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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아이의 용서

作者: 랑끗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01 05:41:39

저녁 식사 시간이 훌쩍 지난, 어느 조용한 일식당 안. 

180센티미터 남짓한 키에 적당한 체구. 안경을 쓴 남자가 누군가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때, 그는 상대를 발견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가장 구석진 자리로 향했다. 

“반갑습니다, 조봉길 코치님.”

“우겸 씨, 안녕하세요.”

마스크를 쓴 우겸의 인사에 봉길이 화답하고는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어쩌다 제게 연락을….”

“지난 5년 동안 몸담았던 케이비에서 반 쫓겨나듯이 코치직을 그만두셨다고 들었어요.”

우겸의 단도직입적인 말에 봉길이 잠시 흠칫했다. 

그런 봉길을 기다려주며 우겸은 잔에 물을 따라서 봉길 앞에 놓아주었다. 

“아…. 네, 그렇게 됐습니다.”

“혹시 갑작스러운 인협 씨 퇴출과 관련된 일 때문이었을까요?”

“…….”

“승부조작건 말이에요.”

“…….”

봉길보다 열 살은 족히 어리지만, 현재로서는 리그 오브 카오스로 전 세계 1위이자 유일무이한 존재인 우겸이었다. 

그의 포커페이스에 아무것도 읽어내지 못한 봉길은 막막한 표정을 지으며 잠시 침묵했다. 

신뢰 혹은 불신.

모두가 쉬쉬하고 넘어갔지만, 몇몇은 진실을 알고 있는 승부조작건을 우겸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특히나 내부에서 모든 진실을 보고 들었던 봉길의 입장으로선. 게다가 우겸은 케이비의 오랜 천적인 원티드의 수장이었다. 

“저와 우겸 씨와 오며 가며 인사도 나눴기에 일면식은 어느 정도 있고, 제가 우겸 씨의 엄청난 팬이기도 하지만 답하기 조심스러운 질문이네요.”

그가 택한 전략은 보류였다. 우겸의 반응을 보기 위한 보류. 봉길의 긴장한 시선에 미소 띤 우겸의 얼굴이 담겼다. 

“아, 제가 중요한 사안인데 너무 다짜고짜 여쭤봤죠?”

“사실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네요.”

봉길의 조심스러운 대답에 우겸이 쿡쿡 웃으며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일단은 봉길 코치님을 제가 옮겨갈 새 팀으로 영입하고 싶어요.”

“네? 저를요?”

“네, 그리고 인협 씨도 같은 팀 팀원으로 영입하고 싶고요.”

“네?”

우겸의 파격적인 제안에 봉길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왜….”

사실상 현재로서 겉으로 보자면 봉길도, 인협도 팀으로 영입하기에 가치가 최악인 사람들이었다. 

감독인 정현과 리그 오브 카오스에서 잔뼈가 은근히 굵은 기태가 흩뿌려놓은 거짓 소문이 업계에 이미 파다하게 퍼져있을 것이었다. 

봉길이 인협의 승부조작건에 약간은 일조했다는 소문이었다. 

사실 봉길의 유일한 죄는 인협의 편을 들었던 것 그리고 그를 위해 팀 내에서 목소리를 높여 의혹을 제기한 것뿐이었다.

그런 그가 거슬린 진짜 가해자들이 죄 없는 그를 내몰아버린 것이었지만. 

물이 담긴 유리잔을 잠시 만지작거리던 우겸이 입을 열었다. 

“저를 한번 믿어보시겠어요?”

어차피 인협이 퇴출당한 후에 이미 하락세를 걷고 있는 케이비 팀이었다. 

그렇기에 굳이 우겸이 따로 손을 대지 않아도 케이비 팀은 적당히 자멸할 수 있기에 케이비를 무너뜨리기 위한 전략일 가능성이 아주 낮아 보였다. 

그렇다면….

봉길은 긴장한 얼굴로 맞은편 우겸을 응시했다.

***

지이잉. 

진동 소리에 겨우 잠에 들었다 눈을 뜬 인협이었다. 그는 찡그린 얼굴로 어두운 거실에서 문자를 확인했다.

