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3 화

Author: 영이
심지우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그녀는 주승희를 바라보며 물었다.

“주승희 씨, 당신이 정말 현민이의 생모인가요?”

주승희는 심지우의 시선을 마주하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5년 전 제 커리어와 회사와의 계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현민이와의 모자 관계를 숨겨야 했어요.”

심지우의 숨이 잠시 멎었다.

“그럼 현민이의 아빠는...”

“현민이는 저와 승현 씨 아이예요.”

주승희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칼날이 되어 심지우의 가슴을 깊숙이 찔렀다.

숨이 막힌 심지우는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지난 5년 동안 정성을 다해 키운 아이가 변승현과 주승희의 아이였다니... 변승현은 처음부터 나를 속인 거였어. 결혼 후 바람을 피운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나를 농락하고 이용한 거야!’

“지우 씨, 오랫동안 숨겨서 죄송해요. 사실 저도 처음엔 승현 씨에게 진실을 말하라고 권했지만 승현 씨가 이 일은 외부에 알려지면 안 좋다고 생각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주승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법처럼 그녀의 머릿속을 울려댔다.

심지우는 그제야 변승현에게 있어 그녀는 항상 외부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같은 지붕 아래에서 5년을 살며 한 아이를 함께 돌봤으니 감정은 없어도 가족이라 믿었지만 그는 끝까지 그녀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녀는 변승현이 왜 자신을 속였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진실을 말했다면 내가 이렇게 빠져들지도 않았을 텐데...’

“지우 씨, 지난 5년 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저와 승현 씨도 지우 씨가 현민이에게 베푼 정성과 노력에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주승희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지우 씨는 현민이를 정말 잘 키워주셨어요. 현민이의 생모로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심지우는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창백한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었고 변현민을 안고 있는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거짓말! 다 거짓말이야! 우리 엄마는 하나뿐이란 말이야! 난 엄마만 있으면 돼!”

변현민이 주승희를 향해 외쳤다.

“나쁜 여자! 왜 네가 내 엄마야? 난 너 같은 엄마는 필요 없어!”

주승희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고 이내 그렁그렁한 눈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측은함을 자아냈다.

곧 얼굴을 싸늘하게 굳힌 진숙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심지우를 꾸짖었다.

“넌 아이를 이렇게밖에 못 가르쳤어? 어른에게 위아래가 없잖아!”

이미 정신이 혼미해진 심지우는 진숙희와 논쟁할 기운조차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이의 마음을 고려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현민이는 아직 아이예요. 현민이에게도 이 상황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합니다.”

“흥! 네 속셈을 내가 모를 줄 알아?”

진숙희는 비웃으며 말했다.

“심지우, 같은 여자끼리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뻔히 보여.”

“집사!”

진숙희가 외치자 집사가 급히 달려왔다.

“사모님, 무슨 일이십니까?”

“아이를 데리고 와. 우리 변씨 가문의 핏줄이 저런 여자의 손에 이용당하는 꼴은 두고 볼 수 없지.”

집사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 현민이를 심지우의 품에서 떼어냈다.

“싫어! 놔줘요! 엄마, 나 엄마랑 집에 갈래요.”

심지우는 변현민이 격하게 우는 모습을 차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현민이는 천식이 있어요. 제발 이렇게 강제로 아이를 몰아붙이지 말아 주세요.”

그 말에 진숙희도 잠시 멈칫했다.

주승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진숙희의 팔을 붙잡고 울먹이며 말했다.

“어머니, 집사님한테 현민이 놔주라고 해주세요. 전 괜찮아요. 제가 엄마로서 책임을 제대로 못 졌으니 아이가 저를 인정하지 않는 건 당연해요.”

진숙희는 한숨을 내쉬며 집사에게 손짓해 현민이를 풀어주었다.

“엄마!”

변현민은 울며 곧장 심지우에게 달려가 안겼다.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심지우는 한발 물러서며 겨우 균형을 잡았다.

하지만 배가 부딪친 탓에 통증이 심해지면서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

“엄마, 할머니는 거짓말쟁이죠? 제 엄마는 하나뿐이잖아요! 다른 엄마는 싫어요! 저는 엄마만 있으면 돼요!”

변현민은 흐느끼며 울고 있었다.

심지우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랬다.

변현민은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고 선천성 천식도 있어 격한 감정 기복은 특히 위험했다.

