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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Author: 윤옥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07 11:18:07

런던 범죄심리 연구소 자료실의 공기는 언제나 일정한 습도와 온도로 통제된다. 그러나 그 인위적인 쾌적함 아래에는 수백 년 된 종이들이 뿜어내는 눅눅한 시간의 냄새가 깔려 있었다. 진은 자신의 책상 위에 가문의 문서 몇 장을 의도적으로 펼쳐두었다. 1888년의 필체, 그리고 잭 더 리퍼의 해부학적 스케치가 담긴 낡은 양피지였다.

오전 10시 15분. 노크 소리도 없이 자료실 문이 열렸다.

그림자처럼 스며든 데프 에도우즈가 진의 책상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평소처럼 무채색의 수트 차림이었으나, 시선만큼은 평소보다 예리하게 책상 위를 훑었다. 진은 돋보기를 내려놓으며 데프를 보았다.

데프의 시선이 양피지 위의 필체에 닿는 순간, 그의 턱 근육이 눈에 띄게 경직되었다. 아주 찰나의 변화였으나 프로파일러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에도우즈 씨. 이 글씨, 어디서 보신 적 있어요?”

진의 목소리는 건조한 공기를 타고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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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같은 피를 가지고 있다   15화

    런던 범죄심리 연구소의 식당은 정오가 지나면 기계적인 활기로 가득 찬다. 백색 소음처럼 깔린 식기 부딪치는 소리와 분석관들의 낮은 담소 사이로 진은 가작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라이언 카터 검사의 인사 조정 이후, 진은 의도적으로 데프 에도우즈와의 거리를 넓히려 애쓰고 있었다. 자신이 느꼈던 기이한 안도감을 데이터로 수용하기로 했으나, 그 데이터가 불러일으키는 자기혐오까지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진이 식판을 내려놓은 지 채 2분이 지나지 않아, 맞은편 의자가 뒤로 밀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무게감이었다. 데프는 아무런 양해를 구하지 않고 진의 정면에 앉았다. 진은 숟가락을 쥔 손에 힘을 주었으나 자리에서 일어나지는 않았다. 도망치는 것은 분석가의 방식이 아니었고, 데프라는 변수를 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이미 옥상에서 학습했으니까. ​​​그로부터 30분 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단 한 마디의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침묵은 지독할 정도로 견고했다. 진은 자신의 앞에 놓인 샐러드를 씹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린다고 생각했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절제된 동작으로 식사를 이어갔다. 그의 시선은 식판에 고정되어 있었으나, 진은 자신의 손목과 목덜미 부근에 닿아 있는 그의 무거운 존재감을 온 신경으로 감각했다. 식당의 소음이 멀게 느껴지고, 오직 두 사람 사이의 좁은 테이블 위로 흐르는 정적만이 선명하게 도드라졌다. ​​​식사를 마쳐갈 때쯤, 멀리서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 오늘 메뉴 별로죠? 내을은 좀 나으려나.”​​​​​엠마 휘트니였다. 그녀는 멀리서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엠마의 그 순수한 활기가 이 건조한 공기를 잠시나마 휘저어 놓는 것 같았다. 진은 그녀의 웃음을 보며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이 피비린내 나는 수사판에서 저렇게 투명하게 웃을 수 있는 존재가 곁에 있다는 사실이 생소했다.

  • 우리는 같은 피를 가지고 있다   14화

    런던 검찰정(CPS)의 대회의실은 지독할 정도로 높은 천장과 차가운 대리석 벽면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템스강은 잿빛으로 가라앉아 있었고, 실내에는 오직 서류를 넘기는 소리와 펜촉이 종이를 긁는 소리만이 예민하게 울려 퍼졌다. 다섯 번째 시신 이후의 수사 방향을 설정하는 회의는 세 시간째 공회전 중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자료를 정리하던 진에게 한 남자가 다가왔다. 신입 검사 라이언 카터였다. 그는 런던 사법계에서 촉망받는 엘리트답게 말끔한 수트 차림과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장착하고 있었다. ​​​​​“그로스 박사님,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저녁이라도 같이하면서 이번 사건에 대해 사적으로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어떻습니까?”​​​​​카터의 제안은 정중했으나 그 이면에는 노골적인 호기심이 깔려 있었다. 그는 팔을 가볍게 타치하려다, 진이 한 걸음 물러나자 무안한 듯 손을 내렸다. 진은 그의 눈동자를 관찰했다. 야망, 그리고 분석가적인 자신을 흥미로운 피사체로 여기는 오만함. 진은 그 모든 것을 단번에 분류해 냈다. ​​​​​“공적인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실례하겠습니다.”​​​​​진은 짧게 답하고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길게 뻗은 복도는 구두 굽 소리를 공허하게 반사했다. 복도 끝, 창가 옆 그림자가 드리워진 자리에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데프 에도우즈였다. 보안팀의 순찰 동선도, 대기 장소도 아닌 곳이었다. 진은 그의 앞에 멈춰 서서 무표정하게 입을 뗐다. ​​​​​“여기 서 계시네요.”​​​“지나가던 길이었습니다.”​​​“보안팀 동선이 아닌데요.”​​​“오늘은 그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대답은 짧았고 부연 설명은 없었다. 그는 방금 회의실 문턱까지 진을 따라 나왔던 라이언 카터의 방향을 잠시 응시하다가, 다시 진의 눈을 보았다. 그 눈빛은 시신을 볼 때와 같은 집요함을 담고 있었지만, 그 대상이 오

