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유는 그만 당황한 표정을 짓고 말았고 이내 아랫입술을 짓이겼다. 이것은 그녀가 원한 대답이 아니었다. 유명욱이 문을 열고 나가려던 때 임지유가 빠르게 다가가 물었다.“교수님께서는 제가 뭘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유명욱은 걸음을 멈추고 차갑게 말했다.“연구 자료와 인공지능에 관한 것을 더 많이 찾아보고 공부해요.”말을 마치자마자 통화하러 간 경민준이 돌아왔다.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유명욱이 말했다.“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미 다 했고, 며칠 동안 내 연락을 기다려요.”경민준이 대답했다.“네.”말을 마친 유명
아마도 연미혜와 김태훈이 정말로 피곤해 보였는지 유명욱은 밤 9시가 되자 두 사람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바쁜 하루를 보낸 연미혜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샤워한 뒤 잠들었다.다음 날 아침.세인티 쪽에 문제가 생겨 그들이 처리해야 했다. 연미혜와 김태훈은 오후에 바로 세인티로 가버렸다. 도착하자마자 연미혜와 김태훈은 기술 쪽 문제를 맞이하게 되었고 염성민과 윤신재도 세인티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왔다.연미혜를 발견한 염성민과 윤신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이내 윤신재가 눈썹을 꿈틀대며 말했다.“뭐야. 세인티 직원이었어요? 이런
다만 연미혜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고 계속 세인티의 기술팀 직원과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김태훈의 말을 들은 장건식은 웃으며 말했다.“김 대표님, 이 두 분과 아는 사이예요?”“네.”여하간에 도원시의 상류사회는 대부분 2세대, 3세대였던지라 당연히 두 사람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들과 걷는 길이 달라 친하지 않을 뿐이다. 염성민과 그들은 김태훈과 인사를 한 뒤 장건식과 한쪽으로 가면서 일 얘기를 했다.임지유는 따라가지 않고 김태훈의 옆에 남아 있었고 당연히 연미혜도 발견했지만 그저 힐끗 보기만 할 뿐 연미혜의 존재를 무시하며
염성민이 물었다.“저 여자랑 친해요?”염성민의 말을 들은 임지유는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이 살짝 떨렸다. 연미혜는 확실히 예쁘게 생겼던지라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염성민이 연미혜에게 관심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매장에서 들었던 대화와 연미혜를 대하던 염성민의 태도를 떠올리면 또 아닌 것 같았다.임지유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별로 안 친해요. 왜요?”염성민은 연미혜와 김태훈이 사라진 곳을 힐끗 보았다.“김태훈 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걸 보니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아서요.”임지유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잘 몰라요.
연미혜는 김태훈의 미소를 보고는 바로 염성민을 남몰래 비꼬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네.”김태훈이 연미혜에게 아주 잘해준다는 것을 발견한 임지유는 미간을 구겼다. 염성민은 비록 저녁 식사 함께할 시간이 없다고 했지만 맴버가 이미 정해졌던지라 연미혜와 김태훈 그들과 함께 회사 로비로 내려가 밖을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이때 임지유는 누군가의 연락을 받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핸드폰을 내려놓았다.“민준 씨가 도착했다고 했으니까 저도 같이 내려가요.”그들이 로비로 내려왔을 때 경민준은 이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그들을 보자
