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점심시간. 민원실 네 사람은 근처 백반집에 앉아 있었다. “방실 씨.” 정소라가 국을 한 숟갈 뜨다 말고 방실을 봤다. “네.” “아까 할머니 커피요.” 방실이 제육볶음을 집었다. “네.” “엄청 짰잖아요.” “짰죠.” “괜찮았어요?” “뭐가요?” 소라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걸 다 마셨잖아요.” “네.” “나는 한 모금 먹고 혀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 옆에서 김태호가 바로 끼어들었다. “저도요. 아직도 입이 짜요.” “김 주무관님은 한 모금도 제대로 안 마셨잖아요.” “입에 넣었으면 마신 거죠.” “다시 뱉었잖아요.” “삼킬 수 있는 맛이 아니었습니다.” 방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짜긴 했어요.” 소라가 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 됐다. “근데 왜 할머니한테 갈색설탕이 맛있다고 했어요?” 방실이 밥을 먹으며 대답했다. “그래서 갈색설탕이 맛있다고 한 겁니다.” 소라가 숟가락을 든 채 멈췄다. “네?” “갈색설탕이요.”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이에요?” 방실이 소라를 봤다. “그냥 그 말인데요.” 소라는 갸웃했다. 태호도 옆에서 고개를 기울였다. “저도 이해 못 했습니다.” “뭘 이해해요?” “왜 소금커피 마시면서 갈색설탕 얘기를 했냐고요.” 방실이 이번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제육볶음 한 점을 상추에 올렸다. 그 모습을 보던 승철의 손이 멈췄다. 갈색설탕. 소금. 잠시 생각하던 승철의 표정이 달라졌다. “아.” 세 사람의 시선이 승철에게 향했다. 소라가 물었다. “팀장님은 알아들었어요?” 승철은 방실을 봤다. 방실은 여전히 태연하게 밥을 먹고 있었다. “민 주무관.” “네?” “할머니가 설탕이랑 소금을 헷갈렸다고 생각한 겁니까?” 방실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소라가 눈을 크게 떴다. “아.” 승철이 물었다. “그래서 갈색설탕이라고 한 거고?” “네.” “다음부터 헷갈리지 말라고?” “갈색이면 소금이랑 색이 다르잖아요.” 그제야
그날 이후였다. 오전 열 시만 되면 민원실 문이 열렸다. “왔어.” 처음에는 직원들이 고개를 들었다. 두 번째 날에도 봤다. 사흘째부터는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할머니는 자연스럽게 방실 앞으로 갔다. 민원도 없었다. 그냥 앉았다. “오늘은 왜 오셨어요?” “내가 오면 안 돼?” “안 된다고 안 했는데요.” “그럼 됐지.” “네.” 방실은 일을 했다. 할머니는 이야기했다. 윗집 남자가 새벽에 또 화장실을 갔다. 옆집 며느리가 이번 주에도 안 왔다. 복지관 국에 감자가 너무 컸다. 버스 기사가 정류장에서 너무 멀리 세웠다. 방실은 서류를 보면서도 중간중간 대답했다. “네.” “그래요?” “감자가 크면 잘라 드세요.” “그걸 내가 몰라?” “아시는구나.” 승철은 이제 웬만해서는 끼어들지 않았다. 오전 열 시부터 십오 분쯤. 이상하게도 할머니는 방실 앞에서 실컷 말하고 나면 얌전히 돌아갔다. 대신 방실에게는 할 일이 하나 생겼다. “할머니.” “왜.” “저기 잠깐 앉아 계시다가 혈압 재고 종이 가져오세요.” “내 혈압을 네가 왜 봐.” “지난번에 높았잖아요.” “오늘은 안 높아.” “재보셨어요?” “안 재봤지.” “그럼 어떻게 알아요?” “느낌이 그래.” 방실이 할머니를 빤히 봤다. 할머니도 방실을 봤다. 잠시 뒤. “아휴, 지겨워.” 할머니는 투덜거리며 혈압계 쪽으로 갔다. 그리고 꼬박 종이를 뽑아왔다. “자.” 방실이 수치를 확인했다. “오늘은 괜찮네요.” “내가 괜찮다 그랬잖아.” “느낌으로 맞히셨네.” “내 몸인데 내가 알지!” “내일도 재세요.” “싫어.” 다음 날에도 쟀다. 그다음 날에도. 계피사탕을 두고 싸우는 것도 매일 똑같았다. “갈색 하나 줘.” “안 됩니다.” “그거 하나가 뭐라고!” “제가 좋아하니까요.” “박하는 맵다고.” “계피도 매워요.” “그 매운 거랑 이 매운 거랑 같아?” “다르긴 하죠.” “그럼 줘.” “싫어요.”
