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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그때 그 사람이 이진이었다니

심사위원 석 중앙 자리에 앉아 이영을 보며 웃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이진이었다.

그리고 윤이건은 그녀의 옆의 귀빈 석에 따로 자리했다. 이영이 경악했다면 윤이건은 이진을 보는 순간 놀랐다고 하는 게 맞다.

결혼생활 3년 동안 그는 상대방이 피아노에 관해 얘기한 걸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다음으로 이영 참가자를 모시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이영은 그제야 흠칫 놀란 듯 현실로 돌아왔다.

입술을 깨물며 이진을 째려보는 그녀의 눈에서는 당장이라도 불이 뿜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저 년은 왜 매번 나보다 잘난 건데!’

하지만 귀빈석에 앉아 있는 윤이건에게 추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이영은 눈 딱 감고 무대 위에 올랐다. 그녀는 이번 기회에 윤이건의 마음을 사로잡을 생각이었다.

관중석에서 터져 나오는 환호성에 이영은 어색하게 미소를 쥐어 짜냈다.

그리고 심사위원 석에서 마침 그 모습을 본 이진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연주 도중 이영은 두 구간이나 실수한 것도 모자라 박자와 음마저 모두 무너져 그야말로 연주라 할 수 없는 연주를 선보였다.

그 모습을 한참 지켜보던 이진은 끝내 참지 못하겠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이영 씨, 그만하시죠.”

“뭐?”

연주 소리는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뚝 끊겼다.

이영은 아직까지 자기가 연주하는 아름다운 선율에 자아도취하고 있었는데 이진의 말을 듣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기교를 너무 많이 욱여넣다 보니 밸런스가 깨지고 그 기교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해 음과 리듬이 어우러지지 못하고 다 무너져 형편없네요.”

개인감정을 배제하더라도 이영의 실력은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실력이었다.

“이진! 네가 뭔데 날 무대에서 내쫓는데.”

이성을 잃은 이영은 무대 위라는 것도 잊었는지 발끈했고 그 모습을 본 관중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수군대며 비웃느라 바빴다. 자기를 떠받들던 관중들의 웃음소리에 이영은 주먹을 그러쥐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넌 무슨 자격으로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는데!”

그리고 그 한 마디에 관중석은 순간 떠들썩했다. 심사위원을 의심하는 참가자라니 참 재밌는 구경거리이기도 했다.

“이영이라는 저 사람 진짜 대박인데? 어떻게 감히 심사위원을 의심하지?”

“혹시 저 심사위원 알아? 나도 잘 모르겠는데 정말 그 자격이 되는지 의심되긴 하네.”

“요즘 콩쿠르는 심사위원 전문성을 크게 안 따지더라고!”

수군대던 관중들은 아예 이진의 신분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 얘기를 들은 이영은 마치 목적을 달성하기라도 한 양 눈빛을 반짝였다. 그녀는 이진이 무슨 방법을 사용해 심사위원 자리를 꿰찼을거라고 이미 마음속으로 단정하고 굳게 믿고 있었기에 이진이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때.

“저도 이영 참가자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귀빈석에서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아니나 다를까 윤이건이 의자에 기댄 채 입꼬리를 씩 올리는 게 아니겠는가.

‘정말 귀찮게 구네.’

이진은 눈을 홉뜬 채 남자를 바라봤다. 이영을 도와주기라도 하겠다는 듯한 남자의 태도에 참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와 달리 이영은 이미 윤이건의 행동에 가슴이 콩닥거렸다. 윤이건이 직접 나서서 자기를 도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아쉽게도 윤이건이 이런 말을 꺼낸 건 그녀와 아무 상관 없는데 말이다.

“윤 대표님, 그러시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주최자 측에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윤이건이 전체 대한민국에서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 사람이란 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참가자가 심사위원의 실력을 의심하니 심사위원이 직접 자기 능력을 증명하면 되겠네요.”

윤이건은 고개를 돌려 이진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그녀가 죽일 듯이 자기를 째려보는 걸 확인하자 재미있다는 듯 입가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저 사람 대체 뭐 하자는 거야?’

이진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A 시로 돌아가면 남자를 정신과로 보내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머리가 어떻게 된 게 틀림없어 보이니 말이다.

구경거리를 마다할 관중은 없는지라 분위기를 보더니 이내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진을 무대로 요청하는 듯한 박수 소리와 환호성은 솔직히 윤이건에게 원한을 사지 않겠다는 뜻이 다분했다.

‘그래 아주 제대로 할 말 없게 만들어줄게.’

이진은 손에 든 펜을 내려놓더니 천천히 일어나 무대 위로 올랐다.

물론 심사위원이라지만 그녀는 옅은 화장과 심플한 원피스를 입고 있어 순수하면서도 깨끗해 보였다.

그리고 무대 위로 오른 순간 환한 빛이 얼굴에 떨어지자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눈길을 뗄 수 없었다.

“이영 씨, 비켜주시죠.”

이진이 자기 어깨를 밀어버리자 이영은 화가 난 듯 이를 갈았지만 이내 자리를 비켰다. 그녀는 이진이 대체 얼마나 잘하는지 두고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자기의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인지했다.

“이, 이 연주곡은…….”

“이건 몇 년 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그 피아노 곡이잖아! 예전에 생방송으로 올라왔었는데 인터넷이 한동안 난리 났었어!”

“맞아! 그 곡을 연주한 사람이 지금껏 얼굴을 공개한 적 없는데 지금까지도 이 곡을 따라할 수 있는 사람이 없대!”

“대박! 이 곡을 만든 사람을 직접 보다니 오늘 오길 잘한 것 같아!”

무대 위에서 이진은 눈을 감은 채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가늘고 긴 손가락은 물 흐르듯 건반 위를 자유롭게 뛰어놀자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와 경연장을 가득 매웠다.

그리고 그 시각 무대 아래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던 윤이건의 눈에는 환한 빛이 언뜻 지나갔다.

‘이 여자는 대체…….’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때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

그는 바로 꺼버리려고 했지만 액정을 확인하는 순간 멈칫하다가 비상계단 쪽으로 걸어가 전화를 받았다.

전화가 온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윤이건이 화재 사고를 조사하도록 명령한 그의 부하였다.

“도련님, 그때의 화재 사고에 대해 실마리를 좀 찾았습니다.”

“말해 봐.”

윤이건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긴장해서인지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그때 여자아이를 치료해 준 의사를 찾아가 봤는데 병력서의 이름이 검은 칠로 지워져 있어 상세히는 알 수 없지만 이름이 두 글자였답니다.”

두 글자…….

그 말을 듣는 순간 윤이건의 심장은 철렁 내려앉았다. 일순간 이진 허리에 나 있던 화상 자국이 갑자기 뇌리에서 점점 선명해지더니 가슴이 타들어가는 듯 아팠다.

그때 아무 망설임 없이 그를 보호해 줬던 사람이 그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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