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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우리는 셋이잖아

Autor: 서담
last update Data de publicação: 2026-09-07 03:17:47

“다음 주까지 가족신문 만들어 온다.”

담임의 말이 떨어지자 교실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터졌다.

“선생님, 가족신문이 뭐예요?”

“부모님 인터뷰도 하고, 가족사진도 붙이고. 우리 가족을 소개하는 거야.”

아이들의 불평이 이어졌다.

누군가는 귀찮다고 했고, 누군가는 가족사진이 없다며 투덜거렸다.

장혁 역시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창밖만 바라보다 무심코 앞자리를 봤다.

한로로가 조용했다.

평소 같으면 제일 먼저 박승철을 돌아보며 ‘야, 존나 귀찮겠다’라고 했을 애가 말이 없었다.

“야.”

장혁이 볼펜으로 로로의 등을 툭 찔렀다.

반응이 없었다.

한 번 더.

툭.

“한로로.”

그제야 로로가 돌아봤다.

“왜?”

웃고 있었다.

평소와 똑같은 얼굴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너 오늘 왜 조용해?”

“내가 언제 시끄러웠다고.”

뒤에서 승철이 끼어들었다.

“매일.”

“박승철, 닥쳐.”

“봐. 정상인데?”

승철이 장혁을 바라봤다.

장혁은 미간을 좁혔다.

분명 이상했는데.

종례가 끝나자 로로는 평소와 달리 가장 먼저 가방을 챙겼다.

“나 오늘 먼저 간다.”

승철이 물었다.

“떡볶이 안 먹어?”

“응.”

장혁까지 돌아봤다.

“네가?”

“왜. 나도 가끔 안 먹어.”

“아픈 거 아니냐?”

“멀쩡하거든.”

로로가 가방을 어깨에 걸었다.

“내일 봐.”

그리고 그대로 교실을 나갔다.

두 남학생이 동시에 문을 바라봤다.

승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상한데.”

“그치?”

“떡볶이를 거절했어.”

장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각하네.”

둘에게 한로로의 식욕은 건강상태를 판단하는 가장 정확한 기준이었다.

다음 날도 로로는 이상했다.

점심은 잘 먹었다.

장혁의 돈가스까지 뺏어 먹었다.

매점에서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그런데 가족신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며칠 뒤.

장혁은 우연히 교무실 앞을 지나다 담임의 목소리를 들었다.

“로로야, 너는 가족신문 안 해도 돼.”

걸음이 멈췄다.

반쯤 열린 문 사이로 로로가 보였다.

“괜찮은데요.”

“선생님이 다른 과제로 바꿔줄게.”

“저도 할 수 있어요.”

“그래도…….”

담임이 난처한 얼굴로 말을 흐렸다.

로로가 웃었다.

“시설 선생님들이랑 찍은 사진 있어요.”

장혁의 표정이 굳었다.

시설?

“그걸로 하면 돼요.”

“로로야.”

“진짜 괜찮아요.”

로로는 끝까지 웃고 있었다.

“저 원래 부모님 없어요.”

장혁은 움직이지 못했다.

“기억도 안 나요. 어릴 때부터 시설에서 살았어요.”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서 오히려 가슴 한구석이 이상했다.

그제야 생각났다.

낡은 토끼 인형.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놀지 않고 버스를 타러 가던 모습.

학부모 상담 기간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던 것.

장혁은 지금까지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부모님은 뭐 하시냐고.

어디 사냐고.

왜 전학 왔냐고.

그냥 한로로였으니까.

“장혁?”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장혁이 돌아봤다.

승철이었다.

“너 여기서 뭐 해?”

장혁이 아무 말 없이 승철의 팔을 잡아끌었다.

“뭔데?”

“가자.”

“어딜.”

“그냥.”

방과 후.

로로가 교문을 나오다 멈췄다.

“뭐야?”

장혁과 승철이 기다리고 있었다.

“너희 안 갔어?”

“어.”

“왜?”

장혁이 대답했다.

“떡볶이.”

“나 안 먹는다니까.”

“오늘은 내가 살 건데.”

로로의 눈이 조금 커졌다.

“진짜?”

“어.”

“튀김도?”

“어.”

“순대도?”

“어.”