오전부터 민원실 분위기가 묘했다. 직원 하나가 출입문 쪽을 보더니 작게 말했다. “팀장님.” “왜요.” “저분 또 오셨는데요.” 승철이 고개를 들었다. 허리가 조금 굽은 할머니가 천천히 들어오고 있었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혼자 사는 노인이었다. 노인복지 관련 담당 부서에서도 이미 여러 번 상담했던 사람이었다. 문제는 상담할 일이 없어도 온다는 거였다. 외롭거나 심심한 날이면 시청에 와서 괜한 시비를 걸곤 했다. 직원이 한숨처럼 말했다. “민 주무관님이 걸리셨어요.” 승철의 시선이 돌아갔다. 할머니가 정확히 방실 앞에 앉았다. “뭘 도와드릴까요?” “도와주긴 뭘 도와줘!” 시작부터 목소리가 높았다. “나라에서 늙은 사람은 죽으라고 하는 거지!” 방실이 눈을 깜빡였다. “왜요?” “전기세도 나오지! 수도세도 나오지! 약값도 들지!” “네.” “내가 평생 세금을 얼마나 냈는데!” “많이 내셨어요?” “많이 냈지!” “얼마나요?” 승철이 고개를 들었다. 할머니도 멈칫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저도 몰라서 물어봤어요.” “지금 나 놀려?” “아니요.” 방실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 뒤로도 한참을 쏟아냈다. 버스가 늦게 왔다. 동네 마트 콩나물이 비싸졌다. 윗집에서 밤마다 의자를 끈다. 복지관 반찬은 지난주보다 싱거웠다. 시청에서 대체 하는 일이 뭐냐. 민원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말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방실은 끊지 않았다. “네.” “그래요?” “그건 불편하셨겠네요.” 딱 그 정도만 대답했다. 승철은 어느 순간 서류보다 방실 쪽을 더 보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중간에 이상한 해결책 하나쯤 나올 때였다. 그런데 오늘은 없었다. 할머니의 목소리가 조금 갈라졌다. “그리고 말이야. 요즘 공무원들은 사람이 말을 하는데 물 한 잔 주는 놈도 없어.” 방실이 벌떡 일어났다. 할머니가 움찔했다. 방실은 정수기로 가더니 종이컵에 따뜻한 물을 받아왔다. “물
오전 열 시가 조금 넘었을 때였다.민원실 자동문이 열렸다.서류를 확인하던 승철이 고개를 들었다가 잠깐 멈췄다.낯이 익었다.며칠 전 가로등을 뽑아달라던 남자였다.그때 방실은 가로등을 없애는 대신 암막커튼을 달라고 했다.이미 세금으로 설치한 거니까 잘 이용하시라는 말까지 덧붙였다.그리고 민원인은 납득하고 돌아갔다.적어도 승철은 그렇게 생각했다.“안녕하세요.”방실도 남자를 알아봤다.“커튼 사셨어요?”승철이 서류에서 시선을 들었다.보통은 민원 내용부터 물어본다.방실은 커튼부터 물었다.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샀어요.”“어때요?”“좋아요.”“다행이네요.”끝난 줄 알았다.남자가 의자에 앉았다.“근데요.”승철은 속으로 짧게 한숨을 쉬었다.역시 안 끝났다.방실이 물었다.“또 밝아요?”“아뇨. 이제 깜깜해요.”“잘됐네요.”“너무 깜깜해요.”방실이 눈을 깜빡였다.승철도 남자를 봤다.남자가 진지하게 말했다.“커튼을 치니까 밖이 하나도 안 보여요.”방실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승철은 괜히 궁금해졌다.이번에는 뭐라고 할까.“그게 커튼인데요.”역시나였다.남자가 답답하다는 얼굴을 했다.“아니, 그러니까 밤에 밖을 보고 싶은데 가로등은 눈부시고 커튼을 치면 밖이 안 보인다고요.”“아.”방실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밖은 보고 싶으시고.”“네.”“가로등은 싫고.”“그렇죠.”“커튼도 열고 싶고.”“맞아요.”방실이 잠시 생각했다.승철이 먼저 끼어들었다.“민 주무관.”“네?”“잠깐만요.”방실이 입을 다물었다.승철은 남자에게 차분히 설명했다.“지난번 말씀드린 것처럼 가로등은 보행 안전 때문에 설치된 시설이라 개인 주거의 빛 불편만으로 바로 철거하거나 소등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빛이 주택 내부로 과도하게 들어오는 정도라면 담당 부서에 차광판이나 조명 각도 조정이 가능한지는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남자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그런 게 돼요?”“가능 여부를 확인해봐야 합니다.”옆에서
