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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화. 처마 밑

Author: 아람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0 11:01:32

그 말을 하고 나서도 무겸은 예령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

등잔 심지가 타는 소리만 났다. 예령은 그 손 아래에서 제 맥이 뛰는 것을 느꼈고, 그가 그것을 느끼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장군.”

무겸이 손을 놓고 일어섰다.

“주무시오.”

문이 닫혔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발소리가 평소보다 빨랐다.

이튿날 양소정이 아침상에서 저자가 서는 날이라고 했다. 열흘에 한 번이고, 겨울에는 그날 아니면 물건이 안 나온다고.

마루 끝에 있던 무겸이 그 말을 듣고 들어왔다.

“가 보시오.”

“……장군께서도 가십니까?”

“혼자는 못 보내오.”

성안 거리에 멍석이 깔려 있었다. 마른 생선과 짐승 가죽과 쇠붙이가 나와 있었고, 그 사이를 사람들이 메우고 있었다.

예령은 걸음이 자꾸 느려졌다. 물건에 값을 적은 패가 없었고, 같은 가죽인데도 사는 사람에 따라 값이 달랐다. 황도에서는 본 적 없는 셈법이었다.

상인들이 무겸을 알아보고 하나씩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예령에게도 눈이 따라왔다.

예령이 서너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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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58화. 아직 끝나지 않은 밤

    무겸은 잠시 말이 없었다.곽진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다시 들렸다.“막사를 함께 쓰는 자들에게 물었으나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군영 안을 뒤지고 있습니다.”“위량을 불러라. 내가 가겠다.”“예, 장군.”발소리가 멀어졌다. 무겸은 벽에 걸어 둔 검을 집어 들었고, 예령은 그제야 자신이 아직 그의 방 한가운데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조금 전 목덜미를 감쌌던 손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그 손이 조금만 더 머물렀다면 어찌 되었을까. 차마 끝까지 생각하지 못한 물음이 가슴속을 어지럽혔다.“부인.”무겸이 검을 차며 그녀를 돌아보았다.“오늘은 이만 돌아가 쉬시오.”“저도 가겠습니다.”“군영의 일이오.”“양재는 백운상회 사람이기도 합니다.”무겸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 머물렀다. 평소 같았으면 한 번 더 만류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잠시 예령을 바라보다가 문가에 걸어 둔 두터운 겉옷을 가져왔다.“그렇다면 이것부터 입으시오.”예령이 미처 손을 내밀기도 전에 겉옷이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무겸은 그녀의 목 앞에서 벌어진 옷깃을 여며 주었다. 굵은 손가락이 매듭을 묶는 동안 예령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장군의 옷입니다.”“알고 있소.”“장군께서는 추우실 텐데요.”“나는 부인만큼 추위를 타지 않소.”그가 마지막 매듭을 고쳐 묶었다. 손을 거두기 전, 엄지손가락이 예령의 턱 아래를 스쳤다.우연한 접촉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다만 무겸도 그것을 느꼈는지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가십시다.”그가 먼저 돌아섰다.예령은 한 박자 늦게 뒤따랐다. 어깨에 걸친 옷에서는 희미한 약향과 낯익은 체취가 났다. 조금 전까지 그가 입고 있던 옷이었다.마당에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군영에 도착했을 때 위량이 막사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무겸을 보자 곧장 고개를 숙였다.“뒤쪽 담장 아래에서 발자국을 찾았습니다. 두 사람입니다.”“양재의 것이냐?”“하나는 양재의 신발 자국과 같습니다. 다른 하나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싸운 흔적은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57화. 나가시오

