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연의 도착을 알리는 소리에 현장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강우연을 포함한 직원들은 겁에 질린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서서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아니나 다를까, 모두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안으로 들어서더니 그 뒤로 흰색 한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들어왔다. 흰머리가 듬성듬성 보이고 금색 안경을 쓴 남자는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좌중을 둘러보았다.그는 숨막히는 카리스마로 좌중을 압도했다.그가 바로 4대천왕 중 한 명인 교구연이었다.교구연의 등장에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공손히 인사했다.“형님!”유독 한지훈만 태연히 자리에 앉아 상대를 빤히 관찰하고 있었다. 강우연과 그녀의 직원들은 그 모습을 보고 손에 땀이 났다.“지훈 씨, 지훈 씨, 빨리 일어나요!”강우연은 다급히 한지훈을 재촉하며 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옆에 있던 직원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그를 흘겨보았다.“젠장! 이제 끝장이야! 한지훈 저 자식은 뭘 믿고 저렇게 당당하지? 교 사장이 왔는데 아직도 한가히 밥이나 먹고 있다니!”“이제 어떡하죠? 우리 이러다 다 죽는 거 아니에요?”“다 한지훈 저놈 때문이야! 교 사장이 왔으니 이제 아무도 도망 못 가겠네….”당황한 직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누군가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교 사장님, 우린 아무것도 안 했어요. 다 한지훈 저 인간이 했어요! 저 인간이 왕호 형님에게 주먹을 휘둘렀어요. 보복을 하려면 저 인간한테만 하세요. 우린 아무 잘못 없어요!”“그래요, 교 사장님. 우린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다니까요?”사람들의 질타에도 한지훈은 담담한 표정으로 앉아 교구연 일행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발끈한 왕호가 다가가서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야! 우리 구연 형님이 오셨는데 지금 여기서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 당장 일어나서 인사 올리지 않고 뭐 해!”말을 마친 그는 테이블을 신경질적으로 걷어찼다. 거대한 진동에 테이블에 있던 반찬이 바닥에 쏟아졌다.한지훈은 인상을 쓰며 싸늘하게 한마디 했다.
S시 지하세력의 4대천왕으로 불리는 그의 앞에서 보란 듯이 부하의 다리를 절단한 상대가 멀쩡히 살아서 시내를 돌아다니면 그만큼 수치스러운 일이 없었다!순식간에 검은색 정장을 입은 무리들이 쇠파이프를 들고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한지훈을 압박해 왔다.겁에 질린 강우연과 직원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한지훈은 여전히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현장을 둘러보고는 가소롭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뭐야? 고작 이거야? 이거 너무 시시한데.”분노한 교구연이 소리쳤다.“같이 덤벼! 당장 저 놈의 간사한 혀를 뽑아버리라고!”조폭들이 순식간에 달려들었다.그런데 이때, 분노한 고함소리가 룸을 찢어버릴 듯이 크게 울렸다.“한 선생 몸에 손대는 자는 내가 죽여버릴 거야!”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입구를 바라보니 검은색 정장을 입은 경호원들이 파이프를 들고 안으로 달려 들어오고 있었다.그 뒤로 체크무늬 정장을 입은 정도현이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입장했다.“교 사장, 안 본새에 많이 컸네. 감히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워? 이 정도현이가 그렇게 만만해?”안으로 들어선 정도현은 한지훈과 시선을 교환한 뒤, 교구연을 향해 싸늘하게 경고했다.정도현이 누군가.S시의 최강 세력의 정점에 선 사람이 아닌가!현장에 있던 모두가 경악했다.강우연의 직원들은 공포에 질려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교구연 한 명으로도 벅찬데 정도현 회장까지 나타날 줄이야!이제 끝장이야!그들은 살아서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놓아버리고 말았다.교구연이 음침한 표정으로 정도현을 바라보며 따지듯 물었다.“정 회장, 지금 이게 뭐 하는 거지? 저 녀석을 감싸겠다는 거야?”정도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 내가 저분을 위해 친히 걸음했는데 할 말 있어?”정도현은 기세로 교구연을 압도했다.교구연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정 회장, 잘 생각해! 저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놈 때문에 나를 적으로 돌리려는 거야?”정도현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교 사
