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소녀는 또다시 죽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실컷 봐요. 많은 사람이 봐도 제가 밥 먹는 데는 아무 영향이 없으니까.”말이 끝나자 식탁에 앉은 어른들이 모두 웃었다.윤영이 덕분에 분위기가 훨씬 활기차졌다.장은희는 잘 자란 윤영이를 보고 마음이 혹했다.식사가 끝나고 그녀는 용기를 내어 홍운학에게 심지우의 추천대로 영준이를 데리고 지강을 다시 찾아가자고 설득했다.홍운학은 설득에 응해 장은희와 함께 영준이를 데리고 한의원으로 향했다.윤영이는 오늘 어린이집에 가지 않아도 되었기에 함께 가겠다고 졸랐다.온
눈썹을 찌푸리며 안 먹는다고 말하는 영준이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변승현은 아이의 작은 얼굴을 한 번 살펴본 후 시선을 거두고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홍운학은 덤덤하게 변승현의 표정을 살피다가 이내 관심을 거두었다.“태생적으로 싫어한다고요?”윤영이가 입에 넣은 감자를 씹으며 호기심 가득 물었다.“쉽게 말해서 우리는 감자 반찬을 맛있게 먹지만 영준이는 다른 맛을 느낀다는 거야.”온주원이 설명했다.“네?”윤영이 온주원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그럼 영준이가 먹으면 어떤 맛인데요?”“그게 말이야...”온주원
장은희가 손님방으로 가고 심지우는 문을 닫았다.심지우는 매일 밤 잠자기 전에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데 가끔 그녀가 없을 때는 온주원이나 백연희가 읽어주곤 했다.“엄마.” 윤영이가 갑자기 말했다.“엄마, 중간에 누우면 안 돼요?”심지우는 당황했다.“왜?”“나도, 영준이도 엄마 곁에 있고 싶으니까요!”심지우가 영준이를 돌아보자 아이는 부끄러운지 눈을 깜빡이며 하얀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심지우는 그런 아이 모습이 귀여워 두 아이 사이에 눕고는 둘을 양쪽에 각각 안았다.“오늘 밤엔 이야기 말고 자장가 불러줄까?”
장은희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일어나 코를 훌쩍이며 심지우에게 말했다.“오랫동안 아이를 돌봤지만 단 며칠만에 이렇게 큰 진전을 이룰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지우 씨와 윤영이가 정말 우리 도련님 인생의 귀인일지도 모르겠네요.”“영준이를 무척 신경 써서 생기는 게 보여요.”장은희가 영준이를 보는 눈빛엔 애정과 배려가 담겨 있었기에 심지우는 장은희에 대한 인상이 좋았다.홍운학이 영준이에게 찾아준 계모는 별로지만 육아 전문가는 제대로 찾은 것 같았다.이때 식탁 쪽에 있던 홍운학과 변승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유지현이 다가가 변승현
시계를 보니 이미 밤 9시 30분이었다.아이들도 이제 슬슬 재울 시간이었다.그녀는 식탁으로 다가가 빈 양주 병 세 개를 훑어보았다.심지우는 그들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이 집에서 사고라도 나면 그걸 처리해야 할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다.“두 분, 시간이 늦었어요. 이제 돌아가셔야죠.”심지우는 차갑게 말했다.그 말에 변승현은 미간을 살짝 치켜올렸다.그는 붉게 물든 눈으로 홍운학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홍운학, 이제 슬슬 가야 하지 않겠어?”“내가?”홍운학은 웃으며 대꾸했다.“변승현, 심지우 씨가 내쫓는 건 나 하나뿐
윤영의 귀여운 말투가 귓가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변승현은 손에 들린 엘사 피규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그의 눈빛은 깊고 어두웠다.집에서 마트까지는 도보로 몇백 미터 거리였다.하지만 심지우는 변승현이 아직 집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몹시 답답했다.백연희는 그녀를 달래듯 말했다.“걱정하지 마. 온주원이랑 너희 아버지가 있는데 변승현이 정말로 윤영이를 데려갈 수야 있겠어?”“그 사람이 윤영이한테 이상한 말이나 할까 봐 걱정돼요.”“그 똑 부러진 애가 그렇게 호락호락할까? 변승현이 쥐고 흔들 수 있는 아인 아니야.”백연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