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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회사에서는 한 팀장님

Autor: 서담
last update Data de publicação: 2026-09-07 03:36:01

달그락.

주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한로로가 눈을 떴다.

몇 시지.

이불 속에서 손만 뻗어 휴대폰을 더듬었다.

오전 7시 12분.

“아…….”

로로는 다시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토요일 출근을 만든 인간은 반드시 지옥에 갈 것이다.

그것도 제일 뜨거운 곳으로.

그렇게 오 분을 더 버티던 로로가 겨우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헝클어진 중단발을 대충 쓸어 넘기며 방문을 열자 고소한 냄새가 났다.

기태가 주방에 서 있었다.

셔츠에 슬랙스까지 이미 출근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일어났어?”

대답은 없었다.

대신 맨발이 바닥을 끄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기태가 뒤를 돌아보려는 순간 작은 몸이 등에 달라붙었다.

로로가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굿모닝.”

“안 씻었지?”

“응.”

“양치도?”

“응.”

“그런데 왜 붙어.”

“내 남친인데?”

로로가 기태의 등에 얼굴을 비볐다.

기태가 피식 웃었다.

“계란 탄다.”

“타라고 해.”

“네가 먹을 건데?”

그 말에 로로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그건 안 되지.”

기태가 몸을 돌렸다.

잠이 덜 깬 푸른 눈과 마주쳤다.

“술 냄새.”

“거짓말.”

“진짜야.”

“확인해봐.”

로로가 까치발을 들었다.

쪽.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

“나?”

기태가 잠깐 멈췄다가 웃었다.

“응. 술 냄새.”

“아, 몰라.”

로로가 다시 품에 얼굴을 묻었다.

“졸려.”

기태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게 어제 일찍 들어오지.”

“또 잔소리.”

“열두 시 넘어서 들어왔잖아.”

“친구들 오랜만에 만났단 말이야.”

기태의 손이 잠시 멈췄다.

“장혁이랑 박승철?”

“응.”

어젯밤 들었던 이름이었다.

기태는 더 묻지 않았다.

“씻고 와. 밥 먹자.”

“뭐 했어?”

“계란말이랑 된장국.”

로로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고기 없어?”

“아침부터?”

“고기는 아침에 먹으면 불법이야?”

“냉장고에 불고기 있어.”

“역시 한기태.”

로로가 그의 뺨에 한 번 더 입을 맞추고 욕실로 달려갔다.

기태가 그런 로로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웃었다.

“내 불고기 먹지 마.”

“누가 먹는다고.”

“방금 봤어.”

“뭘.”

“젓가락 움직였잖아.”

“김치 집으려고 했어.”

로로가 의심스럽다는 얼굴로 기태를 노려봤다.

자기 앞의 불고기 접시를 슬쩍 가까이 당기기까지 했다.

기태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같이 사는 남자보다 고기가 중요하지?”

“당연하지.”

“한로로.”

“남자는 헤어질 수 있어도 고기는 배신 안 해.”

“아침부터 재수 없는 소리 한다.”

로로가 깔깔 웃었다.

그러다 기태의 밥그릇에 불고기 한 점을 올려줬다.

“먹어.”

“됐어.”

“내가 주는 거야.”

“귀한 거 주시네요.”

“고마운 줄 알아.”

기태가 결국 웃으며 먹었다.

평범한 아침이었다.

3년을 만났고 그중 절반을 한집에서 살았다.

기태는 아침을 만들었고 로로는 얻어먹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출근 준비를 했고

현관에서는 함께 신발을 신었다.

다만 집 밖으로 나가는 순간부터 달라졌다.

“회사에서는 아는 척하지 마.”

엘리베이터 안에서 로로가 말했다.

기태가 익숙하다는 듯 대답했다.

“알아.”

“지난번처럼 커피 갖다주지 말고.”

“팀장들끼리 커피도 못 줘?”

“우리 팀 애들이 이상하게 보잖아.”