[인협아, 잘 지내고 있니? 못난 엄마가 걱정돼서 연락해]

얼핏 보기에는 애정과 걱정이 가득한 문자였다. 그러나 문자를 읽은 인협의 얼굴은 그 어떤 때보다 차갑게 굳어져 있었다.

“돈 떨어졌나 보네.”

기댈 데가 없어서 전 국민에게 승부조작으로 낙인찍혀서 나락간 아들에게 문자를. 

이전에 잘 나갔을 때, 그래서 부모님으로부터 진정한 사랑을 받는다고 느꼈을 적에 이 문자를 받았더라면 인협은 금방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내어주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어려워졌을 적에 부모가 차갑게 등 돌린 경험은 그간 애정이라고 믿어왔던 그 모든 착각을 깨부숴주었다.

저 정도로 사업이 힘든 거면 빨리 접는 게 맞을 텐데. 

인협이 케이비 팀으로 영입된 직후, 그의 부모님은 2층짜리 대형 건물을 인수해 고깃집을 열었다. 

고급 한우집. 1년 정도는 반짝 장사가 잘 되다가 주변 가게에 밀려서 계속해서 적자를 내는 중이었다. 

그것도 약 3년간. 

그럴 때마다 그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서 인협의 돈으로 적자를 메꿔왔다. 

그렇다고 지난 반년간 어떠한 변화가 있을 리도 만무했다. 

큰 변화 없는 식당에 새롭게 찾아올 손님이라고는 없었고, 날마다 더 낡아가는 건물과 시설 그리고 회전율이 낮기에 고기의 질은 날마다 조금씩 떨어져 갔다. 

그래서 결국 망할 집이었다. 그런데도 인협은 부모님을 위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 하더라도 그들을 도와왔던 것이었다. 

어렸을 적 사업이 망하고 빚졌던 시절에 고생했을 그들을 위해서. 

그런 때라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빚이 어느 정도 해결됐을 때 인협과 동생을 데리러 와주었던 부모님에게 고마워서. 

어쩌면 부모로서는 당연한 처사였는데, 왠지 모르게 인협은 그들에게 빚진 마음을 갚기 위해 그렇게 살아왔다. 

“빚 갚을 만큼의 돈이 없는데.”

선수 시절 동안 늘 숙소에서 합숙하느라 생활비가 거의 들지 않았다.

그가 선수 생활 동안 벌어들였던 수십억의 돈은 온전히 가게 적자를 메꾸고 부모님의 허영심을 채우는 도구로만 사라졌을 뿐이었다. 

그의 수중에 남은 돈은 삼천만 원 남짓. 승부조작에 가담한 쓰레기라는 오명. 

부모님에게는 아직도 남아 있을 큰 규모의 가게, 그의 돈으로 들인 비싼 두 대의 외제 차, 그리고 십억이 넘는 아파트. 

인협이 삶의 벼랑 끝까지 몰렸을 때, 그를 통해 얻은 부나 편의의 한 자락도 내어주지 않으려고 발을 빼던 부모를 마주했을 때의 절망감이란. 

그 순간만큼은 인협이 세상 그 어떤 추함을 마주했을 때보다 역했고, 황망했다. 

어쩌면 인간의 악의 끝을 마주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말 이러면 안 되는 거지만, 혹시 남아 있는 여유자금이 좀 있을까? 엄마 아빠 상황이 많이 힘드네]

인협이 난생처음으로 간절하게 뻗어서 내밀었던 손을 힘들다는 이유로 내쳤던 그들은 여전히 힘든 모양이었다. 

그들은 언제까지 힘들어하며 손에 쥔 것을 놓지 않을 것인지. 

인협은 답답한 마음에 핸드폰을 그대로 거칠게 덮어버렸다. 관사 거실에 정적이 찾아왔다. 

지이잉. 

또다시 들려온 진동에 인협은 가슴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끼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인협아, 잘 지내?]

봉길이었다. 

그가 케이비에서 활동하던 시절부터 그가 퇴출당하기 전에 유일하게 그를 믿어주고 그를 응원해 주던. 

그러다가 인협과 함께 팀의 눈 밖에 나게 되었던 그였다. 

