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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화

Author: 홍피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5 15:08:24

재하의 입술이 닿았다.

처음에는 가볍게 맞닿는 정도였다.

바로 앞에서 플래시가 연달아 터졌다. 손을 잡고 들어오는 모습부터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까지 이미 수없이 찍혔으니, 이 정도면 충분했다.

그런데 재하는 떨어지지 않았다.

허리를 감은 팔이 서인을 조금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잠시 떨어졌던 입술이 다시 닿았다.

서인의 손가락이 재하의 옷자락을 잡았다.

눈을 감아도 연달아 터지는 플래시가 눈꺼풀 너머로 번졌다. 사방에서 두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는 와중에도 재하는 서두르지 않았다.

입술이 떨어질 듯 멀어졌다가 다시 닿자, 서인도 자연스럽게 고개를 기울였다. 재킷을 쥔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

먼저 입술을 뗀 건 재하였다.

서인이 눈을 뜨자 바로 앞에서 시선이 마주쳤다. 서인의 손은 그의 재킷 자락을 쥔 그대로였다.

“두 분 이쪽도 부탁드립니다!”

그제야 서인이 카메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재하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몸을 바로 세웠다.

정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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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혼 전 금욕주의   126화

    재하는 맞은편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있었다. 서리를 찾았다는 연락까지 마친 모양이었다. 그는 화면을 끄고 시간을 확인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먼저 올라갈게요.” 서인은 고개를 들었다. “재하 씨.” 재하가 멈췄다. 서인은 그의 소매를 붙잡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뻗은 손이었다. “잠깐만요.” 재하가 그녀를 내려다봤다. “할 말 있어요.” 재하는 서인을 잠시 바라보다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가 마주 앉자 서인은 붙잡고 있던 소매를 놓았다. “미안해요.” “뭐가요.” 서인은 손을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그날…… 그렇게 말하면 안 됐어요.” 재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물어보면 재하 씨가 어떤 기분일지 생각 못 했어요.” 서인은 재하를 바라봤다. “처음엔 그냥 궁금했어요. 나랑 만나지 않았으면 재하 씨는 어떻게 살았을까. 그러다가 나중에 다른 사람을 만나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했고요.” 재하는 등을 기대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 서인이 말을 잇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그런데 싫더라고요.” 서인은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 없는 재하 씨를 생각하니까 기분이 좀 그랬어요. 그래서 그런 질문을 했나 봐요.” 재하는 시선을 내리지도, 말을 끊지도 않았다. “그땐 몰랐는데…… 돌이켜 보니까 괜히 심술이 났던 것 같아요. 재하 씨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생각 안 하고요.” 재하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서인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재하 씨가 다른 여자 만나는 거, 싫어요.” 이번에는 분명하게 말했다. “그런데 재하 씨랑 이렇게 지내는 건 더 싫어요.” 재하는 서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동안 재하 씨가 먼저 다가와 줬잖아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 기다려줬고요.” 서인은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그게 당연한 건 아니었는데.” 재하가 시선을 내렸다. “어제부터 계속 기다렸어요. 재하 씨가 먼저 말 걸어주기를.” 서인은 그의 손을 바라봤다.