승철이 옆에서 황당하다는 듯 장혁을 바라봤다.

“나는?”

“네가 왜.”

“씨발, 차별하네.”

로로가 웃었다.

“그럼 가자.”

세 사람은 늘 가던 분식집으로 향했다.

로로는 평소처럼 잘 먹었다.

떡볶이를 먹고, 튀김을 먹고, 장혁의 순대까지 뺏었다.

한참 그렇게 먹다가 로로가 갑자기 물었다.

“너희 뭐 잘못했어?”

두 사람이 동시에 멈췄다.

승철이 물었다.

“뭐가?”

“오늘 이상하게 잘해주잖아.”

“원래 잘해줬는데?”

“박승철 네가?”

“말 존나 서운하게 하네.”

로로가 장혁을 바라봤다.

“너도 이상해.”

“내가 뭐.”

“내가 순대 뺏었는데 화 안 냈잖아.”

장혁이 접시를 내려다봤다.

“먹어.”

로로의 눈이 더 가늘어졌다.

“너희 진짜 이상하다.”

잠깐의 침묵.

결국 장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들었어.”

“뭘?”

“교무실에서.”

로로의 표정이 멈췄다.

장혁은 돌려 말하지 않았다.

“부모님 없다는 거.”

웃음이 사라졌다.

승철이 장혁의 옆구리를 찔렀다.

“말을 꼭 그렇게 하냐?”

“그럼 어떻게 해.”

“좀 부드럽게 해야지, 미친놈아.”

“네가 해봐.”

“아…….”

승철도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로로가 피식 웃었다.

“바보들.”

“뭐?”

“그거 때문에 이러는 거야?”

로로가 떡 하나를 입에 넣었다.

“나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

“진짜야. 원래 없었는데 뭐.”

장혁이 로로를 바라봤다.

“안 슬퍼?”

로로가 씹던 것을 삼켰다.

잠시 생각하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모르겠어.”

“…….”

“기억이 없으니까.”

담담했다.

“엄마 얼굴도 모르고 아빠 얼굴도 몰라. 그러니까 보고 싶어도 누굴 보고 싶어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승철의 표정도 굳었다.

“근데.”

로로가 웃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웃음이었다.

“가끔 부럽기는 해.”

“뭐가?”

“너희.”

로로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집에 가면 엄마 있잖아.”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잔소리하는 것도 좀 부러워.”

승철이 중얼거렸다.

“우리 엄마 잔소리 들어보면 생각 달라질걸.”

“얼마나 하는데?”

“나 어제 양말 뒤집어놨다고 십 분 동안 혼났어.”

로로가 웃음을 터뜨렸다.

“양말은 바로 벗어야지.”

“너까지 왜 지랄이야?”

장혁이 조용히 로로 앞에 남은 튀김을 밀어줬다.

“먹어.”

“또?”

“어.”

“살찐다?”

장혁이 작은 로로를 위아래로 훑었다.

“좀 쪄.”

“죽을래?”

평소의 한로로였다.

장혁은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

분식집을 나온 뒤 세 사람은 버스정류장까지 걸었다.

로로가 먼저 버스에 올라탔다.

창가에 앉은 로로가 창문을 두드렸다.

장혁과 승철이 바라봤다.

로로가 손을 흔들었다.

둘도 손을 들었다.

버스가 멀어진 뒤 승철이 말했다.

“야.”

“왜.”

“우리 가족신문 같이 만들까?”

장혁이 돌아봤다.

“어떻게.”

“사진 찍어주면 되잖아.”

“가족사진인데?”

승철이 잠시 생각했다.

“친구도 가족 비슷한 거 아니냐?”

장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멀어지는 버스를 바라봤다.

다음 날.

점심시간이 끝난 교실.

로로의 책상 위에 사진 한 장이 놓였다.

“이게 뭐야?”

사진관에서 갓 뽑아온 사진이었다.

가운데 로로.

양옆에는 장혁과 승철.

며칠 전 셋이 매점 앞에서 장난치다 친구가 찍어준 사진이었다.

사진 뒤에는 삐뚤빼뚤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가족신문에 써.]

로로가 장혁을 바라봤다.

“이걸?”

“어.”

“가족사진 아닌데?”

장혁은 책상에 턱을 괴고 말했다.

