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탐닉의 흉터 발레를 포기한 지안은 선배 은우의 흉터에 기묘한 쾌락을 발견하며 위태로운 관계를 이어간다. 은우의 부친과 얽힌 과거로 영생의 저주를 받은 흡혈귀 세현은 지안의 완벽한 육체에 매료되어 그를 예술적 제물로 삼으려 한다. 세현의 피로 은우의 흉터가 치유될수록 지안은 도리어 파멸적인 갈증을 느끼고, 셋의 관계는 탐욕과 색욕이 뒤섞인 초현실적 나락으로 빠져든다. 흉터가 사라지고 탄생하는 자리, 몸정이 남아있던 관계는 광기와 집착으로 채워지고 혼란만이 남겨진다.
View More서울의 야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갤러리 K’의 VIP 개관 연회장.
내로라하는 예술계 인사들과 재력가들이 한데 어우러진 공간은 우아한 재즈 선율과 샴페인 잔 부딪히는 소리로 가득 찼다.그 중심에는 스튜디오 J의 대표이자 한때 발레계의 유망주이자 샛별로 불렸던 강은우가 있었다.
흠잡을 데 없는 수트 핏과 완벽한 매너, 기품 있는 미소. 그의 주변에는 선망과 존경, 그리고 은밀한 열망이 뒤섞인 시선들이 끊임없이 맴돌았지만, 은우는 언제나처럼 여유롭고 차분하게 화답했다.그의 곁에는 스튜디오 J의 디렉터, 윤지안이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은우의 가장 신뢰받는 파트너이자 유능한 디렉터인 지안은 과거 은우와 마찬가지로 발레로 다져진 유려한 선과 백옥처럼 투명한 피부, 지적인 분위기로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품 같았다. 사람들은 그를 청자 무늬가 그려진 백자라 칭송했다. 소박한 듯하면서도 은연중에 배어나는 수줍음과 기품은 보는 이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은우와 지안, 두 사람은 누가 보아도 훌륭한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완벽한 한 쌍이었다.하지만 지안의 내면은 달랐다. 빳빳하게 날이 선 긴장감 속에서, 모든 것이 완벽해 보여야만 한다는 강박. 오로지 정적을 깨기 위해 서로 궁금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나누며 다소곳한 미소를 짓는 가식적인 순간들. 이런 일이야 한두 번 겪는 것도 아니건만, 오늘 밤 지안은 연회장 한복판에 마치 벌거벗은 조각상처럼 서 있는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깊은 한숨을 삼키며 애써 피로를 억누르던 순간, 지안의 시선이 한곳에 멈칫했다.
창백하리만치 하얀 피부와 대비되는 칠흑 같은 검은 머리.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자신을 집요하게 응시하는 그의 흐릿한 눈동자에는 내심 시선을 돌리려 해도 자꾸만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묘한 흡입력이 있었다.
ㅇ그를 지나치는 사람들이 모두 한 번씩 뒤돌아볼 정도로, 어딘가 신비롭고 고풍스러운 아우라를 풍기는 남자였다.평소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지안은 새로운 걸작을 발견한 듯, 그의 시선은 고요히 머물렀다.
‘누구지?’
처음에는 그저 빼어난 외모와 세련된 태도를 지닌 젊은 손님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완벽하게 계산된 듯한 몸짓, 예의 바른 미소 속에 언뜻 스치는 미묘한 표정,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를 감싸고 있는 독특한 기운. 하지만 어딘가 숨기고 있는 깊은 심연의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 심연 속에서 그는 지안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고, 지안은 그 곳으로 빠져들어갔다.
지안은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방금… 눈이 마주친 건가?’
고개를 저었다. 착각이겠지. 애써 시선을 돌려 제 눈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어깨 너머로 마주친 그 사람은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그의 시선에 왠지 모를 압박감에 숨이 막혀오고, 식은땀이 배어났다. 공황이 찾아온 듯했다.
“지안.”
은우가 귓가에 나직이 속삭였다.
“얼굴이 창백해. 어디 아파?”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그의 목소리조차 흐릿하게 멀어져만 갔다.
“저… 잠시 바람 좀 쐬고 올게요.”
지안은 비틀거림을 참으며 최대한 단정하게 은우에게 목례를 하고 연회장을 나섰다.
고요한 밤공기 속, 홀로 난간에 기대었다.