결국 마지막에는 인협이 모르는 새에 팀에서 핸드폰까지 뺏고 팀 건물 출입금지까지 시키며 억지로 인협과 떼어놓았던 봉길 코치였다. 

***

늦은 밤. 케이비 팀의 숙소 앞. 

케이비 팀의 리더인 기태와 감독인 정현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주변은 한적했다. 

“아, 큰 건수 또 한번하고 은퇴를 하든지 해야 하는데.”

“그러니까요.”

“기태야, 너도 잘 생각해. 너도 이제 퇴물 소리 슬슬 듣고 있지 않냐?”

말을 마친 정현이 담배를 세게 한 모금 빨고는 연기를 훅 뱉었다. 

“감독님이 알려주신 종목에 투자한 게 잘 되고 있긴 한데, 딱 십억만 더 땡기고 은퇴하면 좋겠는데요.”

“팀 이렇게 가다가는 우리 둘 다 모가지다, 알지?”

“네. 아, 나인협 같은 호구 한 명만 더 영입하면 좋겠는데요. 새로 들어온 태우인가 뭔가는 영 시원치 않네요.”

태우는 인협의 자리에 영입된 선수였다. 

그는 신인 중 유망주로 주목받고 있어서 큰맘 먹고 영입한 인물이었으나, 팀 내에서 인협의 실력엔 미치지 못해 팀을 완전히 이끌어줄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아니면 기존에 있는 애들 중 하나한테 작업 들어가 보던지. 태우를 적당히 모르게 이편으로 끌어들이고.”

“근데 인협이 때랑 같은 방식으로 하면 들킬 거 같은데요.”

“그럼, 다른 방식으로 한번 해봐. 기태, 너 잘하잖아.”

피식 웃고는 담뱃불을 발로 비벼 끈 정현은 한 손으로 기태의 어깨를 툭툭 쳤다. 

“지난번에도 잘 해냈으니, 이번에도 잘 해내리라 믿는다?”

정현은 그렇게 뒷모습을 보이며 손을 살짝 흔들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이, 씨X. 나한테 다 일은 시켜놓고 지는 가만히 앉아서 돈이나 받아먹고. 감독 팔자가 상팔자네, 아주.”

기태는 나머지 담배를 태우며 불만 가득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모두가 말하듯이 퇴물이 되어버린 그가 이제 큰돈을 만질 방법은 이 방법뿐이었다.

그리고 이 방법도 이용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국내 팀 중 공식 2인자 자리를 굳건히 지켜오던 케이비였지만, 그 타이틀마저도 인협이 팀에서 퇴출당한 후에는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후-.”

언젠가 거창한 꿈을 안고서 이 판으로 걸어들어왔던 것 같은데 말이야. 

이제는 아득해져 버린, 아니, 사실은 굳이 상기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이전의 순수하던 시절을 잠시 떠올린 기태는 이내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담배를 껐다.

“지X.”

어쭙잖은 양심 따위, 있으나 마나였다. 미약할 양심이라면 차라리 버리기를 택한 그였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 이러고 살 텐데. 이 더러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말이야. 

“또 어떤 놈한테 작업을 쳐봐야 할까.”

기태는 혼잣말을 읊조리고는 정현이 들어간 건물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다. 

***

장마가 잦아들며, 잠시 비가 그친 어느 날. 회색빛을 띠는 구름 사이에 난 해가 적당히 쨍쨍했다. 

양옆에 밭이 있는 동네 길을 따라서 올라가는 인협의 뒤에 포터가 나타났다. 

“인협이 형!”

운전석 창문을 내리고 들려온 정렬의 부름에 인협이 뒤를 돌아보았다. 

“뭐해?”

“오늘 받았던 일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일찍 퇴근했어.”

두 사람이 만난 시각은 점심시간이 이제 막 지난 한시였다. 

평소에는 초등학교가 끝나기 직전에 퇴근해 헐레벌떡 시간 맞춰 오는 정렬이었다.

“어디가? 뒷산에라도 가려고?”

