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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 앞으로 예령 낭자를 따른다

Author: 아람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0 09:51:38

“진가상회와 백운상회부터 만나겠습니다. 태성상단이 어떤 조건을 내걸었는지도 직접 들어봐야 하고요.”

예령은 펼쳐 둔 장부 위에서 두 곳의 이름을 차례로 짚었다. 진가상회는 서씨 상단과 십 년 넘게 거래를 이어 온 곳이었고, 백운상회 역시 북방에서 물품을 들여올 때면 가장 먼저 서씨 상단을 찾던 거래처였다.

유덕수가 먼저 손을 썼다고 해서 그 오랜 관계까지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은 아닐 터였다. 아직 태성상단과 정식으로 거래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직접 만나 다시 이야기를 나눠 볼 여지는 충분했다.

무겸은 예령이 짚은 이름들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문가에 서 있는 사내를 불렀다.

“장호.”

“예.”

“앞으로 예령 낭자를 따른다.”

장부 위에 있던 예령의 손이 멈췄다.

장호는 미리 들은 이야기라도 되는 듯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허리를 숙였다.

“명 받들겠습니다.”

예령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무겸이 북방 길에 사람을 붙여 주겠다고 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 말은 그보다 훨씬 더 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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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19화. 우영의 군령

    군영 문을 나서기 전에 무겸이 걸음을 멈췄다.“곽진. 오십을 추려 뒤따라와라. 수레는 두고, 빈 말 다섯을 여벌로 끌고 오고.”“예.”“그리고 어제 생포한 둘의 군복을 벗겨 와라. 지금.”예령은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무겸은 설명하지 않았다. 말에 오르며 한마디만 했다.“오십을 세우는 데 반 시진이다. 반 시진이면 저들은 굴을 비운다.”예령이 제 말에 오르려 할 때, 무겸이 고삐를 먼저 잡았다.“그 걸음으로는 밤길을 못 따라오오.”예령은 반박할 말이 없었다. 상단 마차는 수도 없이 탔어도, 말은 낮에 몇 번 얻어 탄 것이 전부였다. 얼어붙은 산길을 밤중에 달리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무겸이 먼저 말에 올랐다. 그리고 손을 내렸다.“앞에 타시오.”예령이 그 손을 잡았다. 한 번에 끌어 올려지는 힘에 숨이 멎었다. 안장 앞자리에 앉히고 나서 그는 제 겉옷을 벗어 앞으로 둘러 여몄다. 등이 그의 가슴에 닿았다.“이러시면 장군께서…….”“추운 쪽은 내가 맡겠소.”낮은 목소리가 귀 뒤에서 들렸다. 예령은 앞만 보았다. 바람은 여전히 찬데 볼이 뜨거웠다.고삐를 쥔 두 팔이 그녀의 양옆을 지나갔다.“고삐는 잡지 마시오. 내 팔만 잡으면 되오.”그날 밤 초소로 향한 것은 세 필이었다. 앞장선 위량이 길을 짚고, 장호가 뒤를 막았다. 안장 뒤에는 우영의 군복 두 벌이 실려 있었다.말발굽 소리를 눈이 먹었다. 그 대신 예령의 귀에는 다른 소리가 들렸다. 등 뒤에서 오는 심장 소리였다. 처음에는 제 것인 줄 알았다.날이 트기 전, 넷은 마지막 능선 위에 엎드렸다.아래로 초소가 보였다. 무너진 흙담, 막사 셋. 그 옆 산 밑동에 검은 입이 하나 벌어져 있었다. 굴이었다.불은 두 군데에서 타고 있었다. 사람들이 자루를 끌어다 불 속으로 던졌다. 스물이 넘었고, 그 너머에 말이 열 필쯤 매여 있었다.굴 입구에는 다섯이 돌을 쌓고 있었다. 벌써 사람 허리 높이였다.그중 하나가 불붙은 나뭇단을 아직 트인 윗틈으로 던져 넣었다. 다른 하나가 그 위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18화. 북이 울리면