  • 이혼 전 금욕주의   125화

    “그게 무슨 소리예요. 서리가 없다니요.” “안 보여요. 아까부터 찾고 있는데…… 집 안을 다 돌아봐도 없어요.” 재하는 서류에서 시선을 떼고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디 구석에 들어가 있는 거 아니예요?” “그런 줄 알았는데... 낮에 차고 문을 오래 열어뒀대요. 그때 밖으로 나간 것 같아요.” “나가는 걸 본 사람은요?” “없대요. 그런데 집 안에는 정말 없어요.” 재하는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일단 내가 갈게요.” “밖으로 나간 거면 어떡하죠?” “아직 확실한 건 없어요. 내가 가서 찾아볼게요.” “……네.” “집에 있어요. 혼자 멀리 나가지 말고.” 재하는 전화를 끊자마자 비서를 불렀다. “차량 대기시키세요. 남은 일정은 내일로 미루고.” “네, 대표님.” 재하는 겉옷을 챙겨 사무실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집의 보안 관리 담당자에게 연락해 차고와 외부 출입문 쪽 CCTV부터 확인해달라고 했다. 기사가 차를 출발시키자 재하는 다시 서인에게 전화를 걸까 하다가 그만뒀다. 지금 통화를 한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차창 너머로 퇴근길 차량의 불빛이 이어졌다. 서인은 거실 소파에 앉아 재하를 기다리고 있었다. 휴대전화를 손에 쥔 채 현관 쪽만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차 소리를 듣자마자 일어났다. “아직이죠?” 서인이 고개를 저었다. “일단 나가볼게요. 집 근처에 있을 수도 있으니까.” “나도 같이 가요.” 서인은 곧장 현관으로 향했다. 신발을 신으려던 그녀를 재하가 불렀다. “서인 씨.” 그가 자신의 재킷을 건넸다. “이거 입어요.” 서인은 외투를 받아 들었다.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낮 동안 남아 있던 온기는 거의 사라졌고 골목마다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담장 아래에는 마른 낙엽이 쌓여 있었다. 두 사람은 집 주변부터 살폈다. 재하는 휴대전화 손전등을 켜고 담장 아래를 비췄다. 서인은 화단과 주차된 차 사이를 살피며 서리의 이름을 불렀다. “서리야.” 조용한 밤거리에서 목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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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혼 전 금욕주의   123화

    일요일 아침, 서인은 평소보다 늦게 눈을 떴다. 열 시가 조금 넘었다. 문득 어젯밤 재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자정이 지나도록 그를 기다리다가 어느 순간 잠들었다. 서인은 잠시 누워 있다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세수를 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거실은 조용했다. 서리는 방석 위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자고 있었고, 주방에도 아무도 없었다. 재하가 운동하러 나간 모양이었다. 서인은 커피머신에 캡슐을 넣고 컵을 받쳐놓았다. 커피가 내려지는 동안 냉장고를 열어 아침으로 먹을 만한 것이 있는지 살폈다. 그때 현관문이 열렸다. 재하가 검은 운동복 차림으로 들어왔다. 운동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머리카락이 조금 젖어 있었다. 서인은 냉장고 문을 닫았다. “왔어요?” “잘 잤어요?” “네. 운동하고 온거예요?” “네.” 평소와 다르지 않은 대답이었다. 서인은 조금 마음이 놓여 커피머신 쪽을 가리켰다. “커피 마실래요? 지금 막 내렸는데.” “괜찮아요.” 재하는 운동화를 벗고 계단 쪽으로 향했다. “아침은요?” “나중에요.” 그는 더 말하지 않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커피머신에서 추출이 끝났다는 소리가 났다. 서인은 컵을 꺼내 식탁에 앉았다. 운동을 마치고 곧장 씻으러 올라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재하가 아침을 먹지 않는 날도 많았다. 그런데 오늘은 주방에 잠깐 들르지도, 서인에게 다가오지도 않았다. 서인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어젯밤 일 때문이겠지. 그렇게까지 기분이 상할 질문이었나 싶다가도, 재하가 했던 말이 마음에 걸렸다. 자신은 관계를 끝내겠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재하가 앞으로도 계속 자신과 함께할 거라고 믿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 사이의 어디쯤에 자신의 생각이 있었는데, 막상 설명하려니 서인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점심이 지나도록 두 사람은 제대로 마주치지 않았다. 재하는 샤워를 마친 뒤 서재로 들어갔고, 서인은 거실에서 한성의 자료를 확인했다. 협력업체별 미지급 대금