위풍당당하게 부하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온 송호문은 곧장 교구연을 지목했다.그 시각, 스타이 타운 바깥에는 이미 수십 대의 경찰차가 물샐 틈 없이 현장을 포위했고 무장을 한 특수부대원들이 신속히 안으로 침투했다.“1팀 제압 완료!”“2팀 제압 완료!”“3팀 제압 완료!”잠깐 사이에 경찰들이 스카이 타운 전체를 장악했다.위기 상황을 감지한 교구연은 음침한 표정으로 정도현을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정도현 이 비겁한 자식이! 감히 나를 음해하려고 들어?”정도현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해? 난 아무것도 안 했어.”말을 마친 정도현은 송호문에게 다가가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송 청장님, 야밤에 수고 많으십니다.”송호문은 고개를 끄덕인 뒤, 한지훈과 시선을 교환하고는 교구연에게 물었다.“교구연, 조금 전에 누굴 죽이려고 했다던데, 그게 누구야?”교구연은 분노에 치를 떨다가 결국 고개를 떨어뜨리며 대답했다.“송 청장님, 오해십니다. 그냥 장난 좀 쳐본 거였어요.”송호문이 싸늘한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장난이었다고? 그래. 그럼 나랑 같이 서로 가서 얘기하지.”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경찰들이 다가가서 교구연 일당의 손에 수갑을 채워 끌고 나갔다. 교구연은 끌려 나가면서도 정도현과 한지훈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나 이대로 넘어갈 생각 없어! 비겁하게 감히 날 모함해? 두고 봐!”송호문은 정도현을 바라보며 말했다.“정 회장님도 같이 가시죠.”정도현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죠.”강우연과 직원들은 갑자기 정리된 상황에 다들 어안이 벙벙했다.교구연과 정도현은 경찰에 잡혀갔으니 이제 무사한 건가?송호문이 다가와서 강우연 일행에게 물었다.“다들 괜찮으세요? 다친 데는 없어요?”강우연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괜찮아요. 형사님들이 제때에 나타나 주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 그랬으면 정말 큰일 났을 거예요.”송호문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게 저희 일이잖아요.
“한지훈, 네가 무슨 낯짝으로 여길 와? 네가 아니었으면 우리 상황이 이 지경이 되지도 않았어! 너 보고 밥맛 떨어졌으니 썩 꺼져!”사람들의 비난에도 강우연은 그저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모임은 기분 안 좋게 끝이 났다.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강우연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한지훈은 따뜻한 꿀물을 타서 그녀에게 가져다주며 말했다.“아까 술을 좀 마셨으니까 이거 마셔.”“고마워요.”강우연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가 내민 컵을 받아 꿀물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여전히 걱정되는 얼굴로 한지훈을 바라보며 물었다.“지훈 씨, 길씨 가문을 어떻게 상대할지 생각해 봤어요? 정말 문제없겠어요?”한지훈은 그녀의 옆에 앉아 느긋한 태도로 답했다.“응, 걱정하지 마. 내가 다 해결할게.”강우연은 하고 싶은 말은 참 많았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지훈은 일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피로가 몰려와 잠에 들었다.한 시간 뒤, 서류를 다 검토한 강우연은 소파에서 잠든 한지훈을 보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그 자세로 턱을 괴고 잠시 그의 얼굴을 관찰했다.선 굵은 이목구비에 날카로운 인상을 주는 눈썹, 그리고 오똑한 콧날….보면 볼수록 그녀의 얼굴에는 저도 모르게 행복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그런데 이때, 한지훈이 갑자기 눈을 떴다. 그는 새빨갛게 상기된 그녀의 얼굴을 보고 무심하게 물었다.“얼굴이 왜 그래?”강우연은 황급히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시간도 늦었으니 어서 쉬러 가요.”말을 마친 그녀는 서류를 품에 안고 도망치듯 침실로 돌아갔다. 침실에 들어온 그녀는 벽에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렸다.“아… 창피해. 강우연, 이건 너무 바보 같잖아….”그 시각 한지훈은 소파에서 얼굴을 어루만지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그는 방으로 가서 이불을 하나 챙긴 뒤, 소파에서 잠을 청했다.다음 날 아침, 강우연이 다 씻고
