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은채가 수술 기록을 마무리하는 동안 류민재는 한 줄을 지웠다.
‘초기 CT 특이 소견 없었으나.’
그는 오전 판독문을 다시 열었다. 장간막 주위의 변화와 소량의 복강 내 액체가 기록돼 있었다. 수술까지 오기 전에 남아 있던 의심이었다.
민재가 문장을 고쳤다.
“관찰 중 증상과 영상 소견이 변해서 수술한 경과로 적었습니다.”
은채는 수정한 문장을 읽었다. 같은 수술도 처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앞선 의료진이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일처럼 바뀔 수 있었다.
“그게 실제 경과하고 맞아요. 먼저 찾아서 고쳤네요.”
그녀는 자기 기록에도 낮 동안의 관찰과 협진 의견을 포함했다. 마지막에 수술한 사람만 남으면 환자가 수술실에 오기까지의 판단이 사라졌다.
문정원이 서류를 확인하고 필요한 부분을 보탰다. 그녀가 민재에게 물었다.
“다음에 비슷한 환자 오면?”
민재의 자세가 굳었다.
“첫 영상에서 큰 손상이 없더라도 증상 변화를 계속 확인하겠습니다.”
“그리고?”
“달라지면 기다리지 않고 보고하겠습니다.”
문정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 지나서 아프다고 하는데 진통제 들었는지만 보지 말고, 환자도 같이 봐.”
민재는 그 말을 적었다. 은채는 그가 긴장한 채로라도 질문을 피하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한 번 배웠다고 다음부터 모든 판단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후 8시가 조금 지나 혜린이 회복실에서 병동으로 옮겨갔다. 은채는 병동에서 환자 상태와 수술 후 계획이 제대로 전달됐는지 확인했다.
혜진은 침대 옆에 작은 가방을 놓고 앉아 있었다. 혜린은 눈을 뜨고 있었지만 오래 이야기하기에는 피곤해 보였다.
“배는 좀 어떠세요?”
“수술한 데가 아파요. 아까처럼 안에서 막 아픈 거랑은 조금 달라요.”
은채는 통증과 다른 불편을 확인하고, 담당 간호사와 치료 계획을 다시 맞췄다. 열이 나는지, 통증이 어떻게 변하는지, 회복 과정에서 무엇을 볼 것인지 짧게 설명했다.
혜린은 이번에는 휴대전화를 찾지 않았다.
대신 언니에게 물었다.
“정민 씨가 뭐래?”
“잘 보냈대. 네가 메일만 찾아보라고 진작 말했으면 덜 헤맸을 거라던데.”
혜린의 입꼬리가 조금 움직였다.
“그 말을 언니한테 해?”
“내가 물어봤지. 뭐부터 하면 되냐고.”
은채는 자리를 뜨려다가 그 짧은 대화를 들었다. 가게 일이 어떻게 끝났는지가 환자의 표정에 영향을 주는 것이 보였다.
혜린이 그녀를 불렀다.
“선생님, 저 아까 밖에 나갔다 올까 했잖아요.”
“네.”
“그랬으면 연락도 늦게 받았겠네요.”
은채는 굳이 가정 속의 나쁜 결과를 설명하지 않았다.
“병원에 계셨고, 변화를 말씀해주셨어요. 지금은 회복하는 데 집중하시면 됩니다.”
혜린은 그제야 휴대전화를 언니에게 건넸다.
“오늘은 언니가 좀 받아줘.”
그 모습을 보고 은채는 방에서 나왔다.
***
중환자실에서는 임기석의 내일 수술을 준비하고 있었다.
은채는 현재 담당팀이 정리한 경과를 읽고 환자를 살폈다. 낮 동안 추가로 확인한 영상에는 오른쪽 폐의 타박상이 남아 있었지만, 계획을 바꿀 정도의 새로운 큰 손상은 확인되지 않았다. 흉부와 복부의 배액 추이도 정리돼 있었다.
피를 멎게 하는 조건은 전날보다 회복되고 있었다. 수혈과 순환을 유지하기 위한 지원도 줄어드는 흐름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검사가 정상으로 바뀐 것은 아니었다.
문정원은 지금까지의 경과를 토대로 다음 날 오전 재수술 계획을 유지했다.
“열어서 압박용 거즈 제거하고, 출혈 여부 다시 볼 거야. 상태가 허락하면 배를 닫는 쪽으로 가고.”