인협이 향하던 방향은 마을 안쪽으로 향하는 길. 마을의 가장 깊숙한 곳이자 뒷산 초입에 정렬의 집이 있었다.

“아니.”

인협의 짤막한 대답에 정렬의 눈에 그가 든 보온 가방이 여럿 들어왔다. 

“교회로 가. 빈 반찬통 갖다드리러.”

“태워줄까?”

아무리 시골집들이 사이사이에 밭을 두고서 띄엄띄엄 지어져 있다고 할지라도 걸어서 10분이면 가는 거리였다. 

“괜찮은데.”

“그냥 타. 내가 심심해서 그래.”

정렬의 어리광에 인협은 조수석 문을 열고 트럭에 올라탔다. 텅. 문이 닫히자마자 정렬은 액셀을 밟아 좁고 울퉁불퉁한 길을 내달렸다. 

살짝 열린 창문 틈 사이로 비 온 뒤 갠 날의 특유가 상쾌하고도 눅눅한 공기가 스쳤다. 

”요즘 학교에서 지낸다며? 지난번에 황 선생님이 알려주시더라고.”

인협은 괜한 소문을 막기 위해 자기가 학교에서 지내는 걸로 대충 둘러대자고 이야기했던 사실을 떠올렸다. 

시골 마을에 젊은 남녀가 같은 집에서 지낸다는 소문이 나봤자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 응-.”

“그럼, 교실에서 지내는 거야? 많이 불편할 텐데-.”

“잠만 자는 거니까. 그럭저럭 할만해.”

“집 보수는? 언제부터 시작하는 거야?”

정렬의 과도한 관심의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한 인협이 피식 웃었다. 

“왜? 나랑 황 선생님이랑 가까워질까 봐?”

“어?”

정곡을 찔렸는지, 정렬의 얼굴이 붉어졌다. 

“걱정하지 마. 그런 거 아니니까.”

나의 그런 밑바닥을 보여줬는데, 에스더랑 잘될 리가 있나. 

제정신 박힌 여자면, 그런 찌질한 모습을 좋아할 리가 없잖아. 도망을 가면 갔지. 

인협은 회의를 느끼며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로 동네 풍경을 둘러보았다. 

게다가 임시 선생님이니까 1년후면 떠날 사람이라고도 했고. 

관사에 지내는 선생님들이 대부분 짧은 계약으로 인해 이 외딴 곳에 오게 되었다. 

누군가는 시골살이 경험을 위해, 누군가는 도망치듯이, 저마다의 이유를 갖고서 찾아온 선생님들이 근무 기간을 채우면 도망치듯이 떠나는 걸 어렸을 적에도 늘 지켜봤던 그였다. 

“선생님은 형이랑 있으면 되게 편해보여. 나한테는 하늘같은 선생님 같은데, 형이랑 있으면 딱 그나이때의 누나처럼 보인달까.”

“나를 막대하는 거겠지. 너한테 에스더가 얼마나 상냥하게 하는지 모르지?”

“에스더?”

저도 모르게 친근한 호칭을 부른 인협은 아차, 싶어서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어느새 포터는 소원리 교회 주차장에 다다라있었다. 

재빠르게 벨트를 푼 인협은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일부러 더 밝게 인사를 했다. 

“데려다줘서 고마워. 조심히 들어가!”

인협은 조수석에서 내리고는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심란해보이는 정렬이 무언가를 이야기하려다가 이내 입을 다물고는 인협에게 손을 흔들었다. 

“형도!”

포터는 빠르게 후진해 방향을 돌려 오르막을 더 올라갔다. 가장 안쪽 집인 정렬의 집은 소원리 교회에서도 어른 걸음으로 한참을 더 걸어들어가야만 하는 꽤 먼 거리였다.

인협은 착잡한 표정으로 걸어서 소원리 교회 건물에서 10미터쯤 떨어진 곳에 지어져 있는 단층 건물로 향했다. 

그 집 옆에는 적당히 낡은 밴이 하나 있었다. 그 옆에 소원리 교회라고 적혀있는 걸 보아하니, 교회용 차량인 것으로 보였다. 

에스더의 말로는, 단출한 주택인 그곳이 양 목사 가족이 지내는 집이라고 했다. 

