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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장: 집으로 돌아가는 길

Author: Pure Moon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6 17:36:22

마커스는 그날 오후 늦게 병원에 도착했다. 그의 검은 코트 자락이 개인 병동의 무거운 유리문을 지나며 흔들렸다. 공기 중에는 소독약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지만, 문을 열고 어두운 병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의 시선은 엘레나에게 고정되었다.

클로이는 여전히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두 손을 무릎 위에 꼭 포갠 채, 창백하고 지친 얼굴로 엘레나를 지키고 있었다.

마커스는 고무 바닥 위로 소리 없이 다가갔다. 침대 발치에서 걸음을 멈춘 그는 엘레나의 가냘픈 몸을 잠시 바라보다가 클로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엘레나를 위해 많은 일을 해줬군요.” 마커스가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안에는 묵직하면서도 조용한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고맙습니다, 클로이. 진심으로요.”

클로이는 작고 힘없는 고갯짓으로 대답하며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겼다. 그러고는 엘레나를 바라보았다. 엘레나는 머리 위에서 똑똑 떨어지는 수액 주머니를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정말 많은 일을 겪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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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붓아버지와 보낸 하룻밤   106장: 그녀는 밥을 먹지 않았다

    그날 오후, 나는 음식을 먹지 않기로 했다.오후 한 시쯤, 침실 문밖에서 도자기 접시가 은식기와 부딪히는 부드러운 소리가 들렸다. 이어 가정부가 은쟁반을 나무 바닥에 내려놓는 조용한 소리가 뒤따랐다. 나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힘없이 늘어진 다리를 아래로 늘어뜨린 채, 문틈 아래로 가늘게 새어 나오는 노란빛을 바라보았다.손도 대지 않았다. 그들이 무엇을 가져왔는지 확인하려고 일어나지도 않았다.몇 시간이 지나도 쟁반은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구운 닭고기와 진한 육수의 향은 점점 역하고 묵은 냄새로 변해 문틈을 타고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해가 방 안을 가로질러 움직이면서 하얀 벽에 길고 멍든 듯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맨해튼에 저녁의 어둠이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다시 노크 소리가 들렸다. 가볍고 조심스러웠지만, 익숙하고 절제된 리듬이 분명했다.“엘레나?”엄마의 목소리였다.“제발 뭐라도 좀 먹으렴, 얘야.” 두꺼운 나무 문 너머에서 어머니가 말했다. 목소리에는 섬세하면서도 절박한 다정함이 묻어 있었고, 그 다정함은 오히려 내 속을 뒤집어 놓았다. “어제 피를 너무 많이 흘렸잖니. 몸이 회복하려면 영양분이 필요해. 수프라도 먹으렴, 엘레나. 제발.”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릎을 다시 가슴까지 끌어올리고 차가운 팔로 다리를 단단히 감싼 채, 스웨터의 면직물에 턱을 묻었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고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한숨을 들었다. 세상의 모든 변수를 명령 한마디로 통제하는 데 익숙한 여자가 느끼는 극심한 좌절감이 담긴 소리였다.얼마 후, 어머니의 구두 굽 소리가 복도에 깔린 긴 러너 위를 따라 멀어졌다. 또각또각 울리는 발걸음은 날카롭고 단호했다.시간이 흐르면서 침실 안은 더욱 어두워졌고, 창밖의 가로등이 하나둘 불을 밝힐 무렵 또 다른 노크 소리가 문을 두드렸다. 이번에는 더 단단하고 낮았다. 묵직한 힘이 일정한 간격으로 나무 문을 울렸다.“엘레나, 나야.”마커스였다.심장이 갈비뼈를 세차게 때리며 고통스러울 정도로 크게 뛰었

  • 의붓아버지와 보낸 하룻밤   105장: 문은 여전히 닫혀 있다

    마커스의 시점바네사가 위층으로 올라왔다. 디자이너 구두 굽이 나무 바닥을 부드럽게 두드리다가 침실 앞에서 완전히 멈췄다. 평소의 침착함은 가장자리부터 무너져 있었다. 날카로운 눈에는 필사적으로 감추려는 불안이 역력했다.그녀는 손을 뻗어 문을 두 번 두드렸다. 손가락에 낀 금반지가 매끄럽게 다듬어진 나무 문에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엘레나, 얘야… 제발 문 좀 열어 주렴.” 바네사가 애써 다정한 목소리로 불렀다. 하지만 목소리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엄마야. 들어가게 해 줘, 아가.”아무런 대답도 없었다.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고, 문 너머에서 누군가 숨을 쉬는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두운 나무 문 뒤에서 흘러나오는 완전한 정적은 비명보다 더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바네사는 천천히 손을 내리고 나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드러난 나약함은 드문 일이었다. 어쩌면 계산된 모습일 수도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진짜 두려움이 숨어 있었다.“엘레나가 화가 많이 났나 봐.” 바네사가 중얼거렸다. 좁은 복도에서 그녀의 손은 나와의 사이에서 어색하게 허공을 맴돌았다.“알고 있어.” 나는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쪽 팔을 아무렇지 않은 듯 문틀에 기대고, 시선은 자물쇠 구멍에 고정했다.“내가 병원에서 나온 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바네사?” 나는 그녀가 문손잡이에 다가가지 못하도록 몸을 옮기며 물었다. “내가 데리러 갔을 때 엘레나는 창백했어. 하지만 지금처럼 스스로를 방 안에 가두는 건 단순히 슬퍼서 그러는 게 아니야. 뭔가 있었어.”바네사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계단 쪽에서 올라오는 찬바람을 막으려는 사람처럼 두 팔을 가슴 앞에서 단단히 교차했다.“나도 모르겠어, 마커스.” 그녀는 대답했다. 말이 조금 지나치게 빨랐고, 목소리는 필요 이상으로 매끄러웠다. “의사들이 여러 검사를 진행했어… 최근에 쓰러진 일로 인한 스트레스가 이제야 몸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 엘레나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놓이면 얼마나 예민해지는지

