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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남지훈은 대학교를 졸업할 때부터 스카이팰리스에서 사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회사 월급으로 스카이팰리스에서 사는 건 헛된 꿈에 지나지 않았다. 이렇게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 꿈이 실현될 줄 몰랐다.

소연은 그에게 저녁에는 반드시 스카이팰리스에서 머물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왜 그래야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녀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계약한 3년이라는 시간만 버티면 그는 곧 두둑한 이혼 위자료를 받을 수 있었다.

남지훈은 얼른 택시를 타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

남은 병원비를 지불한 그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마음속에 가시처럼 박혀있던 짐 하나가 떨어져나간 기분이었다.

'드디어 돈을 구했어!'

수술실 입구에 도착한 그는 최선정과 남가현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지훈을 발견한 최선정과 남가현은 급히 그에게 다가갔다.

때마침 남지훈의 휴대폰이 울렸다.

연락온 상대를 확인한 그는 눈살을 찌푸린 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는 최선정에게 말했다.

"어머니, 누나, 아버지 수술비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휴대폰이 다시 한번 울렸다.

남가현이 말했다.

"지훈아, 급한 일 같은데 전화부터 받아. 아버지는 아직 안 나오셨어."

남지훈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그의 휴대폰이 다시 한번 울렸다.

남지훈은 귀찮은 듯 전화를 받았다. "왜?"

이효진이 그에게 연락을 해온 것이다.

이효진은 남지훈의 날카로운 말투를 눈치채지 못한 채 말했다.

"지훈 씨, 방금 쇼핑을 하다 엄청 마음에 드는 원피스 하나 발견했는데 35만 원밖에 안 하더라. 얼른 계좌 이체해 줘."

그녀의 철없는 말을 들은 남지훈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김명덕한테 아양을 떨던 이효진이 뻔뻔하게 남지훈에게 연락해 돈을 요구하고 있었다.

"돈 없어!"

말을 마친 남지훈은 거칠게 휴대폰을 끊었다.

"효진이야?"

남가현이 물었다.

남지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 사이의 문제에 대해 누나한테 떠들고 싶지 않았다.

심상치않은 분위기를 눈치 챈 남가현이 다시 물었다.

"또 싸운 거야? 효진이가 아직 어려서 돈에 대해 개념이 없어 그런 거야. 아버지가 아직 수술 중이시니까 너희도.."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지훈이 얼른 말을 끊었다.

"누나, 이 얘기는 그만하자. 나도 생각이 있어. 효진이가 최근 들어 돈만 계속 요구해서 이렇게 대한 거야. 게다가 요즘 말 못 할 사정도 생겼고, 아버지 상황이 괜찮아지시면 효진이랑 헤어질 생각이야."

남가현은 입을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직 수술실에 계신 아버지를 병문안 오긴커녕 오히려 돈을 요구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쩌면 남지훈을 돈을 주는 지갑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단단히 선을 넘은 행동이었다.

흥분한 마음을 진정을 하기도 전에 또다시 그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한숨을 길게 내쉰 그는 분노를 최대한 억누르고 전화를 받았다.

"지훈 씨, 회사 아니야? 어디야? 내가 그쪽으로 갈게!"

이효진은 자신의 용건을 말했다.

이효진의 뻔뻔한 태도에 남지훈은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회사에 없는 걸 알고 있다 이거지? 김명덕 그 새끼가 알려준 게 틀림없어.'

이현수는 남지훈과 병원에 동행했었다. 그렇다면 남지훈이 병원에 있다는 걸 말할 사람은 김명덕뿐이었다.

남지훈이 입을 열었다. "나 지금 병원이야. 여기로 와."

그는 이효진이 어디까지 뻔뻔해질지 궁금했다.

수술은 아직 진행 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효진이 병원에 도착했다.

하이힐을 신고 다가온 이효진은 그의 어머니에게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남지훈에게 다가가 자신의 용건을 말했다.

"지훈 씨, 그 원피스가 얼마나 예뻤는지 알아? 진짜 너무 예뻤어! 아까 같이 쇼핑하던 친구가 내 카드 잔액이 부족해 긁지 못하는 걸 보고 어찌나 비웃던지, 당장이라도 숨고 싶었다니까!"

한창 말을 내뱉던 이효진은 그제야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

남지훈은 한 번도 이효진을 차갑게 대하지 않았다. 설령 그녀의 잘못으로 남지훈을 화나게 만들더라도 그는 싫은 내색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랬던 남지훈이 지금 이효진을 싸늘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할 말 끝났어?"

남지훈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내가 너였다면 창피해서라도 여기 나타나지 않았을 거야. 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병원까지 찾아온 거야? 어머니랑 누나도 계시는데 인사도 안 하고 돈부터 요구해? 게다가 나한테 돈을 요구할 게 아니라 김명덕한테 요구해야 되는 거 아니야?"

쿵!

남지훈의 말을 들은 이효진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김명덕한테 얘기하라고? 우리 둘 사이 일을 설마 지훈 씨가 다 알고 있는 거야? 어떻게 알았지?'