기태가 로로의 머리를 툭 건드렸다.

“알겠습니다, 한 팀장님.”

로로가 씩 웃었다.

“잘해, 한 팀장.”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거리를 벌렸다.

“좋은 아침입니다!”

로로가 디자인실 문을 열었다.

“팀장님,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

1팀 직원들이 차례로 인사했다.

로로는 가방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작업 테이블부터 확인했다.

“민지 씨, 어제 샘플 나왔어요?”

“네. 그런데 스톤 세팅이 조금…….”

로로가 샘플을 받아 들었다.

조금 전까지 식탁에서 고기 한 점을 두고 싸우던 사람은 사라졌다.

푸른 눈이 보석 위에 고정됐다.

루페를 가져다 댄 로로가 말했다.

“왼쪽 세 번째 스톤 다시 잡아요. 이대로 양산 들어가면 빛 다 죽어요.”

“네.”

“체인 연결부도 0.3 정도 줄이고.”

“알겠습니다.”

그때 디자인실 문이 열렸다.

생산관리팀 과장이 들어왔다.

“한 팀장님.”

말투부터 날이 서 있었다.

“이 샘플 누가 컨펌했어요?”

민지의 얼굴이 굳었다.

“제가—”

로로가 먼저 막았다.

“제가요.”

과장이 서류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납기 오늘인데 지금 수정 들어가면 어떻게 합니까?”

“수정해야죠.”

“이 정도는 그냥 진행해도 됩니다.”

로로의 표정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안 됩니다.”

“한 팀장님.”

“제 이름 걸고 나가는 디자인이에요.”

차분했지만 단호했다.

“그리고 민지 씨가 어제 문제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제가 오늘 최종 수정하기로 한 거고요.”

“그래도 납기가—”

“생산 일정 한 시간만 미뤄주세요. 제가 직접 세팅 확인해서 넘기겠습니다.”

“그게 말처럼—”

“문제 생기면 제가 책임집니다.”

로로가 서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민지 앞에 놓인 샘플을 자기 쪽으로 가져왔다.

“제 팀원한테 뭐라고 하지 마세요. 최종 결정은 제가 했으니까.”

순간 디자인실이 조용해졌다.

과장은 더 말하려다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열한 시까지입니다.”

“충분합니다.”

문이 닫혔다.

민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팀장님, 제가 할게요.”

“됐어.”

로로는 이미 의자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내가 최종 확인 못 한 것도 있으니까 같이 하자.”

“죄송해요.”

로로가 고개를 들었다.

“왜 사과해?”

“제가 처음부터 잘했으면…….”

“민지 씨.”

로로가 루페를 벗었다.

“실수 안 하는 디자이너 있으면 나한테 데려와 봐. 내가 절하고 스카우트하게.”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대신 같은 실수 두 번 하지 마요.”

“네!”

“그리고 밥은 먹고 일해. 쓰러지면 산재 처리 귀찮아.”

민지가 웃었다.

“네, 팀장님.”

로로는 다시 작업에 집중했다.

자기 팀원은 자기가 지킨다.

1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한로로의 원칙이었다.

유리벽 너머.

2팀 디자인실 앞에 서 있던 기태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팀장님.”

직원의 부름에 기태가 시선을 돌렸다.

“네.”

“회의 준비됐습니다.”

“갑시다.”

기태가 회의실로 향했다.

로로와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둘은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한 팀장님.”

로로가 먼저 그를 불렀다.

“네, 한 팀장님.”

“지난번 2팀 원석 데이터 공유 부탁드려요.”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딱 거기까지였다.

회사에서는 같은 성을 가진 두 명의 디자인팀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날 점심도 로로는 1팀 직원들과 먹었고 기태는 2팀 직원들과 나갔다.

복도에서 마주쳐도 가볍게 목례만 했다.

그러다 오후 세 시.

로로의 휴대폰 화면이 잠깐 밝아졌다.

