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경찰의 보고 소리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아라의 어깨가 움찔하고 튀어 올랐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맞은편의 남자를 쳐다보았다.강지훈 역시,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멍한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서로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
형사과의 시끄러운 소음이 일순간 두 사람의 귀에서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의 동공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한강 뷰 저택에서 함께 샴페인을 터뜨리며 미래를 기약했던 연인.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오만했던 성진 어패럴의 대표와, 가장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그의 품에 안겼던 여자.그 잘났던 불륜 남녀의 재회는, 수갑을 찬 채 피투성이가 되어 마주 앉은 경찰서 당직실이었다.
"강지훈……?"
태경의 입술 사이로 짐승의 탄식 같은 짙은 숨결이 새어 나왔다."당신은 정말, 나를 완벽하게 미치게 만드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군요."태경이 연우의 허리를 부서질 듯 꽉 끌어안으며 그녀를 완전히 자신의 품으로 돌려세웠다."당신이 100년의 성벽을 세워주셨다면, 나는 내 모든 피와 살을 바쳐서라도 그 성벽 안의 당신을 천 년, 만 년 동안 지켜내고 독점할 겁니다.""독점욕은 정말 구제 불능이네요."연우가 매혹적인 눈웃음을 치며 태경의 목에 두 팔을 감았다."누가 보면 내가 당신을 가둬놓은 줄 알겠어요.""내가 기꺼이 당신의 성벽 안에 갇히기를 선택한 겁니다. 당신이라는 감옥이라면, 영원히 빠져나갈 생각이 없으니까."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태경의 뜨거운 입술이 연우의 입술을 거칠게 집어삼켰다.통제실의 서늘했던 공기가 순식간에 두 사람의 짙은 열기로 끈적하게 달아올랐다.푸른 홀로그램 스크린 위로는 여전히 전 세계의 자본을 옭아맨 압도적인 데이터가 쉴 새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과거의 모든 위협은 먼지처럼 사라졌고, 이제 태성그룹과 스텔라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는 이 지구상에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김 비서."입술을 떼어낸 태경이, 여전히 연우의 허리를 안은 채로 어둠 속에 대기하던 김 비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예, 회장님!"숨을 죽이고 있던 김 비서가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내 아내가 세운 이 위대한 철옹성의 완성을 축하할 아주 성대한 자리가 필요하겠군."태경의 눈빛이 세상을 모두 가진 지배자처럼 오만하게 빛났다."태성의 핵심 임원들과 스텔라의 최상위 파트너들을 모조리 소집해라.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압도적인 만찬을 준비하도록.""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당장 V
스텔라 인베스트먼트 본사 지하 50미터.그 어떤 지도나 설계도에도 표기되지 않은 극비 보안 구역, '더 코어(The Core)'.거대한 돔 형태의 통제실 안은 수백 대의 슈퍼컴퓨터가 내뿜는 서늘한 냉기와, 벽면을 가득 채운 초대형 홀로그램 스크린의 푸른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대표님. 글로벌 금융망과 스텔라의 독자적인 보안 네트워크, '아이기스(Aegis)'의 최종 통합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김 비서가 태블릿을 든 채, 경외감에 찬 목소리로 브리핑을 시작했다."현재 전 세계 150개국의 중앙은행 데이터베이스와 핵심 물류망이 스텔라의 시스템 아래 완벽하게 종속되었습니다. 동기화율 100퍼센트입니다.""수고했어요."서연우가 홀로그램 스크린 한가운데 서서, 붉은 입술을 매혹적으로 비틀어 올렸다.