이효진의 휴대폰은 항상 패턴이 걸린 상태였고 김명덕 역시 둘 사이를 남지훈에게 알리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

'어떻게 안 거지?'

"지훈 씨..."

충격을 받은 이효진은 눈앞이 흐릿해졌다.

"지훈 씨! 어떻게 나랑 김 사장님 사이를 오해해? 난 사장님이랑 아는 사이도 아니라고! 딱 한 번 본 게 다야!"

그녀는 누명을 쓴 것처럼 이를 악물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눈시울이 붉어진 그녀의 모습은 보는 사람마저 애타게 만들었다.

하지만 둘 사이의 채팅 기록을 확인한 남지훈에게 가련한 여주인공 행세는 통하지 않았다.

남지훈은 차가운 시선으로 이효진을 쳐다보았다.

"이효진, 잘 들어! 너랑 나! 이제부터 남남이야!"

남지훈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아무리 오래 만난 사이라 할지라도 자신을 배신한 그녀에게 정이 떨어졌다.

"지훈 씨!"

이효진은 그의 팔을 덥석 잡으며 울부짖었다. "

왜 이래?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잖아!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10년 동안 만난 나를 어떻게 의심할 수 있어? 지훈 씨!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이효진!"

남지훈은 자신을 잡은 그녀의 팔을 거칠게 뿌리치며 말했다.

"설마 내 입으로 너랑 김명덕이 저지른 더러운 일까지 말해야 되는 거야?"

이효진은 멍하니 굳어버렸다.

'지훈 씨가 모든 걸 알고 있잖아!'

그녀는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알았어, 지훈 씨. 헤어져! 헤어져! 하지만 내가 당신과 함께 한 십 년이라는 시간들은 헤어진다 해서 다시 돌아오는 게 아니잖아! 내 청춘들을 다 바쳤는데 돌아오는 게 이런 헤어짐이라니! 난 이대로 못 물러나! 1억 6000만 원 정도는 줘야 순순히 떠날 거야! 안 그럼 평생 동안 못살게 굴 거야!"

남지훈은 화가 났다.

"한 푼도 못 주니까 당장 꺼져!"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는 거지!"

이효진은 험상궂은 얼굴로 소리쳤다. "나랑 명덕 오빠는 만나는 사이야! 너 같은 쓰레기는 나한테 어울리지 않아! 내가 사고 싶은 건 명덕 오빠가 다 사줬어! 그런데 지훈 씨는? 지훈 씨가 나한테 해준 게 뭐야? 가진 거라곤 쥐뿔도 없는 게!

지훈 씨도 곧 서른 살이야! 어떤 여자가 당신같은 빈털터리랑 결혼하고 싶겠어? 평생 홀아비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거야!"

남지훈은 웃음이 터졌다.

그는 자신의 옷 주머니에서 혼인신고서를 꺼내 보였다. "이효진, 잘 봐! 이게 뭔지! 나 결혼했어! 본의 아니게 너한테 실망을 줬네!"

남지훈은 통쾌함을 느꼈다.

그동안 겪었던 수모를 이 한방으로 갚아준 것 같았다.

이효진은 남지훈의 손에서 서류를 받아 들었다.

서류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그녀는 당황했다.

'결혼을 했다고? 언제?'

"당장 꺼져!"

남지훈은 그녀의 손에서 다시 서류를 빼앗은 뒤 이효진을 등졌다.

"그래! 남지훈! 우리 끝까지 가보자! 둘 중에 누가 죽는지 끝까지 가 보자고!" 이효진은 화를 내며 성큼성큼 멀어졌다. 자신이 만나던 남자친구가 자신을 모질게 대하고 있는데도 그녀는 어떤 슬픔도 느끼지 못한채 오로지 남지훈에게 배상받을 생각만 하고 있었다.

어쩌면 남지훈을 진짜 자신의 지갑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남가현이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지훈아, 너 결혼했어? 언제? 누구랑? 우리한테 말도 없이?"

남지훈이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누나,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데..."

남지훈은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돈을 빌리기 위해 결혼을 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

S 그룹.

소연은 혼인신고서를 사진을 찍어 가족들 단톡방에 전송했다.

"동생! 너 결혼했어?"

"소연아! 너 결혼했어? 이렇게 갑자기? 결혼을 했다고?"

"남지훈? 성이 남 씨야? "

단톡방에 끊임없이 올라오는 메시지에 소연은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웃었다.

소연의 모습에 비서 또한 의아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동안 단톡방을 지켜보던 소연은 자신의 오빠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빠, 나 결혼했어. 우리 계약서에 따르면 S 그룹은 3년 동안 내가 관리할 수 있는 거 맞지?"

"그래, 당연하지! 저녁에 매제 데리고 와서 밥 먹어.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이랑 삼촌까지 다 오실 거니까 매제도 준비 잘 시키고."

소연은 그의 문자에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한동안 남지훈과 가족들을 만나게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녀가 한 결혼은 S 그룹을 관리하기 위한 히든카드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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