“간 상태랑 다른 부위도 재평가하고요.”
“그래. 내일 가서 다시 판단할 수 있게 준비하자.”
은채는 전날 수술 기록을 열었다. 6장. 의도적으로 남겨둔 거즈의 수와 위치가 명확하게 적혀 있었다. 그것을 꺼내고도 출혈이 억제되는지 확인해야 했다.
문정원이 다른 침대로 움직인 뒤 태오가 들어왔다. 그는 흉부 경과를 확인하고 간호사에게 배액과 호흡 상태에 관해 물었다.
은채가 기다렸다가 말을 걸었다.
“내일 복부 재수술 계획 유지합니다.”
“들었습니다. 흉부 쪽도 오전에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그쪽도 수술 들어가세요?”
“지금 경과대로면 흉부를 다시 열 이유는 없습니다. 재평가해서 바뀌면 알려드릴게요.”
은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복부를 다시 살피는 동안 흉부 쪽에 변화가 생기면 태오에게 바로 알릴 생각이었다.
태오가 흉부 경과 기록을 마무리하며 물었다.
“오늘 복부 환자는 어떻습니까?”
“손상된 소장 일부 절제하고 연결했습니다. 회복실 거쳐서 병동으로 올라갔고요.”
“문 교수님하고 같이?”
“네.”
은채는 손이 얼마나 빨랐는지, 어느 단계에서 잘했다는 말을 들었는지 덧붙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그에게는 수술 결과를 정확히 알려주고 싶었다.
태오는 그녀가 전한 수술 경과를 듣고 짧게 답했다.
“잘 끝났네요.”
“식사는요?”
은채가 그를 봤다.
“환자요, 저요?”
“서 선생이요.”
“이제 먹을 겁니다.”
“어제도 비슷하게 들었는데.”
“어제는 결국 먹었어요.”
태오의 눈가가 아주 조금 달라졌다. 웃었다고 말하기에는 짧았지만, 은채는 그가 일부러 같은 질문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가운 주머니를 확인했다. 관사에 가져가려던 반찬이 떠올랐다. 출근 전에 의국 휴게실 냉장고에 넣어두고 깜빡할 뻔했다.
“그리고 아침에 주신 반찬요.”
“왜요?”
“갚으려고 샀습니다.”
“안 갚아도 되는데.”
“이미 샀어요.”
태오의 시선이 빈손인 은채에게 잠시 머물렀다.
“그럼 받겠습니다.”
은채는 예상보다 싱거운 답에 다음 말을 놓쳤다. 몇 번쯤 사양할 줄 알았다. 태오는 정말 받을 생각인지 식사할 시간이 되면 같이 가져가겠다고 했다.
“저는 밤 10시에 인계 끝납니다.”
“저도 그때쯤 나갑니다.”
반찬만 건네면 끝날 일인데 퇴근 시각까지 맞췄다. 은채는 자신이 먼저 시간을 말한 것을 뒤늦게 의식했다. 이제 와 전달만 하고 들어가겠다고 덧붙이기도 싫었다.
중환자실 면회를 마친 선옥이 복도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일 다시 수술한다고 송 교수님께 들었어요.”
은채는 수술 전 설명 내용을 확인하고 추가 질문을 받았다. 선옥은 첫날보다 차분했지만, 같은 가방끈을 여전히 쥐고 있었다.
“이번에는 배를 닫을 수 있을까요?”
“그걸 목표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만 안쪽 상태를 다시 보고 결정해야 합니다.”
선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한테 내일 또 한다고 말했는데, 듣기는 했을까요?”
은채는 확실히 들었다고 답할 수 없었다. 진정 상태와 의식의 확인은 그때그때 달랐고, 환자의 기억까지 알 수는 없었다.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저희도 확실히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곁에서 말씀해주셔도 됩니다.”
선옥은 잠깐 입술을 다물었다가 말했다.
“내일도 선생님 오시죠?”
“네. 문 교수님과 함께 들어갑니다.”
그 답을 듣고 선옥은 가방끈에서 손을 놓았다.
***
오후 10시, 은채는 혜린의 병동 경과와 임기석의 수술 준비를 다음 담당에게 인계했다. 연락받을 사람과 역할이 정해진 것을 확인한 뒤 가운을 벗었다.
