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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엮이고 싶지 않아

Author: 배나영
이청하는 그제야 나를 알아보았는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눈빛에서 강한 적대감이 느껴졌지만 먼저 나를 건드리진 못했다.

엄마와 같이 자리에 앉았고 투정을 부렸다.

“사실 나 별로 오고 싶지 않았는데 인호 씨가 같이 오자고 해서 왔어요. 근데 너무 심심해요.”

“이건 일이야. 얘는 심심하긴 뭐가 심심해.”

엄마는 나의 작은 손을 잡고 야단쳤지만, 말투에서 애정이 느껴졌다.

나는 곁눈질로 이청하를 한번 쳐다보고는 엄마와 일상적인 수다를 이어갔다.

“심심한데 어떡해요. 맞다 엄마, 나 이 기사님한테 가사 서비스 전문 업체에 연락해서 가사도우미분 좀 구해달라고 했어요. 갑자기 살 좀 찌우고 싶어요. 인호 씨도 나 너무 말랐다고 해서 밥 잘 챙겨 먹고 꿀잠도 자야겠어요.”

이청하는 입술을 깨물며 애써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부터 구했어야지. 둘이 살기에 좀 큰 집이니. 너 혼자서 어떻게 다 한다고.”

엄마는 나의 말에 찬성했다.

“나는 그저 남편이랑 둘만의 공간을 즐기고 싶었죠. 이젠 충분해요.”

나는 일부러 야릇한 말들을 했다. 이청하쯤이면 배인호 인생에서 가볍게 만나고 버리는 정도였다. 서란처럼 중요한 캐릭터도 아닌데 굳이 내가 나설 필요도 없었다.

이청하는 화가 난 듯 일어나서 파티장을 나갔다.

진소진도 민망한지 따라 나갔다.

파티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나는 배인호와 같이 돌아가고 싶지 않아 친정에서 며칠 부모님과 함께 있겠다고 했다.

“그럼 나 먼저 갈게.”

배인호는 내가 그를 쪽팔리게만 하지 않는다면 어디로 가든 상관하지 않았다.

아빠는 파티가 끝났는데도 아직 친구들과 얘기 중이셨다. 엄마는 나에게 차 키를 주며 아빠를 데리고 갈테니 먼저 주차장에 가서 기다리고 했다.

나는 차 키를 들고 주차장으로 내려가 아빠 차를 찾았다. 차에 타려는데 배인호와 이청하가 다투는 모습이 보였다.

이청하는 억울한 듯 배인호의 옷소매를 잡고 애원했다.

“나한테 그렇게 잘해줬으면서 한 번도 진심이 아니었어요? 난 못 믿어요!”

“믿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 귀찮게 하지 말고.”

배인호는 이청하의 손을 뿌리쳤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데리고 놀다 질리면 바로 버리는 그런 사람. 집 한 채로 이청하는 그가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생각한 것일까?

배인호는 나를 발견하고 마치 그에게 질척이며 매달리는 여자가 나라도 된 듯 실증 난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바로 차에 탔고 문을 잠갔다. 아빠 엄마만 아니면 바로 악셀을 밟아 출발했을 것이다. 내가 아무런 반응이 없이 차에 타버리자 배인호는 뭐가 화가 났는지 차를 향해 걸어왔고 창문을 두드렸다.

그의 입 모양을 보니 나오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흔들며 싫다고 입모양으로 답했다.

곧이어 나의 핸드폰이 울렸고 배인호였다.

“허지영, 나와!”

“난 당신들 일에 엮이고 싶지 않아요.”

나는 이렇게 답했다. 창문으로 화가 잔뜩 난 배인호를 볼 수 있었다.

나는 결심했다. 만약 배인호가 서란과 만나기 전에 이혼할 수 없다면 조금만 참고 그가 먼저 이혼하자고 할 때까지 기다려야겠다고 말이다. 그때 바로 동의하면 배 씨 가문의 주식을 조금이라도 받을 수 있으니 손해 볼 것도 없다.

전생에서 배인호는 서란을 1년이나 쫓아다닌 후 내게 이혼하자고 얘기했고 그와 동시에 가족들에게 알렸다. 나는 이혼 할 수 없어 그를 붙잡고 거의 1년이나 버텼지만 결국 우린 끝났다.

환생한 후 복수 하고 싶었지만 그건 허무한 집착이었다. 전생은 이젠 꿈만 같았고 현생인 지금 비극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나는 다시 그 악몽에 시달리지 않기 현실에서 미친년이 되기로 했다.