그녀의 맑고 투명한 눈동자 안으로, 전 세계를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뒤덮은 푸른색 데이터망이 끝없이 점멸하며 흘러가고 있었다.이것은 단순한 해킹 방어용 방화벽 따위가 아니었다.만약 외부의 어떤 세력이나 국가가 태성그룹이나 스텔라를 향해 아주 작은 경제적 공격이라도 시도한다면.아이기스 네트워크는 0.1초 만에 그 세력의 모든 글로벌 자금줄을 동시다발적으로 끊어버리고, 완벽한 파산으로 몰고 가는 무자비한 자동 보복 시스템이었다."이로써 누구도 감히 태성그룹을 건드릴 수 없는 완벽한 철옹성이 완성되었군요."연우의 등 뒤로, 칠흑 같은 수트를 빼입은 차태경이 아주 여유롭고도 압도적인 걸음으로 다가왔다."어떤 멍청한 새끼가 우리 성벽에 돌맹이 하나라도 던지려 든다면, 그 즉시 전 세계의 자본 시장에서 완벽하게 증발해버리게 될 테니까요."태경이 연우의 허리를 뒤에서 단단하게 끌어안으며, 그녀의 귓가에 낮고 짙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정말이지, 내 아
"완벽하다, 차도윤. 너는 훗날 나를 뛰어넘는, 태성 역사상 가장 끔찍하고 위대한 폭군이 될 거다.""아버지를 뛰어넘는 건 당연한 수순입니다."도윤이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책자의 다음 페이지를 넘기며 시크하게 대답했다."저는 폭군으로 만족할 생각이 없습니다. 엄마가 만든 유토피아의 룰을 완벽하게 통제하려면, 폭군을 넘어선 완벽한 황제가 되어야 하니까요."그 오만방자하고도 눈부신 선언에 태경이 다시 한번 껄껄 웃음을 터뜨리던 찰나였다.달칵.굳게 닫혀 있던 서재 문이 부드럽게 열리며, 서연우가 은쟁반에 따뜻한 홍차 두 잔을 내어 들고 들어왔다."밖에서부터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네요. 대체 무슨 무시무시한 작당 모의를 하길래 부자가 그렇게 신이 났어요?"연우가 나른한 눈웃음을 지으며 책상 위로 홍차를 내려놓았다."오셨습니까, 나의 여왕님."제왕의 카리스마를 뿜어내던 태경이 순식간에 다정한 남편으로 돌변하여 연우의 허리를 자연스럽게 감싸 안았다.도윤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아빠가 태성그룹의 극비 지침서를 물려주셨습니다. 한 달 안에 이 책에 적힌 모든 논리를 제 데이터베이스와 동기화할 생각입니다."도윤이 아주 든든하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책자를 톡톡 두드렸다."세상에, 그 먼지 쌓인 책을 기어이 아들한테 넘겼어요?"연우가 기가 막힌다는 듯 맑은 실소를 흘리며 태경의 단단한 가슴을 가볍게 밀어냈다."10살짜리 애한테 벌써부터 그런 칙칙한 기업 사냥꾼 수업을 시키면 어떡해요. 우리 아들 머리 아프게.""머리가 아프다니요. 우리 아들의 저 스펀지 같은 흡수력을 보십시오."태경이 자랑스러워 견딜 수 없다는 듯 도윤을 가리켰다."방금 전 내 첫 번째 질문에, 이
태성 펜트하우스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차태경의 프라이빗 서재.육중한 방음문이 닫힌 서재 안은, 최고급 마호가니 책상 위로 떨어지는 은은한 핀 조명만이 공간을 밝히고 있었다.삐빅, 철컥-!지문과 망막, 그리고 정맥 인식까지 세 단계를 거친 뒤에야 벽면의 거대한 금고가 묵직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차태경이 금고 가장 안쪽에서 꺼내어 책상 위에 올려놓은 것은, 아주 낡고 두꺼운 검은색 가죽 장정의 책자였다."앉아라."태경이 맞은편을 향해 턱짓을 했다.그곳에는 10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완벽하게 정제된 자세로 앉아 있는 차도윤이 칠흑 같은 동공을 빛내고 있었다."이게 무엇인지 짐작이 가나."태경이 가죽 책자 위를 커다란 손으로 짚으며 아주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그것은 평소 딸 시아를 안고 어르고 달래던 푼수 아빠의 목소리가 아니었다.태성그룹이라는 거대한 제국을 피로 물들이며 지배해 온, 무자비한 사냥개이자 제왕의 서늘한 기세였다."겉면의 낡은 정도와 금고의 보안 등급을 보아."도윤이 책자를 똑바로 응시하며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태성그룹의 비자금 장부이거나, 아니면 외부에는 절대 공개되지 않는 극비 경영 지침서일 확률이 높습니다.""정확하다."태경의 입술 끝에 아주 서늘하고도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이건 내가 10대 시절, 태성의 사냥개로 길러지며 머릿속에 뼛속까지 쑤셔 넣었던 태성그룹의 진정한 경영 지침서다. 하버드나 스탠퍼드 경영 대학원 따위에서는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 피비린내 나는 자본의 진짜 속성과 적을 도륙 내는 방법이 적혀 있지."태경이 책자를 밀어 도윤의 앞으로 보냈다."네가 방구석에서 다크웹을 뒤지며 정보를 빼내는 해킹 실력은 전 세계 최고라