현관에서 태오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 손에는 자기 가방, 다른 손에는 작은 종이봉투가 들려 있었다.
“그건 뭐예요?”
“밥입니다.”
“반찬 받으려고 기다리신 건데요.”
“밥하고 먹어야 하니까.”
은채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바깥 공기는 차가웠다. 두 사람은 나란히 언덕을 올라갔다. 곁에서 태오가 든 종이봉투가 걸음에 맞춰 바스락거렸다. 아침과 달리 캐리어가 없어 계단이 짧게 느껴졌다.
공용 주방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태오가 반찬 뚜껑을 봤다.
“301호라고 써놨네요.”
“다른 분이 제 건 줄 알아야 하니까요.”
“이제 제 것도 포함된 거 아닙니까?”
은채는 펜을 찾아 숫자 뒤에 작게 덧붙였다.
302호 조금.
태오가 글씨를 읽었다.
“양은 서 선생이 정합니까?”
“아침에 받은 만큼 드릴게요.”
그가 대꾸 없이 젓가락을 들었다. 은채는 그제야 마음 놓고 웃었다.
밥을 먹는 동안 수술 얘기는 오래 하지 않았다. 병원 뒤 계단이 비 오는 날 미끄럽다는 말, 택배는 어느 입구에 놓이는지 같은 이야기가 오갔다. 은채는 그가 이곳에 먼저 살아서 아는 것들이 의외로 실용적이라고 생각했다.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기 전, 태오가 말했다.
“내일 수술 전까지는 푹 자요.”
“교수님도요.”
문이 닫혔다. 은채는 다음 날 알람을 맞추고 수술 메모를 책상 위에 놓았다. 누운 채로 다시 읽지는 않았다.
첫날의 환자에게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녀는 불을 끄기 전에 내일 수술 명단을 한 번만 확인했다.
임기석.
그 이름 아래 문정원과 자신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은채는 책상에 놓인 메모를 봤다. 내일은 남겨둔 거즈 6장을 꺼내야 했다. 그 압박을 풀고도 피가 멎어 있을지는, 다시 들어가서 확인할 일이었다.
금요일 오전 8시, 은채는 남정호의 침대 앞에서 야간 외과의의 인계를 받았다.밤사이 순환 지원을 다시 늘려야 할 변화는 없었다. 소변과 산염기 상태도 회복되는 방향이었다. 음압 장치는 밀폐를 유지했고, 배액에 갑작스러운 변화는 없었다.정호는 기관내관을 유지하고 있었다. 은채가 이름을 부르자 눈꺼풀이 움직였다. 담당팀이 현재의 반응과 진정 상태를 설명했고, 은채는 복부와 관의 상태를 살폈다.이제는 안쪽을 확인할 시간이었다.수진은 이동 전에 잠깐 아버지를 만났다. 전날 가져간 그림이 가방 바깥으로 조금 나와 있었다. 그녀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빼고 침대 곁에 섰다.“아버지, 나 밖에서 기다릴게.”정호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수진은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손을 잡았다가 이동 준비가 시작되자 놓았다.은채는 수진에게 예정된 재탐색을 진행한다고 알렸다. 확인한 상태에 따라 연결과 복부 폐쇄를 결정할 계획이었다. 수진은 어제처럼 왜 또 여느냐고 묻지 않았다.“설명 끝나면 저를 불러주세요. 멀리 안 갈게요.”준석이 수술실 앞에서 합류했다. 그는 전날 표시해둔 구간을 다시 펼쳤고, 은채는 문정원에게 밤과 아침의 경과를 전달했다. 마취는 소민이 다시 맡았다.이성훈과 맞춘 혈류 평가와 항응고 조절 계획도 함께 확인했다.오전 10시, 임시 폐쇄 장치를 제거하기 시작했다.첫 수술을 마친 뒤 41시간 남짓이 지나 있었다.보호층 아래에서 장이 드러났다.
