 뒤 물었다.
“그럼 오늘 할 일은 잘된 거네요?”
은채가 문정원을 봤다가 다시 선옥을 마주했다.
“네. 오늘 계획했던 치료는 마쳤습니다.”
선옥은 두 손으로 얼굴을 잠깐 덮었다. 큰 울음은 나오지 않았다. 손을 내렸을 때 눈 밑이 젖어 있었다.
“그 말이 듣고 싶었어요.”
은채는 다음 위험부터 덧붙이려던 입을 다물었다. 필요한 설명은 이미 했다. 지금 잘 마친 치료가 있다는 사실까지 지워버릴 필요는 없었다.
설명실을 나와 문정원과 함께 중환자실 인계를 확인했다. 새로 바뀐 복부 상태와 관찰할 내용이 전달됐다. 첫날과 달리 은채는 연락 순서를 묻기 전에 스스로 정리해 말했다.
미경은 내용을 확인하고 서명했다.
“이번엔 바로 보이네요.”
그녀가 가리킨 것은 요약 화면이었다. 임시 폐쇄 상태였던 복부를 다시 수술해 닫았다는 경과가 첫 화면에 반영돼 있었다.
은채가 화면의 수정 시각을 봤다. 방금 자기 손으로 고친 내용이 다음 팀에게 보이고 있었다.
문정원은 마지막 기록을 마친 뒤 물을 마시러 가라고 했다. 은채는 이번에는 더 보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담당에게 필요한 것을 넘긴 뒤 휴게실로 갔다.
태오가 복도에서 그녀를 불렀다.
“복부 닫았다고 들었습니다.”
“네. 중환자실 인계까지 했습니다.”
“잘됐네요.”
그가 그렇게 쉽게 말하자 오히려 은채가 잠깐 어색해졌다.
“아직 경과는 더 봐야 하지만요.”
“그건 알죠.”
태오가 휴게실 문을 밀어 열었다. 은채가 들어갈 만큼 공간을 내주며 말했다.
“그래도 잘된 건 잘됐다고 해도 됩니다.”
은채는 선옥이 했던 말이 떠올라 입가를 조금 풀었다.
태오가 물었다.
“다음 협진도 서 선생한테 먼저 연락해도 됩니까?”
“제가 당직인 날이면요.”
“확인하고 걸겠습니다.”
태오는 은채가 답할 때까지 열린 문 옆에 서 있었다. 협진 이야기를 건넨 표정이 조금 전보다 진지했다.
“네. 연락 주세요.”
태오가 자기 진료구역으로 돌아간 뒤 은채는 물을 마셨다. 종이컵을 비우고 나니 손끝의 긴장도 조금 풀렸다.
휴대전화에는 본원에서 온 새 메일이 없었다. 이의 신청은 여전히 검토 중이었다. 파견 기간도, 남은 대출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은채는 화면을 끄고 가운 주머니에 넣었다.
진료구역으로 돌아가자 간호사가 고개를 들었다.
“서은채 선생님, 다음 환자 같이 봐주실 수 있어요?”
본원에서 오신 분이라는 말은 붙지 않았다.
은채는 가운 소매를 정리하고 침대 쪽으로 걸어갔다.
“네. 어떤 분이세요?”
금요일 오전 8시, 은채는 남정호의 침대 앞에서 야간 외과의의 인계를 받았다.밤사이 순환 지원을 다시 늘려야 할 변화는 없었다. 소변과 산염기 상태도 회복되는 방향이었다. 음압 장치는 밀폐를 유지했고, 배액에 갑작스러운 변화는 없었다.정호는 기관내관을 유지하고 있었다. 은채가 이름을 부르자 눈꺼풀이 움직였다. 담당팀이 현재의 반응과 진정 상태를 설명했고, 은채는 복부와 관의 상태를 살폈다.이제는 안쪽을 확인할 시간이었다.수진은 이동 전에 잠깐 아버지를 만났다. 전날 가져간 그림이 가방 바깥으로 조금 나와 있었다. 그녀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빼고 침대 곁에 섰다.“아버지, 나 밖에서 기다릴게.”정호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수진은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손을 잡았다가 이동 준비가 시작되자 놓았다.은채는 수진에게 예정된 재탐색을 진행한다고 알렸다. 확인한 상태에 따라 연결과 복부 폐쇄를 결정할 계획이었다. 수진은 어제처럼 왜 또 여느냐고 묻지 않았다.“설명 끝나면 저를 불러주세요. 멀리 안 갈게요.”준석이 수술실 앞에서 합류했다. 그는 전날 표시해둔 구간을 다시 펼쳤고, 은채는 문정원에게 밤과 아침의 경과를 전달했다. 마취는 소민이 다시 맡았다.이성훈과 맞춘 혈류 평가와 항응고 조절 계획도 함께 확인했다.오전 10시, 임시 폐쇄 장치를 제거하기 시작했다.첫 수술을 마친 뒤 41시간 남짓이 지나 있었다.보호층 아래에서 장이 드러났다.