  • 우리는 같은 피를 가지고 있다   13화

    다섯 번째 희생자가 발견된 지 사흘이 지났다. 수사팀은 범인의 다음 타깃을 예측하기 위해 화이트채플 북쪽의 낡은 창고 단지를 잠복 구역으로 설정했다. ​​​런던의 새벽 2시 51분은 안개조차 얼어붙는 시간이다. 템스강에서 밀려오는 습한 냉기는 차량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시트 가죽을 차갑게 식혔다. 잠복 중인 차량 내부에는 히터조차 켜지 못한 채 지독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앞 유리에 맺힌 서리가 가로등 불빛을 굴절시켜 내부를 기괴한 푸른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폐건물의 실루엣은 거대한 짐승의 뼈처럼 앙상했고, 그 사이를 오가는 바람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차체를 때렸다. ​​​진은 조수석에서 몸을 웅크린 채, 창밖의 빈 건물을 응시했다. 무릎 위에 올린 손은 감각이 무뎌진 지 오래였다. 손끝의 떨림은 멈춰 있었으나, 대신 어깨가 미세하게 움츠러들었다. 그것은 통제할 수 없는 생리적 반응이었다. 진은 자신의 호흡이 하얀 입김이 되어 흩어지는 것을 무표정하게 지켜보았다. 찬 공기를 들이쉴 때마다 폐 안쪽이 당겼지만, 그것을 인내하는 데 익숙했다. 분석가는 자신의 신체적 고통 또한 관찰의 대상으로 치환해야 했으니까. ​​​옆에서 미세한 마찰음이 들렸다. 데프가 움직이는 소리였다. 진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하지만 시야의 끝에서 데프가 자신의 검은 재킷을 벗어 내리는 움직임을 포착했다. 데프는 아무런 말도 없이, 벗어낸 재킷을 진의 무릎 위에 툭 던지듯 내려놓았다. 무릎 위로 묵직한 무게감과 함께 남자의 체온이 훅 끼쳐왔다. ​​​​​“안 추워요.”​​​​​진이 짧게 답했다. 목소리는 차가운 공기에 부딪혀 건조하게 갈라졌다. ​​​​​“두세요.”​​​​​데프의 대답은 그보다 더 짧았다. 그는 전방의 어둠을 주시한 채 핸들 위에 손을 얹고 있었다. 셔츠 한 장만 걸친 그의 팔 근육은 추위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진은 무릎 위에 놓인 재킷을 내려다보았다.

