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전투… 무종이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겠구나.”백발의 노인이 화산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혈족의 후작들이 굳이 직접 싸우지 않더라도, 단지 그들의 위압만으로도 천명자의 전력을 억제하기엔 충분했다.결국 용국 측에서는 천명자가 유일하게 인왕 오 층 경지에 도달한 인물이었지만, 그 역시 이제 갓 돌파한 지 채 10년도 되지 않은 신예에 불과했다.오랜 세월을 살아온 혈족의 노련한 고수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게다가 혈족은 후작급 고수들 외에도 백작급 강자들까지도 직접 전장에 나선다 하니, 양측의 전력 차는 절망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그 인파 속, 단정한 정장을 입은 한 젊은 여성이 주변의 논의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그녀는 바로 임담의 비서, 방연이었다.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해, 임담은 그녀를 직접 파견해 현장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보하라 명한 것이었다.이 전투 결과에 따라, 회사의 향후 전략을 수정해야 했기 때문이다.임담뿐만 아니라, 용국의 4대 가문과 흑병대 또한 비밀리에 첩자를 보내 화산 전투의 결과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었다.그때, 하늘 저편에서 거대한 붉은 광기둥 하나가 솟구쳐 올랐다.핏빛과도 같은 그 광기둥 안엔, 끝없이 흐르는 피의 강이 넘실거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화산 주변의 핏빛 구름도 이 광기둥 덕분에 더욱 선명하고 짙어졌고, 공기 중에서도 짙은 피비린내가 퍼져 나왔다.“혈족의 후작이다!”군중 속 누군가가 외치자, 모든 사람들이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쳤다.그 붉은 빛줄기가 스쳐 지나간 땅에는 풀 한 포기 살아남지 못하고 시들어버렸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생명이 강제로 끊겨버린 듯했다.그리고 그 피빛 장막 속에서, 거대한 붉은 형체 하나가 아련히 모습을 드러냈다.숨이 막힐 듯한 위압이 화산 일대를 완전히 덮었고, 수십 리 내의 공간마저 틀어막았다.쿵!!아직 군중들이 그 공포에서 벗어나지도 못했을 무렵, 또 하나의 핏빛 광막이 화산 정상을 향해 쏘아졌다!그 위압만으로도, 멀리 떨어진
임담은 전국 최대의 네트워크 회사를 이끄는 회장답게, 정세를 꿰뚫어 보는 감각이 예사롭지 않았다.바로 그 탁월한 감각 덕분에, 그는 지금 용국 전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암류가 꿈틀대고 있다는 것을 정확히 감지하고 있었다.이번 일의 배후에는, 한지훈이 과거에 상대했던 적들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엄청난 세력이 숨어 있었다.그들은 단 한 번의 움직임만으로 여론을 완전히 주도하며, 하룻밤 사이에 국민의 영웅 한지훈을 추락의 낭떠러지로 몰아넣었다.그 수법은 너무나도 노련하고 치밀했다.그 수법 속에는 마치 역대 왕조마다 되풀이되던 당쟁과 숙청의 그림자마저 어른거렸는데, 한지훈이 어찌 이런 자들과 정면으로 싸울 수 있단 말인가?그때, 그의 비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임 회장님, 그래도 지금 한지훈은 아직 북양왕입니다. 게다가 조정도 이번 일의 최종 결정권을 그에게 맡긴 상황인데, 만에 하나라도 일이 엇나가면…”임담은 냉소적으로 웃으며 말을 끊었다.“북양왕? 이 일이 끝나고 나면, 북양왕은커녕 국왕의 조서조차 용경을 벗어나지 못할 거다! 이 뒤에 있는 세력은, 너나 내가 상상도 못 할 존재야.”“혹시 명나라 때 척계광이란 인물을 들어본 적 있나? 공적으로 말하자면 한지훈보다 결코 약하지 않지. 하지만 나중에 그의 결과가 어떠했나?”임담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임 회장님의 뜻은…”그녀는 역사책을 읽어본 적이 없으며, 척계광이 현재 발생한 일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더더욱 알지 못했다. “척계광은 왜구를 토벌한 명장이다. 그런 공로에도 불구하고, 장거정은 그를 진수사로 북방에 보내 장성을 쌓게 했고, 결국 그는 북방에서 과로로 죽었다. 그리고 죽은 후, 그의 가문은 장거정에게 전부 몰살당했지!”“척계광도 그나마 십여 년은 더 살았지만, 한지훈의 최후는 그보다 훨씬 더 비참할 거다. 사람을 죽이는 데 칼만 필요한 게 아니지. 붓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어.”그렇게 말하며, 임담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그 역시 이런 결말을 원