그녀가 직접 키운 아이였다 보니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보아도 이 아이를 그냥 버리고 갈 수는 없었다.

“현민아, 울지 마. 엄마는 너를 버리지 않아. 그러니까 울지 말자. 응?”

심지우는 아이의 감정을 달래기 위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지만 진숙희는 이를 또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

“심지우, 창피한 줄 알아! 현민이는 네가 낳은 애도 아니잖아. 어떻게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수 있지?”

그녀는 평소의 품위 있는 태도를 완전히 벗어던지고 독설을 퍼부었다.

“현민이가 왜 너만 찾고 나한테 정 붙이지 않았는지 이제 알겠다. 평소에 그런 말로 아이를 세뇌하고 있었던 거지?”

그 말에 심지우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아이가 있다는 것도 잠시 있고 얼굴을 굳혔다.

“사모님, 제가 승현 씨와 결혼할 때 승낙을 받지 않아 저를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는 건 상관없어요. 하지만 다섯 살 아이 앞에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건 어른다운 모습인가요? 제가 무례한 건가요, 아니면 사모님께서 나이 먹고도 어른답지 못한 건가요?”

“너!”

진숙희는 심지우가 반박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분노에 차 치를 떨었다.

“지금 날 도발하는 거야?”

“그럴 필요도 없어요.”

심지우는 진숙희를 똑바로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이혼 여부는 저와 변승현이 결정할 문제예요. 현민이는 이 집에 남기세요. 전 현민이를 빼앗을 생각 없어요.”

“싫어! 난 싫다고!”

변현민은 그 말을 듣자 심지우를 더욱 꼭 끌어안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저 버리지 마요. 네? 할머니 집 싫어요! 저 나쁜 여자도 싫어요! 전 엄마랑 집에 갈래요. 제발 절 데리고 집에 가줘요!”

울면서 한참을 소리 지른 탓에 변현민의 목소리는 이미 쉰 상태였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변현민을 키우면서 그녀로서도 아이가 이렇게까지 우는 건 처음이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진숙희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감정이 격해져 있으니 일단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차분해지면 아이에게 제대로 설명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후 심지우는 변현민의 손을 잡고 뒤돌아 나왔다.

변현민은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지 바쁜 걸음으로 심지우의 뒤를 따랐다.

그는 혹시라도 심지우를 놓칠까 봐 발걸음을 더욱 급하게 움직였다.

“현민아!”

주승희가 다급하게 뒤따라 나왔다.

마당에서 주승희가 변현민의 팔을 붙잡았다.

“현민아, 가지 마. 엄마가 잘못했어. 그땐 어쩔 수 없었지만 엄마는 정말 널 사랑해.”

“나쁜 여자! 놔! 놓아줘요!”

변현민은 주승희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주승희가 꽉 잡은 탓에 그는 통증마저 느꼈다.

“엄마, 도와줘요. 이 나쁜 여자가 절 잡아가려 해요. 얼른 도와주세요.”

그 모습을 바라보는 심지우의 마음에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

변현민을 만류하지 못한 주승희는 심지우에게 눈길을 돌렸다.

눈물에 젖은 얼굴은 마치 동정심을 유발하듯 애처로웠다.

“지우 씨, 제발 부탁이에요. 현민이는 제가 열 달 품고 낳은 아이예요. 당신이 지난 5년 동안 애써주신 건 잘 알아요. 하지만 아이를 변승현을 붙잡기 위한 도구로 삼지 말아 주세요. 부탁드려요.”

심지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뭘 했다고 모두가 자신을 아이를 이용하는 사람으로 몰아붙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심지우가 변현민의 손을 놓지 않는 모습을 본 진숙희는 도우미들에게 심지우를 밀어내라고 명령했다.

심지우는 몇 걸음 뒤로 밀려 휘청거리며 거의 쓰러질 뻔했다.

그녀는 갈수록 통증이 심해지는 복부를 부여잡고 도우미들의 손에 끌려 주승희와 진숙희의 옆에 선 변현민을 바라보았다.

변현민은 하늘이 무너질 듯 애처롭게 울며 외쳤다.

“놔줘요. 엄마랑 같이 가고 싶어요! 엄마...”

심지우는 그 모습을 보며 무력감을 느꼈다.

한 사람은 아이의 친할머니였고 다른 한 사람은 아이의 생모였다.

그 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그저 변승현과 곧 이혼하게 될 철저한 외부인이었다.

그때 검은색 벤틀리가 마당으로 들어왔다.

