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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이혼합의서

이수애 여사는 하연이 전과는 완전히 다른 투로 말하는 것을 보고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그녀는 커다란 사파이어가 박힌 반지를 낀 손가락으로 하연을 가리켰다.

“너 지금 그게 무슨 태도야!? 방금 했던 말 다시 한번 해봐!”

하지만 하연은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그녀를 똑바로 쳐다봤다.

“민혜경이라는 여자가 집에 들어오면 그 여자한테 집안일을 시키세요. 저는 앞으로 하지 않을 거예요.”

하연은 앵두처럼 붉은 입술로 또박또박 말했다.

말을 하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이 여사는 그녀의 말에 벌컥 화를 냈다.

“너!”

“엄마, 엄마!”

서영이 흥분한 엄마의 팔을 붙잡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새언니 화난 거 맞죠? 어젯밤에 오빠가...”

그녀는 불난 집에 부채질이라도 하려는 듯 어젯밤 일을 꺼내려고 했다.

그 모습을 보니 하연의 화를 돋우려는 의도가 충분히 보였다.

이 여사는 딸의 의도를 금방 알아채고 다시 차분해졌다. 그녀는 특유의 거들먹거리는 투로 말했다.

“남편 하나 붙잡지 못하는 주제에 별 억지를 다 부리네. 감히 시어머니 탓을 해?”

하연은 느릿느릿 짐을 끌고 나오다가 저택 입구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심장박동이 빨라지면서 머리가 쪼개질 듯 아팠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욕을 퍼붓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며 차갑게 말했다.

“지난 3년동안 아이가 없었던 게 다 저 때문이라고 하셨죠? 절 의심하기 전에 서준 씨에게 비뇨기과 진료를 받으라고 하는 편이 빠를 거예요. 그러면 임신이 안됐던 원인이 과연 누구 쪽에 있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너, 니가 감히!”

하연의 말에 이 여사와 서영 둘 다 깜짝 놀랐다.

이 여사는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최하연! 난 너랑 우리 서준이하고 꼭 이혼시키고 말 테니 두고 봐!”

그동안 하연은 서준의 할머니 강영숙 여사와의 정을 생각해서 한씨 집안 사람들과 다툼을 피했다. 왠만해선 자기 의견을 내세우지 않고 원만하게 지내왔다.

지금까지는 집안 사람들과 갈등이 생길까 봐 두려워하며 지냈지만 이제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러시던가요.”

그녀는 한마디 내뱉고 서준의 본가를 나왔다. 이 여사가 화가 나서 길길이 뛰든 말든 상관없었다.

하연이 나가자 마자 이 여사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딸 한서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2층 올라가서 우리집에 돈 될만한 물건이 없어졌는지 잘 살펴봐. 들고 나가던 캐리어가 꽤나 무거워 보이던데 혹시 챙겨갔는지 모르잖아!”

잠시 후 부리나케 계단을 뛰어내려오는 한서영의 손에 서류가 하나 들려 있었다.

“엄마, 없어진 건 없어요. 대신 침대 머리맡에 뭐가 하나 있어요!”

서류를 빼앗아 살펴보던 이 여사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혼합의서.]

이 여사는 곧장 서준에게 전화를 걸어 하연의 행각을 서준에게 다 쏟아냈다.

펄펄 뛰는 어머니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들 중 ‘이혼합의서’, ‘발기부전’ 등을 들은 서준은 의자에 걸어 둔 외투를 걸치고 즉시 회의실을 나섰다.

[엄마, 일단 흥분부터 가라앉히세요.]

그가 낮은 목소리로 어머니를 진정시켰다.

“내가 흥분한 걸로 보여? 내 귀한 아들에게 그 따위 말들을 써 놨는데 화가 안 나겠어? 뭐, 지금 이 타이밍에 집을 나간 것이 잘된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마침 혜경이가 들어올 테니까. 근데 지가 뭐라고 감히 먼저 이혼 얘기를 꺼내?”

어머니의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자 서준은 어두운 표정으로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여태껏 순종적이고 눈치 빠르게 행동했던 하연이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젯밤 평소와는 달랐던 그녀가 생각났다. 그는 휴대폰 연락처 목록에서 하연의 번호를 검색했다.

그가 먼저 전화를 거는 것은 3년만에 처음이었다.

통화연결음이 들리는 순간, 비서실 구동후 실장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더니 그에게 다가왔다.

“사장님, 방금 제 이메일로 서류가 하나 도착했는데, 최하연 비서의 사직서입니다.”

구실장은 너무 놀라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동안 최비서가 진행하던 사업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 중 제일 중요한 프로젝트가 두바이 국제 병원 및 헬스테크 박람회인데 최비서가 아직 후임자에게 업무 인계를 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실 건지...”

서준의 낯빛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때 휴대폰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잠시 후에 다시 걸어 주시기 바랍니다.”

‘어라? 내 전화를 거절했다 이거지?’
Comments (1)
goodnovel comment avatar
jay
너무 재미있어요^^ 계속 보고 싶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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