  • 우리는 같은 피를 가지고 있다   12화

    다섯 번째 살인 현장은 밤이 되자 완벽한 밀실로 변했다. 창고 외벽을 때리는 빗소리가 함석지붕을 타고 내려와 바닥의 웅덩이로 떨어졌다. 수사팀이 철수한 뒤의 현장에는 차가운 정적과, 그보다 더 차가운 두 사람의 호흡만이 남았다. 진은 손전등을 켜, 시신의 손목을 비췄다. 51도의 절개각. 그 비틀린 선 위로 빗물 섞인 습기가 맺혔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진은 시신 옆에 쪼그려 앉아 손전등의 각도를 조절했다. 빛이 데프 에도우즈의 발끝을 지나 그의 손가락 끝에 닿았다. ​​​데프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진은 그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자신이 47도의 각도를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그 진동과 지독하게 닮아 있었다. 진은 손전등을 끄지 않은 채 시선을 올렸다. 데프는 시선을 내리지 않고 진을 보았다. 그것이 전부였다. ​​​​​“무서워요?”​​​​​진의 목소리가 창고의 높은 천장에 부딪혀 낮게 돌아왔다. 데프는 시선을 시신에 고정한 채 한동안 답이 없었다. 손가락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빛 아래에서 그 진폭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 ​​​​​“무섭다는 단어가 정확한지 모르겠어요.”​​​​​데프가 입술을 땠다. 평소보다 반 톤쯤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그럼 어떤 단어요.”​​​“모르겠습니다. 아직 그 단어를 찾지 못했어요.”​​​​​늘 완벽하게 자신을 통제하던 남자가, 시신 한 구 앞에서 이름 모를 떨림을 보이고 있었다. ​​​​​“피해자, 아는 사람이었어요?”​​​​​진이 조심스럽게 본론을 건들였다. 데프의 시선이 다시 51도의 상처로 향했다. ​​​​​“2년 전에요.”​​​“가까웠어요?”​​​“가까웠죠. 적어도 제가 지켜야 할 범위 안에는 있었습니다.”​​​​​진은 더 묻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은 데프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우리, 왜 이

  • 우리는 같은 피를 가지고 있다   11화

    런던 범죄심리 연구소 자료실의 공기는 언제나 일정한 습도와 온도로 통제된다. 그러나 그 인위적인 쾌적함 아래에는 수백 년 된 종이들이 뿜어내는 눅눅한 시간의 냄새가 깔려 있었다. 진은 자신의 책상 위에 가문의 문서 몇 장을 의도적으로 펼쳐두었다. 1888년의 필체, 그리고 잭 더 리퍼의 해부학적 스케치가 담긴 낡은 양피지였다. ​​​오전 10시 15분. 노크 소리도 없이 자료실 문이 열렸다. ​​​그림자처럼 스며든 데프 에도우즈가 진의 책상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평소처럼 무채색의 수트 차림이었으나, 시선만큼은 평소보다 예리하게 책상 위를 훑었다. 진은 돋보기를 내려놓으며 데프를 보았다. ​​​데프의 시선이 양피지 위의 필체에 닿는 순간, 그의 턱 근육이 눈에 띄게 경직되었다. 아주 찰나의 변화였으나 프로파일러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에도우즈 씨. 이 글씨, 어디서 보신 적 있어요?”​​​​진의 목소리는 건조한 공기를 타고 낮게 깔렸다. 데프는 시선을 올리지 않은 채 단호하게 입을 땠다. ​​​​​“아니요.”​​​​​거짓말 3. ​​​진은 속으로 세 번째 숫자를 기록했다. 지금까지의 거짓말 중 가장 빠른 부정이었다. 사고 과정을 거치지 않은 즉각적인 거부 반응. 그것은 대상이 지키고자 하는 비밀의 치명성을 역산하게 했다. 진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대답의 진위보다 그 대답을 내놓는 태도에서 이미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다. ​​​전화기가 울렸다. 다섯 번째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다섯 번째 현장은 화이트채플의 옛 부두 근처에 위치한 버려진 창고였다. 강바람이 깨진 창문 사이로 몰아쳐 내부의 피 비린내를 사방으로 흩뿌리고 있었다. 바닥의 낡은 목재들은 밟을 때마다 진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시신 앞에 무릎을 굽혔다. ​​​피해자의 왼쪽 손목. 진은 각도기를 대지 않고도 위화감을 느꼈다. ​​​​​“패턴이