    마당으로 들어서니 마루 앞에 아전 둘이 서 있었다. 그 뒤에 포졸이 넷이었다.“백운상회 둘째 양재를 데려가겠습니다.”무겸이 눈을 털며 섬돌에 올라섰다. 예령은 마루 끝에 섰고, 연화가 그 뒤에서 치맛자락을 쥐었다.“그 아이는 군에 이름을 올렸다.”“예. 그 문서를 자사 어른께서 보셨습니다.”아전이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그 아이는 작년 봄 관문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관의 일이 끝나지 않은 자를 군에 올리셨으니, 그 문서가 거짓이 됩니다.”무겸은 그 종이를 받지 않았다.“그 일이 끝나지 않았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관아 장부에 남아 있습니다.”“작년 봄에 그 아이는 하룻밤 만에 풀려났다. 문서가 갖춰졌다는 뜻이다. 문서가 갖춰진 일을 끝나지 않았다 하려면, 그 문서를 누가 만들었는지부터 적어야 할 것이다.”아전의 손이 멈췄다.“……그것은 제가 답할 일이 아닙니다.”“그러면 답할 사람을 데려와라.”아전이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포졸 넷은 마당에 들어선 뒤로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장군.”“군에 이름을 올린 자를 끌어가려면 군에 글을 넣어라. 그 글은 내 손을 거친다. 오늘은 내 손을 거치지 않았으니 돌아가라.”포졸들이 서로를 보았다. 아전이 한참 만에 허리를 숙였다.“……자사 어른께 그대로 전하겠습니다.”“그리해라.”마차가 나가고 문이 닫혔다.양소정이 마루 기둥 뒤에 서 있었다. 손에 쥔 치맛자락이 구겨져 있었다.“부인.”“예.”“제 오라비 때문에 장군께서 걸리시는 겁니까?”예령은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예.”양소정이 입술을 깨물었다.“……제가 아버지께 돌아가면 됩니까?”“아가씨가 돌아가도 그 문서는 그대로 있습니다.”“그러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오늘 일은 저쪽이 떠본 것입니다.”“……어찌 아십니까?”“포졸을 넷만 데려왔습니다. 정말로 데려갈 작정이었으면 스물은 데려왔을 겁니다.”“그러면 왜 왔습니까?”“장군께서 어디까지 막으시는지 보려고요.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56화. 처마 밑

    그 말을 하고 나서도 무겸은 예령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등잔 심지가 타는 소리만 났다. 예령은 그 손 아래에서 제 맥이 뛰는 것을 느꼈고, 그가 그것을 느끼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장군.”무겸이 손을 놓고 일어섰다.“주무시오.”문이 닫혔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발소리가 평소보다 빨랐다.이튿날 양소정이 아침상에서 저자가 서는 날이라고 했다. 열흘에 한 번이고, 겨울에는 그날 아니면 물건이 안 나온다고.마루 끝에 있던 무겸이 그 말을 듣고 들어왔다.“가 보시오.”“……장군께서도 가십니까?”“혼자는 못 보내오.”성안 거리에 멍석이 깔려 있었다. 마른 생선과 짐승 가죽과 쇠붙이가 나와 있었고, 그 사이를 사람들이 메우고 있었다.예령은 걸음이 자꾸 느려졌다. 물건에 값을 적은 패가 없었고, 같은 가죽인데도 사는 사람에 따라 값이 달랐다. 황도에서는 본 적 없는 셈법이었다.상인들이 무겸을 알아보고 하나씩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예령에게도 눈이 따라왔다.예령이 서너 걸음 뒤처졌을 때 무겸이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손목을 잡았다.“떨어지면 못 찾소.”가죽을 파는 자리를 지나는데 멍석 끝에 토끼 가죽 토시가 걸려 있었다. 예령이 그 앞에서 걸음이 한 박자 느려졌을 뿐인데, 무겸이 값을 치르고 그것을 집어 들었다.그러고는 예령에게 건네고 앞서 걸었다.예령이 그것을 끼었다. 어제 그가 쥐어 자국이 남은 자리가 덮였다.바람이 거리 끝에서부터 밀려왔다.멍석을 걷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났다. 하늘이 한순간에 낮아지더니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눈보라였다.“이쪽이오.”무겸이 손목을 당겼다.거리 옆 창고와 담 사이에 처마가 낮게 내려온 자리가 있었다. 사람 하나가 비를 그을 만한 폭이었다.무겸이 먼저 들어가 예령을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둘이 들어가니 설 자리가 없었다.예령의 등이 담에 닿았다. 무겸은 바깥쪽에 서서 등으로 바람을 막았고, 그 사이가 한 뼘도 되지 않았다.바깥에서 멍석을 걷던 사람들이 뛰어가는 소리가 났다. 누가 소리를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55화. 다섯 바퀴