강준상은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상황이 어떤지 뻔히 알면서 내게 도움을 청하는 의도가 뭐야? 가문까지 끌어안고 지옥으로 떨어지겠다는 소리야? 사고는 한지훈이 쳤으니 책임도 걔가 져야지. 자기가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잖아? 그 방법이 안 먹히니까 널 나한테 보낸 거야?”강우연은 울며 고개를 저었다.“그런 거 아니에요. 제가 여기 온 거 지훈 씨는 몰라요. 그래도 고운이 아빠잖아요. 그 사람을 이렇게 잃을 수는 없어요.”“허!”강준상은 싸늘하게 콧방귀를 뀌며 강우연에게서 등을 돌렸다.“녀석은 가문에서도 버림받은 무능한 놈이야! 우리 가문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5년 전 그 사고가 없었으면 우리 강운그룹도 일류 그룹으로 자리매김했을 거야! 그 인간이 없었으면 네가 지금 이 지경이 됐겠어? 내가 그렇게 예뻐하던 손녀가 왜 이렇게까지 바보가 됐어?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한 놈을 위해 무릎까지 꿇다니! 나가! 다시는 네 얼굴 보고 싶지 않아!”강우연은 구슬피 울며 애원했다.“할아버지, 제발요. 지훈 씨 좀 도와주세요. 저와 고운이는 그 사람이 필요해요….”쾅!그런데 이때, 사무실 문이 거칠게 열리고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강희연이 거들먹거리며 안으로 들어섰다.“강우연, 너 사람 말 못 알아들어? 할아버지가 꺼지라잖아? 너 무슨 염치로 할아버지한테 도움을 구걸하는 거야?”“언니가 날 싫어하는 거 알아. 하지만 이번에는 제발 나 좀 도와줘. 지훈 씨를 도와주기만 한다면 민학그룹과의 프로젝트는 언니한테 전권을 넘길게.”강우연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그 말에 강희연은 구미가 동했다. 그녀는 생긋 웃으며 강준상에게 말했다.“할아버지, 이번만 좀 도와줄까요? 그래도 우리 가문 사위인데 물론 우린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알고 있잖아요. 한지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사람들이 우리 가문을 비웃지 않겠어요?”강준상은 인상을 쓰며 고개를 저었다.“아무 소용없어. 길씨 가문은 나도 안중
말을 마친 오관우는 전화를 끊었다.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길정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 뒤, 수화기 너머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오관우? 우리 오빠한테는 어쩐 일로 연락했어?”“응? 시아구나. 정우 돌아왔다고 해서 같이 밥이나 먹자고 연락했지.”오관우가 웃으며 답했다.“인삿치레는 그만 둬. 내가 오빠를 몰라? 솔직히 말해. 우리 오빠한테 무슨 볼일이 있어서 전화했어?”길시아가 싸늘하게 물었다.오관우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강희연의 계획을 그녀에게 들려주었다.얘기를 다 들은 길시아가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새침하게 말했다.“강우연? 그럼 그렇게 하겠다고 해. 저녁에 내가 그리로 나갈게.”전화를 끊은 길시아의 눈빛이 음산하게 빛났다.강우연!몇 년을 안 보고 살았더니 이렇게까지 타락한 건가?한지훈을 위해 자존심 다 버리고 우리 오빠한테 사정한다고?그럼 그 바람, 철저히 부숴주지!“누가 전화왔어?”운동을 마치고 돌아온 길정우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그녀에게 물었다.길시아는 생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무것도 아니야. 스팸 전화.”길정우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씻으러 들어갔다.한편, 강희연과 강우연은 오관우의 전화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 오관우에게서 연락이 왔다.강희연이 다급히 물었다.“어때? 약속은 잡았어?”오관우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약속은 잡았는데 길정우가 아니라 시아가 나오기로 했어.”“누구?”강희연은 당황한 표정으로 강우연의 눈치를 살피고는 작은 소리로 물었다.“걔가 왜 나와?”오관우가 말했다.“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길정우 전화를 길시아가 대신 받은 거야. 그런데 상관없지 않을까? 길시아는 길정우가 아끼는 동생이잖아. 길정우는 여동생이라면 껌뻑 죽는다던데, 길시아가 나서주면 오히려 잘된 일 아니야?”강희연은 굳은 표정으로 한참 고민하다가 말했다.“알았어. 자기가 장소 정하고 문자 줘. 강우연은 내가 데리고 갈게.”말을 마친 그녀는 전화를 끊고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강
그 말을 들은 강우연은 감동을 금치 못하며 강희연에게 연신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고마워, 언니. 고마워….”강희연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바라보고는 요염한 걸음걸이로 자리를 떴다.강우연은 저녁 약속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한지훈에게 문자를 보내 저녁에 약속 있으니 먼저 먹으라고 전했다.집에서 고운이와 놀아주던 한지훈은 문자를 받고 잠시 고민하다가 답장을 보냈다.[약속 장소가 어디야? 끝나면 데리러 갈게.]강우연은 아무 의심없이 강희연이 알려준 술집 주소를 그에게 보내주었다.퇴근할 시간이 되자 강우연은 강희연의 차를 타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이곳은 S시에서 유구한 역사를 지닌 술집이었는데 안주가 맛있기로 소문난 집이었다. 하지만 워낙 비싼 곳이라 일반인 출입은 제한되고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오관우는 이곳 VIP 회원이라 호기롭게 룸을 예약했다.약속 장소에 도착한 강우연은 호화로운 인테리어에 눈이 번쩍 뜨였다.골드가 메인 색상인 건물 외부에는 하늘을 나는 봉황 조각상이 높게 솟아 있었다.주차장에는 비싼 외제차가 빼곡이 들어서 있었는데 많은 유명인사들이 이곳에서 모임을 가지거나 미팅 장소로 사용했다.미리 도착해서 기다리던 오관우는 강희연이 보이자 종종 걸음으로 달려왔다.“드디어 왔네.”