현관문 옆 초인종을 누른 인협이 잠시 그 앞에서 서성거렸다. 이내 현관문이 활짝 열렸다. 

“어? 인협 씨! 반가워요!”

목이 늘어난 티셔츠에 반바지. 편한 차림을 한 기탁이 인협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도도도. 그의 뒤에 빠르고도 가벼운 걸음으로 다가온 아이가 기탁의 맨다리를 붙들고 서서 그의 옆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어? 너는-.”

“아, 얘는 저희 집 둘째 예솜이에요.”

지난번 소원 초등학교 앞에서 심술맞게 굴어서 울려버렸던 아이였다. 예솜도 마찬가지로 인협을 알아보았는지, 제 아빠 다리 뒤로 다시 숨어버렸다. 

“어어? 원래 낯 가리는 애가 아닌데-. 예솜아, 삼촌한테 인사해야지.”

기탁의 부드러운 재촉에 예솜은 작은 입술을 꾹 닫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반찬통 갖다드리러 왔어요.”

“아, 감사해요. 다음에 만났을 때 주셔도 됐는데요.”

“그냥, 오랜만에 비도 그친 겸, 산책 겸 왔어요.”

“감사합니다.”

인협의 시선이 예솜 쪽으로 향했다. 불편한 마음에 결국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된 그였다. 

인협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쪼그려 앉아 예솜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예솜아, 안녕? 지난번에 삼촌이랑 만났었지.”

“어? 만나셨었어요?”

“네, 학교에서요. 근데 그날 제가 기분이 많이 좋지 않아서 예솜이한테 실수를 좀 했어요.”

인협의 솔직한 고백에 예솜이 호기심 어린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정말 미안해, 예솜아.”

인협의 진심 어린 사과에 예솜이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 이내 하얗고 말랑한 얼굴에 미소가 피었다. 

“괜찮아, 삼촌!”

“예솜아, 괜찮아요라고 해야지.”

“괜찮아요. 그럼, 삼촌 용서해 주는 거지?”

“응!”

아이의 용서란 쉬웠다. 

아무런 계산이 없어서 토라짐도 쉽고 그 감정이 드러나기 쉬운 대신에 인협을 용서하기로 한 예솜의 얼굴은 티 없이 밝았다. 

그 밝은 마음의 빛이 마음속에 인협의 마음속까지도 고스란히 비친 것만 같았다. 

인협은 그 말끔한 용서에 깊은 고마움을 느꼈다. 

다 자란 어른인 나도 너무 어려워하는 용서가 너에게는 어찌 이리도 쉬울까. 

어느새 기탁의 뒤에 숨지 않고 인협 쪽으로 다가온 예솜을 보며 인협은 미소 지었다.

랑끗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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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이잉. 지이잉.“어? 인섭 씨!”인섭이 씻는동안 연신 울려대는 핸드폰을 본 봉길이 그것을 집어 들었다.[엄마]어머니? 인협 선수의 어머니겠지? 봉길은 의아한 얼굴을 하고서 그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이내 세 번째로 걸려 온 전화가 끊겼고, 동시에 인섭이 욕실에서 물기를 털며 나왔다.“어? 코치님, 저 부르셨어요?”“아, 네. 어머님한테서 전화가 여러 번 와서요.”봉길은 인섭의 표정을 자세히 살폈다. 이내 인섭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연기나 거짓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전에 차단을 안 해뒀었나. 아, 죄송해요. 저희 가족사는 어느 정도 아시죠?”“그럼요, 지난번에 인섭 씨가 해줬던 인터뷰 덕분에 인협 선수가 얼마나 덕을 봤는데요.”“네…. 그 이후로 연락하신 거라고는 욕에 가까운 문자뿐이더니, 웬일로 전화를 이렇게 급하게….”인섭은 찜찜하다는 표정으로 핸드폰 화면만 응시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봉길도 미간을 찌푸렸다.“뭔가….”움직이고 있나? 하지만 승부조작 사건의 중심인 정현은 이미 구속 영장으로 인해 구치소에 구금된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는 그가 따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없을 터였다.“뭔가 이상하죠? 코치님도 느껴져요?”“그게….”봉길은 고개를 한번 갸웃하고는 아침에 인협에게 있었던 일을 인섭에게 알려주었다. 게다가 그 후로 봉길이 엘비 본사와 우겸을 통해 알아본 바로는, 그들 쪽에서 보낸 건 아니라는 판명이 났다.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으나, 무언가를 단정하기에는 심증만 있을 뿐이었다.“흠….”지이잉. 두 사람이 고민하던 순간, 인섭의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잠시 고민하던 인섭은 이내 그것을 받았다.“여보세요?”[인섭아! 아이고, 우리 인섭이가 드디어 받았구나.]다급한 부용의 음성에 인섭이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또 어떤 이기적인 소리를 하려고. 인섭은 마음을 단단히 먹으며 핸드폰을 꽉 쥐었다.[인섭아, 정말 한 번만 도와줘. 지금 엄마, 아빠가 빚쟁이들한테 쫓기고 있어]“엄마가 쫓긴