목요일 오후 2시, 은채는 남정호의 밤 기록을 펼쳤다. 몸은 회복되는 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가장 알고 싶은 것, 남겨둔 장이 살아났는지는 그 어디에도 적혀 있을 수 없었다.수요일 저녁 7시에 넘겼던 경과 뒤로 새로운 줄들이 붙어 있었다. 소변량이 줄었던 시각, 담당팀이 환자를 재평가한 내용, 치료를 조절한 뒤의 변화가 이어졌다. 같은 혈압이라도 받쳐주던 약의 양은 달랐다.정호의 침대에 도착하자 미경이 전용 음압 장치의 배액을 보여줬다.“오전부터 색이나 양이 갑자기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설정과 밀폐 상태도 유지되고요.”“새로 혈성으로 늘어난 적은요?”“야간 기록에도 없습니다. 대신 새벽에 소변이 줄어서 외과랑 중환자 담당이 같이 봤어요.”은채는 이미 읽은 시각을 짚었다. 미경은 야간 담당에게 인계받은 내용에, 아침부터 직접 본 배액 변화를 덧붙였다.배를 덮은 장치 아래에서는 전날 남겨둔 구간을 볼 수 없었다.은채가 복부를 살피는 동안 담당 간호사는 최근 순환과 호흡의 변화를 정리했다. 은채는 위 감압관의 배액과 고정 상태도 보고, 손대지 말아야 할 관을 환자 쪽에서 멀리 정리했다.“이거 보면 장이 살아났는지 알 수 있나요?”수진이 면회 시간에 들어와 물었다. 눈길은 배가 아니라 배액 용기에 머물러 있었다.“새 출혈이나 다른 문제가 생기는지 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남겨둔 장의 상태를 이것만으로 알 수는 없어요.”“피가 덜 나오면 좋아지는 건 줄 알았어요.”
오후 2시 25분, 남정호의 수술이 시작됐다. 배를 연 뒤 은채는 영상보다 넓은 변화를 보았다.소장은 한 가지 색이 아니었다. 선홍빛이 남은 구간 옆으로 회색빛 장이 이어졌고, 그 가운데 짧은 부위는 훨씬 어두웠다. 혈류가 줄어든 범위 안에서도 손상의 깊이는 고르지 않았다.문정원이 물었다.“먼저 해야 할 건?”“혈류 회복할 공간 확보하고, 그동안 전체 범위를 보겠습니다.”혈관외과 이성훈이 맞은편으로 붙었다. 은채와 준석은 부은 장을 보호하면서 혈관에 접근할 시야를 열었다. 마취를 맡은 소민이 환자의 순환 상태와 수술 전 투여한 약을 알렸다.은채는 조금 전 응급실에서 마지막으로 만져본 배를 떠올렸다. 처음보다 단단해진 부위가 있었다. CTA에서도 그쪽 장벽으로 조영제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혈관 안으로만 접근하는 치료를 검토했지만, 이제는 장을 직접 볼 필요가 있었다.“이쪽 고정은 제가 하겠습니다.”준석이 보조 기구를 받았다. 같은 곳에 두 사람의 손이 겹치지 않게 자리부터 나눴다. 은채는 빈 공간으로 흡인기를 넣었다. 부어오른 장 아래에 고였던 액체가 걷히자 혈관으로 이어지는 조직이 드러났다.성훈이 말했다.“이 시야 유지해주세요.”그가 재개통을 준비하는 동안 문정원과 은채는 나머지 장을 따라갔다. 준석은 어느 구간을 이미 봤는지 짧게 되읽었다. 앞에서 본 장이 뒤섞여 들어오지 않도록 수술포 위에 놓는 방향도 맞췄다.경계가 애매한 곳이 예상보다 길었다.