강희연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왜? 그쪽에서 먼저 도착했어?”오관우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 아직. 30분 정도 걸릴 거래. 먼저 들어가자.”강희연은 고개를 끄덕인 뒤, 오관우의 팔짱을 끼고 술집으로 들어갔다. 강우연은 불안한 표정으로 들어갈지 말지 망설였다.강희연이 고개를 돌리더니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왜? 들어가기 싫어? 그럼 그냥 집에 가. 어쩔 수 없지 뭐.”그 말을 들은 강우연은 서둘러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그녀는 이 결정이 어떤 지옥을 불러올지 아직 예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룸에 도착하자 강우연은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언니, 길정우 씨는 언제 도착해?”강희연은 거만한 눈빛으로 강우연을 바라
길시아는 싸늘한 시선으로 술집 사장을 힐끗 보고는 거만하게 대답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친구랑 약속 있어서 왔거든요. 388호 룸으로 안내 좀 부탁해요.”“네. 이쪽으로 오시죠.”사장은 허리를 굽신거리며 공손한 태도로 길시아를 3층까지 안내했다.문앞에 도착하자 길시아는 뒤를 따르는 군인들에게 말했다.“아무도 못 들어오게 여기 철저히 지키고 있어!”“네, 아가씨!”두 군인이 칼같이 대답했다.길시아는 턱을 잔뜩 치켜들고 안으로 들어갔다.기다리던 길정우가 소식이 없자 강우연은 돌아갈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미안해, 언니. 난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조급해진 강희연이 그녀의 팔목을 잡으며 말했다.“뭐가 그렇게 급해? 네가 도와달라고 해서 만든 자리잖아! 너 지금 가면 내가 뭐가 돼? 길정우 중장이 도착했는데 부탁한 사람이 안 보이면 화를 낼 텐데 그럼 우린 어쩌라고?”오관우도 옆에서 거들었다.“그래요, 우연 씨. 길정우는 곧 군단장이 될 귀한 몸이란 말이에요. 이대로 약속을 어기고 가버리면 군단장을 무시하는 것과 뭐가 달라요?”강우연이 망설이고 있는데 문이 열리고 길시아가 들어왔다.그녀를 본 강희연은 순간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5년의 서러움과 분노가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그녀는 눈시울을 붉히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강희연을 바라보았다.“언니, 길정우 중장이 나온다고 하지 않았어? 쟤가 여기 왜 있어?”강희연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길정우 중장이 좀 바쁜가 보지. 하지만 괜찮아. 길시아 씨가 이번 일의 장본인이기도 하니까.”오관우는 반가운 얼굴로 달려가서 길시아를 맞아주었다.“시아 왔구나. 어서 이쪽으로 와서 앉아.”길시아는 오관우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장 강우연에게로 다가왔다.그리고 들려온 마찰음.길시아는 손을 들어 강우연의 뺨을 후려치고는 욕설을 퍼부었다.“비천한 것이 어디 우리 오빠한테 수작질이야? 네가 무슨 자격으로 오빠를 만나?”현장에 있던 강희연과 오관우마저 당황했다.강우연은
이 둘과 비교하면, 기자인 그녀는 마치 한 줌 모래처럼 미미한 존재였다.임설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오르자, 유 씨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설아, 사실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지금의 용국은 이미 몇 년 전의 용국이 아니야. 너도 알겠지만, 내 뒤에는 오대 명산이 있단 말이지.”“우리 오대 명산이 널 지지하는데, 뭐가 두려운 것이냐? 설령 용국 조정이라도 감히 우리를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그날의 대화는 줄곧 내가 한 말이었으니 잡으려면 나를 잡는 거지, 널 잡을 일은 없다.”임설은 그 말을 듣고 다소 안심한 듯 보였으나, 여전히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지만…… 유 씨 어르신, 그건 전부 어르신의 추측일 뿐이에요. 우리 손엔 아무 증거도 없잖아요!”“증거? 증거가 그렇게 중요해?”유 씨 노인은 냉소하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무종 전체가 내 말에 동의한다면, 그게 바로 증거지!”비록 천릉자가 대량산에서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지만, 한지훈의 명예를 실추시키기만 한다면 국왕은 가장 중요한 의지를 잃게 된다.바로 이때, 국왕의 자리를 노린다면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이때, 산성시.산중에 위치한 호화로운 별장에서, 검은색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젊은 여인에게 말했다.“선아, 며칠 전 장 도령께서 놀란 일이 있었단다.”“우리 천산 장씨 가문과는 대대로 교류가 깊었지. 어떤 의미에서든, 넌 가서 한 번은 그를 봐야 하지 않겠니?”“그리고 네 신분도 좀 자각해야 해. 진씨 가문의 큰 아가씨가 어찌 그리 속된 백성들처럼 옥기점 같은 데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냐!”이 중년 남자의 이름은 진천국, 산성 진씨 가문의 가주였다!진천국이라는 이름은 산성 전체에서 거의 군왕이나 다름없는 존재다.특히 영기가 되돌아온 이후, 진천국의 사문은 현재 산성 최대의 종문인 천앙종이었다!게다가 진씨 가문은 지금 천산 장씨 가문과 우호 관계를 다져가며, 혼인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만일 혼인이 성사된다면, 진씨 가문은