  • 우리는 같은 피를 가지고 있다   10화

    런던 시티의 외곽, 유리와 강철로 점직된 고층 빌딩 숲 사이에 데프 에도우즈의 보안 회사가 위치해 있었다. 건ㅁ눌 외벽은 주변의 충경을 차갑게 반사하고 있었고, 입구에서부터 삼엄한 보안 검색이 이어졌다. 진은 수사 협조라는 명목의 공문을 가슴 주머니에 넣은 채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사실 이 방문은 충동에 가까웠다. 연구소 안에서의 관잘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데프 에도우즈라는 인물의 공백을, 그의 사적인 공간에서 확인하고 싶다는 욕구가 진을 움직였다. 엘리베이터가 최상층에 도달하는 동안, 진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피곤이 가시지 않은 눈매가 날카로웠다. 문이 열리자마자 느껴지는 공기는 연구소의 그것보다 훨씬 건조하고 정제되어 있었다. 복도를 지나가는 보안 요원들의 움직임은 절도 있었고, 그들의 시선은 침입자를 걸러내는 기계처럼 정확했다. 데프 에도우즈의 성정이 이 거대한 빌딩 전체를 규격화하고 있는 것 같았다. 최상층의 대표 사무실은 주인의 성격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넓은 공간에는 불필요한 장식품 하나 없었고, 오직 무채색의 가구들만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되어 있었다. 진은 비서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섰다. 데프는 커다란 통창을 등지고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런던의 스카이라인이 펼쳐져 있었으나, 그는 그 풍경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다는 듯 종이 위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박사님이 여기까지 오실 줄은 몰랐네요.” 데프가 고개를 들었다. 목소리는 여느 때처럼 낮고 일정한 톤을 유지했다. 진은 대답 대신 사무실 내부를 천천히 훑었다. 그의 시선은 데프의 넓은 책상 위에서 멈췄다. 전화기, 태플릿, 정갈하게 놓인 펜 한 자루. 그게 전부였다. 수백 명의 직원을 거느린 회사의 대표라면 으레 있을 법한 가족사진이나 흔한 퓽경 액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책상은 마치 오늘 아침에 갓 배달된 가구처럼 매끄럽고 비어 있었다. 그 결벽증적인 공백이 오히려 비명처럼 들렸다. “여기, 사진 한 장도 없네요.”

  • 우리는 같은 피를 가지고 있다   5화

    런던 범죄심리 연구소의 옥상은 지상의 소음이 먼지처럼 흩어지는 곳이었다. 밤 9시 22분. 템스강 너머에서 불어오는 습한 바람이 철제 난간을 차갑게 식히고 있었다. 진은 옥상으로 향하는 무거운 청문을 밀었다. 끼익- 하는 날카로운 금속음이 정적을 갈랐지만, 난간에 기대어 서 있던 남자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데프 에도우즈였다. 서른 살 생애 동안 진 크로스가 누군가를 자발적으로 따라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직업적 명목이라고 하기엔, 이미 5분 전에 그 명목이 얄팍해졌다는 것을 진 자신이 알고 있었다. 데프는 런던

  • 우리는 같은 피를 가지고 있다   4화

    런던 범죄심리 연구소의 새벽은 푸르스름한 서버 냉각기의 회전음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지하 2층, 자료실 구석에 위치한 7번 단말기는 연구소 내에서 가장 구식 모델이자, 역설적으로 가장 은밀한 기록들이 오가는 통로였다. 메인 서버의 감시망에서는 비껴나 있으나, 모든 로그 기록은 휘발되지 않고 기록되는 곳. 오전 2시 14분, 카드키 인식음이 짧게 울렸다. 단말기 7번 앞에 앉은 남자의 실루엣은 진 크로스의 그것과는 다른 결이었다. 단단하고 거대한 그림자가 모니터의 푸른 광원 아래 멈춰 섰다. 데프 에도우즈는 보안팀 최고 권한을

  • 우리는 같은 피를 가지고 있다   3화

    런던 범죄심리 연구소 지하 자료실은 거대한 무덤과도 같았다. 지상의 소음이 완전히 차단된 그곳에는 수십 년 전의 미제 사건 기록들이 뿜어내는 퀴퀴한 종이 냄새와, 서버 냉각 팬이 돌아가는 기계적인 저음만이 감돌았다. 낮은 층고와 촘촘하게 박힌 철제 수납장들은 빛을 교묘하게 차단해, 복도 끝자락은 언제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진은 낡은 수납장 사이에 멈춰 서서 가느다란 틈 너머를 응시했다. 시야의 끝, 자료실 입구의 흐릿한 조명 아래 데프 에도우즈가 서 있었다. 진은 그를 관찰했다. 이것은 명백히 직업적 명목이었

  • 우리는 같은 피를 가지고 있다   2화

    런던 범죄심리 연구소의 아침은 기계적인 소음으로 시작된다. 고성능 커피 머신이 웅웅거리며 원두를 갈아대는 소리, 매끄러운 대리석 바닥을 신경질적으로 긁는 구두 굽 소리,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최신 판례를 읊조리는 분석관들의 대화가 복도마다 층층이 쌓여 있었다. 진은 자료 뭉치를 옆구리에 끼운 채 브리핑실로 향했다. 어제 현장에서 보았던 사채의 잔상이 망막 안쪽에 눌어붙어 가시지 않은 탓에,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눈가가 홧홧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복도 끝, 브리핑실의 육중한 문 옆에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데프 에도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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