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이사장의 지시대로 새벽 사이에 언론사들에 떡밥을 모두 뿌려두었습니다."
맞은편에 앉은 문화재단 최 전무가 비열하게 웃으며 보고했다.
"여론의 반응이 아주 뜨겁습니다. 전남편을 짓밟고 일어난 독한 여자, 쥐뿔도 없으면서 태성그룹의 권력을 등에 업고 재벌 행세를 하는 천박한 졸부. 대중들이 가장 씹어 먹기 좋아하는 완벽한 먹잇감이죠."
"잘했어요, 최 전무."
최 이사장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나른하게 웃었다.
"차태경 그 끔찍한 놈이, 그 지하실에서 살아 돌아와서 결국 태성의 회장 자리까지 꿰차는 걸 보면서 내 속이 얼마나 썩어 문드러졌는지 알아요?"
최 이사장의 얼굴에 짙은 혐오감이 스쳤다.
"완벽한 괴물이라 약점 따위는 없을 줄 알았지. 그런데 그 오만한 놈이 제 발로 쓰레기 같은 약점을 하나 주워 오더군요. 서연우라는 근본 없는 길고양이를 말이야."
그
김 비서가 태블릿의 스케줄러를 확인하며 경외감이 담긴 목소리로 대답했다."현재 서연우 대표님과의 단독 오찬 대기 명단은 내년 하반기까지 꽉 차 있으니, 정확히 1년 2개월을 대기하셔야 한다고 통보했습니다."세계 최강대국의 대통령조차, 서연우와 차 한 잔을 마시기 위해 1년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압도적이고 절대적인 위상.과거 카르텔의 수뇌부에게 굽신거리며 뇌물을 바치던 정치인들은 이제, 스텔라라는 거대한 태양 앞에서 완벽하게 무릎을 꿇고 줄을 서는 신세로 전락해 있었다."미국 대통령이 정 그렇게 급하다고 하면."연우가 하얀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차갑게 선고했다."태성그룹이 추진 중인 태평양 인공섬 건설 프로젝트에, 미 해군 7함대의 영해 통과 우선권을 내놓으라고 하세요. 그럼 내년 봄쯤에 브런치 일정 하나 정도는 빼줄 의향이 있다고.""명심하겠습니다. 당장 백악관에 그렇게 조건을 전달하겠습니다."덜컥.김 비서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나려던 찰나, 집무실의 거대한 문이 거칠게 열렸다."무슨 브런치를 같이 먹어."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칠흑 같은 수트를 빼입고 서늘한 살기를 뿜어내는 차태경이었다."회, 회장님 오셨습니까!""김 비서. 당장 저 쓰레기 같은 종이 쪼가리들 다 치워."태경이 책상 위에 쌓인 각국의 국빈 초청장들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감히 내 아내의 귀한 식사 시간을, 저딴 늙은 정치인 새끼들이 뺏어가려 들어? 밥을 먹고 싶으면 지들 돈으로 사 먹으라고 해. 내 아내의 오찬과 만찬은 오직 내 독점이니까."국가 원수들의 초청장을 한낱 종이 쪼가리 취급하며 짓밟아버리는 무자비한 태도.김 비서는 태경의 그 살벌한 독점욕에 기겁하며, 황급히 트레이를 통째로 들고
태경이 본능적으로 무릎을 굽히고 양팔을 벌렸다.하지만 그의 표정에는 아직 아까의 그 험악한 여운이 살짝 남아 있었다."우디 아빠, 아직도 화나쪄?"시아가 푸딩이 잔뜩 묻은 입술을 삐죽이며, 태경의 단단한 무릎에 매달렸다."아닙니다. 아빠 화 안 났어."태경이 서둘러 살기를 거두고 다정한 표정을 지어 보이려 했지만, 네 살배기 딸의 예리한 눈썰미를 속일 수는 없었다."거진말! 아빠 눈에서 레이저 나오자나!"시아가 태경의 무릎을 딛고 까치발을 든 채, 작은 두 손으로 태경의 굳은 뺨을 꾹 움켜쥐었다."시아가 뽀뽀해 주께! 구러면 화 다 풀려!"시아가 앵두 같은 입술을 쭉 내밀더니, 태경의 볼에 자신의 얼굴을 힘껏 부딪쳤다.쪽! 쪼옥-!끈적하고도 요란한 뽀뽀 소리가 레스토랑을 가득 채웠다.태경의 단단한 뺨 위로 시아의 입에 묻어 있던 붉은 딸기 시럽이 잔뜩 묻어났다."……."순간, 펜트하우스를 얼려버릴 듯 시퍼렇게 뿜어져 나오던 차태경의 절대적인 살기가, 마치 봄눈 녹듯 형체도 없이 사르르 녹아내렸다."아빠 이제 화 안 나지? 시아 뽀뽀가 최고지!"시아가 태경의 목에 매달려 꺄르르 맑은 웃음을 터뜨렸다.질투에 미쳐 날뛰던 지옥의 야차는 온데간데없었다.태경은 딸기 시럽이 묻은 것도 모른 채, 세상에서 가장 멍청하고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시아를 번쩍 안아 올렸다."이런. 우리 공주님의 뽀뽀 한 번에, 아빠의 화가 우주 끝까지 날아가 버렸네."태경이 시아의 통통한 배에 입술을 파묻으며 푸흐흐 웃음을 터뜨렸다.까르르 넘어가는 딸의 웃음소리에, 세상을 멸망시키려던 남자의 지독한 독점욕이 완벽하게 무장해제된 것이다."정말이지.