한지훈의 위신이 빠르게 추락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진우는 조급함을 감출 수 없었다.“진 씨 형님, 우리는 조정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말과 행동은 항상 떳떳해야 하며, 용국 백성에게 거짓을 말할 수도 없어요. 전쟁이든 화평이든, 반드시 우리의 입장을 국민에게 밝히고 가야 합니다. 지금은 백성들이 왜곡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고, 공정함은 결국 백성의 마음 안에 있으니, 당장의 이익에 얽매일 이유는 없습니다.“한지훈이 침착하게 말하자, 진우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 말은… 이제 한 치의 물러섬도 없다는 뜻입니까?”“물론입니다! 한 뼘의 땅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군인의 사명이지요! 이씨 가문이든 주씨 가문이든, 그들 모두 용국의 백성인데 어찌 남에게 넘길 수 있겠습니까?”한지훈의 말투는 매우 단호했다.그의 결연한 태도에 진우는 더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그 사이, 한지훈을 향한 비난과 저주의 여론은 점점 극에 달하고 있었다.“흥! 한지훈은 주씨 가문과 이씨 가문한테서 뇌물이라도 받은 게 틀림없어. 그래서 끝까지 화평을 거부하는 거지! 우린 아무것도 안 받았는데, 왜 그 사람들 때문에 이 위험을 감수해야 해?!”“그래 맞아! 아무리 북양왕이라고 해도, 우리의 생사를 제멋대로 결정할 권리는 없어!”“한지훈은 위선자야! 겉으론 정의롭다지만, 속은 자기 잇속만 챙기려는 놈이라고!”평범한 백성들 입장에서는, 전쟁이 시작되면 무도 강자들은 자기를 지킬 수 있겠지만, 자신들은 아니었다.혈족이 하층 병력을 방치한다면 수만 명의 혈족이 민간인을 학살할 가능성도 있었고, 그 상황에서 아무리 한지훈이 강해도 도저히 모든 지역을 커버할 수는 없었다.이런 여론의 흐름을 지켜보던 낙장생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이제… 한지훈을 신격의 자리에서 끌어내릴 때가 됐군.”그가 명령을 내리자, 천산 문하 제자 몇 명이 동시에 문자 메시지를 발송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넷상엔 또 하나의 폭탄급 뉴스가 터졌다!“여
천명자가 세속으로 돌아오기 전, 이미 공씨 가문 사람들과 비밀리에 논의를 마친 상태였다.이번 귀환의 목적은 단지 주씨 가문과 이씨 가문 사람들을 제거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무엇보다 중요한 건, 한지훈이 세속에서 쌓아온 위신을 철저히 짓밟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아무리 용국 백성들이 한지훈을 지지한다 해도, 생사의 기로에 놓이면 인간 본성은 결국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대다수 사람들이 천명자의 의견을 지지하게 되면, 한지훈은 순식간에 지지를 잃고 도리어 외부 세력에게 세속의 발언권마저 빼앗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결과는 공씨 가문 측 예상대로였다.천명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용국 전역에서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서북 3성을 내가 어릴 때 가봤는데 모래바람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 혈족한테 넘겨줘도 괜찮잖아?”“그러게. 어차피 주씨 가문이랑 이씨 가문도 무도 세가인데, 국가 위해 조금 희생하면 어때서?”“혈족이랑 싸워서 이길 자신도 없는데, 왜 그냥 협상은 안 되는 거야?”곧이어 온라인상엔 다양한 여론이 퍼졌고,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전국 투표 결과가 나왔다. 무려 60%의 국민이 천명자의 주장에 찬성한 것이다!이 결과를 본 천명자의 얼굴엔 자만심 어린 미소가 번졌다.음흉하고 교활한 계략에 있어, 공씨 가문이 둘째라면 서러울 자들 아닌가?한지훈은 결국 너무 젊었고, 어떻게 공씨 가문처럼 노련한 자들과 싸워서 이길 수 있겠는가? “용국 조정과 북양왕 개인에 대한 존중을 담아, 한지훈 선생께 묻습니다. 저의 제안대로 혈족과의 화평을 고려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천명자가 의기양양한 어조로 멀리서 한지훈을 향해 소리쳤다. 마치 온 나라 사람들에게, 한지훈이 자신에게 굴복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려는 의도였다.한지훈이 대답도 하기 전에, 적지 않은 무종의 문주들과 종주들이 먼저 앞다투어 나섰다.“천명자 선배님은 역시 도량이 넓으십니다!”“맞습니다. 한지훈을 선생이라 부르시다니, 그 자체로 위대한 아량이시죠!”공천구 또한 그에 맞장구쳤다.
