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장내의 모든 불빛이 꺼지고, 오직 두 사람을 향해 눈부신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져 내렸다.
태경이 마이크를 가볍게 쥐었다.
그의 칠흑 같은 눈동자가 홀을 가득 채운 수천 명의 인파를 차갑게 훑어 내리자, 끓어오르던 장내가 순식간에 진공 상태처럼 얼어붙었다."태성그룹의 창립 5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주신 귀빈 여러분, 그리고 언론인 여러분."
태경의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거대한 홀의 구석구석을 장악했다.
"오늘 이 자리는, 단순히 태성이 걸어온 찬란한 과거를 기념하기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앞으로 태성이 지배해 나갈, 더 거대하고 새로운 세계의 서막을 선포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태경의 시선이 아주 느릿하게 곁에 선 연우를 향했다.
그의 눈빛이 닿자마자, 연우를 향해 수백 개의 플래시가 다시 한번 맹렬하게 터졌다."다들 아시다시피, 제 곁에는 최근 태성그룹의
"아, 아아……."지훈의 목구멍에서 기괴한 숨소리가 끓어올랐다.산산조각 났던 과거의 기억들이, 날카로운 유리 파편이 되어 그의 뇌수를 무자비하게 쑤셔대기 시작했다.'당신이 원하는 완벽한 아내가 되어줄게요.'과거, 자신을 향해 담담하게 헌신을 맹세했던 서연우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울려 퍼졌다.그녀는 분명 자신의 아내였다.자신이 손만 뻗으면 안을 수 있었고, 그녀가 이룩한 모든 부와 명예를 합법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남자였다.만약 자신이 유아라 같은 쓰레기에게 눈을 돌리지 않았다면.만약 자신이 서연우의 그 압도적인 가치를 질투하지 않고, 그저 그녀가 차려주는 밥상에 숟가락만 얹고 순종하며 살았더라면."저, 저 자리는…… 차태경 저 새끼 자리가 아니라……."지훈이 잡지 표지 속 차태경의 얼굴을 손톱이 부러질 듯 긁어대며 피눈물을 흘렸다."내 자리였어! 내가 저 제국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고!"자신이 걷어찬 행운의 크기가 얼마나 거대하고 압도적인 것이었는지.자신이 발로 걷어찬 돌멩이가, 사실은 세상을 통째로 살 수 있는 절대 반지였다는 사실을 비로소 완벽하게 깨닫는 순간이었다."내가…… 내가 미쳤지…… 내가 미친 새끼지……!"지훈이 자신의 뺨을 미친 듯이 내리치기 시작했다.짝! 짜악!터진 입술에서 핏물이 튀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자신은 평생 쉰내 나는 찐 감자나 주워 먹으며 산속에 파묻혀 썩어가야 할 운명인데.자신이 버린 여자는 수백조 원을 주무르며 타임지 표지를 장식하는 세계의 지배자가 되었다.그 아득하고도 끔찍한 격
강원도 태백산맥 깊은 산골짜기, 인적조차 완벽하게 끊긴 외딴 사이비 기도원.살을 에는 듯한 끔찍한 칼바람이 낡은 슬레이트 지붕을 때리며 기괴한 파열음을 내고 있었다."빨리빨리 안 움직여! 장작 하나 패는 데 하루 종일 걸릴 작정이야?!"기도원 원장의 거친 호통에, 도끼를 들고 웅크려 있던 사내가 어깨를 움찔하며 황급히 허리를 굽혔다."죄, 죄송합니다! 금방, 금방 끝내겠습니다!"더벅머리에 덥룩하게 자란 수염, 때에 전 낡은 솜바지를 입고 사시나무처럼 벌벌 떠는 사내.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최고급 명품 수트를 입고 강남 한복판을 활보하며 세상을 다 가진 듯 굴었던 남자, 강지훈이었다."이 빌어먹을…… 내가 왜 이런 꼴을……."지훈이 쩍쩍 갈라져 진물이 배어 나오는 손으로 낡은 도끼자루를 꽉 움켜쥐었다.차가운 아스팔트 고속도로에 알몸으로 버려졌던 그 끔찍한 밤.그는 차태경이 보낸 검은 사내들의 살기를 피해, 짐승처럼 산속을 기어 도망치다 이 더럽고 폐쇄적인 기도원까지 흘러들어왔다.'여기서 버텨야 해. 무조건 살아남아서, 어떻게든 다시 기회를…….'지훈은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듯 허황된 망상을 중얼거리며 내리쳤다.하지만 며칠째 제대로 된 밥 한 끼 먹지 못한 그의 얄팍한 체력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고, 허기진 배에서는 비참한 꼬르륵 소리만이 끊이지 않았다."어이, 강 씨. 식사하기 전에 저기 소각장에 분리수거 쓰레기들 다 태워놓고 와."원장이 던져주는 쉰내 나는 찐 감자 두 알을 받기 위해, 지훈은 차가운 흙바닥에 납작 엎드려 고개를 조아렸다."네! 당장 다녀오겠습니다, 원장님!"그는 이제 완벽하게 길들여진 불쌍한 짐승에 불과했다.