    기병들이 말머리를 돌렸다. 교위가 다시 예를 갖췄다. 아까보다 훨씬 깊은 예였다.“군영에서 다시 뵙겠습니다.”그 말을 남기고 그는 말에 올랐다.행렬이 다시 움직였다.예령은 말없이 무겸의 옆을 따라갔다. 심장은 아직도 빠르게 뛰고 있었다. 창끝이 내려와 있던 동안, 그녀는 한 번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그리고 한 가지를 더 생각했다. 저들이 노린 것은 잡아 둔 둘만이 아니었다. 반나절이든 하루든, 우리를 이 길 위에 붙잡아 두는 것. 여기서 하루를 뺏기면 굴에 갇힌 두 사람에게 남은 날이 하루 줄어든다.“무서우셨겠소.”먼저 말을 건넨 쪽은 무겸이었다.“무서웠습니다.”예령은 솔직하게 답했다.“그런데 뒤에 서 있지는 않았습니다.”무겸이 그녀를 보았다.“저는 장군의 뒤가 아니라 옆에 있었습니다. 저들이 그걸 봤으면 좋겠습니다.”“보았을 거요.”무겸이 말했다.“나도 보았소.”예령은 앞만 보았다. 그런데도 옆에서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는 말의 걸음을 늦춰 그녀의 말과 나란히 맞췄다.해가 기울 무렵 군영의 깃발이 보였다.그리고 그 깃발 아래, 아까 돌아갔던 기병 서른이 먼저 와서 서 있었다.그들 앞에 붉은 띠를 두른 장수 하나가 말을 탄 채 기다리고 있었다.마흔쯤 되었을까. 낯빛이 붉고 목이 굵은 사내였다. 열린 군영 문을 등지고, 길을 막아선 자세였다.“우영 장군 배승입니다. 먼 길 오셨습니다.”그가 말에서 내리며 웃었다.“오늘은 늦었으니 쉬시지요. 지휘권 인수는 내일 아침에 격식을 갖춰 올리겠습니다.”예령은 저도 모르게 고삐를 쥐었다. 낮에 교위가 길을 막아 반나절을 뺏겼다. 이번에는 하룻밤이었다. 격식을 갖춘다는 말로 하루를 미루는 솜씨가 낮의 그 교위와 똑같았다.그 하루는 굴 안에 갇힌 사람들에게서 떼어 오는 하루였다.예령은 배승의 얼굴을 보았다. 웃고 있는데 눈이 웃지 않았다. 황기문에게서 본 것과 같은 얼굴이었다.무겸은 대답 없이 말에서 내렸다. 그러고는 배승을 지나쳐 군영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배승의 웃음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17화. 창끝

    새벽에 위량이 초소를 한 번 더 살피고 돌아왔다.“문은 안에서 걸렸소. 넷이 안에 있고, 담은 높소. 담을 넘는 데 시간이 걸리면, 그사이 굴 안에 있는 자들부터 없앨 거요.”“안을 아는 자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군.”“그렇소. 굴 입구가 어디인지, 다른 통로가 있는지 우리는 모르오. 곽삼은 지고 나르는 쪽이라 위에만 있었소.”무겸은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군영으로 간다.”“군을 더 얻으러 가십니까.”“사람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저 초소의 상관이 우영 장군이다. 그자를 먼저 잡아 두지 않으면, 우리가 담에 닿기 전에 굴을 비우라는 전갈이 먼저 닿는다.”무겸이 고삐를 고쳐 쥐었다.“군량을 바로잡으라는 것이 교지에 적힌 명이다. 저 창고가 그 명의 한가운데에 있다.”“며칠이나 걸리겠소.”위량이 물었다.“닷새.”아무도 다시 묻지 않았다.예령은 그 말을 들으며 굴을 생각했다. 눈이 녹기 전이라고 했다. 하루를 벌면 하루가 사라지는 셈이었다.곡식 수레는 벌써 군영에 닿았을 것이다. 적어도 그곳 병사들이 굶지는 않는다. 그 생각이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행렬은 아침 일찍 움직였다. 군영까지 이틀 거리였다.곽삼은 수레에 자리를 만들어 눕혔다. 예령은 떠나기 전에 짧은 서신을 써 황도로 보냈다. 곽삼이 살아 있다는 것, 그 아내에게 먼저 알려 달라는 것. 그것뿐이었다. 병사들이 제 겉옷을 벗어 바닥에 깔아 주었다. 어제 눈밭에서 그를 끌어낸 것이 자기들이라는 것을 아는 얼굴들이었다.정오 무렵, 앞서 가던 위량이 말머리를 돌려 달려왔다.“앞이 막혔소.”길 한가운데에 기병 서른이 늘어서 있었다. 창을 세우고 말을 나란히 세워 길을 완전히 막은 진이었다.무겸의 뒤에는 백이 있었다. 숫자로는 이쪽이 많았다. 그러나 저쪽은 같은 나라의 군복을 입은 자들이었다.맨 앞의 장교가 말에서 내려 예를 갖췄다. 서른쯤 되어 보이는 사내였다. 목소리는 공손했고, 눈은 무겸의 뒤쪽 수레를 훑고 있었다.“정북장군을 뵙습니다. 변경 수비군 우영의 교위[(校尉)병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16화. 이름을 부르는 사람