“뭐 어때.”

“선생님이 가족사진 붙이라고 했잖아.”

이번에는 승철이 대답했다.

“그냥 붙여.”

“왜?”

“우리는 셋이잖아.”

로로가 멈췄다.

승철은 괜히 민망해져 안경을 고쳐 썼다.

“뭐…… 친구도 가족 비슷한 거라며.”

“누가?”

“내가.”

“네가 방금 만든 말이지?”

“닥치고 써.”

로로가 다시 사진을 내려다봤다.

사진 속 세 사람은 엉망이었다.

장혁은 로로가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빼앗으려 하고 있었고,

승철은 옆에서 웃고 있었다.

그리고 가운데의 로로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한참 사진을 바라보던 로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 이거 진짜 써도 돼?”

장혁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어.”

“나중에 달라고 하지 마.”

“안 해.”

“진짜 내 거다?”

“네 거 해.”

로로는 사진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그러고는 아주 작게 웃었다.

“고마워.”

장혁은 그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 시선을 피했다.

“별걸 다.”

그날 한로로의 가족신문 한가운데에는 조금 이상한 가족사진 한 장이 붙었다.

엄마도 없었고,

아빠도 없었다.

대신 열네 살짜리 세 아이가 있었다.

그리고 사진 아래,

한로로는 이렇게 적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들>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세 사람에게 ‘친구’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생긴 것이.

누구 하나 힘들면 나머지 둘이 달려왔고,

기쁜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서로를 찾았다.

한로로에게 가족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조금 늦게 생긴 것뿐이었다.

장혁과 박승철이라는,

아주 시끄럽고 이상한 가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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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사이에 이름은 없다.   79화. 부르지 않은 사람

    집을 구하는 데 오래 걸리진 않았다.회사와 가깝고, 햇빛이 잘 들고, 작업할 작은 방이 있을 것.네 번째 집에서 로로는 베란다 창을 열었다.바람이 들어왔다.“여기로 할게요.”“조금 더 보셔도 되는데요.”“아뇨. 여기가 좋아요.”소파도 식탁도 누군가의 흔적도 없었다.누구와 함께 살 집도 아니었다.처음부터 끝까지—한로로 혼자 고른 집이었다.토요일 오전.“야, 미친년아. 이게 짐이 적은 거냐?”“적지.”“저건?”“술.”“장혁 불러.”로로의 손이 멈췄다.“싫어.”“왜.”“너 있잖아.”“장혁까지 부르면 사람이 둘이잖아!”“전화해봐.”“싫다고.”“걔랑 싸웠냐?”“안 싸웠어.”“근데 왜 안 불러.”“그냥.”부르면 올 테니까.예약이 있어도 끝내고 와서 짐을 들고, 탄산수까지 사다 놓을 인간.그래서 부르지 않았다.“침대 여기 맞아?”“응.”“창문 옆인데 추워.”“난 더위 많이 타.”“그건 장혁이고.”둘 다 멈췄다.

  • 우리 사이에 이름은 없다.   77화. 다시 네 앞에

    일주일이었다. 장혁을 피한 지. 정확히 말하면—도망친 지.로로는 책상에 턱을 괸 채 휴대전화를 봤다. 연락도 없는데 몇 번씩 같은 이름을 검색했다.[장혁]“미친년.” “네?” 민지가 고개를 들었다. “본인한테 욕하셨어요?” “맞아. 병신 같아서.” “또 장혁 씨요?” “꺼져.” “좋아하는 거 알았으면 이제 어떻게 하실 건데요?”로로의 손이 멈췄다.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그걸 알아버렸다. 그럼 하진은?“아무것도 안 해.” “왜요?” “걔 여자친구 있잖아. 내가 남의 연애 깨도 돼?”기태와 사귀면서 혁과 잤다. 섹스와 마음은 별개라고 떠들었다. 하지만 이제 알았다. 처음부터 분리된 적이 없었다.“나 이미 한 번 충분히 개같이 굴었어. 이번에는 안 그래.” “그럼 계속 피하게요? 20년 친구라면서요.” “말은 쉽지.” “쉬우니까 제가 하죠.”언제까지 피할 수도 없었다. 스무 해까지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민지야. 나 오늘 칼퇴한다.” “데이트요?” “아니.” “그럼요?” “친구 보러.”퇴근 후 타투샵 앞에 섰다. 예전에는 문부터 열었다. 야, 장혁. 그거면 끝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혁을 보는 것만으로 심장이 뛰었다.그때 혁과 시선이 마주쳤다. 혁이 들어오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했다.“저 새끼가 진짜.”딸랑— 문을 열자 익숙한 종소리가 났다.“앉아 있어.” “오랜만에 온 친구한테 그게 끝이냐?” “일주일 가지고?” “일주일이면 오래지.” “스무 해 봤는데?”혁은 냉장고를 가리켰다. “탄산수 있어.”자기가 마시던 탄산수가 있었다. 하나를 열었다. 예전 같았다. 그래야 했다.마지막 손님은 아홉 시 넘어 나갔다.“밥 먹었냐?” “어.” “뭐 먹었는데.” “왜.” “안 먹었네. 거짓말할 때 대답부터 짧아져.” “떡볶이나 시켜.” “김말이?” “응. 순대는 내장 많이.”혁을 보며 로로는 다시 생각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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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사이에 이름은 없다.   75화. 셋도 끝났다