    장호가 떠난 뒤로 사흘 동안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예령은 그 사흘을 밤마다 등잔을 켜 둔 채로 보냈다. 불을 끄고 누우면 황도 쪽 생각부터 났다. 서씨 상단 창고가 어디에 몇 개 있고, 겨울에 그 문을 지키는 사람이 몇인지를 세다 보면 새벽이었다.사흘째 밤에는 연화가 자다 일어나 기름을 채워 놓고 갔다.나흘째 아침, 무겸이 밥상 앞에서 말했다.“오늘 연무장에 나오시오.”예령이 숟가락을 들다 말았다.“교습 말씀이십니까?”“눈이 그쳤으니.”“장군께서는 기다리는 일이 많으실 텐데요.”“기다리는 동안에도 말은 타야 하오.”연무장 한쪽은 눈이 치워져 있었다. 월백이가 그 가운데 매여 서서 김을 뿜고 있었다.“월백아.”말이 코를 들이밀었다. 예령이 그 콧등을 쓸어 주는 것을 무겸이 보고 있었다.“그 이름이 입에 붙었군.”“제가 지었으니까요.”“오르시오.”예령이 등자에 발을 걸었다. 두 달 만이라 올라앉는 데 손이 떨렸다.무겸이 고삐를 잡고 걷기 시작했다. 한 바퀴를 돌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두 바퀴째에 입을 열었다.“어깨가 올라갔소.”“……”“겁이 나면 어깨부터 굳는데, 말은 그것을 사람보다 먼저 알고 있소.”예령이 숨을 내쉬었다.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그렇소. 그대로.”세 바퀴째에 무겸이 고삐를 놓았다.“혼자 도시오.”“고삐를 놓으십니까?”“옆에 있겠소.”예령이 무릎으로 말의 배를 눌렀다. 월백이가 걸음을 옮겼다. 네 바퀴째가 끝났을 때 예령의 어깨에서 힘이 거의 빠져 있었다.“다섯을 돌면 어찌하십니까?”“강에 데려가겠소.”“그러면 오늘 다섯을 돌겠습니다.”“오늘은 넷으로 족하오.”예령은 그 말을 듣고도 고삐를 당기지 않았다. 월백이가 다섯 바퀴째로 들어섰다.반 바퀴를 돌았을 때였다.눈을 치운 자리 끝에 얼음이 얇게 얼어 있었고, 월백이의 앞발이 그것을 밟았다. 발굽이 미끄러지면서 말의 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예령의 손이 저절로 고삐를 당기려 했다가, 배운 것이 떠올라 주먹에서 힘을 뺐다.말이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54화. 같은 종이, 다른 글