우렁찬 목소리는 천둥소리처럼 용국 땅에 울려 퍼졌다. “북극 천궁?”공천구는 이 네 글자를 듣자마자 감격의 기색을 드러냈다. “됐어! 드디어 거물이 나타났어!”진 씨 어르신은 더욱 기쁜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할 지경이었다. “용국 무종, 천명자 선배의 세속 복귀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이내 적지 않은 무종 종문들이 일제히 인사를 올렸고, 그들의 이구동성은 하늘을 뒤흔들었다. 낙장생 역시 무릎까지 꿇고 천명자가 있는 방향을 향해 잇달아 절을 했다. 반면 추천홍은 차가운 눈빛으로 천명자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절을 하든 말든 그와는 무관한 일이라 생각했다. 적어도 태세가 좋아지기 전까지는 그는 결코 함부로 줄을 설 생각이 없었다. 천명자는 바로 북극 천궁의 직계 제자이다. 지위만 따지면, 5대 명산에서 돌아온 수많은 장교나 집사들보다도 훨씬 높았다. 실력을 논하자면, 천명자는 인왕 5단계의 고수로서 당대에서는 무적의 존재라고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이청도나 주서진 같은 세자들조차도 그에게는 공손해야 했다. 게다가 100여 년 전에는, 서방 3대 세가와 7박 7일간 혈전을 벌려 엄청난 실력으로 용국 역외 세력에 대한 3대 세가의 공세를 막아냈다. 이 사실만으로도 북극 천궁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직계 제자가 서방 3대 가문을 물리칠 수 있을 정도라면, 북극 천궁의 세력은 대체 얼마나 대단한 걸까? 유소천 역시 북극 천궁이라는 네 글자를 듣고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세속에 있는 혈족들의 세력 역시 물론 강하긴 하지만, 북극 천궁을 마주한 현재, 세속에 있는 그들의 힘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심지어 혈족의 고위층들 역시, 용국에서 뜻밖에도 북극 천궁의 고수를 세속으로 파견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지금 이 순간, 용국을 대표하여 발언권을 가진 사람은 더 이상 한지훈이 아니라 천명자였다. 단호한 그의 태도만 보아도, 북극 천궁의 뜻은 매우 뚜렷하게 보였다. 설마 북극 천궁이 과연 일방
“주씨 가문과 유 씨 가문의 원한은 선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당시 진왕은 아직 6개 국을 통일하지 않은 상황이고, 유 씨 가문은 공 씨 가문의 종세가로 소속이 되어 있었습니다!”“반면 주 씨 가문은 위자의 하인으로 있었고, 위자는 사실 상군이기도 합니다! 법가와 유가의 투쟁은 선진부터 시작되긴 했지만, 열국의 군왕들은 하나같이 유가의 목표가 법을 어지럽히는 데 있다고 확신하였습니다!”“인정이든 관인이든, 사실상 인정으로 모든 국법을 대체하여 국법의 집행 강도를 약화시켜 그들이 불법적인 일을 하는데 문제가 없게끔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열국 국왕들은 도살견을 내쫓듯이 공구를 내쫓은 겁니다! 그가 죽은 후 유 씨 가문이 공구의 깃발을 이어받았고, 당시 그와 대립했던 가문이 바로 주 씨 집안이었던 겁니다!”“당시 주강이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주 씨 가문의 진정한 선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진상 리스도 그의 제자입니다!”주진룡의 흥미진진한 얘기를 들은 한지훈은 그제야 자초지종을 알게 되었다. 이는 더 이상 두 세가의 원한이 아니라 유가와 법가의 싸움이 된 것이다. 어쩐지 혈족 유 씨 가문도 그렇고 공 씨 가문도 그렇고, 줄곧 주 씨 가문을 죽어라 물고 늘어졌더라니. “그러나 후세의 결과는 법가가 패배했다는 걸 증명했잖아.” 한지훈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패배했지만 사실상 패한 게 아닙니다! 당시 저희 주명 왕조까지만 해도 홍무 만세가 집행한 건 여전히 법가였습니다. 이렇게 얘기해 드리죠, 역대 왕조들이 개국하게 되면 모두 법가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왕조가 흥성할 때만 유가가 대권을 독점한 겁니다!”“진나라, 당나라뿐만 아니라 송명도 이러한 상황이었습니다! 심지어 동림 일당은 짧디 짧은 50년 내에 법가의 모든 전인들을 멸망시켰고, 해서 해공은 바로 그들 일당에 의해 살해된 겁니다.” 주진룡의 얘기에 한지훈의 눈동자에는 갑자기 차가운 빛이 번쩍였다. “그랬구나!”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