    곽삼은 그날 밤 열이 올랐다.두 달을 눈길에서 자루를 진 몸이었다. 손목은 헐고 발은 얼어 있었고, 갈비뼈 쪽에는 오래된 멍이 검게 남아 있었다.야영지 천막 안에서 예령은 그의 이마에 젖은 천을 얹었다. 손목의 헐은 자리에는 위량이 가져온 약을 발랐다. 곽삼은 자다 깨다 하면서 뜻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자루가 무겁습니다. 아직 스무 개 남았습니다.”“이제 안 지셔도 됩니다.”“……아가씨한테 말하면 안 된다고, 그자들이…….”“말해도 됩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곽삼은 그 말에 잠깐 조용해졌다가 다시 잠들었다.천막 밖에서 발소리가 멎었다. 무겸이 들어왔다. 손에 물그릇을 들고 있었다. 병사에게 시키지 않고 제 손으로 들고 온 물이었다.“번을 바꾸시오. 내가 보겠소.”“제가 보겠습니다.”“그대는 어젯밤도 새웠소. 오늘도 새우면 내일은 말에 오르지도 못하오.”“그래도 제가 보겠습니다.”무겸은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물그릇을 내려놓고 예령의 옆에 앉았다. 천막 밖에서 병사들이 교대하는 소리가 들렸다.한참 뒤에 그가 물었다.“짐꾼 하나 때문에 화살 앞에 서는 상인은 처음 보았소.”“짐꾼 하나가 아닙니다.”예령은 젖은 천을 다시 짰다.“이름이 있는 사람입니다.”예령은 젖은 천을 다시 짰다.“곽삼입니다. 열여섯에 우리 상단에 들어와 수레를 배웠고, 북방 길을 여덟 번 다녀왔습니다. 아내가 있고, 아이가 둘입니다. 큰애가 올해 여섯이라고, 떠나기 전에 자랑을 했습니다.”“……그렇군.”“그리고.”예령은 잠시 망설였다.“제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두고 돌아선 적이 있습니다.”무겸이 그녀를 보았다. 예령은 곽삼의 이마만 보고 있었다.전생이었다.옥에 갇혀 있던 마지막 며칠, 문밖에서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상단 사람이었는지 연화였는지 끝내 알지 못했다. 그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고 여겼다.그 목소리는 지금도 꿈에 나왔다. 이름을 부르는데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꿈이었다.“두 번은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15화. 데려온다