연미혜는 멈칫하며 경다솜에게 물었다.“언제 가고 싶은데?”“그건...”경다솜은 조금 망설이게 되었다. 연미혜는 경다솜이 일부러 임지유와 경민준이 시간이 없을 때 그녀와 가자고 할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임지유와 경민준이 언제 바쁜지를 몰랐기에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연미혜는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괜찮아. 가고 싶을 때 엄마한테 말해. 엄마도 시간이 되면 가줄 테니까.”경다솜은 아주 기뻤다.“네!”그녀는 한 주 동안 바쁜 시간을 보냈다.어느새 금요일 저녁이 되고 연미혜는 전보다 일찍 퇴근한 상태였다. 집으로 돌
연미혜와 수연이가 다른 사람과 부딪혀 다치게 될까 봐 걱정된 하승태는 두 사람의 곁에 꼭 붙어있었고 누군가 불안한 모습으로 다가올 때마다 두 사람을 지켜주었지만, 오늘은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들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두 명의 여자아이와 부딪히게 되었다.수연이는 괜찮았지만 연미혜는 하승태의 위로 넘어지게 되었다. 하승태는 본능적으로 그녀의 허리에 손을 올려 감싸며 그녀를 품에 안아 지켜주었다. 단단한 가슴팍으로 넘어진 연미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어색한 모습으로 일어나며 그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발이 아픈 느낌이 들었다
하승태와 점심을 먹고 나온 연미혜는 운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차예련의 연락을 받게 되었다.“미혜, 어디야? 나 힘들어 죽겠어. 얼른 나 데리러 와줘. 같이 점심 먹자.”연미혜는 이미 점심을 먹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어딘데?”“우련 헤리티지.”차예련은 계속 말을 이었다.“몇 년 전에 재개발한 전통 가옥이 있던 그 동네야. 아침 일찍부터 고모가 날 이곳으로 끌고 와 집 보러 다녔어. 정말 힘들어 죽을 것 같아.”“그래. 알았어.”전화를 끊은 후 연미혜는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했다. 10분 즈음이 지나자 차예련이 또
캐벳 스미스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내 박사 과정 학생, 임지유입니다.”그는 임지유 외에도 네댓 명의 학생들을 데려왔는데, 그중 임지유만이 유일한 동양인이었다.임지유가 캐벳 스미스의 제자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현장에선 감탄과 부러움이 쏟아졌다.“세상에, 스미스 교수님 박사 과정 학생이라니 완전 대단한데?”“그런데 저렇게 예쁘기까지 해? 신이 모든 걸 다 줬네. 너무 불공평해!”“더 기가 막힌 건... 저 여자가 경민준의 여자 친구라는 거잖아.”“헐... 진짜 비교할 게 못 되네. 나 같은 인생은 어떡하라고...”순식간
이틀 뒤, 김태훈은 서원시에서 열리는 국제 인공지능 대회에 참석했다.지난해의 기술 박람회와 마찬가지로 이번 행사 역시 업계 관계자들이 AI 관련 최신 동향을 파악하고 기술을 교류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였다.이번에 그와 함께한 일행은 연미혜, 그리고 최근 넥스 그룹에 새로 합류한 구진원을 포함한 몇몇 엔지니어들이었다.구진원을 비롯한 신입 직원들을 함께 데려온 이유는 아직 이들이 회사의 핵심 기밀에 접근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기술 유출에 대한 걱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서원시에 도착한 뒤, 행사장에 들어서자 이미 내부
구진원은 결국 연미혜와 함께 래프팅을 타볼 기회를 잡지 못했다.하지만 저녁 무렵, 그는 또 한 번 ‘우연히’ 연미혜와 연씨 가문 사람들을 마주쳤다.그녀의 외삼촌 연창훈과 외숙모 하여진은 반갑게 인사하며, 그와 그의 친구에게 같이 식사하자고 흔쾌히 자리를 권했다.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구씨 가문의 도련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연창훈이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근데 어쩐 일이에요? 갑자기 도원시로 내려올 생각을 다 하고...”구진원은 젓가락을 잠시 멈췄다.도원으로 돌아오게 된 이유가 순간 머릿속을 스쳤던 그는 짧게 숨을 고르고