    진서헌이 돌아가자 무겸이 곽진을 불렀다.“장호를 깨워라. 오늘 밤에 떠난다.”“어디로 보냅니까?”“조정으로 올린다. 군의 길로 보낸다.”곽진의 얼굴이 굳었다.“그 길로는 군의 일이 아니면 보낼 수 없습니다.”“군량이 모자랐다. 그것이 군의 일이 아니면 무엇이냐.”곽진이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장군. 그 글이 올라가면 조정이 먼저 부르는 것은 장군이십니다.”“안다.”“그러면.”“저쪽 글이 먼저 닿으면 부르는 것이 아니라 끌고 간다. 어느 쪽이 낫겠느냐?”곽진이 입을 다물었다.“내 패를 들려 보내라. 참마다 그 패를 보이면 말을 내준다.”“둘째 참은 눈이 깊어 말이 모자랄 겁니다.”“그러면 거기서는 군마를 내라 이르고, 뒤는 내가 책임진다고 해라.”곽진이 뛰어나갔다.무겸이 군무 보는 방으로 들어가 등잔에 불을 붙였다. 예령이 그 뒤를 따라 들어섰다.“장군.”“말하시오.”“그 행수가 들었다는 말 말입니다. 두 번 불릴 것이라던.”“나도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소.”무겸이 붓을 들었다. 그러고는 쓰면서 말했다.“겨울에 눈을 뚫고 황도에서 여기까지 오는 자는 많지 않소.”“누가 옵니까?”“군에서 보낸 전령, 관에서 보낸 사람, 그리고 돈을 받고 오는 자요.”“돈을 받고요?”“겨울 길은 목숨을 걸어야 하니 제 일로 오는 자는 없소. 누가 돈을 쥐여 줘야 오는 것이오.”“북방 사람 옷이 아니었다 했습니다.”“군의 전령이면 내 손을 거쳤을 것이고, 관에서 보낸 사람이면 자사가 돈을 쥐여 줄 까닭이 없소.”“……그러면 돈을 받고 온 자입니다.”“그렇소. 그리고 돈을 주는 쪽이 황도에 있다는 뜻이오.”무겸이 쓰던 손을 멈추지 않았다.“그 집 이름은 그대가 더 잘 알 것이오.”“태성상단입니다. 황기문이요.”“황기문은 지금 북방에 있소.”예령이 고개를 들었다.“눈에 묶여 봄까지 나가지 못하오. 그자가 황도에서 사람을 사서 내려보낼 수는 없소.”예령은 그 말을 따라가다가 등이 서늘해졌다.“……그러면 황기문 위에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53화. 두 번 불릴 이름

    진서헌은 마루 아래 마당에 서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라는 말을 연화가 세 번이나 했는데도 듣지 않았다고 했다.예령이 마차에서 내리자 그가 먼저 허리를 숙였다.“오늘 관아에 다녀오셨지요.”예령의 걸음이 멈췄다.“그것을 어찌 아십니까?”“성안에 소문이 났습니다.”무겸이 예령의 뒤에서 걸어 나왔다. 진서헌이 그를 보고 다시 허리를 숙였다.“장군. 이 시각에 송구합니다.”“들어와서 기다리지 않고 마당에 서 있었다 들었소.”“오늘은 안에 들어가 앉을 낯이 아니라서요.”예령은 그 말을 듣고 가슴이 한 번 내려앉았다. 하루 동안 참았던 것이 목까지 올라왔다.“명단이 샜습니다.”진서헌이 고개를 들었다.“강마을 마흔네 집 이름입니다. 그 종이는 한 장뿐이었고 베낀 것도 없었습니다. 본 사람은 저와 제 아이, 그리고 진가상회뿐입니다.”“……”“자사가 그 이름을 전부 적어 황도로 보냈다 합니다. 열흘 전에요.”마당이 조용해졌다.“압니다.”예령이 숨을 멈췄다.“그래서 왔습니다. 제 집에서 샜습니다.”진서헌은 그 말을 하는 동안 눈을 피하지 않았다.“오늘 아침에 관아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겨울 동안 진가상회 수레는 관문에서 세우지 않겠다고요.”“……”“제가 청한 적이 없는데 먼저 와서 그런 말을 하니 까닭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집안을 뒤졌습니다.”“나왔습니까?”“행수 하나가 열사흘 전 밤에 관아에 다녀왔고, 돌아와서 은자 여든 냥을 집 뒤에 묻었습니다.”진서헌이 수하에게 손짓을 했다. 자루 하나가 마당에 놓였다.“파내서 가져왔습니다. 제가 쓸 돈이 아닙니다.”예령은 그 자루를 보지 않았다. 대신 진서헌의 얼굴을 보았다.겨울 내내 이 사람은 무슨 말을 하든 웃으면서 했다. 값을 깎일 때도 웃었고, 마당에 세워 두었을 때도 웃었다. 지금은 웃지 않고 있었다.무겸이 먼저 물었다.“그 행수가 관아에 들어간 것을 그대는 열사흘 동안 몰랐소?”“몰랐습니다.”“상단주가 제 집 행수가 밤에 관아를 드나드는 것을 모르오?”“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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