수요일 오전 10시, 최준석은 안내받은 외과 업무 공간으로 들어왔다.영상 속에서 봤을 때보다 키가 컸다. 가방은 작은 것 하나였고, 청해에서 사용할 출입증을 손에 들고 있었다.“서 선생님?”“서은채입니다.”“최준석입니다. 어제 자료 잘 봤습니다.”악수는 짧았다. 은채는 인사 뒤에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생각하다가 문정원이 부르는 쪽으로 갔다. 환자 목록이 이미 펼쳐져 있었다.진료지원 일정에 맞춰 진료 참여 절차와 인계가 준비돼 있었다. 문정원이 오늘 함께 볼 환자와 협진 연락 체계를 설명했다. 준석은 청해에서 담당팀으로 연결되는 번호부터 휴대전화에 넣었다.민재가 첫 환자를 설명하다가 검사 결과를 두 번 읽었다. 준석이 기다렸다가 물었다.“오늘 그 환자를 봤습니까?”“네. 아침에요.”“검사표 말고 그때 얘기부터 해주죠.”민재는 환자가 밤에 잠을 못 잤다는 말부터 다시 시작했다. 준석은 그 원인이 통증인지, 다른 불편인지 물었고, 은채는 담당 간호사에게 받은 밤의 기록을 보탰다.그들이 함께 병실을 돌고 돌아오자 준석이 말했다.“여기는 병동 올라가는 길이 짧네요.”“길은 짧은데 중간에 많이 불립니다.”은채가 대답했다. 말이 끝나자마자 문정원의 전화가 울렸다. 준석은 소리 내 웃지 않고 자기 목록의 다음 칸을 넘겼다.점심 직전 문정원이 예정
순자는 퇴원 설명을 듣다가 라켓 가방을 무릎 아래로 밀었다.“이건 그냥 들고 가는 거예요.”누가 먼저 묻기도 전이었다. 나경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엄마, 선생님이 가방 검사하러 오신 거 아니야.”“지난번에 봤잖아. 오늘 또 운동 얘기부터 할까 봐.”은채도 웃었다. 수술 후 4일째였다. 순자는 식사를 늘린 뒤에도 토하지 않았고, 새로 심해지는 복통 없이 병실과 복도를 걸었다. 진찰과 상처, 장 기능을 문정원과 함께 검토한 뒤 오늘 퇴원을 결정했다.나경은 퇴원 안내문을 펼쳐놓았다. 종이 모서리에 어머니가 가져온 펜이 끼워져 있었다.은채는 집에서 걸으며 움직이는 것과 힘을 크게 쓰는 운동을 나눠 설명했다. 탁구를 다시 시작할 시점은 추적 진찰에서 수술 부위와 회복을 보고 정하기로 했다.“그럼 동호회 구경은요?”“집에서 움직이는 데 불편이 없는지 먼저 보세요. 가시더라도 오래 앉거나 힘들게 이동하지 않도록 조절하시고요.”“내가 구경 가면 한 번만 치라고 할 사람들이라서.”순자가 가방을 더 깊이 밀었다. 이번에는 나경이 지퍼를 열어 라켓을 자기 가방으로 옮겼다.“제가 보관할게요.”“그건 또 싫은데.”모녀가 서로를 보며 웃었다. 수술 전에는 나경이 묻는 동안 순자가 배를 움켜쥐고 있었다. 오늘은 어머니가 말하다가 딸의 말을 빼앗았다.은채가 새로운 심한 복통이나 구토, 상처의 변화가 생
화요일 오전 9시, 화면 속 최준석이 초기 영상을 열었다.전날 받은 질문과 똑같은 순서였다. 최종 영상이나 퇴원 결과부터 보여달라는 말은 없었다.청해 쪽 회의실에는 문정원과 박준영이 앉아 있었다. 중환자실에서는 평소처럼 담당팀이 환자를 보고 있었다. 은채는 공유할 자료를 열고 마이크를 켰다. 이름과 등록번호를 가린 첫 CT 옆에 내원 당시 진찰 기록을 놓았다.“최초에는 3등급 손상으로 판단했습니다. 혈압과 맥박, 복부 진찰을 같이 봤고, 영상에서 명확한 혈관 병변이나 조영제 유출은 없었습니다. 우선 집중 관찰을 선택했습니다.”“출혈이 없었다는 말씀입니까?”준석이 물었다.“아니요. 비장 주위 혈액은 있었습니다. 당시 바로 중재할 혈관 병변이 보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은채는 자기 슬라이드의 문장을 읽지 않고 대답했다. 말을 잘못 줄이면 첫 판단부터 달라졌다.준석은 영상을 한 장 넘겼다.“그럼 관찰을 유지할 수 있었던 조건을 더 설명해주시죠.”은채가 준비한 표를 펼쳤다. 혈액검사 결과만 모아둔 표 옆에 통증과 진찰, 활력징후, 보고와 재평가 시각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정아가 처음 배를 누르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때 들은 말이 검사 수치보다 먼저 기억나는 구간도 있었다. 은채는 기억 대신 그날 남긴 기록을 짚었다.“감시할 병상과 반복 진찰이 가능했고, 중재나 수술이 필요해지면 전환할 팀도 확보돼 있었습니다. 관찰한다고 정한 뒤에도 그 조건이 유지되는지 다시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