사실, 한지훈이 산에 들어서는 길목에서 이미 유 씨 노인의 말을 다 듣고 있었다.오대명산과 무종 사람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어찌 한지훈이 모를 수 있을까!최근 이 시기 동안 천릉자의 기세가 드높다는 건, 곧 오대명산이 천릉자를 내세워 한지훈이 용국에 세운 공적을 지우려는 의도임을 뜻한다.게다가 이 기회에 국왕의 지위마저 위협하려는 것이었다.개인의 영예나 치욕 따위는 한지훈에게는 이미 중요하지 않았지만, 누구든 국왕의 권위를 흔드는 일만큼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오대명산의 계략을 깰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천릉자의 기세가 가장 드높을 때 정면으로 한방 먹이는 것이었다!그리고, 천릉자가 살해당한 사건은 과연 큰 파장을 일으켰다!그 전에 오대명산은 이 일을 공개적으로 보도하게 하려고 수많은 언론 기자들을 초청했다.하지만 정작 결과는, 제 발등을 찍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현장에 와 있던 언론사 수가 너무 많았고, 모두가 생중계로 현장을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게다가 수많은 인플루언서들까지 합류하며 정보를 봉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이 사건은 마치 다리가 달린 듯, 하룻밤 사이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흥! 정말 웃기는군. 그 따위가 어찌 한지훈과 견줄 수 있단 말인가? 한지훈보다 깨달음이 뛰어나다고? 타고난 자질이 낫다고? 결국 누가 죽였는지도 모른 채 죽어버렸잖아!”“흥, 내 보기엔 그냥 날뛰는 광대였을 뿐이지!”“날뛰는 광대? 그래도 광대는 멀쩡한 머리를 잃진 않겠지! 하하하…”온라인에서는 조롱이 난무했고, 항산의 사람들은 아예 모습을 드러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한순간에 오대명산의 기세는 급격히 꺾이고 말았다.그 뒤 한 달 동안, 모든 이들의 화제는 이 사건에 쏠렸다.오직 한지훈만이 조용히 천생서문에 기록된 내용을 따라 진지하게 약제를 조합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그에게는 강우연이 천신계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이런 화제들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게다가 천하 정세는 이미 크게 변하고 있었고,
그들은 누군가가 도중에 강탈할 거라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장령풍이 자소화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는 약속대로 천릉자에게 져주지 않을 가봐 걱정됐다. “여러분, 드디어 가장 관건적인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과연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됐을지 함께 알아봅시다!”한 인터넷 BJ는 생방송을 켜고는 팬들을 향해 말했다. 그렇게 시간은 1분 1초가 흘렀고, 모두들 손꼽아 승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산 길에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걸어 나왔다. 다만, 천릉자와 장령풍 두 사람의 종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사고라도 난 건 아니겠죠? 장 사부님이랑 천릉자 사부님은 왜 여태까지도 나오지 않는 거죠?”임설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사실 또 다른 가능성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두 사람이 너무 격렬하게 싸운 나머지 모두 중상을 입어 전혀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지는 않을 거야. 필경 모두 동문 사람이기에 두 사람이 한판 붙게 된다 하더라도 반드시 어느 정도 여지를 남겨둘 거야!”유 씨 어르신은 확신에 가득 찬 말투로 말했다. 알다시피 이번 대결은 5대 명산이 함께 손을 잡고 벌인 판이다. 게다가 천산 장 씨 집안도 이 계획에 얽혀있었기에, 절대 어떠한 실수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주위에는 또 수많은 고수들이 지켜보고 있을 텐데, 의외의 사고란 발생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유 씨 어르신의 말이 떨어지기도 바쁘게, 산길에서는 어두운 안색의 항산 제자 4명이 단대 하나를 들고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이내 카메라들은 일제히 그 단대에 초점을 뒀고, 모든 기자들은 순간 숨을 죽였다. 단대 위에는 머리 없는 시체 한 구가 누워 있었고 옆에는 웬 동그란 물건이 놓여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서야,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바로 천릉자의 머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른 한편, 몇 명의 장 씨 집안 자제들 역시 단대 하나를 들고는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장령풍
