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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집에 들어와

Author: 서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7 03:28:19

친구라는 이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열네 살의 장혁은 그렇게 믿었다.

그리고 스무 해가 흘렀다.

“야.”

박승철의 목소리에 장혁이 고개를 들었다.

“뭘 그렇게 멍하니 있어?”

“내가 언제.”

“방금부터 로로만 보고 있잖아.”

장혁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맞은편으로 향했다.

한로로는 테이블에 턱을 괸 채 휴대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서른넷.

중학생이던 세 사람은 어느새 그 나이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끔은 변한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승철은 여전히 안경을 썼고 여전히 욕을 달고 살았다.

로로는 여전히 작았고 여전히 잘 먹었다.

그리고 자신은—

“뭘 봐?”

로로가 고개를 들었다.

장혁은 시선을 돌렸다.

“안 봤어.”

“봤잖아.”

“착각이야.”

“지랄.”

승철이 피식 웃었다.

“스무 해째 똑같네, 진짜.”

장혁이 소주잔을 들었다.

“닥쳐.”

조금 전까지 장서운과 헤어진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태연한 얼굴이었다.

로로가 그런 장혁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근데 진짜 괜찮아?”

“뭐가.”

“서운 씨.”

“헤어졌는데 뭘.”

“몇 년 만났잖아.”

“그래서?”

로로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 새끼 진짜 피도 눈물도 없네.”

승철이 맞장구쳤다.

“그러게. 나였으면 오늘 술 처먹고 울었다.”

“넌 민원인한테도 운다며.”

“안 울었어, 개새끼야.”

“아까 가로수 때문에 울 것 같다고 했잖아.”

“그건 빡쳐서 그런 거고.”

로로가 웃음을 터뜨렸다.

장혁도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방금 전까지 여자친구와 헤어진 자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다시 평소의 세 사람이었다.

그때였다.

부우웅.

테이블 위에 엎어놓은 로로의 휴대폰이 울렸다.

로로는 확인하지 않았다.

부우웅.

잠시 후 또 한 번.

그리고 다시.

부우웅.

승철의 시선이 휴대폰으로 향했다.

“뭐냐.”

“문자.”

“그건 나도 알아.”

승철이 술을 따르며 물었다.

“남친?”

“아마?”

“아마는 뭐야.”

“안 봤으니까 모르지.”

로로는 태연하게 족발을 집었다.

장혁이 물었다.

“안 봐?”

“이따 봐도 돼.”

“계속 오는데.”

“원래 좀 그래.”

장혁의 시선이 휴대폰에 머물렀다.

화면이 다시 밝아졌다.

메시지 내용까지 보이지는 않았다.

발신자 이름 역시 로로가 휴대폰을 뒤집어 놓은 탓에 확인할 수 없었다.

승철이 혀를 찼다.

“남친이 불쌍하다.”

로로가 눈을 흘겼다.

“뭐가.”

“여친은 연락 씹고 술 처먹고 있고.”

“나 퇴근하고 친구 만난다고 말했거든?”

“그래도 세 시간째잖아.”

“엄마냐?”

“나 같은 엄마 있으면 너 진작 사람 됐어.”

“됐거든.”

장혁이 갑자기 물었다.

“아직 같이 살아?”

로로가 그를 바라봤다.

“응.”

“얼마나 됐지?”

“동거?”

“어.”

“한 일 년 반?”

승철이 감탄했다.

“오래도 산다.”

“왜.”

“넌 누구랑 같이 못 살 줄 알았거든.”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로로가 술잔을 기울였다.

“근데 살아보니까 생각보다 괜찮아.”

장혁의 손가락이 술잔 가장자리를 천천히 훑었다.

“결혼할 거야?”

로로가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

“갑자기 뭔 결혼.”

“3년 만났잖아.”

“3년 만나면 결혼해야 돼?”

“그건 아닌데.”

“난 결혼 생각 없어.”

승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얘도 옛날부터 그랬지.”

“응.”

로로가 웃었다.

“같이 있는 게 좋으면 같이 있는 거지. 꼭 도장 찍고 누구 아내, 누구 남편 해야 하나?”

장혁이 로로를 바라봤다.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귀에 남았다.

조금 전 장서운과 싸운 이유와 정확히 반대되는 대답이었다.

“너희 둘은 그런 건 존나 잘 맞아.”

승철이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장혁과 로로가 동시에 그를 바라봤다.

“뭐가?”

“결혼 싫어하는 거.”

승철은 태평하게 술을 마셨다.

“그러니까 둘이 평생 독거노인 하면 되겠네.”

로로가 웃었다.

“좋지. 옆집 살아라, 장혁.”

“싫어.”

“왜?”

“시끄러워.”

“그럼 네가 멀리 살아.”

“내가 왜.”

“내가 먼저 정했으니까.”

“미친 논리네.”

그 순간.

