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연미혜가 경문 그룹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휴대전화가 울렸다.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연선아의 정신과 주치의였다. 의사는 연선아가 잠시 의식을 찾았지만 곧바로 수년 만에 심각한 공황 발작을 일으켰다고 알렸다.연미혜는 얼굴이 굳어져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어떻게 된 거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자세히 살펴봤지만, 현재로서는 뚜렷한 이상은 보이지 않습니다.”‘외부 자극이 없었는데, 엄마가 왜 이런 상태가 된 거지?’그녀는 약을 먹고 잠든 연선아를 지켜보며 의사와 한참 이야기를 나눈 뒤, 무거운 마음
“아니에요, 할머니.”연미혜가 서둘러 덧붙였다.“제가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좀 있어서... 저녁은 못 먹고 갈 것 같아요.”사실 급한 일은 없었다. 그저 이곳에 더 머물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형식상 이혼 절차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그녀는 여전히 경씨 가문의 며느리였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경민준과 선을 긋고 있었다.이혼을 준비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녀는 경민준과의 관계가 끝났음을 받아들이려 했다.노현숙은 그런 속마음을 짐작했기에, 다급하게 핑계를 찾는 그녀를 더 붙잡을 수 없었다. 대신 옆에 있는 경민준을 흘
연미혜는 체온을 잰 뒤 한참을 버텼지만, 통화하러 나간 경민준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기다리다 지친 그녀는 기운이 빠져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다시 눈을 떴을 때, 경민준은 이미 방으로 돌아와 조용히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연미혜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자, 그는 곧 일어나 다가와 땀으로 젖은 그녀의 이마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왜 그래? 좀 괜찮아?”언제 마지막으로 이런 스킨십을 나눴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만큼 두 사람의 사이는 이미 멀어져 있었다.연미혜는 그의 손길이 낯설었다. 단순히 체온을 확인하려는 거라는 걸 알면
김영수가 막 나간 뒤, 경민준이 경다솜의 방에서 연미혜의 휴대폰을 가져왔다.연미혜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휴대폰만 받아 들며 짧게 말했다.“고마워.”경민준은 별다른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연미혜는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경다솜의 방에 가서 씻을까 했지만, 그녀의 시선을 읽은 듯 경민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여기도 칫솔이랑 컵 다 있어.”그 말에 연미혜의 발걸음이 멈췄다.‘어차피 밤새 여기서 쉰 거나 마찬가지인데, 굳이 따로 씻으러 나갈 필요도 없지...’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결국 경민준의 방 안 화장실로 들어가 세면
연미혜가 일을 마쳤을 때는 이미 밤 열 시가 훌쩍 넘었다.가을로 접어든 데다 이틀째 이어진 비가 와 기온이 크게 내려갔고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었던 탓인지 몸속 깊이 한기가 파고들었다.노트북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갑작스러운 오한이 몰려오더니 연달아 재채기가 터졌다.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이번에는 콧물이 흘러내렸고 목은 바싹 마른 듯 쓰라렸다.‘감기 기운이 도는 건가?’이 시간쯤이면 경씨 가문 본가 저택의 도우미들도 이미 잠자리에 든 뒤였다. 연미혜는 어쩔 수 없이 직접 부엌으로 내려가 쌍화차를 끓여 마셨다.따
김태훈이 도와준 덕분에 당장 컴퓨터가 없어도 크게 지장은 없었다.하지만 그날 오후, 경문 그룹 쪽에서 급히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다는 메일이 도착하자 상황이 달라졌다.휴대폰으로 경문 그룹에서 보내온 자료를 확인하는 순간 아침에 괜히 경민준이 건네려던 노트북을 거절했던 것이 떠올랐다.‘급한 일부터 해결하자, 민망한 게 대수야?’잠시 망설이던 연미혜는 서둘러 위층으로 올라가 경민준의 서재 앞에 서서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노크를 했다.“들어와.”서재 문을 열고 들어서자, 경민준은 데스크톱 앞에서 업무에 몰두하고 있었다.그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