다음 날 점심시간.방실은 시청 뒤편 벤치에 앉아 김밥을 먹고 있었다.구내식당까지 내려갔다가 줄이 긴 걸 보고 그대로 나왔다.기다리느니 김밥이 빨랐다.세 개째 집어 먹었을 때 휴대전화가 울렸다.엄마였다.방실은 입에 든 걸 삼키고 전화를 받았다.“어, 엄마.”-밥 먹었어?“먹는 중.”-뭐 먹는데?“김밥.”-밥 먹었냐고 물었는데 김밥 먹는다고 하면 어떡해.방실의 미간이 좁아졌다.“김밥에 밥 들어가잖아.”전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해졌다.-그렇지.“응.”-밥 먹었네.대화는 간단하게 해결됐다.“아빠는?”-가게 갔지. 네 아빠가 평일 대낮에 집에 있으면 철물점은 누가 보냐?“엄마가 물어볼 때마다 아빠 옆에 있길래.”-그건 저녁이고.“그러네.”오미자가 혀를 찼다.-너 어제 회식했다며.“응.”-술 많이 먹었어?“좀.”-잤어?“아니.”-그럼 덜 먹었네.방실이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그렇게 생각해.”그때 벤치 앞을 지나던 승철의 걸음이 느려졌다.커피를 사 들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일부러 들으려던 건 아니었다.그런데 들렸다.아주 익숙한 논리가.-거기는 사람들 괜찮고?“응.”-팀장은?방실이 김밥 하나를 집었다.“괜찮아.”지나가던 승철의 시선이 슬쩍 움직였다.-잘해줘?“뭘?”-직장 상사가 뭘 잘해줘. 일할 때 괜찮냐고.“응. 말 잘 통해.”승철의 걸음이 멈췄다.말이 잘 통한다고?-다행이네. 너 말 못 알아듣는 사람 만나면 답답해하잖아.“맞아.”승철이 헛웃음을 삼켰다.누가 누구 때문에 답답한데.-나이는?“누구?”-팀장.“서른넷.”-남자야?“응.”-결혼했어?방실이 김밥을 씹었다.“몰라.”-그건 안 물어봤어?“왜 물어봐?”-그냥 궁금해서 그렇지.“엄마가 궁금한 걸 내가 왜 물어봐.”승철이 결국 웃었다.소리가 났다.방실이 고개를 돌렸다.눈이 마주쳤다.승철은 그냥 지나가려다 멈췄다.방실이 손을 들어 인사했다.“팀장님.”-팀장이 옆에 있어?“응.”-잘
노래방을 나온 건 열한 시가 가까워졌을 때였다.“내일 아홉 시 출근입니다.”승철의 말에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터졌다.“팀장님, 그런 말은 내일 해주세요.”“내일 하면 늦죠.”“분위기 진짜 못 맞춘다.”“내일 지각하고 분위기 탓하지 마세요.”직원들이 웃으며 흩어졌다.택시를 잡는 사람.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사람.대리기사를 부르는 사람.승철도 휴대전화를 꺼냈다.“팀장님.”옆에서 방실이 불렀다.“왜요.”“저 먼저 갈게요.”“어떻게 갑니까?”“버스요.”“이 시간에 있어요?”“있으니까 버스로 간다고 하죠.”승철이 방실을 봤다.“그렇긴 하네요.”“팀장님은요?”“나도 버스입니다.”“어디서 타세요?”승철이 길 건너편을 가리켰다.방실도 그쪽을 봤다.“저도 저긴데.”“같이 가면 되겠네요.”둘은 나란히 횡단보도 쪽으로 걸었다.잠시 조용했다.먼저 입을 연 건 방실이었다.“팀장님 노래 잘하시던데요.”“민 주무관보다는 못합니다.”“저 노래 잘하죠?”“네.”“춤은요?”승철이 바로 대답했다.“왜 굳이 좋은 분위기를 망칩니까?”방실이 웃었다.“많이 심했어요?”“본인이 세 명 셌잖아요.”“두 명 피하고 한 명 밟은 거요?”“정확히 기억하네요.”“제 실수니까요.”“그럼 고칠 생각은 없습니까?”“춤을요?”“네.”방실이 잠시 생각했다.“굳이?”“……왜요?”“춤 안 춰도 사는 데 문제없잖아요.”승철이 웃었다.“그렇게 따지면 노래도 안 불러도 됩니다.”“맞아요.”“회식도 안 가도 되고.”“그건 고기 사주잖아요.”“기준이 고기입니까?”“무료 고기는 중요하죠.”승철이 고개를 저었다.“민 주무관은 생각보다 일관적이네요.”“저 원래 일관적인데요.”“본인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어디가요?”“빛에 예민하다면서 옥상에서 햇빛 맞고 자고.”“밤에 예민하다고 했잖아요.”“딸기맛은 싫다면서 남한테 주고.”“버리면 아깝잖아요.”“민원인한테 화분이랑 대화하라고 하고.”“농담이었고요.”“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