    [버려.]메시지를 보낸 뒤.장혁에게서는 답이 없었다.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로로는 그날 밤 몇 번이나 휴대폰을 확인했다.“……병신.”답하지 말라고 밀어낸 건 자신이었다.그러면서 답장이 없다고 서운해하는 것도 자신이었다.결국 휴대폰을 침대 반대편으로 던졌다.며칠 동안 로로는 호텔에서 출퇴근했다.회사에서는 기태와 필요한 말만 했다.“2팀 수정안 전달드렸습니다.”“확인하겠습니다.”그뿐이었다.기태도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오히려 그래서 더 숨이 막혔다.민지가 눈치를 보며 커피를 내려놓았다.“팀장님.”“응.”“집은 알아보고 계세요?”“응. 주말에 몇 군데 보려고.”“혼자 가세요?”“그럼 누구랑 가.”민지가 입을 다물었다.예전 같으면 당연히 기태였을 것이다.아니면—로로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른 얼굴에 미간이 찌푸려졌다.장혁.“씨발.”“네?”“아무것도 아니야.”이제 생각하는 것조차 습관이었다.점심시간.휴대폰이 연달아 울렸다.한동안 조용했던 단체방이었다.[박승철][야][니들 언제까지 분위기 이럴 건데]로로의 손이 멈췄다.현재 방에는 셋뿐이었다.박승철.장혁.한로로.기태가 빠졌을 뿐인데—원래대로 돌아온 것 같았다.이십 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박승철][기태랑 헤어진 건 헤어진 거고][우리 셋까지 이럴 필요는 없잖아]잠시 뒤 장혁이 답했다.[냅둬.][박승철][뭘 냅둬 새끼야][니도 요즘 존나 이상해]로로는 화면을 바라봤다.우리 셋.그 말이 이상하게 아팠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장 익숙한 말이었다.어디를 가도 셋.술을 먹어도 셋.여행을 가도 셋.누가 연애를 해도 결국 돌아오면 셋이었다.그런데 이제—그럴 수 있을까.[박승철][이번 주 토요일 가게로 와][술이나 먹자][장혁][난 하진이랑 약속 있음.]로로의 손가락이 굳었다.아무 잘못 없는 말이었다.당연한 말.장혁에게는 여자친구가 있으니까.그런데도 가슴 한쪽이 욱신거렸다.[박승철][