[한기태]

회의실 B. 5분 뒤.

로로가 메시지를 확인하고 피식 웃었다.

[한로로]

싫은데요, 한 팀장님.

곧바로 답장이 왔다.

[한기태]

아침에 내 불고기까지 먹은 사람이?

로로의 손가락이 멈췄다.

[한로로]

그건 내 거였거든?

[한기태]

5분.

[한로로]

3분이면 감.

로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지 씨.”

“네?”

“나 잠깐 회의실 갔다 올게요.”

“네, 팀장님.”

복도로 나온 로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걸었다.

회의실 B 앞에 도착해 문을 열었다.

기태가 혼자 창가에 서 있었다.

문이 닫히자 로로가 물었다.

“왜 불렀어?”

“보고 싶어서.”

“아침에 봤잖아.”

“회사에서는 못 보잖아.”

로로가 웃었다.

“뭐야. 세 시간 만에 보고 싶었어?”

기태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 가까이 끌었다.

“응.”

로로가 작게 웃으며 그의 넥타이를 바로잡아줬다.

“회사에서 이러다 걸린다?”

“아무도 안 와.”

“어떻게 알아.”

“예약 걸어놨어.”

“치밀하네.”

기태가 로로를 내려다봤다.

“오늘 일찍 들어가자.”

“왜?”

“같이 저녁 먹게.”

“뭐 먹을 건데?”

로로의 관심사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기태가 웃었다.

“고기.”

“콜.”

로로가 손을 빼며 문으로 향했다.

“먼저 나간다. 5분 있다 나와.”

“로로야.”

“응?”

“사랑해.”

로로가 돌아봤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손가락으로 작은 하트를 만들었다.

“나도.”

문이 닫혔다.

기태는 한동안 그 자리를 바라봤다.

둘만 있을 때는 자신의 연인이었다.

자신과 같은 집에서 눈을 뜨고,

자신이 만든 아침을 먹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여자.

그런데 문 하나만 열면 한로로는 다시 자신과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기태는 아직 몰랐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스무 해 속에,

자신이 알지 못하는 두 남자가 얼마나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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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사이에 이름은 없다.   79화. 부르지 않은 사람

    집을 구하는 데 오래 걸리진 않았다.회사와 가깝고, 햇빛이 잘 들고, 작업할 작은 방이 있을 것.네 번째 집에서 로로는 베란다 창을 열었다.바람이 들어왔다.“여기로 할게요.”“조금 더 보셔도 되는데요.”“아뇨. 여기가 좋아요.”소파도 식탁도 누군가의 흔적도 없었다.누구와 함께 살 집도 아니었다.처음부터 끝까지—한로로 혼자 고른 집이었다.토요일 오전.“야, 미친년아. 이게 짐이 적은 거냐?”“적지.”“저건?”“술.”“장혁 불러.”로로의 손이 멈췄다.“싫어.”“왜.”“너 있잖아.”“장혁까지 부르면 사람이 둘이잖아!”“전화해봐.”“싫다고.”“걔랑 싸웠냐?”“안 싸웠어.”“근데 왜 안 불러.”“그냥.”부르면 올 테니까.예약이 있어도 끝내고 와서 짐을 들고, 탄산수까지 사다 놓을 인간.그래서 부르지 않았다.“침대 여기 맞아?”“응.”“창문 옆인데 추워.”“난 더위 많이 타.”“그건 장혁이고.”둘 다 멈췄다.