  • 이혼 전 금욕주의   122화

    집에 도착했을 때는 열한 시가 가까워져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자 서리가 거실에서 걸어 나왔다. 서인은 가방을 내려놓고 허리를 숙였다. 서리가 발치에 머리를 비비자 녀석을 안아 올렸다. 얼굴을 살피고 배를 가볍게 만져봤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어 보였다. “오늘은 괜찮은가 봐요.” “네. 다행이에요.” 서인은 서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녀석은 잠깐 두 사람 주변을 맴돌다가 거실 안쪽으로 사라졌다. 재하는 구두를 벗고 손목시계를 풀었다. “피곤하면 먼저 씻어요.” “재하 씨는요?” “물 좀 마시고요.” 서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드레스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지웠다. 머리를 묶었던 핀까지 빼고 나니 목덜미가 한결 편해졌다. 세면대 앞에 서서 얼굴을 닦던 서인은 문득 집들이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윤지아가 재하를 좋아했다는 소문. 서인은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잠깐 바라보다 수건을 걸어두었다. 아래층으로 내려왔을 때 재하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셔츠 단추를 두어 개 풀고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반쯤 비운 물잔이 놓여 있었다. 서인은 주방에서 물을 한 잔 마신 뒤 그의 옆으로 갔다. “안 올라가요?” “확인할 게 있어서요.” 재하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서인은 소파에 앉아 자연스럽게 그의 어깨에 몸을 기댔다. 재하도 팔을 둘러 그녀를 가볍게 감싸 안았다. 서인이 조금 더 가까이 붙자 그는 팔을 고쳐 둘러주었다. 창밖으로는 담장 너머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들어왔다. 서리는 소파 아래를 지나 제 방석으로 돌아갔다. 재하가 서인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쓸어 넘겼다. 집들이에서 돌아온 뒤로 두 사람은 아직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친구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고, 서인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만 차 안에서 하지 못했던 질문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재하의 셔츠 소매가 팔꿈치까지 걷혀 있었다. 서인은 그의 손목에 손을 얹었다가 셔츠의 접힌 부분을 만지작거렸다.

  • 이혼 전 금욕주의   121화

    서인은 다시 샴페인 잔을 들었다. 지아는 어느새 수희와 신혼여행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결혼 준비 때문에 미뤄뒀던 여행을 뒤늦게 다녀왔다는 수희의 말에 지아가 부럽다며 웃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마지막으로 여행 간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 “너는 맨날 바쁘냐?” 재욱이 옆에서 말을 보탰다. “이번 주말도 출근해야 돼?” “응. 내일도 나가야 돼. 오늘도 퇴근하고 온 거야.” “그렇게 살면 연애는 언제 하냐?” “연애할 시간이 어딨겠니, 내가.” 서준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할 사람이 없는 거 아니야?” “그것도 맞지.” 지아가 태연하게 인정하자 재욱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대학 때도 그런 소문 있었잖아.” “무슨 소문?” “네가 재하 좋아해서 다른 남자는 눈에도 안 들어온다고.” 서인은 잔을 입술에 가져가려다 멈췄다. “야, 그 얘길 여기서 왜 해.” 지아가 재욱을 쳐다봤다. “아니, 옛날에 그런 얘기가 있었다고.” 재욱은 웃으며 대답하다가 뒤늦게 서인을 돌아봤다. “아, 형수님. 죄송합니다. 괜한 얘기를 했네요.” “괜찮아요.” 서인은 가볍게 웃었다. “취했으면 그만 마셔.” 지아가 핀잔을 주자 재욱은 잔을 내려놓았다. 서준이 다른 화제를 꺼내면서 대화는 곧 넘어갔다. 서인은 샴페인을 한 모금 마셨다. 지아는 수희가 가져온 디저트를 살펴보고 있었고, 재하도 별다른 반응 없이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잠시 뒤 지아가 재하에게 물었다. “너 이번 동문 모임 나올 거야?” “시간 봐서.” “좀 나와. 다들 너 궁금해해.” “생각해 볼게.” 지아는 더 권하지 않고 재욱에게도 참석할 거냐고 물었다. 서인은 맞은편에 앉은 지아를 바라봤다. 지아는 재욱의 대답을 듣다가 웃었고, 재하도 두 사람의 이야기에 가끔 말을 보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인은 문득 재하와 눈이 마주쳤다. 재하가 몸을 조금 기울였다. “신경 쓰여요?” “뭐가요?” “아까부터 저쪽만 보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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