  • 의붓아버지와 보낸 하룻밤   104장: 문 뒤편

    엘레나는 침대 옆 차가운 바닥에 앉아 무릎을 가슴에 바짝 끌어안은 채, 침대 프레임의 단단한 나무 모서리에 이마를 기댔다.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숨을 들이쉴 때마다 가슴이 얕고 가늘게 움직였고, 공기가 납처럼 무겁게 변한 것처럼 숨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가슴은 점점 조여 왔고, 심장이 뛸 때마다 그 울림이 고요한 침실 안에 크게 퍼졌다.내가 내 삶과 정체성, 그리고 가족에 대해 알고 있다고 믿었던 모든 것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있었다.아서가 내 아버지가 아니었다. 내 세상을 만들어 주고, 내가 그 이름을 물려받았으며, 어린 시절 내내 나를 지켜 주었던 그 남자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완전한 타인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가슴 한가운데에 커다랗고 너덜너덜한 구멍이 뚫린 듯했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려 해도 그 상처는 메워지지 않았다.엄마는 진짜 아버지가 누구인지 말해 주지 않았다. 병원 침대 곁에 서서 내 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피를 내 혈관에 흘려보내면서도, 정작 내 친아버지의 정체는 계산된 눈물과 필사적인 회피 뒤에 감춰 두었다.그리고 마커스는 내 방문 바로 밖에 서 있었다.그를 마주할 수 없었다.지금은 안 됐다. 이런 모습으로는 더더욱 안 됐다. 나는 산산조각이 나 있었고, 내 삶을 지탱하던 모든 기반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무너져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된 지금, 어떻게 그의 날카롭고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눈을 바라볼 수 있겠는가? 발밑에서 무서운 심연이 갑자기 입을 벌리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게다가 나는 이미 그의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었다. 또 하나의 비밀, 자기 핏줄조차 알지 못하는 엄마에게 묶여 있는 또 하나의 연약한 생명이었다.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세게 감쌌다. 어둠 속에서 하얀 점들이 번쩍일 때까지 손바닥으로 눈을 눌렀다. 눈물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 뜨겁고 쓰라린 눈물이 스웨터 소매를 적셨다.왜 모든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걸까

  • 의붓아버지와 보낸 하룻밤   103장: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커스는 그날 오후 늦게 병원에 도착했다. 그의 검은 코트 자락이 개인 병동의 무거운 유리문을 지나며 흔들렸다. 공기 중에는 소독약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지만, 문을 열고 어두운 병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의 시선은 엘레나에게 고정되었다.클로이는 여전히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두 손을 무릎 위에 꼭 포갠 채, 창백하고 지친 얼굴로 엘레나를 지키고 있었다.마커스는 고무 바닥 위로 소리 없이 다가갔다. 침대 발치에서 걸음을 멈춘 그는 엘레나의 가냘픈 몸을 잠시 바라보다가 클로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엘레나를 위해 많은 일을 해줬군요.” 마커스가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안에는 묵직하면서도 조용한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고맙습니다, 클로이. 진심으로요.”클로이는 작고 힘없는 고갯짓으로 대답하며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겼다. 그러고는 엘레나를 바라보았다. 엘레나는 머리 위에서 똑똑 떨어지는 수액 주머니를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정말 많은 일을 겪고 있어요.” 클로이가 나직이 말했다. 목소리에는 엘레나의 세상을 산산조각 내고 있는 비밀의 무게 때문인지 미세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누구라도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일들이에요.”마커스는 엘레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눈에 깃든 공허하고도 쫓기는 듯한 표정을 발견한 그의 짙은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알고 있습니다.” 그가 부드럽게 대답했다.그는 병원 직원들 앞에서 자세한 사정을 캐묻지 않았다. 퇴원 서류가 모두 정리되자, 마커스는 조심스럽게 엘레나가 침대에서 내려오는 것을 도왔다. 그녀가 천천히 코트에 팔을 끼우는 동안 몸을 지탱해 주었고, 그의 크고 따뜻한 손은 그녀의 허리 아래쪽에 든든하게 자리했다.엘레나는 몸이 한결 가벼워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거의 무게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지난 스물네 시간 동안 겪은 충격이 육체마저 깎아 먹은 것만 같았다.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검은 세단의 짙은 색 창문 너머로 도시의 풍경이 흘러갔다. 회색 그림자와 빗물에 젖은