‘경민준 씨는 바쁘다며 다솜인 못 챙긴다더니, 정작 임지유랑은 같이 있고?’그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연미혜는 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그보다 먼저, 경다솜이 해맑게 말했다.“엄마, 조금만 더 일찍 전화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헬기 타고 있을 때 영상 통화했으면 진짜 멋지게 보여드릴 수 있었을 거예요!”그 말에 연미혜는 조심스럽게 웃었지만, 경다솜이 이번 여행에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느껴져 더는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그럼에도 마음 한쪽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가슴안에 찜찜함이 또 하나 차곡히 쌓였다.경다솜은
연미혜도 같은 생각이었다.그녀는 짧고 단호하게 메시지를 보냈다.[바빠. 그리고 약속 지켜. 다솜이 외할머니댁엔 절대 못 가게 해.]잠시 뒤, 경민준에게서 짧은 답장이 도착했다.[알겠어.]이후로 그는 더 이상 아무 연락도 해 오지 않았다.어린이날 연휴 다음 주말은 마침 주말이었다.그날 오후, 연미혜는 가족들과 함께 관광지에서 래프팅을 준비하고 있었다.그때 차예련에게서 사진 한 장이 도착했는데, 사진 속 인물은 임지유였다.차예련은 지금 쿠바나에 머무르며 패션쇼 준비로 한창이었다.사진을 본 연미혜는 메시지를 보냈다.[
‘넥스 그룹이랑 세인티가 해지한 건 알고 계신가요? 교수님의 제자인 김태훈 대표가 요즘 하는 짓을 보면 재능을 믿고 우쭐대는 것도 모자라, 사사건건 여자한테 휘둘려서 점점 판단력도 흐려지고 있던데요. 혹시 그 사실도 알고 계십니까?’염성민은 막 입을 열려다 말았다.곁눈질로 경민준이 있는 걸 본 순간,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이 쑥 들어가 버렸다.사실 이 얘기는 전부 임지유와 관련된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 임지유의 옆에 경민준이 있었다.염성민의 입장에서 굳이 나서서 이런 말을 할 명분이 없었다.괜히 앞장서서 이런
임지유는 곧바로 해약서에 서명했다.배상금은 계약서에 명시된 기한 내에 전액 납부하겠다고 약속했다.이 소식을 들은 김태훈은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생각보다 행동이 빠릿빠릿해서 좋은걸?”해약 이후의 처리 절차는 변호사가 맡았고, 임지유가 서명한 뒤로는 김태훈과 연미혜 모두 더 이상 그 일에 신경 쓰지 않았다.이삼일 뒤, 유명욱이 휴가를 맞아 오랜만에 두 사람을 불러 모았다. 한동안 얼굴을 못 본 터라, 사제지간에 오붓하게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던 것이었다.연미혜와 김태훈은 회사를 나와 약속 장소인 식당에 도착했는데, 식당 입
임지유는 계약 해지를 결정한 뒤, 곧바로 경민준에게 전화를 걸었다.“경매 날에 김태훈 어머님이랑 얘기하다가, 내가 말을 좀 잘못했어. 그걸 사모님이 딱 집어냈고... 게다가 김태훈 쪽은 아예 세인티랑 엮일 생각이 없어 보여. 만약 소송으로 가서 이긴다고 해도 나중에 또 딴지를 걸어 협력 관계가 틀어지게 만들 가능성이 높아.”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담담히 결론을 내렸다.“그쪽이 처음부터 협력 의지가 없었다면, 괜히 시간 끌기보다 지금 깨고 다른 파트너 찾는 게 낫다고 봐.”경민준은 그녀가 무슨 말을 실수했는지 구체적으로 묻
‘김태훈 어머니가 연미혜를 좋아한다고? 그게 말이 돼? 진짜라면... 어제 김태훈 어머니한테 했던 말들은 대체...’임지유는 갑자기 이미연이 대화 도중 갑자기 통화하러 다녀온 일이 떠올랐다.머릿속에 전화를 받는다며 자리를 비운 장면이 스치자, 묘한 불안감이 다시 가슴을 짓눌렀다.그녀의 낯빛이 안 좋아진 것을 본 경민준이 곁에서 물었다.“왜 그래? 어디 아파?”그 말에 임지유는 정신을 가다듬고 애써 미소를 지었다.“아니야. 나 괜찮아.”그날 저녁, 임지유는 이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렸다.이미연이 연미혜를 마음에 들어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