그러나 한지훈은 장령풍을 투명 인간 취급한 체 눈 깜짝할 사이에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지훈이 멀어질 때까지, 장령풍은 여전히 깊은 공포 속에 빠져 있었다. 사실 천릉자는 실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방금 그와의 정면승부에서, 그는 천릉자의 털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두 사람의 실력은 그야말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천릉자의 촘촘한 검망을 깨뜨려 그의 머리를 아작 낸다는 건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최선을 다해봤자 기껏해야 천릉자에게 상처만 입힐 거라 확신했다. 천릉자를 죽이는 건 하늘의 별 따기보다도 더욱 어려웠다. 모두들 알다시피 검망 아래에서는, 수천 갈래의 검의 습격을 마주해야 했다. 그 검망을 피해 사람을 죽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 검방을 피하는 것조차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설사 2성 천신계 강자라 하더라도 밀집된 검망을 마주하게 되면,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게 되고 더욱이는 천릉자를 사지로 몰아넣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지훈은? 오직 나뭇잎 하나만으로, 마치 어린애 장난처럼 닥치는 대로 나뭇잎을 던져 천릉자의 머리를 아작 냈다. 지금 이 순간, 산 전체는 비할 데 없이 조용했다. 한지훈이 멀어질 때까지 장령풍은 줄곧 조용히 땅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고 있었다. 그는 심지어 감히 고개 한번 들어 앞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30분이 흐르고 나서야 장령풍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한지훈의 자취가 더 이상 보이지 않자, 그는 비로소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익숙한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장령풍, 오늘 벌어진 일을 소문내면 장 씨 집안은 멸망하게 되는 줄 알아!”“네... 저는... 아무것도 못 본겁니다!”크게 놀란 장령풍은 벌벌 떨었다. 한지훈의 경고는 그에게 있어서 성지였다. 한지훈은 뱉은 말은 무조건 지키는 사람이라는 걸,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유럽은 용경과는 80리 정도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오직 용국을 위해 복수
게다가 사방에서 한지훈을 헐뜯고 있는 발언들에 대해, 장령풍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한지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몇몇 명산 모두가 그의 적이었다. 그렇기에 한지훈이 남의 도움을 받았다는 얘기 자체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역외 강자조차도 흔들 수 없는 거물을, 누가 감히 건드리려 하겠는가? 그러나 옆에 있던 천릉자는, 장령풍의 표정 변화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한지훈의 정체가 뭐든, 자신이 쟁취해야 할 성과를 이대로 빼앗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내 그는 장령풍과 상의도 하지 않고 바로 손을 들었다. 곧이어 그물처럼 촘촘한 검망이 한지훈의 정수리 위에 펼쳐졌다. 그는 단 한 방에 한지훈을 산산조각 내어,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건드리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줄 작정이었다. 온 하늘을 덮은 검망에도, 한지훈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닥치는 대로 나뭇가지에서 잎사귀 하나를 따냈다. 그러고 나서는 천릉자가 서있는 쪽으로 잎사귀를 가볍게 던졌다, 곧장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잎사귀에, 제대로 화가 난 천릉자는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잎사귀로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건, 무종 모든 종사들의 장기였다. 그러나 종사계의 실력은, 그저 전신계와 같을 뿐이었다. 그런데 일성 천신계 고수인 자신이 뜻밖에도 전신계 같은 땅강아지한테 무시당하게 될 줄이야? 생각할수록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른 천릉자는 곧바로 또 하나의 검망을 휘두르며 사악한 웃음을 보였다. “네 이 녀석, 천신계 강자를 상대로 도전장을 내밀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오늘 내가 제대로 보여주마!”“죽어!”지금 이 순간, 천릉자는 이미 한지훈을 죽은 사람으로 취급했다.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눈 깜짝할 사이에 한지훈은 산산조각 나게 될 것이다. 예상치 못한 눈앞의 상황에 장령풍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전에 이미 한지훈의 전력을 직접 목격했었다. 모든 전투에서, 한지훈은 오릉군 가시를 던졌었다.