"김 비서. 내 말 안 들리나? 당장 인수합병 팀 꾸려서 저 새끼 회사 쓸어 담으라고."차태경이 서연우의 허리를 단단하게 감싸 쥐고서,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다시 한번 명령을 씹어 뱉었다.방금 전 아내에게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고 도망친 대학 선배를 향한, 그야말로 이성을 상실한 맹수의 맹목적인 폭주였다."예, 옛! 회장님! 당장 넥스트 코어의 지분 구조를 파악해서……!"김 비서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태블릿을 꺼내 들려던 찰나였다."하아."프라이빗 레스토랑의 고요한 공기를 가르고, 아주 짧고 건조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태경과 연우, 그리고 김 비서의 시선이 동시에 테이블 끝을 향했다.그곳에는 열 살 난 차도윤이, 아주 우아하고 정갈한 손놀림으로 자신의 접시에 놓인 안심스테이크를 썰고 있었다.그 완벽하고 기품 있는 칼질은, 어머니인 서연우의 테이블 매너를 소름 끼치도록 똑같이 빼닮아 있었다."아빠. 그 지시는 취소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도윤이 포크로 고기를 찍어 입에 넣으며 아주 평온하게 말했다."뭐라고?"태경이 미간을 좁히며 아들을 쳐다보았다.도윤은 냅킨으로 입가를 가볍게 닦아낸 뒤, 테이블 옆에 놓아두었던 자신의 태블릿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방금 아빠가 쓸어 담으라고 하신 넥스트 코어. 제가 방금 기업 신용 정보망을 뚫고 들어가서 재무제표를 가볍게 긁어봤거든요."열 살 꼬마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전문적인 단어들."이 회사, 겉으로만 번지르르한 IT 스타트업이지 사실상 빈 껍데기입니다. 자체 개발했다는 핵심 기술은 전부 해외 외주를 준 상태고, 무엇보다 부채 비율이 400퍼센트를 넘겼습니다."도윤의 투명한 눈동자가 태블릿 화면의 붉
"……."연우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태경의 커다란 손에 핏대가 툭 불거졌다.다정한 아빠의 미소를 띠고 있던 태경의 얼굴은, 어느새 시베리아 벌판보다 더 시퍼런 살기를 내뿜는 짐승의 표정으로 돌변해 있었다."아, 안녕하십니까. 차태경 회장님."최민환이 그제야 옆에 서 있는 태경을 발견하고는, 약간 당황하며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저는 넥스트 코어의 대표를 맡고 있는 최민환이라고 합니다. 연우랑은 대학 시절에 아주 친했던 선후배 사이여서, 반가운 마음에 그만 결례를…….""친했던 선후배."태경의 입술 사이로 아주 낮고 섬뜩한 쇳소리가 흘러나왔다.그가 내민 명함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최민환의 얼굴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찢어발길 듯한 눈빛으로 훑어 내렸다."내 아내의 이름이 네놈 입에서 그렇게 함부로 불려도 될 만큼, 싸구려인 줄 아나.""네? 아, 아니, 저는 그저 반가운 마음에…….""눈깔 안 치워?"태경이 연우를 자신의 등 뒤로 완벽하게 숨기며, 지옥의 야차처럼 으르렁거렸다."감히 내 여자를 그딴 끈적한 눈으로 훑어봐? 당장 저 새끼 눈알을 파버리기 전에 내 시야에서 꺼져."태경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살기와 폭력적인 기세에, 최민환은 사색이 되어 뒷걸음질을 쳤다."죄,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최민환은 얼어붙은 혀로 간신히 사과를 더듬거리며, 쫓기듯 레스토랑 바깥으로 황급히 도망쳐 버렸다.남자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태경의 거친 숨소리는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태경 씨. 대체 왜 그래요."연우가 어이가 없다는 듯 태경의 팔을 가