    무겸이 예령을 돌아보았다. 무어라 말하려다 그만두는 얼굴이었다. 지금은 그럴 틈이 없다는 것을 둘 다 알았다.병사들이 흩어졌다. 예령이 그 뒤를 따르려 하자 장호가 앞을 막았다.“여기 계셔야 합니다.”“그 사람 이름을 아는 건 나뿐입니다. 저 눈밭에서 누가 곽삼인지, 병사들은 모릅니다.”예령은 말허리를 돌렸다. 장호가 욕을 삼키며 따라붙었다.비탈을 내려가는 여든 기의 소리는 처음엔 땅울림 같았다. 눈이 얕게 덮인 비탈이라 말발굽이 미끄러지고, 그때마다 흙덩이가 튀었다.울란족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가죽옷의 사내가 짧게 외치자, 말 곁에 있던 자들이 일제히 안장에 뛰어올랐다. 골짜기 끝은 이미 코앞이었다. 저 능선만 넘으면 변경이었다.“말고삐를 끊어라! 사람부터 떼어 내라!”무겸의 외침이 바람을 갈랐다. 삼 년 만에 그 목소리를 들은 병사들이 있었다. 대오가 저절로 조여들었다.선두가 부딪혔다. 창이 부러지고 말이 울었다. 눈보라가 아니라 말발굽이 일으킨 눈가루가 골짜기를 하얗게 덮었다.곽삼을 실은 말이 먼저 움직였다. 고삐를 쥔 자가 능선 쪽으로 말머리를 돌리는 순간, 옆에서 달려든 말과 뒤엉켜 앞다리를 들었다.무겸의 칼이 그 사이로 들어갔다. 고삐가 끊어지고, 배를 걸친 채 얹혀 있던 곽삼이 눈 위로 굴러떨어졌다.“곽삼!”예령이 말에서 뛰어내렸다. 눈 속에 무릎이 박혔다. 그녀는 그대로 기어가 손목을 묶은 밧줄을 더듬었다.밧줄이 얼어 있었다. 손끝이 미끄러졌다.“아가씨…….”곽삼의 목소리가 갈라졌다.“말하지 마세요. 이제 곧 끝납니다.”곽삼의 손목은 살이 헐어 진물이 나 있었다. 얼마나 오래 묶여 있었는지 알 만했다. 두 달 전 수레를 몰던 손이었다.예령은 허리춤에서 작은 칼을 꺼냈다. 흥정하다 손톱을 다듬거나 장부 끈을 자를 때 쓰던 칼이었다. 그 칼로 언 밧줄을 그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에 밧줄이 끊어졌다.그때 등 뒤에서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예령이 고개를 들기도 전에 몸이 옆으로 밀려났다. 무겸이었다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14화. 열하나

    위량이 돌아온 것은 그때였다. 품에서 주먹만 한 천 뭉치를 꺼내 예령 앞에 내려놓았다. 소금을 한 줌 싸서 묶어 온 것이었다.예령이 천을 펼치자 흰 알갱이가 드러났다.예령은 손끝으로 알갱이를 집어 비벼 보았다. 고르고 반듯했다. 굵기도, 물기도 마당에서 밟은 것과 같았다.“같습니다.”이제 저 창고와 태성상단의 마당은 한 줄로 이어졌다. 관의 소금이 저 문으로 나가 황기문의 마당에 밟히고 있었다는 뜻이었다.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능선 아래에서 짐꾼들이 다시 자루를 지고 서기 시작했다. 빈 수레가 남쪽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곽삼은 그 줄에 없었다.예령은 눈으로 다시 셌다. 한 번, 두 번. 열하나였다.초소 문이 닫히고 있었다.“곽삼이 저 안에 남았습니다.”예령이 말했다. 무겸이 위량을 돌아보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뜻은 하나였다. 안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 오라는 것이었다.위량은 대답 대신 활을 내려놓고 비탈을 기어 내려갔다. 눈 위에 몸을 붙인 채 바위와 마른 덤불 사이로만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모습은 능선 그늘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돌아온 것은 한 식경쯤 지나서였다. 소매 끝에 흙이 묻어 있었고, 손등에는 새로 긁힌 자국이 나 있었다.“짐꾼들을 부리던 자를 하나 붙잡아 물었소.”위량은 어떻게 붙잡았는지는 말하지 않았다.“짐꾼 하나가 어젯밤부터 따로 묶여 있다 하오. 어제 창고 마당에서 서씨 상단 부인을 보고 입을 열 뻔한 자라고. 상단주가 직접 일렀답디다.”무겸의 목소리가 낮았다. 예령은 손끝이 서늘해졌다. 모른 척한 것으로는 부족했던 것이다. 눈이 마주친 것만으로 곽삼은 쓸모보다 위험이 큰 사람이 되어 있었다.빈 수레 여섯 대가 남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짐꾼 열하나가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아무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는 법을 잊은 걸음이었다.예령은 닫힌 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지금 저 문을 치면 어찌 됩니까.”“저 안에는 곽삼과 함께 창 든 자가 여섯이오. 우리가 문을 부수는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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