차 소리에 고개를 돌린 심지우는 차에서 내리는 변승현을 발견했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이별은 나의 시작   700 화

    그래서 심지우가 은퇴를 선언했을 때, 회사의 주요 임원들은 모두 충격을 받았다.물론 놀라움보다 아쉬움이 더 컸다.하지만 지금 심지우의 상태를 보면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걸.출근 전 일부러 화장해서 창백한 얼굴색을 가리려 했지만 눈에 띄게 야윈 모습은 도무지 숨길 수 없었다.불과 몇 달 사이에 심지우는 이미 기름이 다 떨어진 등불처럼 쇠약해져 있었다.회의가 끝난 뒤, 심지우는 사무실로 돌아왔다.함명우도 뒤따라 들어왔다.심지우는 사무실을 한 바퀴 둘러본 뒤, 책상 앞으로 다가가 손을 뻗어

  • 이별은 나의 시작   699 화

    누군가 안방 문을 두드렸다.막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온 심지우는 흰색 잠옷을 입고 있었다.긴소매, 긴바지 차림이었지만 그녀의 야윈 몸매는 여전히 숨길 수 없었다.심지우는 문 쪽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그러자 문 앞에 서 있던 변승현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이 시간에 머리를 감으면 어떡해?”“오늘 고기 구워 먹었잖아. 머리에서 고기 냄새가 나서.”“지금은 찬 바람 맞으면 안 돼.”변승현의 표정은 단호했다.“내가 말려줄게.”심지우는 순간 멍해졌다가 곧바로 거절했다.“그 정도는 내가 할 수 있어.”“약부터 마셔

  • 이별은 나의 시작   698 화

    두 아이는 아까 변승현과 함께 씻으러 갔기에 지금쯤이면 이미 잠들었을 것이다.심지우는 그들을 방해하지 않고 곧장 안방으로 돌아갔다....온주원은 밤 열두 시 반이 되어서야 돌아왔다.입술은 터져 있었고 얼굴엔 선명한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변승현은 두 아이를 재워놓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약을 달였다.갓 끓여낸 한약을 들고 주방을 나서던 변승현은 마침 집으로 돌아온 온주원과 마주쳤다.변승현은 온주원의 얼굴을 본 순간,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남자끼리는 때로 눈빛 한 번이면 모든 걸 알아챌 때가 있다.분명 온주원과 송해인 사

  • 이별은 나의 시작   697 화

    심지우는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함명우에게 굳이 숨기지 않았다.중요한 협력 파트너였기에 병을 감추는 것보다는 차라리 솔직히 밝히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래야 이후 프로젝트 담당자를 교체할 때도 더 수월할 테니까.지금까지 은하 엔터테인먼트만 아직 적합한 관리자를 찾지 못했을 뿐, 다른 회사들은 모두 안정적인 운영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심지우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김채령은 능력이 꽤 괜찮지만 아직은 혼자 회사를 이끌기엔 조금 부족했다.그동안 자신이 자리를 비울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황찬수가 뒤에서 받쳐줬기 때문

  • 이별은 나의 시작   696 화

    “네.”진태현은 세탁실에서 빨래판을 찾아 들고 심지우에게서 욕실 열쇠를 받아서 들었다.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위층으로 올라갔다.변승현은 코를 만지며 중얼거렸다.“이런 방법도 있었네.”심지우가 그를 흘깃 쳐다봤고 변승현도 그녀를 바라보았다.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자 공기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몇 초 후, 심지우가 먼저 시선을 거두고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변승현은 그녀의 가느다란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뒤뜰은 한창 떠들썩했다.함명우와 김채령, 우영지 등은 아이들과 놀고 있었다.윤영

  • 이별은 나의 시작   695 화

    진태현은 순간 멈칫했다.“진태현 씨, 당신은 은미의 남편이에요. 앞으로 함께 살아갈 사람이죠. 부부는 언제나 평등해야 해요.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먼저 은미의 감정을 생각해야 해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를 통제하는 건 사랑이 아니에요. 그건 속박이자, 감정적 압박이에요. 아주머니 쪽 일은 제가 말하기 어렵지만, 당신이 은미의 남편이라면 최소한 은미 편에 서줘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이 집은 은미에게 숨 막히는 공간이 될 거예요.”진태현은 그 말의 의미를 곧장 이해했다.사실 그도 알고 있었다. 최해경이 고은미에게 지나치게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