연우 역시 놀란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내 특유의 우아하고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도윤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세상의 꼭대기에 선 당신과 내 유전자를 물려받았으니, 이 정도는 당연한 걸지도 모르죠.""당연하다뇨! 이건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천재의 탄생입니다!"태경이 수트 재킷이 구겨지는 것도 잊은 채, 도윤을 번쩍 들어 올려 허공에 둥가둥가 비행기를 태웠다."하하하! 내 아들! 차태경과 서연우가 만들어낸 가장 완벽한 피조물! 이 세상을 전부 발밑에 두고 굴릴 수 있는 지배자가 탄생했어!""꺄르르륵!"도윤은 아빠의 과격하고 호들갑스러운 애정 표현이 마음에 드는 듯, 침을 튀기며 해맑게 웃어젖혔다.바로 그때, 펜트하우스 거실로 쭈뼛거리며 들어선 김 비서가 그 기막힌 광경을 목격하고 굳어버렸다."회, 회장님…… 출근하실 시간이 훌쩍 지났…….""김 비서!! 당장 하버드 영재 교육 연구소 최고 권위자한테 연락해!"태경이 도윤을 품에 단단히 안은 채, 김 비서를 향해 벼락같이 소리쳤다."내 아들이 방금 알파벳을 완벽하게 마스터했다! 당장 전 세계 최고의 두뇌 개발팀을 펜트하우스로 소집해! 오늘 오전 결재는 전부 오후로 미루고 일정을 비워!""네?! 하, 하버드요?! 아, 아니, 도윤 도련님은 이제 막 기어 다니기 시작하신 걸로 아는데……."김 비서가 사색이 되어 말을 더듬었지만, 태경의 눈동자는 이미 맹목적인 팔불출의 광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태경 씨, 그만해요. 애 놀라겠어."결국 보다 못한 연우가 나른한 손길로 태경의 팔을 가볍게 잡아당기며 제지했다."하버드 박사들이 와서 돌도 안 지난 애한테 블록 장난이나 치게 만들 작정이에요? 내
태성 펜트하우스의 거대한 통유리창 너머로, 눈부시게 맑은 아침 햇살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피비린내 나던 글로벌 금융 전쟁이 태성그룹의 완벽한 승리로 막을 내린 후, 펜트하우스의 공기는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하고 따뜻했다."도윤아, 이건 어떤 모양일까?"연우의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가 거실의 고요함을 기분 좋게 울렸다.최고급 실크 라운지웨어를 걸친 연우는, 적들의 뼈와 살을 분리하던 차가운 월스트리트의 지배자가 아닌 완벽하게 다정한 엄마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세상의 모든 자본을 쥐고 흔들던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은, 이제 아이의 부드러운 뺨을 쓰다듬고 장난감을 쥐여주는 데에만 온전히 쓰이고 있었다.그녀의 무릎 앞에는 아직 첫돌도 지나지 않은 도윤이, 통통한 볼을 씰룩거리며 최고급 원목으로 만들어진 알파벳 블록들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정말이지, 출근하기 싫게 만드는 완벽한 풍경이군요."마스터 침실의 문이 열리고, 티끌 하나 없이 완벽하게 재단된 네이비 수트 차림의 차태경이 걸어 나왔다.전 세계 시장을 공포로 몰아넣은 태성그룹의 사령관은, 거실 매트 위에 앉은 아내와 아들을 보자마자 단숨에 무장 해제되어 짙고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회장님이 출근을 안 하시면, 새로 편입된 해외 지사의 임원들이 전부 숨을 죽이고 기다려야 할 텐데요."연우가 고개를 돌려 다가오는 태경을 올려다보며 나른하게 웃었다.태경은 그 매혹적인 눈웃음에 기어이 참지 못하고 매트 위로 다가왔다.그는 완벽하게 다려진 수트 바지가 구겨지는 것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은 채 한쪽 무릎을 꿇고 연우의 이마에 깊게 입을 맞췄다."당신과 도윤이를 두고 나가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입니다. 이대로 펜트하우스 문을 겹겹이 걸어 잠그고 우리 가족끼리만 영원히 갇혀있고 싶을 정도로."태경의 칠흑 같