천산 장 씨 집안과 항산 사이에는 서로 맺은 약속이 있었다. 오늘 이 자소화도 사실은 천릉자에게 주기로 내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자소화 자체는 결코 희귀하지는 않지만, 꽃이 피기 전의 자소화를 찾는 건 매우 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대다수는 사람들에게 발견되기 전에, 산속의 맹수들에 의해 먹히고는 만다. 사실 천신계 강자에게 있어, 자소화의 장점은 셀 수 없이도 많았다. 이 자소화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순조롭게 2성 현급 천신계까지 도달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이렇게 큰 유혹 앞에서, 장령풍은 장 씨 집안과 항산의 약속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고 오로지 이 자소화를 손에 넣을 생각뿐이었다. 그의 단호한 태도에 천릉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령풍, 작은 것을 얻으려고 큰 것을 잃으려 하지는 마. 당시 한지훈의 그 사건도 장 씨 집안이 자초한 일이었어. 네가 자소화를 손에 넣는다면, 그동안 우리가 한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게 될 거라고!”사실 전에 5대 명산, 항산 그리고 천산 장 씨 집안이 줄곧 천릉자를 치켜세운 이유는 그 배후에는 아주 큰 음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른바 불세출의 천재란 타이틀을 근본적으로 꾸며낸 것이다. 사실 천릉자는 이미 30년 전에 항산 문하에 들어선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항산은 줄곧 그를 중점 육성 대상으로 간주해오고 있었다. 그렇게 4년 만에 단번에 천신 경계를 돌파하게 된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가짜였지만, 그 최종 목적은 천릉자를 이용하여 한지훈을 호되게 밟는 것이었다. 그리고 방금 유 씨 어르신의 발언과 언론을 통해 한지훈은 영원히 용국의 치욕이라는 이미지로 매장하려는 속셈이었다.그러려면 이 과정에서 천릉자의 후광을 더욱 밝게 비추어야 했다. 그의 후광으로 한지훈의 공적을 덮어 그를 폄하하고 말살하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계획이었다. “장 씨 집안의 계략이 뭐가 대수야? 난 지금 오직 이 자소화만 갖고 싶을 뿐이야!”장령풍은 여전히 굳은 표정
만약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이 내용이 보도된다면 전 세계를 뒤흔들 만한 사건이 될 것이다.필경 현재 용국은 물론, 심지어 전 세계가 모두 한지훈이 단지 일성 준 천신계의 실력으로 10여 명의 역외 강자들을 참살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하여 전 세계는, 한지훈과 용국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만약 그 배후에 호천 창세가 손을 쓴 거라면 용국은 과연 어떻게 될까? 한지훈은 또 어떻게 될까? 과연 누가 용국을 두려워하겠는가? 아마 그 누구도 한지훈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지 않을 것이다.“됐어, 한지훈 그 반역자에 대해서는 이쯤하자. 저 두 사람의 시합이나 지켜보자고!”유 씨 어르신은 의도적으로 반역자라는 세 글자를 강조하며, 한지훈의 못된 이미지를 제대로 박았다. 한편 그 시각, 한지훈도 어느새 산꼭대기에 도착했다. 장령풍과 천릉자 두 사람은 여전히 교전을 펼치고 있었다. 게다가 보아하니 장령풍의 상황은 딱히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새하얀 도포에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장령풍은, 어느새 피범벅이 되었고 분노 가득한 두 눈동자는 천릉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 반면 천릉자는 조금도 다치지 않고 여유롭게 한 손을 짊어진 채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듣기로는 너희 장 씨 집안 삼절진은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하다고 하던데, 오늘 보니 역시나 명실상부라 느껴지긴 하는구나. 하지만 다만 아쉬운 건, 넌 아직 제대로 불꽃이 튀지 않아 천절진의 위력은 크게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앞으로 만약 10년만 더 지나게 된다면, 나중에 나의 천망 검진은 너를 더 이상 격파하기도 어렵게 될 거야. 하지만 어찌 됐든 그건 10년 후의 일이니, 오늘은 일단 이 자소화를 나한테 양보해!”이내 천릉자가 허리 굽혀 자소화를 따려는 순간, 숲속에서는 갑자기 우렁찬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오옥!”불곰보다도 몇 배나 더 큰 맹호 한 마리가 갑자기 숲에서 뛰어나오고 있었다. 순간 천릉자와 장령풍 모두 멍해졌다. 전에 5대 명산 고수들이 이미 산꼭대기를