"읏, 태경 씨……."연우가 태경의 단단한 목에 두 팔을 감으며 그의 뜨거운 체온을 더 깊이 받아들였다.태경의 손은 연우의 허리를 빈틈없이 감싸 안고, 그녀를 소파에서 가볍게 안아 올려 자신의 무릎 위에 마주 앉혔다.세상을 멸망시킬 듯 차갑고 무자비하게 적들을 도륙하던 두 지배자.하지만 지금,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펜트하우스의 거실 소파 위에서 엉켜있는 두 사람은, 세상 그 어떤 부부보다 다정하고 평범한 연인의 모습 그 자체였다.쪽, 츕.입술이 떨어질 때마다 질척한 파열음이 거실의 고요한 공기를 달궜다.태경의 손길이 연우의 등을 쓸어내리자, 연우는 그의 넓은 가슴에 뺨을 기대며 숨을 골랐다."이제, 한동안은 피비린내 나는 일은 없겠네요."연우가 붉게 달아오른 입술을 깨물며 태경의 귓가에 나른하게 속삭였다."내일은 우리 가족끼리 평범한 부부처럼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데이트나 할까요?""당신이 평범하다고 말하면, 세상 사람들은 단어의 뜻을 다시 배워야 할 겁니다."태경이 연우의 콧잔등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껄껄 웃었다."하지만 당신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당장 내일이라도 이 나라에서 제일 맛있는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려두겠습니다.""통째로 빌리는 것부터가 평범하지 않다는 건 모르나 보네요."연우가 기가 막힌다는 듯 태경의 단단한 가슴팍을 가볍게 찰싹 때렸다.하지만 그녀의 맑은 눈동자에는 그 어떤 적의 위협도 존재하지 않는, 완벽하고 절대적인 평화만이 가득 담겨 있었다."조금만 더 잘게요. 당신 품이 너무 따뜻해서."연우가 다시 태경의 품으로 파고들며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규칙적으로 뛰는 태경의 묵직한 심장 박동 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자장
도윤의 해킹 룸에서 밤새 번쩍이던 수십 개의 모니터 전원이 마침내 모두 꺼졌다.오메가 카르텔의 마지막 잔당까지 완벽하게 소각되었음을 확인한 태성 펜트하우스에는, 며칠 만에 가장 고요하고 눈부신 아침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달칵.거실로 걸어 나온 서연우가 발끝에 위태롭게 걸려 있던 아찔한 스틸레토 힐을 가볍게 벗어 던졌다."하아."그녀의 붉은 입술 사이로 아주 길고 나른한 숨이 새어 나왔다.연우는 며칠 밤낮을 꼿꼿하게 세우고 있던 등허리의 긴장을 풀며, 거실 한가운데 놓인 최고급 가죽 소파 위로 쓰러지듯 몸을 뉘었다.세상을 쥐고 흔들던 카르텔의 수뇌부를 조롱하고, 전 세계 자본 시장을 블랙홀로 집어삼키던 그 압도적이고 무자비했던 여왕의 가면.그 완벽한 껍데기가 무장해제되고 난 자리에는, 지독한 전쟁을 끝내고 자신의 가장 안전한 성으로 돌아온 한 여자의 부드러운 피로감만이 남아 있었다."많이 피곤합니까, 나의 여왕님."등 뒤에서 들려온 낮고 다정한 목소리.차태경이 피비린내가 배어 있는 턱시도 재킷을 한쪽에 벗어 던지며, 연우가 누워 있는 소파 곁으로 다가왔다."조금요."연우가 눈을 반쯤 감은 채 옅은 미소를 지었다."스위스 은행을 압박하고 월스트리트에 공매도를 쏟아부을 때까지만 해도 피곤한 줄 몰랐거든요. 그런데 아까 도윤이가 마지막 서버를 지워버리고 나니까, 갑자기 온몸에 힘이 쫙 빠지네요.""당연한 일입니다. 당신은 지난 며칠 동안 전 세계를 상대로 가장 거대하고 잔혹한 체스 게임을 혼자 주도했으니까요."태경이 소파 끝에 걸터앉으며, 쿠션에 파묻힌 연우의 하얀 발목을 아주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태경 씨?""가만히 계십시오."태경이 연우의 발을 자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