연우가 나른한 눈빛으로 테이블 위를 내려다보았다.얼마 전, 빅터 사태가 완벽하게 종결된 직후 타임지 편집국장이 직접 서울로 날아와 인터뷰를 간청한 적이 있었다.연우는 언론 노출을 꺼려 완강히 거절했지만, 태경이 '이제 전 세계에 태성그룹의 절대적인 주인이 누구인지 똑똑히 각인시켜야 할 때'라며 그녀를 설득해 표지 화보 촬영만을 간신히 허락했었다.연우가 잡지의 표지를 집어 들었다.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붉은 입술 사이로 아주 옅은 실소가 흘러나왔다."이게 뭐예요, 태경 씨."표지 중앙에는 눈부시도록 새하얀 수트를 입은 연우가, 오만하고도 고결한 자태로 화려한 앤틱 체어에 앉아 있었다.그리고 그녀의 바로 뒤, 칠흑처럼 새카만 수트를 입은 차태경이 한 손으로 연우의 의자 등받이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카메라를 꿰뚫어 볼 듯 서늘하게 노려보고 있었다.마치 여왕을 지키기 위해 사슬을 끊고 나온, 세상에서 가장 무자비하고 압도적인 맹수 같은 모습이었다.하지만 연우의 실소를 자아낸 것은 사진 자체가 아니었다.두 사람의 완벽한 피사체 위로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는, 굵고 강렬한 금박의 타이틀이었다.[ 세상을 지배하는 부부 (The Couple Who Rules the World) ]"타임지 편집장이 아주 대놓고 판을 깔아줬네요. 안 그래도 부담스러운 화보에 이런 노골적인 제목이라니."연우가 잡지를 테이블 위에 툭 던지며 턱을 괴었다."이러다 전 세계 사람들이 내가 당신을 조종해서 세계 정복이라도 하는 줄 알겠어요."하지만 잡지 표지를 내려다보는 태경의 반응은 완벽하게 달랐다.그의 칠흑 같은 눈동자가 환희와 짙은 만족감으로 맹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조종이라니요. 이건 역사상 가장 정확하고 완벽한 팩
태성그룹 최상층, 글로벌 전략 대회의실.벽면을 빙 둘러싼 수십 개의 초대형 스크린이, 전 세계 금융 시장과 실물 경제의 실시간 지표를 뿜어내고 있었다.하지만 오늘 그 스크린을 장식하고 있는 것은 시퍼런 하락의 핏빛이 아니었다.세상의 모든 자본을 집어삼킬 듯 맹렬하게 치솟는, 경이로운 상승의 불기둥들이었다."보고드립니다. 단돈 1달러에 인수한 빅터 캐피털의 우량 자산 매각 및 흡수 합병이 오늘 오전부로 완벽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수석 재무 임원이 브리핑을 하는 내내, 그의 목소리는 감격과 환희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빅터가 남긴 악성 부채는 스텔라의 숏 스퀴즈 수익금과 중동의 오일 머니로 완벽하게 상계 처리했습니다. 남은 글로벌 물류망과 북미의 핵심 인프라는 모조리 태성그룹의 소유로 등기가 완료되었습니다!"회의실에 모인 수십 명의 핵심 임원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이로써 태성그룹의 시가총액은 아시아 1위를 넘어, 월스트리트의 모든 빅테크와 거대 금융사를 발밑에 둔 명실상부한 '글로벌 1위'의 초거대 기업으로 우뚝 섰습니다!"와아아아-!임원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 박수를 터뜨렸다.단순한 기업의 성장이 아니었다.글로벌 빌런의 거대한 제국을 단 며칠 만에 산산조각 내고, 그 영토를 고스란히 흡수해버린 역사상 전무후무한 경제적 정복 전쟁의 완벽한 승리였다.하지만 그 뜨거운 환호와 열광의 한가운데서, 이 모든 기적을 설계한 여왕은 너무나도 평온했다."겨우 이 정도로 호들갑 떨 필요 없습니다."상석에 앉은 연우가 테이블 위에 놓인 찻잔을 가볍게 들어 올리며, 아주 나른하고 서늘한 목소리로 회의실의 공기를 가라앉혔다."빅터가 쌓아뒀던 모래성을 부수고 그 자리에 우리 깃발을 꽂은 것뿐이에요. 1위에 올랐다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