  • 우리 사이에 이름은 없다.   77화. 다시 네 앞에

    일주일이었다. 장혁을 피한 지. 정확히 말하면—도망친 지.로로는 책상에 턱을 괸 채 휴대전화를 봤다. 연락도 없는데 몇 번씩 같은 이름을 검색했다.[장혁]“미친년.” “네?” 민지가 고개를 들었다. “본인한테 욕하셨어요?” “맞아. 병신 같아서.” “또 장혁 씨요?” “꺼져.” “좋아하는 거 알았으면 이제 어떻게 하실 건데요?”로로의 손이 멈췄다.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그걸 알아버렸다. 그럼 하진은?“아무것도 안 해.” “왜요?” “걔 여자친구 있잖아. 내가 남의 연애 깨도 돼?”기태와 사귀면서 혁과 잤다. 섹스와 마음은 별개라고 떠들었다. 하지만 이제 알았다. 처음부터 분리된 적이 없었다.“나 이미 한 번 충분히 개같이 굴었어. 이번에는 안 그래.” “그럼 계속 피하게요? 20년 친구라면서요.” “말은 쉽지.” “쉬우니까 제가 하죠.”언제까지 피할 수도 없었다. 스무 해까지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민지야. 나 오늘 칼퇴한다.” “데이트요?” “아니.” “그럼요?” “친구 보러.”퇴근 후 타투샵 앞에 섰다. 예전에는 문부터 열었다. 야, 장혁. 그거면 끝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혁을 보는 것만으로 심장이 뛰었다.그때 혁과 시선이 마주쳤다. 혁이 들어오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했다.“저 새끼가 진짜.”딸랑— 문을 열자 익숙한 종소리가 났다.“앉아 있어.” “오랜만에 온 친구한테 그게 끝이냐?” “일주일 가지고?” “일주일이면 오래지.” “스무 해 봤는데?”혁은 냉장고를 가리켰다. “탄산수 있어.”자기가 마시던 탄산수가 있었다. 하나를 열었다. 예전 같았다. 그래야 했다.마지막 손님은 아홉 시 넘어 나갔다.“밥 먹었냐?” “어.” “뭐 먹었는데.” “왜.” “안 먹었네. 거짓말할 때 대답부터 짧아져.” “떡볶이나 시켜.” “김말이?” “응. 순대는 내장 많이.”혁을 보며 로로는 다시 생각했

  • 우리 사이에 이름은 없다.   76화. 말도 안 되는 생각

    혹시.정말 혹시—한로로가 자신 때문에 저러는 거라면.장혁은 한참 휴대폰을 내려다봤다.그러다 피식 웃었다.“……지랄.”말도 안 됐다.한로로였다.자기가 소개팅을 나간다고 했을 때 옷까지 골라주던 여자.하진과 손을 잡았다고 하자 잘했다고 했고.정식으로 만나게 됐다고 했을 때 누구보다 신나게 축하했다.한기태와 데이트가 있다고 자신과의 약속을 취소하고도 아무렇지 않았던 여자.그런 한로로가—이제 와서 자신을 좋아한다고?장혁은 고개를 저었다.“미쳤네, 진짜.”잠깐이라도 기대한 자신이 병신이었다.로로는 그냥 변한 게 싫은 거다.이십 년 동안 자기 필요할 때마다 있던 놈이 갑자기 다른 여자 때문에 안 움직이니까.그게 낯선 거겠지.그 이상일 리 없었다.장혁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오빠.”하진의 목소리에 장혁이 고개를 들었다.“응?”“또 딴생각.”“아.”하진이 웃었다.“오늘 세 번째예요.”둘은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다.하진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무슨 일 있어요?”“아니.”“친구분?”장혁의 손이 멈췄다.하진은 금방 알아차리고 웃었다.“맞네.”“……티나?”“조금?”“미안.”“미안할 건 아닌데.”하진이 물을 한 모금 마셨다.“로로 씨 맞죠?”장혁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남자친구랑 헤어졌대.”“아…….”하진의 표정이 진지해졌다.“많이 힘들겠네요.”그 말뿐이었다.왜 헤어졌냐고 묻지도 않았다.자기와 있을 때 다른 여자를 생각하냐고 화내지도 않았다.오히려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가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장혁이 눈을 들었다.“어딜.”“로로 씨한테.”“…….”“오래된 친구라면서요.”장혁은 헛웃음을 흘렸다.“오지 말래.”“싸웠어요?”“그런 것 같기도 하고.”“왜 싸웠는데요?”장혁이 대답하지 못했다.왜 싸웠지.생각해보면 시작은 로로였다.왜 변했냐고 했다.연락하면 안 된다고 하고.불러도 안 나오고.자기와의 관계도 끝냈다고.그러다—하진을 만나면서 자기와도 자자고