연회장의 가식적인 웃음과, 뒤를 돌아보면 나타나는 흠모와 무관심의 이면들. 지칠 대로 지친 지안은 깊은숨을 골랐다. 쉼 없이 빛나는 도시의 야경 한가운데서, 지안은 한 톨의 먼지처럼 한없이 가벼운 존재감을 느꼈다. 갑자기 떠오르는 복합적인 감정들이 차올라 주체할 수 없을 때쯤, 등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안녕하세요."
정중하고 나직한 목소리. 지안이 돌아선 순간, 동공이 잠시 커졌다.
방금 전까지 연회장에서 자신을 조용히 응시하던 그 사람.
언젠가부터 느껴졌던 시선을 따라 그의 얼굴을 마주친 순간, 좀 더 머물고 싶다는 충동을 애써 누른 채 아쉽게 고개를 돌려야 했던 그 사람.
한번 스치듯 보아도 잊히지 않을 만큼 강렬하고 했던 그 사람.
그 사람이 지금 자기 앞에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단 하나의 완벽한 피사체를 발견한 예술가처럼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천천히 고개를 드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남자의 표정은 여전히 평온하고 차분해 보였다. 단지 지안을 향한 응시가 조금 더 깊어졌을 뿐이었다.
지안은 이 남자가 두려웠다.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어딘가 매혹을 느꼈다.
"아… 안녕하세요."
지안은 떨리는 마음을 감추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남자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지안과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심장이 갑자기 쿵쿵 뛰기 시작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지안은 두 손을 깍지 끼고, 남자의 음성, 표정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 남자의 차분한 시선은 짧은 시간동안 지안의 얼굴과 몸짓을 꼼꼼히 담아내면서도, 그 어떤 속내도 비치지 않으려 애썼다.
이따끔 그 남자와 맑은 눈과 정면으로 마주칠 때면 심장 한구석에서 이는 미세한 떨림을 감추기 위해 와인 잔을 쥔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곤 했다.
지안은 용기를 내 조금씩 몸을 돌려 세현을 마주 보았다.
'아....'
지안은 자신도 모르게 황홀경에 빠졌다.
그는 처음 보는 존재와도 같았다. 창백한 하얀 피부, 오똑한 콧날, 붉은 입술. 조각상처럼 완벽한 비율. 하지만 무엇보다 매혹적인 것은 그의 눈동자였다. 깊고 투명한 그 눈동자는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왜 그렇게 절 빤히 바라보세요?”
지안의 물음에 남자는 시선이 익숙하다는 듯 나직이 대답했다.
“당신이..아름다워요.”
지안은 가슴 깊이 차오르는 말을 담으려 입을 틀어막았지만, 흘러나온 말은 어쩔 수 없었다.
남자는 희고 깨끗한 얼굴에 붉게 홍조가 핀 지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크읍..
남자 또안 흘러 나온 코웃음에 지안은 당황했다.
‘비웃음?’
기분이 확 언짢아진 지안은 두 눈을 꼭 감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지안 님도 아름다우세요.”
“네?”
이 사람, 대체 무슨 말을 하는가.
“아름답다고요.”
그 남자는 지안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그림자가 지안을 덮쳤다. 창백하고 긴 손이 지안의 얼굴에 천천히 다가왔다.
“나도 처음 봐요. 이렇게 아름다운 피사체를.”
지안의 동공이 커지며, 얼른 이 자리를, 이 남자로부터 벗어나야만 했다. 하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늘 처음 본 이 남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의 침묵은 점점 지안을 안달복달하게, 그를 더 궁금하게 만들었다.“어… 어떻게 제 이름을….”
입을 간신히 뗐지만, 그 끝은 점점 흐려져 마치 바보가 된 것 같았다.“이어지고자 한다면 이어지듯이, 알고자 하면 다 알게 되는 거죠. 마치 오늘의 저와 지안 씨같이.”
“…….”
“지안 님~ 대표님이 찾으세요.”
마치 몽상 속으로 빠져든 꿈속에서 제3자의 목소리에 깬 지안은 당황했다.
“그럼… 전….”
얼른 자리에 떠나야 했다.
하지만.
“저….”
가려는 발걸음을 멈추고 지안은 뒤를 돌아봤다.
“그럼 그쪽 성함은 어떻게….”
“권세현.”
남자는 짧게 대답했다.
“나중에 또 봐요.”
세현은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마치 미소를 어떻게 짓는지 몰라 사람들의 미소를 그대로 답습한 미소였다. 마치 텅 빈 눈으로 웃는 자신의 미소와도 같이.
지안은 식은땀을 닦고 연회장으로 갔다.
짧은 순간의 압박감은 지안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세현….'