"엄마! 아빠 저렇게 오만하게 구는 거 그만 받아주세요! 엄마는 제 엄마잖아요!"두 남자가 동시에 연우를 향해 불타는 시선을 던졌다.연우가 아주 나른하고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려던 찰나였다."아빠아-!"안방 문이 열리며, 토끼가 그려진 분홍색 수면 잠옷을 입은 시아가 짧은 다리로 종종걸음을 치며 달려왔다.아직 잠이 덜 깬 듯 눈을 비비적거리며 달려오는 시아의 모습에, 거실을 팽팽하게 채우고 있던 살벌한 기류가 순식간에 봄눈 녹듯 사르르 녹아내렸다."오구오구. 우리 예쁜 공주님, 일어났어?"조금 전까지 아들을 씹어 먹을 듯 노려보던 지옥의 야차가.빛의 속도로 연우의 허리에서 손을 풀더니,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양팔을 벌린 채 세상에서 가장 멍청하고 다정한 얼굴로 돌변했다."아빠아, 안아조!"시아가 태경의 넓은 품으로 쏙 안기자, 태경은 시아를 번쩍 안아 들고 소파 위 자신의 무릎에 앉혔다."우리 공주님. 어젯밤에 좋은 꿈 꿨어?"태경이 시아의 빵빵한 볼에 뽀뽀 세례를 퍼부으며 꿀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물었다.아까까지 태경과 소유권 분쟁을 벌이던 도윤조차, 동생의 귀여운 모습에는 슬그머니 전투력을 상실하고 입을 삐죽일 뿐이었다."우응! 시아, 티비에서 아빠랑 엄마 바써!"시아가 벽면에 걸린 초대형 스크린을 가리키며 해맑게 웃었다."아빠가 하늘에 별님들로 엄마 이름 찌짜 이쁘게 만들어찌? 아빠 찌짜 멋이써!""그래? 우리 공주님 눈에도 아빠가 멋있었어?"태경의 입꼬리가 이미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씰룩거리고 있었다.딸의 칭찬 한마디에, 세상을 멸망시킬 듯 차갑던 남자의 심장이 속절없이 무장해제되고 만 것이다.시아는 태경의 무릎 위에서 까치발을 들더니, 태경의
서울의 아침을 깨우는 눈부신 햇살이 통유리창을 넘어 태성 펜트하우스의 거실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거실 한가운데 자리한 초대형 스크린에서는, 어젯밤 한강 상공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던 '세기적인 드론 로맨스 이벤트'에 대한 외신들의 열띤 보도가 쉴 새 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전 세계가 아직도 당신 이름으로 도배되어 있군요."최고급 가죽 소파에 기대앉은 차태경이, 자신의 무릎 사이에 서연우를 안은 채 아주 만족스러운 짐승의 미소를 지었다.그의 단단한 팔은 연우의 가녀린 허리를 빈틈없이 감싸 안고 있었고, 턱은 그녀의 하얀 어깨 위에 아주 자연스럽게 안착해 있었다."어젯밤 그 요란한 조명 쇼 덕분에, 아주 온 세상 사람들이 내가 차태경의 소유라는 걸 뼛속까지 새겼을 테니까요."연우가 손에 든 커피잔을 가볍게 기울이며 나른한 실소를 흘렸다.그녀의 목소리에는 어이없음과 동시에, 이 무자비한 남편의 지독한 순애보에 대한 애정 어린 만족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소유라니. 내가 당신의 완벽한 소유물이라는 것을 온 세상에 선언한 겁니다."태경이 연우의 목덜미에 깊게 입을 맞추며 낮게 으르렁거렸다."당신이 허락만 한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저 달 표면에 당신 이름을 새겨넣는 우주 프로젝트를 기획할 수도 있습니다. 내 우주의 유일한 지배자가 누구인지, 매일 밤 하늘을 볼 때마다 온 인류가 똑똑히 기억하도록 말입니다.""정말이지, 못 말리는 독점욕이네요."연우가 기가 막힌다는 듯 태경의 단단한 손등을 가볍게 찰싹 때렸다.두 지배자가 뿜어내는 달콤하고도 끈적한 애정 행각이 펜트하우스의 아침 공기를 후끈하게 데우고 있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하아."거실 입구 쪽에서 아주 깊고 노골적인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태경과 연우의 시선이 동시에 소리가 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