  • 웰컴 투 소원리   71. 이대로 끝날 수는 없어

    “이제 보니, 박정현이가 완전 악질이네.”모두가 떠난 후. 조사실 안. 수사관이 옆에 앉아 있던 다른 수사관에게 말했다.“시종일관 거짓말이고. 근데 너무 그럴듯한 말만 하고, 절묘하게 모두의 진술과 맞는 이야기를 해서 수사 초반에는 하마터면 모두 속아 넘어갈 뻔했다니까요?”“그러니까.”“조사를 여러 번 하다 보니 박정현이 진술에 구멍이 조금씩 보였던 거죠.”“그리고 이런 박정현이를 점점 더 못미더워한 팀 애들도 시간이 흐를수록 박정현이를 배신하고 그 뜻대로 안 움직여주기도 했고.”고참 수사관은 팔짱을 낀 채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게임도 머리가 좋아야 잘하는 건가 봐?”“그러니까요. 사건에 여러 사람이 연루됐는데 이렇게까지 진실을 밝혀내는 데 오래 걸리는 건 처음 봅니다.”“보통 이 정도로 여러 사람이 연루되어 있으면 진술이 너무 일치하지 않아서 금방 거짓인 걸 알아차리든지, 아니면 다 한통속으로 말을 맞춘 티가 나서 거기에서 심층 수사를 들어가든지 하는데….”수사관은 뻑뻑해진 눈을 비비며 불만을 토로했다. “여하튼 실력 있는 프로게이머들이다 보니까 판을 까는 재주가 아주 대단하네요.”젊은 수사관은 그들이 모아둔 진술서들을 들춰보기 시작했다. 흐릿하게만 보이던 진실이 조금씩 더 선명해지고 있었다. 박정현이 이 모든 승부조작의 중심점. 곧 시작이자 뿌리였다. 그가 코치진 중 마음이 맞는 몇 명과 팀장인 기태를 가장 먼저 꼬셨다. 그리고 기태에게 팀원들을 부리는 것을 일임했다. 승승장구하던 팀의 멤버들과 코치진이 왜 커리어를 망치는 것을 감수하고서 속아 넘어갔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조사 중 보게 됐던 정현의 언변에 그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정현은 때에 맞춰서 적절한 말을 잘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그가 말했던 것에 빈공간이 생기거나 상충하는 말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이네.”박정현이 받아 챙긴 건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해도 모두 합치면 30억에 달했다. 그마저도 현재 밝혀진 액수라는 것.