창백하고 아름답게 빛나는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던 남자에게 마주할 수 없었던 작품같이 황홀함을 느낀 자신에게 당혹감과 혼란스러움이 찾아왔다.
지안은 걸음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뒤를 보았다. 그 사람은 앞을 바라본 채 야경을 바라보았다, 자신처럼.
'누굴까...어떤 생각을 하는 걸까?'
그가 내 안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찰나의 어긋남으로 세현은 이름을 입가에 머금고 황급히 떠나는 지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지안....'
지난밤의 농밀했던 공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며칠 뒤, 윤지안은 자신의 갤러리 의 회의실에서 다음 기획전 "경계의 미학: 혼돈 속의 질서"에 대한 막바지 점검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평소 딱 떨어지는 수트보다는 그의 자유로운 기질을 드러내는 옷차림을 선호하는 그는, 오늘도 몸의 선이 유려하게 드러나는 살구색 실크 셔츠에 슬림한 파란 슬랙스를 매치했다. 셔츠 단추는 두어 개쯤 풀어헤쳐 그의 긴 목선과 쇄골을 은근히 드러냈고, 움직일 때마다 탄탄한 몸의 실루엣이 매혹적으로 드러났다.회의용 테이블 위에는 작가들의 도록과 작품 이미지들이 흩어져 있었고, 맞은편 스크린에는 오늘 논의의 중심이 될 작품, 살바도르 달리의 가 커다랗게 투사되어 있었다. 지안은 팔짱을 낀 채 의자에 깊숙이 기대앉아 있었고, 그의 지시를 받은 수석 큐레이터가 작품에 대한 브리핑을 이어가고 있었다."…이처럼 는 달리의 개인적인 경험과 강박, 특히 성적 불안과 거세 콤플렉스, 그리고 그의 뮤즈였던 갈라에 대한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여 매우 기괴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냅니다. 메뚜기와 개미 등의 상징들은 그의 공포와 혐오감을, 여성의 얼굴과 관능적인 요소들은 그의 억압된 리비도와 욕망을…"수석 큐레이터의 분석적인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지안의 시선은 오롯이 스크린 속 그림에 고정되어 있었다. 기괴하게 늘어진 옆얼굴 형상, 그 위에 펼쳐지는 도착적인 이미지들의 향연. 노골적이고 때로는 혐오스럽기까지 한 상징들.하지만 이상하게도 지안은 그 그림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다른 직원들이 작품의 선정성에 대해 조심스러운 우려를 표하거나 예술사적 의의를 논하는 동안, 지안은 그림이 뿜어내는 날것 그대로의 혼돈 속에서 기묘한 동질감, 혹은 일종의 위안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인간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뒤틀린 욕망, 숨겨진 불안, 금기에 대한 갈망들이 마치 자신의 것처럼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불쾌하기보다는 차라리 솔직해서, 역설
정신이 흐릿해져 가는 지안의 풀린 눈빛이 은우를 보곤 순간, 섬뜩할 정도로 투명하게 빛났다. 아니, 은우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의 시선은 은우의 셔츠가 벗겨지며 드러난 가슴과 어깨, 세월에 덧입혀져 살갗과의 경계가 흐릿해진 흉터들에 고정되어 있었다.오로지 자신만이 핥아 입 맞출 수 있는, 고결하고도 음란한 제단. 자신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유일한 욕망, 지안은 홀린 듯 천천히 몸을 일으켜 은우에게 다가갔다. 갈구하는 눈빛에 은우는 지안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그렇지… 지안아. 이 오욕의 흔적들은 다 네 거야.”헐떡이는 숨과 뎁혀질 대로 뎁혀진 땀들은 오로지 지안의 의식을 위한 흔적이었다. 지안의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혹은 지안이 갈구하는 눈빛을 받기 위해 은우가 제 살점을 깎고 도려내어 새긴 뒤틀린 낙인.흉터는 불규칙하게 그어진 수십 개의 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어떤 선은 날카로운 칼날에 베인 듯 깊고 가늘었으며, 어떤 선은 무딘 도구로 긁힌 듯 도톰하고 불규칙했다. 섬세하게, 때론 거칠게 직선으로 베여진 이 모든 것들은 지안을 제 곁에 묶어두는 가장 견고하고 잔인한 사슬이었다. 혀의 감촉이 거친 캘로이드 흉터의 가생이를 느릿하게, 그리고 집요하게 핥아 올렸다. 