목요일 오후 2시, 은채는 남정호의 밤 기록을 펼쳤다. 몸은 회복되는 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가장 알고 싶은 것, 남겨둔 장이 살아났는지는 그 어디에도 적혀 있을 수 없었다.수요일 저녁 7시에 넘겼던 경과 뒤로 새로운 줄들이 붙어 있었다. 소변량이 줄었던 시각, 담당팀이 환자를 재평가한 내용, 치료를 조절한 뒤의 변화가 이어졌다. 같은 혈압이라도 받쳐주던 약의 양은 달랐다.정호의 침대에 도착하자 미경이 전용 음압 장치의 배액을 보여줬다.“오전부터 색이나 양이 갑자기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설정과 밀폐 상태도 유지되고요.”“새로 혈성으로 늘어난 적은요?”“야간 기록에도 없습니다. 대신 새벽에 소변이 줄어서 외과랑 중환자 담당이 같이 봤어요.”은채는 이미 읽은 시각을 짚었다. 미경은 야간 담당에게 인계받은 내용에, 아침부터 직접 본 배액 변화를 덧붙였다.배를 덮은 장치 아래에서는 전날 남겨둔 구간을 볼 수 없었다.은채가 복부를 살피는 동안 담당 간호사는 최근 순환과 호흡의 변화를 정리했다. 은채는 위 감압관의 배액과 고정 상태도 보고, 손대지 말아야 할 관을 환자 쪽에서 멀리 정리했다.“이거 보면 장이 살아났는지 알 수 있나요?”수진이 면회 시간에 들어와 물었다. 눈길은 배가 아니라 배액 용기에 머물러 있었다.“새 출혈이나 다른 문제가 생기는지 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남겨둔 장의 상태를 이것만으로 알 수는 없어요.”“피가 덜 나오면 좋아지는 건 줄 알았어요.”
오후 2시 25분, 남정호의 수술이 시작됐다. 배를 연 뒤 은채는 영상보다 넓은 변화를 보았다.소장은 한 가지 색이 아니었다. 선홍빛이 남은 구간 옆으로 회색빛 장이 이어졌고, 그 가운데 짧은 부위는 훨씬 어두웠다. 혈류가 줄어든 범위 안에서도 손상의 깊이는 고르지 않았다.문정원이 물었다.“먼저 해야 할 건?”“혈류 회복할 공간 확보하고, 그동안 전체 범위를 보겠습니다.”혈관외과 이성훈이 맞은편으로 붙었다. 은채와 준석은 부은 장을 보호하면서 혈관에 접근할 시야를 열었다. 마취를 맡은 소민이 환자의 순환 상태와 수술 전 투여한 약을 알렸다.은채는 조금 전 응급실에서 마지막으로 만져본 배를 떠올렸다. 처음보다 단단해진 부위가 있었다. CTA에서도 그쪽 장벽으로 조영제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혈관 안으로만 접근하는 치료를 검토했지만, 이제는 장을 직접 볼 필요가 있었다.“이쪽 고정은 제가 하겠습니다.”준석이 보조 기구를 받았다. 같은 곳에 두 사람의 손이 겹치지 않게 자리부터 나눴다. 은채는 빈 공간으로 흡인기를 넣었다. 부어오른 장 아래에 고였던 액체가 걷히자 혈관으로 이어지는 조직이 드러났다.성훈이 말했다.“이 시야 유지해주세요.”그가 재개통을 준비하는 동안 문정원과 은채는 나머지 장을 따라갔다. 준석은 어느 구간을 이미 봤는지 짧게 되읽었다. 앞에서 본 장이 뒤섞여 들어오지 않도록 수술포 위에 놓는 방향도 맞췄다.경계가 애매한 곳이 예상보다 길었다.