우우웅—

이번에는 문자 진동이 아니었다.

전화였다.

로로가 화면을 확인했다.

조금 전까지 웃고 있던 얼굴이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

장혁은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안 받아?”

“…받아야지.”

로로가 휴대폰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통화 좀.”

그녀는 두 사람에게서 조금 떨어진 창가로 갔다.

“응.”

목소리가 작아졌다.

“친구들이랑 있다고 했잖아.”

잠시 침묵.

“알았어.”

또 침묵.

로로가 창밖을 바라봤다.

“아니. 술 조금밖에 안 마셨어.”

장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승철은 별생각 없이 족발을 집어 먹었다.

“응.”

로로가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다고. 들어갈게.”

전화가 끊겼다.

로로가 자리로 돌아오자 승철이 물었다.

“남친?”

“응.”

“오래 사네.”

“집에 오래.”

“아.”

“나 가야겠다.”

로로가 가방을 챙겼다.

승철이 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벌써가 아니라 열두 시 넘었어.”

“내일 토요일이잖아.”

“나는 출근해, 공무원 새끼야.”

“아, 맞다.”

장혁은 말이 없었다.

로로가 남은 술을 마시려 하자 장혁이 잔을 빼앗았다.

“뭐 해?”

“그만 먹어.”

“한 잔밖에 안 남았어.”

“택시 타고 갈 거잖아.”

“그러니까 마시지.”

“그만 처먹어.”

장혁이 대신 잔을 비웠다.

로로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오늘 헤어진 놈이 나보다 잔소리가 많네.”

“도착하면 연락해.”

“싫은데?”

“해.”

“왜?”

“친구니까.”

친구.

그 익숙한 단어에 로로가 피식 웃었다.

“알았어, 엄마.”

“뒤질래?”

로로가 승철에게도 손을 흔들었다.

“간다.”

“다음 주에 보자.”

“가로수 민원 잘 해결하고.”

승철의 표정이 즉시 일그러졌다.

“야, 씨발. 기분 좋게 보내주려고 했더니.”

로로가 깔깔 웃으며 문을 열었다.

딸랑.

작은 종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그리고 로로가 사라지자 타투숍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해졌다.

승철이 장혁을 힐끗 봤다.

장혁은 아직도 닫힌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

“왜.”

“서운 씨랑 헤어진 거 후회 안 해?”

“안 해.”

“단호하네.”

“결혼 생각 없는데 붙잡아서 뭐 해.”

승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장혁은 빈 술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문득 물었다.

“로로 남친 본 적 있어?”

“없는데.”

“이름은?”

“모르지.”

“너도 몰라?”

승철이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네가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저년이 소개를 시켜줬냐, 이름을 알려줬냐.”

장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이 아는 것은 많지 않았다.

로로에게 3년째 만나는 남자가 있다는 것.

일 년 반 전부터 같이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로로와 같은 나이라는 것.

그게 전부였다.

“왜 갑자기 궁금한데?”

승철의 질문에 장혁이 술병을 들었다.

“그냥.”

“또 그냥이네.”

승철이 피식 웃었다.

“너 중학생 때부터 그 말 존나 좋아한다.”

장혁의 손이 잠깐 멈췄다.

하지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택시에서 내린 로로는 아파트 공동현관 앞에 섰다.

휴대폰을 확인했다.

[어디야?]

[왜 답이 없어?]

[몇 시에 와?]

[술 마셔?]

[누구랑 있는데?]

[로로야.]

[전화 받아.]

짧은 메시지가 화면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성격 급하기는.”

익숙한 일이었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휴대폰을 가방에 넣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삑.

문을 열자 거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

“왔어.”

대답은 없었다.

신발을 벗던 로로가 고개를 들었다.

소파에 남자가 앉아 있었다.

한기태.

같은 회사 디자인 2팀 팀장.

그리고 회사 사람들은 모르는 로로의 3년 된 연인이었다.

기태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친구들이랑 술 마셨다니까.”

“누구?”

로로가 가방을 내려놓았다.

“말했잖아. 오래된 친구들.”

“남자?”

로로의 손이 잠시 멈췄다.

그러다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다.

“또 시작이네.”

기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로로에게 다가왔다.

“걱정돼서 그렇지.”

“나 서른넷이야.”

“알아.”

기태가 로로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주었다.

손길은 다정했다.

“그래도 연락은 받아.”

“친구들이랑 있는데 계속 휴대폰만 볼 순 없잖아.”

“다음부터는 받아.”

“알았어.”

로로는 별 의미 없이 대답하고 방으로 향했다.

그런 로로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기태의 표정에서 웃음이 천천히 사라졌다.

“로로야.”

“응?”

“그 친구들.”

로로가 돌아봤다.

“왜?”

기태가 물었다.

“누구라고?”

로로는 아무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직은.

“장혁이랑 박승철.”

그 순간,

한기태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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