햝으면, 햝을수록 지안은 점점 더 나락의 쾌락 그 이상을 원했다.하아...아...하....고귀한 것을 떠받들 듯, 섬세한 손길로 하나, 하나씩 더듬으며 지안의 혀가 가슴 한복판에 깊게 패인 흉터의 심연으로 파고들 때마다, 은우는 비로소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었다. 아, 읏… 지안아. 오로지 나만이 널 충족할 수 있어. 나만이 원하는 걸 너에게 줄 수 있다고.지안의 혀가 제 몸 곳곳을 유린할 때마다 지독한 안도감을 느꼈다. 지안이 제 흉터를 핥을 때만, 그 텅 빈 눈동자에 오로지 자신을 향한 열망이 그는 좋았다.지안은 이내 애무를 중단하고, 은우를 바라보았다. 텅 비어있던 눈동자에 오로지 '상흔'에 대한 열망만이 짙게 어려 있었다. 희고 가녀린 두 손이 은우
묵직한 오크 문이 닫히고 도어록이 잠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방 안에는 오직 두 사람의 숨 막히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갤러리 상층에 마련된 이 프라이빗 라운지는 연회장의 소란을 완벽하게 차단한, 오직 은우만을 위한 은밀한 성소였다. 짙은 네이비 톤의 벽지와 가죽 소파,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서울의 야경이 비현실적인 배경처럼 펼쳐져 있었다. 강은우는 자신의 재킷을 벗어 던지며, 셔츠 단추를 풀어내는 윤지안의 가늘고 긴 손가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수치심과 긴장으로 하얗게 질린 지안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릴 때마다, 은우의 가슴 속에서는 가학적인 충동이 들끓었다.셔츠 단추가 하나씩 풀릴 때마다 어둠 속에서 드러나는 부드러운 백옥 같은 살결은, 그 자체로 은우의 숨을 멎게 하는 완벽한 예술품이었다.오늘 밤, 이 아름다운 조각상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낙인을 새기고 싶다는 절박함이 그의 전신을 휩싸였다.마침내 지안의 셔츠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고, 어두운 간접 조명 아래 윤지안의 상반신이 그 관능적인 자태를 온전히 드러냈다. 수년간 극한의 발레 훈련으로 빚어진 몸은, 섬세하면서도 단단한 근육의 결이 살아있는 헬레니즘 조각상 그 자체였다.은우는 마른침을 삼키며, 경탄과 욕망이 뒤섞인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그리고 뒤이어 분노가 치밀었다. 아까 연회장에서 지안을 바라보던 그 남자의 집요한 시선, 그리고 지안의 흔들리던 눈동자, 그리고 감히 저항할 수 없는 존재의 그 더러운 손길.눈 앞에서 빼앗긴 지안의 주도권은 자신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동시에, 더욱더 지안에 대한 애증만 쌓여 갔다. 은우는 지안의 뒤에 바짝 밀착했다. 그의 뜨거운 손길이 마치 제단을 어루만지듯, 지안의 목선에서부터 어깨, 유려한 쇄골을 지나 탄탄한 가슴팍으로 천천히 미끄러져 내렸다. 은우의 손길이 가슴팍에 닿는 순간, 지안의 몸이 움찔하고 강하게 떨렸다"선배…"지안은 잠시 놀란 듯 숨을 들이쉬었지만,
테라스에서의 짧고 강렬했던 조우 후, 윤지안은 도망치듯 강은우의 곁으로 돌아왔다. 연회장의 후끈한 열기가 차갑게 식었던 피부를 때렸다. 지안의 뺨은 밤공기와 알 수 없는 고양감으로 발그레하게 상기되어 있었고, 눈동자는 평소보다 깊고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은우는 지안이 곁에 서자마자 그 미묘한 변화를 귀신같이 감지했다. 그는 지안의 아주 작은 표정 변화나 몸짓 하나만으로도 그 내면의 기류를 읽어내는 사람이었다.은우는 들고 있던 와인 잔을 천천히 돌리며, 주변의 소음에 묻히지 않을 정도의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좀 진정됐어?”“네….”“잠시 나갔다 온 사이에 취한 것 같은데? 얼굴이 붉어, 많이.”목소리는 다정했지만, 그 안에는 오직 지안만이 느낄 수 있는 은근한 탐색과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지안은 은우의 시선을 슬쩍 피하며 입꼬리를 억지로 올려 미소를 지었다.“…별거 아니에요. 긴장한 탓에 와인을 좀 급하게 마셨나 봐요.”지안은 불안감을 감추려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손끝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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