“나와!”

배인호는 내가 거절할 줄은 상상도 못 했는지 더 불같이 화를 냈다. 이청하는 얼굴에 눈물자국을 하곤 이쪽으로 다가와 배인호의 옷자락을 잡고 놓지 않았다.

그래도 꽤 유명한 연예인일 텐데 왜 배인호에게 죽기 살기로 매달리는 걸까? 나는 또 다른 나를 보는 것 같아 비웃을 수 없었다.

배인호는 나를 무섭게 째려보았고 이청하의 손목을 잡고 그의 차로 거칠게 끌고 갔다.배인호의 차가 떠나자 그제야 숨이 쉬어졌다.

부모님이 차에 돌아왔을 때 나는 거의 잠들뻔했다.

“당신은 무슨 얘깃거리가 그렇게 많아요. 지영이 피곤한데!”

엄마는 아빠를 혼냈다.

“아이고, 남부 공사 때문에 우리도 심사받아야 하니 상의 좀 했어요.”

아빠는 안전벨트를 하며 대답했다.

나는 뒷좌석에 앉아서 졸았다. 예전엔 꿈만 꾸면 배인호에게 매달리는 꿈을 꿨는데 지금은 전생에서 있었던 일들이 꿈에 나온다. 하늘에서 그 비극을 잊지 말라고 꿈으로 나에게 알려주는 것 같았다.

“엄마, 나 삼계탕 먹고 싶어요.”

나는 엄마와 함께 뒤좌석에 앉아 엄마의 어깨에 기대어 말했다. 엄마는 나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엄마가 주는 따듯한 안정감이란 이런 것이었다.

전생에 내가 죽기 전 부모님이 침대 옆에서 나를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셨다. 두 분은 하룻밤 새에 머리가 하얗게 될 정도로 가슴 아파하셨다.

“이렇게 늦었는데 삼계탕을 해달라고?”

엄마는 나의 손을 토닥이며 말했다.

“오늘 무슨 일 있어? 아니면 인호랑 싸운 거니? 너 평소에도 집엔 꼭 들어갔잖아.”

“칫, 내가 무슨 사랑에 빠져 정신 못 차리는 어린애도 아니고!”

나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이제부터 다정한 딸이 될게요.”

엄마는 나의 말을 듣고 놀라셨다. 아빠도 핸들을 잘못 꺾을 뻔하셨다. 내가 배인호를 일편단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주위 사람들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아빠는 내게 물었다.

“너 이제 배인호 안 좋아하게 된 거야?”

좋아하지만 마음속에서 내려놓기로 했다.

나는 결국 그 남자를 붙잡는데 실패했다. 그는 나의 것이 아닌 젊고 아름다운 서란의 것이었다.

“아빠, 나 그 사람이랑 결혼한 지 5년이에요. 부부 사이에 사랑하고 사랑하지 않고 가 어디 있어요? 계속 그를 내조하기보단 나도 이젠 다른 일들을 하고 싶어요.”

나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래야지. 배인호 그 자식 매일 이상한 스캔들이나 나고. 난 진즉에 마음에 들지 않았어!”

아빠는 배인호를 탐탁지 않아 하셨다. 전에는 내가 배인호에게 빠져 있으니 내가 속상해할까 봐 말하지 않은 것이었다.

나도 맞장구치며 말했다.

“맞아요. 나쁜 놈이에요.”

내가 말하자 엄마 아빠도 배인호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으셨다. 그동안 나를 위해 얼마나 참으셨는지 그제야 알았다.

마음이 아파왔고 죄송함에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집에 도착하니 밤이 깊었다. 나는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엄마가 내 방문을 노크했다.

“왜요? 엄마?”

“너 삼계탕 먹고 싶다며. 좀 했으니 일어나서 먹고 잘래?”

엄마가 말했다.

나는 순간 정신이 들었고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멍하니 있다가 몇 초 후 눈물이 쏟아졌다.

환생한 후 나는 울어 본 적이 없었다. 꿈에서 아무리 끔찍한 장면이 나와도 놀라서 깰 뿐 이미 무뎌져서 아픔들이 익숙했다.

하지만 삼계탕을 먹고 싶다는 나의 그 한마디에 엄마가 한밤중에 끓여 주신다니. 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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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생은 반드시 해피엔딩   제688화 악몽에 시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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