  • 우리 사이에 이름은 없다.   75화. 셋도 끝났다

    [버려.]메시지를 보낸 뒤.장혁에게서는 답이 없었다.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로로는 그날 밤 몇 번이나 휴대폰을 확인했다.“……병신.”답하지 말라고 밀어낸 건 자신이었다.그러면서 답장이 없다고 서운해하는 것도 자신이었다.결국 휴대폰을 침대 반대편으로 던졌다.며칠 동안 로로는 호텔에서 출퇴근했다.회사에서는 기태와 필요한 말만 했다.“2팀 수정안 전달드렸습니다.”“확인하겠습니다.”그뿐이었다.기태도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오히려 그래서 더 숨이 막혔다.민지가 눈치를 보며 커피를 내려놓았다.“팀장님.”“응.”“집은 알아보고 계세요?”“응. 주말에 몇 군데 보려고.”“혼자 가세요?”“그럼 누구랑 가.”민지가 입을 다물었다.예전 같으면 당연히 기태였을 것이다.아니면—로로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른 얼굴에 미간이 찌푸려졌다.장혁.“씨발.”“네?”“아무것도 아니야.”이제 생각하는 것조차 습관이었다.점심시간.휴대폰이 연달아 울렸다.한동안 조용했던 단체방이었다.[박승철][야][니들 언제까지 분위기 이럴 건데]로로의 손이 멈췄다.현재 방에는 셋뿐이었다.박승철.장혁.한로로.기태가 빠졌을 뿐인데—원래대로 돌아온 것 같았다.이십 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박승철][기태랑 헤어진 건 헤어진 거고][우리 셋까지 이럴 필요는 없잖아]잠시 뒤 장혁이 답했다.[냅둬.][박승철][뭘 냅둬 새끼야][니도 요즘 존나 이상해]로로는 화면을 바라봤다.우리 셋.그 말이 이상하게 아팠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장 익숙한 말이었다.어디를 가도 셋.술을 먹어도 셋.여행을 가도 셋.누가 연애를 해도 결국 돌아오면 셋이었다.그런데 이제—그럴 수 있을까.[박승철][이번 주 토요일 가게로 와][술이나 먹자][장혁][난 하진이랑 약속 있음.]로로의 손가락이 굳었다.아무 잘못 없는 말이었다.당연한 말.장혁에게는 여자친구가 있으니까.그런데도 가슴 한쪽이 욱신거렸다.[박승철][