  • 의붓아버지와 보낸 하룻밤   제102장: 아서의 결심

    나는 더 이상 단 1초도 병원에 머물 수 없었다.소독약 냄새, 심장 모니터의 규칙적인 경고음, 그리고 자신의 비밀을 지키는 파수꾼처럼 병실 밖에 서 있던 바네사의 모습까지. 모든 것이 나를 숨 막히게 했다.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차가운 밤공기 속으로 걸어 나왔다. 어디로 가야 할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리만 본능적으로 움직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차를 찾아냈다.나는 홀로 집으로 향했다.저택의 묵직한 참나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침묵이 물리적인 충격처럼 나를 덮쳤다. 대리석 바닥과 높이 솟은 천장이 있는 웅장한 현관은 텅 비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집이 완전히 달라 보였다.전보다 더 차갑고, 더 넓고, 소름이 끼칠 만큼 낯설었다.나는 서재로 이어지는 긴 복도를 따라 걸었다. 하지만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다.마호가니 액자들이 줄지어 걸린 벽면에서 엘레나의 사진들이 하나같이 나를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저기에는 일곱 살의 엘레나가 있었다. 삐뚤빼뚤한 노란 해와 집을 그린 엉성한 그림을 들고, 앞니가 빠진 채 나를 올려다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저기에는 열네 살의 엘레나가 있었다. 명문 아카데미에 처음 등교하던 날, 긴장한 표정으로 교복 재킷을 매만지고 있었다.그리고 저기에는 대학 졸업식 무대 위에 당당하게 서 있는 엘레나가 있었다. 나는 한 손에 학위증을 들고 있었고, 그녀는 두 팔로 내 목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당시 내게 그 학위증은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성취였다.내 어린 딸.나는 언제나 그녀를 그렇게 불렀다. 내 집에 발을 들이는 모든 사업 파트너와 이사회 구성원, 그리고 친구들에게도 자랑스럽게 그렇게 소개했다.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녀의 명문 기숙학교 학비와 대학 등록금을 부담했다. 그녀가 학업 우수상을 받기 위해 무대 위를 걸어 나가는 모습을 보려고 중요한 국제 이사회 회의까지 취소한 적도 있었다.어린 시절 그녀가 한밤중에 고열에 시달릴 때면 침대 곁을 지키며 이마에 얼음주머니를

  • 의붓아버지와 보낸 하룻밤   제101장: 진실을 말해 줘

    다시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익숙하고 소독약 냄새가 밴 새하얀 천장이었다.머리맡에서 심장 모니터가 부드럽고 규칙적인 신호음을 내고 있었고, 그 소리는 창백한 벽에 부딪혀 조용히 울려 퍼졌다. 몇 초 동안 나는 안개에 뒤덮인 듯한 멍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머릿속은 무겁고 뒤죽박죽이었으며, 내가 어디에 있는지, 왜 온몸의 기운이 이토록 완전히 빠져나간 것 같은지조차 제대로 떠올릴 수 없었다.그러다 마침내 머릿속의 안개가 걷혔고, 침대 바로 옆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는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엄마는 여전히 어제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재킷만 의자 등받이에 걸쳐져 있었다. 평소라면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을 그녀의 모습은 어딘가 흐트러져 있었다. 눈 밑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드리워져 있었고, 두 손은 무릎 위에서 꽉 맞잡혀 있었다.“엄마…….”내 목소리는 낮고 메마른 쉰 소리로 흘러나왔다.바네사는 즉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녀의 눈이 커지더니 내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엘레나. 깨어났구나.”엄마는 침대 옆 탁자에 놓인 작은 플라스틱 컵을 집어 들고 빨대를 내 입술에 가져다 댔다. 나는 갈증에 시달린 사람처럼 물을 급하게 삼켰다. 차가운 물이 쓰라린 목을 달래 주었지만, 내 시선은 한순간도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엄마가 컵을 거두는 순간, 전날 밤의 기억이 숨 막힐 듯 선명하게 밀려들었다.“내 아버지가 누구야?”엄마의 얼굴이 순식간에 변했다.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평정심을 유지하던 그녀의 표정에 작은 균열이 생겼지만, 나는 엄마가 그것을 감추기도 전에 알아차렸다.두려움.순수하고 날카로운, 숨김없는 두려움이 그녀의 눈동자를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곧바로 표정이 굳어지더니, 익숙하게 연출된 모성애 어린 걱정으로 바뀌었다.엄마는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차가운 손가락이 내 손을 단단히 감쌌다.“엘레나, 지금은 쉬어야 해. 의사 선생님 말로는 아직 적혈구 수치가 안정되는 중이래. 스트레스받으면 안 돼.”“내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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