수요일 오전 10시, 최준석은 안내받은 외과 업무 공간으로 들어왔다.영상 속에서 봤을 때보다 키가 컸다. 가방은 작은 것 하나였고, 청해에서 사용할 출입증을 손에 들고 있었다.“서 선생님?”“서은채입니다.”“최준석입니다. 어제 자료 잘 봤습니다.”악수는 짧았다. 은채는 인사 뒤에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생각하다가 문정원이 부르는 쪽으로 갔다. 환자 목록이 이미 펼쳐져 있었다.진료지원 일정에 맞춰 진료 참여 절차와 인계가 준비돼 있었다. 문정원이 오늘 함께 볼 환자와 협진 연락 체계를 설명했다. 준석은 청해에서 담당팀으로 연결되는 번호부터 휴대전화에 넣었다.민재가 첫 환자를 설명하다가 검사 결과를 두 번 읽었다. 준석이 기다렸다가 물었다.“오늘 그 환자를 봤습니까?”“네. 아침에요.”“검사표 말고 그때 얘기부터 해주죠.”민재는 환자가 밤에 잠을 못 잤다는 말부터 다시 시작했다. 준석은 그 원인이 통증인지, 다른 불편인지 물었고, 은채는 담당 간호사에게 받은 밤의 기록을 보탰다.그들이 함께 병실을 돌고 돌아오자 준석이 말했다.“여기는 병동 올라가는 길이 짧네요.”“길은 짧은데 중간에 많이 불립니다.”은채가 대답했다. 말이 끝나자마자 문정원의 전화가 울렸다. 준석은 소리 내 웃지 않고 자기 목록의 다음 칸을 넘겼다.점심 직전 문정원이 예정
순자는 퇴원 설명을 듣다가 라켓 가방을 무릎 아래로 밀었다.“이건 그냥 들고 가는 거예요.”누가 먼저 묻기도 전이었다. 나경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엄마, 선생님이 가방 검사하러 오신 거 아니야.”“지난번에 봤잖아. 오늘 또 운동 얘기부터 할까 봐.”은채도 웃었다. 수술 후 4일째였다. 순자는 식사를 늘린 뒤에도 토하지 않았고, 새로 심해지는 복통 없이 병실과 복도를 걸었다. 진찰과 상처, 장 기능을 문정원과 함께 검토한 뒤 오늘 퇴원을 결정했다.나경은 퇴원 안내문을 펼쳐놓았다. 종이 모서리에 어머니가 가져온 펜이 끼워져 있었다.은채는 집에서 걸으며 움직이는 것과 힘을 크게 쓰는 운동을 나눠 설명했다. 탁구를 다시 시작할 시점은 추적 진찰에서 수술 부위와 회복을 보고 정하기로 했다.“그럼 동호회 구경은요?”“집에서 움직이는 데 불편이 없는지 먼저 보세요. 가시더라도 오래 앉거나 힘들게 이동하지 않도록 조절하시고요.”“내가 구경 가면 한 번만 치라고 할 사람들이라서.”순자가 가방을 더 깊이 밀었다. 이번에는 나경이 지퍼를 열어 라켓을 자기 가방으로 옮겼다.“제가 보관할게요.”“그건 또 싫은데.”모녀가 서로를 보며 웃었다. 수술 전에는 나경이 묻는 동안 순자가 배를 움켜쥐고 있었다. 오늘은 어머니가 말하다가 딸의 말을 빼앗았다.은채가 새로운 심한 복통이나 구토, 상처의 변화가 생
화요일 오전 9시, 화면 속 최준석이 초기 영상을 열었다.전날 받은 질문과 똑같은 순서였다. 최종 영상이나 퇴원 결과부터 보여달라는 말은 없었다.청해 쪽 회의실에는 문정원과 박준영이 앉아 있었다. 중환자실에서는 평소처럼 담당팀이 환자를 보고 있었다. 은채는 공유할 자료를 열고 마이크를 켰다. 이름과 등록번호를 가린 첫 CT 옆에 내원 당시 진찰 기록을 놓았다.“최초에는 3등급 손상으로 판단했습니다. 혈압과 맥박, 복부 진찰을 같이 봤고, 영상에서 명확한 혈관 병변이나 조영제 유출은 없었습니다. 우선 집중 관찰을 선택했습니다.”“출혈이 없었다는 말씀입니까?”준석이 물었다.“아니요. 비장 주위 혈액은 있었습니다. 당시 바로 중재할 혈관 병변이 보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은채는 자기 슬라이드의 문장을 읽지 않고 대답했다. 말을 잘못 줄이면 첫 판단부터 달라졌다.준석은 영상을 한 장 넘겼다.“그럼 관찰을 유지할 수 있었던 조건을 더 설명해주시죠.”은채가 준비한 표를 펼쳤다. 혈액검사 결과만 모아둔 표 옆에 통증과 진찰, 활력징후, 보고와 재평가 시각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정아가 처음 배를 누르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때 들은 말이 검사 수치보다 먼저 기억나는 구간도 있었다. 은채는 기억 대신 그날 남긴 기록을 짚었다.“감시할 병상과 반복 진찰이 가능했고, 중재나 수술이 필요해지면 전환할 팀도 확보돼 있었습니다. 관찰한다고 정한 뒤에도 그 조건이 유지되는지 다시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