  • 우리 사이에 이름은 없다.   74화. 남이 되는 중

    아침 일곱 시.로로는 호텔 침대에서 눈을 떴다.잠든 건지 기절한 건지 알 수 없었다.눈은 퉁퉁 부었고 머리는 무거웠다.제일 먼저 손을 뻗은 건 휴대폰이었다.메시지 두 개.[민지][팀장님 오늘 오전 회의 10시로 바뀌었어요!]그리고.[장혁][출근은 할 거냐.]새벽 한 시 십칠 분.로로는 한참 그 문장을 바라봤다.답장은 하지 않았다.대신 휴대폰을 뒤집었다.“……하지 마.”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자신도 몰랐다.연락하지 말라는 건지.기대하지 말라는 건지.회사에 도착하자마자 후회했다.기태가 있었다.늘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같은 회사.같은 층.디자인 1팀과 2팀.헤어졌다고 출근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그런데 이상했다.어제까지만 해도 저 사람과 같은 집에서 출근했다.오늘은 호텔에서 혼자 나왔다.“팀장님.”민지가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괜찮으세요?”“응.”“눈이…….”“울었어.”민지가 입을 다물었다.로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노트북을 켰다.잠시 후 회의가 시작됐다.“2팀부터 진행 상황 공유하겠습니다.”기태의 목소리가 들렸다.로로는 화면만 봤다.평소와 똑같았다.차분했고.일 얘기만 했다.“1팀 의견은 어떻습니까?”결국 시선이 마주쳤다.딱 한 번.“현재 안으로 진행해도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알겠습니다.”그게 끝이었다.한로로 팀장.한기태 팀장.삼 년을 사랑한 흔적은 회사 어디에도 없었다.회의가 끝나자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갔다.로로도 자료를 챙겨 일어났다.“로로야.”걸음이 멈췄다.회의실에는 둘뿐이었다.기태는 로로를 보지 않았다.“오늘 짐 가지러 올 거야?”“……응.”“몇 시.”“퇴근하고.”“알았어.”로로가 문으로 향했다.“나 그 시간에 나가 있을게.”손잡이를 잡은 손이 멈췄다.“그럴 필요 없어.”“내가 있어도 괜찮겠어?”대답하지 못했다.기태가 씁쓸하게 웃었다.“봐. 안 괜찮잖아.”“……미안해.”“그 말도 이제 그만해.”로로는 결국 문을 열었다.

  • 우리 사이에 이름은 없다.   73화. 이제 갈 수 없는 곳

    [한기태님이 나갔습니다.]단체 채팅방에 올라온 한 줄.가장 먼저 반응한 건 승철이었다.[?][뭐야][둘이 또 싸움?]로로는 화면만 바라봤다.헤어졌어.고작 네 글자면 설명되는 일이었는데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잠시 후 개인 메시지가 왔다.[장혁][너 기태랑 뭔 일 있어?]심장이 먼저 반응했다.한참 망설이다 답했다.[헤어졌어.]곧바로 전화가 걸려왔다.받지 않았다.다시.또다시.세 번째가 울릴 때 결국 통화 버튼을 눌렀다.“왜.”-어디야.평소와 똑같은 목소리.그것만으로 울컥했다.“밖.”-밖 어디.“그냥 밖.”-한로로. 어디냐고.예전 같았으면 말했다.데리러 와.혁이네 갈게.술 사놔.그런데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됐어. 혼자 있을 거야.”-왜 헤어졌어. 결혼 때문에?“아니.”-그럼?대답할 수 없었다.너 때문에.내가 널 사랑하는 걸 알아버려서.장혁에게는 하진이 있었다.“내 문제야. 캐묻지 마.”잠깐 침묵이 흘렀다.-가게로 와.가슴이 철렁했다.너무 익숙한 말이라서.가고 싶었다.기태와 헤어진 게 아팠고.미안했고.무서웠다.무엇보다 장혁이 보고 싶었다.하지만.“싫어.”-뭐?“안 갈래.”-왜.'하진 씨 있잖아.”-지금 없어.“그런 뜻 아니야.”로로는 눈을 감았다.-“너 여자친구 있잖아.”장혁이 조용해졌다.“나 이제 거기 예전처럼 못 가.”-왜 갑자기 그래.“갑자기가 아니라.”로로가 씁쓸하게 웃었다.“이제야 정신 차린 거지.”먼저 전화를 끊었다.좋아하는 줄 몰랐을 때는 마음대로 찾아갔다.술을 마셨고.같은 침대에서 잤고.심지어 하진을 만나면서 자신과도 자자고 했다.그런데 사랑한다는 걸 알아버린 순간—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장혁은 종료된 통화 화면을 내려다봤다.한기태와 헤어졌다.그 말을 들은 순간 아주 잠깐—기뻤다.“……미친 새끼.”기뻐하면 안 됐다.로로는 삼 년을 만난 남자와 헤어졌다.자신에게는 하진이 있었다.그런데도 가장 먼저 떠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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