  • 웰컴 투 소원리   70.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강릉의 어느 오래된 경양식 돈가스집. 봉길과 유진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때요? 입에 좀 맞아요?” “네, 맛있어요.” 유진의 소개로 오게 된 곳이었다. 봉길의 얼굴에 깃든 아쉬움을 포착한 유진은 피식 웃었다. “나는 여기 되게 좋아하는데.” “네?” “첫 데이트인데, 더 좋은 곳으로못데려가서 지금 미안해하는 거 아니에요?” “엇….” 자신의 질문에 우물쭈물하는 봉길을 본 유진은 쿡쿡 웃었다. “나한테는 여기가 가장 좋은 맛집이에요. 어렸을 적부터 좋아하던 식당이라, 봉길 씨랑 한번 와보고 싶기도 했고요.” “그래요?” “네, 다른 곳처럼 화려하지는 않아도 나한테는 가장 특별한 곳이에요.” “아….” “그러니까, 첫 데이트다운 데이트, 잘 즐겨봐요.” 유진의 말에 봉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나는 돈가스 진짜 좋아하는데, 여자분들은 파스타집 이런 곳을 데이트 장소로 선호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어디서요? 인터넷에서요?” “네. 연애를 따로 배울 곳이 없다 보니, 이 나이를 먹고도 힘을 빌릴 수 있는 데가 인터넷뿐이네요.” 봉길은 면목이 없는지 시선을 내리깔며 고해성사를 했다. 그 모습을 본 유진은 그런 봉길을 애정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서툰 모습에서도 절로 묻어나오는 저를 향한 사랑에 유진은 고마울 뿐이었다. “뭐, 틀린 이야기는 아닐 수도요. 아마도 평균적인 여자들은 좋아할 수도요?” “네?” “근데, 나는 평균을 벗어난 삶을 살고 있잖아요. 일단 대학생 때를 제외하고는 늘 이런 소도시에서 자라왔고, 지금은 시골에서 애 하나 키우는 미혼모인데요.” “…….” “그런 사람의 취향은 인터넷에는 알려진 게 많이 없어서 봉길 씨가 직접 알아봐야 할지도요?” “유진 씨.” “그러니까, 인터넷 같은데 뒤지지 말고, 나한테 직접 물어봐요. 아이 키우고 나이를 어느 정도 먹으니까 좋은 게 뭔지 알아요? 삶이 아주 심플해져요.” 유진의 말에 봉

  • 웰컴 투 소원리   69. 물음표로

    “봉길 씨!”“유진 씨.”유진은 일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카페 주차장에 서 있는 봉길을 발견하고는 놀라서 그를 불렀다. 분명히 오늘 할 일이 있다고 했었는데. 그러자 봉길은 태연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품에는 만개한 꽃이 가득한 꽃다발을 들고서, 그보다 더 화사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였다. “보고 싶었어요.”“…….”봉길의 수줍은 고백에 유진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그간 그가 많이 보고 싶었다. 그간 쌓여있던 마음이 기쁨이 되어 벅차오르면서도, 유진은 바보같이 눈물을 흘리게 될 것만 같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어? 유진 씨, 울어요?”“몰라요.”“어? 내가 뭐 잘못했어요? 미안해요, 내가 너무 불시에 왔죠.”바보 같은 사람. 내 눈물에 당신이 왜 사과하는지.유진은 봉길의 품에 폭 안기면서 생각했다. 그의 품 안에 안기자, 그가 뿌린 향수 향과 함께 진득한 땀 냄새가 났다. 아마도 봉길은 바깥에서 긴 시간 동안 기다린 모양이었다. 그녀를 놀라게 해주기 위해서. 사랑에 실패하고 주아를 키우면서 마음이 많이 무뎌지고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봉길 앞에서는 말랑해지고 말았다. “바보.”“맞아요, 좀 바보예요. 어쩌죠? 유진 씨같이 예쁜 사람이 이렇게 모자란 나랑 만나게 되어서요.”이런 게 정말 더 바보 같다니까. 내가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유진은 말도 하지 못한 채로 봉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나도 봉길 씨를 닮아가나 봐요.”누군가를 한 명 바보 만드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을 일일 줄이야. 나도 덩달아 바보가 되어버려서 그런가. 유진의 말에 봉길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이내 그녀를 더 꼭 안아주고는 그녀의 손을 붙들었다. “일단 차에 가요. 너무 덥겠다.”봉길이 유진의 이마에 맺힌 작은 땀방울을 보며 걱정했다. 그렇게 말을 하는 그의 머리는 이미 땀으로 푹 젖어있었다.“좋아요.”봉길은 그녀의 어깨를 손으로 살짝 감싸고선 그녀를 차 안으로 이끌었다. “주아 픽업은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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