유 씨 어르신의 말에, 임설은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기가 돌아온 후, 모든 사람들의 몸에는 큰 변화가 생겼고 저항력도 강해졌을 뿐만 신체능력도 향상되었다.그러나 마찬가지로 맹수들도 더욱 강해졌다. 만약 임설이 맹호를 상대한다면, 그건 바로 먹잇감이 되는 것이었다.당시 한지훈의 일전도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십여 명의 역외 강자들을 상대하다니, 게다가 모두 한지훈보다 한두 단계 높은 경지의 고수들이라니. 비유하자면 당시의 한지훈은 마치 현재의 임설과도 같았고, 그 십여 명의 역외 강자들은 바로 맹호 같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들의 대결 결과는, 전혀 추측할 필요가 없이 다들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그럼 당시 그 대결이 만약 오로지 한지훈의 소행이었다면, 이건 합리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유 씨 어르신은 뒷짐을 진 채 오만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리둥절해졌다. 필경 유 씨 어르신은 화산 고수중 한 명이었기에, 그의 말은 신빙성이 아주 높았다. 게다가 진정한 무도 중인 만이 한지훈이 당시 직면한 것이 얼마나 큰 도전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보통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유 씨 어르신은 이런 속임수에 넘어갈 리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무종이 점점 강해지게 되면서, 현재 더욱 많은 일반인들이 모든 경계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잘 알게 되었다. 천신경은 말할 것도 없고, 설령 전신계라 하더라도 작은 경계 사이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였다. 즉 천릉자는 비록 일성 준 천신의 최고 실력에 도달하긴 했지만, 그가 2성 천신계를 돌파하지 못한 이상, 2성 천신계 상대에게 있어 그는 마치 땅강아지와도 같은 존재였다. 두 사람이 동원할 수 있는 역량이 전혀 같은 수평선에 놓여있지 않는데, 어떻게 싸울 수 있겠는가? “어르신, 그 말씀은 전에 한지훈이 다른 사람의 힘을 이용하여 모든 사람들을 속여왔다는 뜻인가요?”임설이 다시 물었다. “그래. 중요한 포인트를 짚었네. 너희들 아직도
임설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 “혹시 임설이니?”바로 이때, 임설의 뒤에서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 씨 어르신?”고개를 돌린 임설은, 뒤에 선 노인을 보고는 순간 멍하니 있다가 이내 급히 열정적으로 그를 맞이했다. 그녀가 유 씨 어르신이라 부르는 이 사람은 바로, 세속에서 활동 중인 화산 강자이자 현재 무도 재판소의 부회장이기도 했다. 게다가 화산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었기에 유 씨 어르신은 세속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다. 매체인으로서 임설 역시 유 씨 어르신이 낯설지는 않았다. 게다가 전에 그녀는, 유 씨 어르신의 인맥을 통해 5대 명산의 3기 다큐 영화까지 제작했었다. “어르신, 어르신께서는 왜 여기 계신 거예요?”임설은 겉으로는 궁금해하는 척했지만, 사실 내심 전혀 의외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번 사건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장령풍과 천릉자 두 사람이었기에, 같은 5대 명산인 화산에서 사람을 보내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난 단지 길을 가던 중 한번 와서 본 것일 뿐이야. 그나저나 이 아이들은 이젠 모두 어른이 되었는데, 이들이야말로 용국의 미래 희망이지!”유 씨 어르신은 눈을 지그시 뜨고는 산 꼭대기 쪽을 유유히 바라보았다.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임설은 급히 보조 카메라 감독을 불러 휴대폰으로 촬영하라고 지시하였다. 이내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 유 씨 어르신 가까이에 다가갔다. “어르신, 어르신의 경험으로 봤을 때 오늘 이 자소화, 과연 어느 집안이 가져갈 거라고 예상하시나요?”필경 유 씨 어르신의 신분 지위는 꽤나 높았기에, 아마 일부 내막에 대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5대 명산끼리의 호흡은 결코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장령풍과 천릉자가 맞붙기도 전에, 아마 암암리에 모든 준비를 마쳤을 가능성도 매우 높았다. “아이고, 그 질문은 좀 난처하네. 원칙부터 말하자면, 장 씨 집안 역사는 엄청 유구하지. 우리 용국의 많은 비진도 모두 장 씨 집안으로부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