  • 우리 사이에 이름은 없다.   74화. 남이 되는 중

    아침 일곱 시.로로는 호텔 침대에서 눈을 떴다.잠든 건지 기절한 건지 알 수 없었다.눈은 퉁퉁 부었고 머리는 무거웠다.제일 먼저 손을 뻗은 건 휴대폰이었다.메시지 두 개.[민지][팀장님 오늘 오전 회의 10시로 바뀌었어요!]그리고.[장혁][출근은 할 거냐.]새벽 한 시 십칠 분.로로는 한참 그 문장을 바라봤다.답장은 하지 않았다.대신 휴대폰을 뒤집었다.“……하지 마.”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자신도 몰랐다.연락하지 말라는 건지.기대하지 말라는 건지.회사에 도착하자마자 후회했다.기태가 있었다.늘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같은 회사.같은 층.디자인 1팀과 2팀.헤어졌다고 출근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그런데 이상했다.어제까지만 해도 저 사람과 같은 집에서 출근했다.오늘은 호텔에서 혼자 나왔다.“팀장님.”민지가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괜찮으세요?”“응.”“눈이…….”“울었어.”민지가 입을 다물었다.로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노트북을 켰다.잠시 후 회의가 시작됐다.“2팀부터 진행 상황 공유하겠습니다.”기태의 목소리가 들렸다.로로는 화면만 봤다.평소와 똑같았다.차분했고.일 얘기만 했다.“1팀 의견은 어떻습니까?”결국 시선이 마주쳤다.딱 한 번.“현재 안으로 진행해도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알겠습니다.”그게 끝이었다.한로로 팀장.한기태 팀장.삼 년을 사랑한 흔적은 회사 어디에도 없었다.회의가 끝나자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갔다.로로도 자료를 챙겨 일어났다.“로로야.”걸음이 멈췄다.회의실에는 둘뿐이었다.기태는 로로를 보지 않았다.“오늘 짐 가지러 올 거야?”“……응.”“몇 시.”“퇴근하고.”“알았어.”로로가 문으로 향했다.“나 그 시간에 나가 있을게.”손잡이를 잡은 손이 멈췄다.“그럴 필요 없어.”“내가 있어도 괜찮겠어?”대답하지 못했다.기태가 씁쓸하게 웃었다.“봐. 안 괜찮잖아.”“……미안해.”“그 말도 이제 그만해.”로로는 결국 문을 열었다.

  • 우리 사이에 이름은 없다.   73화. 이제 갈 수 없는 곳

    [한기태님이 나갔습니다.]단체 채팅방에 올라온 한 줄.가장 먼저 반응한 건 승철이었다.[?][뭐야][둘이 또 싸움?]로로는 화면만 바라봤다.헤어졌어.고작 네 글자면 설명되는 일이었는데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잠시 후 개인 메시지가 왔다.[장혁][너 기태랑 뭔 일 있어?]심장이 먼저 반응했다.한참 망설이다 답했다.[헤어졌어.]곧바로 전화가 걸려왔다.받지 않았다.다시.또다시.세 번째가 울릴 때 결국 통화 버튼을 눌렀다.“왜.”-어디야.평소와 똑같은 목소리.그것만으로 울컥했다.“밖.”-밖 어디.“그냥 밖.”-한로로. 어디냐고.예전 같았으면 말했다.데리러 와.혁이네 갈게.술 사놔.그런데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됐어. 혼자 있을 거야.”-왜 헤어졌어. 결혼 때문에?“아니.”-그럼?대답할 수 없었다.너 때문에.내가 널 사랑하는 걸 알아버려서.장혁에게는 하진이 있었다.“내 문제야. 캐묻지 마.”잠깐 침묵이 흘렀다.-가게로 와.가슴이 철렁했다.너무 익숙한 말이라서.가고 싶었다.기태와 헤어진 게 아팠고.미안했고.무서웠다.무엇보다 장혁이 보고 싶었다.하지만.“싫어.”-뭐?“안 갈래.”-왜.'하진 씨 있잖아.”-지금 없어.“그런 뜻 아니야.”로로는 눈을 감았다.-“너 여자친구 있잖아.”장혁이 조용해졌다.“나 이제 거기 예전처럼 못 가.”-왜 갑자기 그래.“갑자기가 아니라.”로로가 씁쓸하게 웃었다.“이제야 정신 차린 거지.”먼저 전화를 끊었다.좋아하는 줄 몰랐을 때는 마음대로 찾아갔다.술을 마셨고.같은 침대에서 잤고.심지어 하진을 만나면서 자신과도 자자고 했다.그런데 사랑한다는 걸 알아버린 순간—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장혁은 종료된 통화 화면을 내려다봤다.한기태와 헤어졌다.그 말을 들은 순간 아주 잠깐—기뻤다.“……미친 새끼.”기뻐하면 안 됐다.로로는 삼 년을 만난 남자와 헤어졌다.자신에게는 하진이 있었다.그런데도 가장 먼저 떠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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