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은 관중석에 자리를 잡았고, 곧이어 연습 경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윤승재와 지현승은 평소 레이싱에 별 관심이 없었기에 딱히 응원할 선수도 없었다. 하지만 잠시 경기를 보다 보니 해설자의 설명 덕분에 38번 레이서 CC와 다른 두 명의 선수가 우승 후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무엇보다 CC는 이번 대회에 참가한 유일한 여성 레이서였기에, 많은 사람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됐다.게다가 CC 선수는 두 번이나 코너에서 화려하게 추월을 성공시켜 관중석의 환호를 자아냈다.윤승재도 참지 못하고 감탄을 터뜨렸다.“와... 미쳤는
“연극이요? 어떤 연극인데요? 어디서 볼 수 있죠?”“도원의 전통극인데... 진원 씨 취향이 아닐 것 같아요.”구진원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그건 모르는 거죠. 제가 해외에서 자랐지만 저희 전통문화에도 항상 관심이 많았거든요. 다만 접할 기회가 없었을 뿐입니다.”연미혜는 그의 말에 결국 연극 정보를 알려주었다.구진원은 통화를 끊자마자 온라인티켓을 예매했다.잠시 후 친구가 연락을 해왔다.“진원아, 저녁에 시간 되면 같이...”“안 될 것 같아. 오늘은 선약이 있어.”한편 연미혜는 구진원과의 통화를 마친 뒤 점심때까
연미혜를 보고 지현승은 조금 놀란 듯했지만 반갑게 인사했다.“미혜 씨? 여기서 다 뵙네요?”연미혜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현승 씨, 안녕하세요.”지현승이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미혜 씨도 기술 센터에 일하러 오신 거예요?”연미혜가 고개를 저었다.“그런 건 아니고... 교수님께서 직접 처리하기 어려운 일이 있어서, 제가 와서 도와드리게 되었어요.”지현승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다.‘기술 센터에 정식 인력도 아닌 사람을 들일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은 손에 꼽는데...’연미혜가 김태훈과 친분이 있지만 연
연미혜는 이어서 하승태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며칠 전 그가 자신에게 여러 번 전화를 걸었던 게 생각났던 것이었다.“하 대표님, 그때 전화 주셨던 것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무슨 일 있었던 거예요?”하승태가 답했다.“수연이가 영상통화하고 싶어 해서요. 딱히 중요한 용건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두 사람 모두 곧 출근해야 했기에 더 길게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전화를 끊은 연미혜는 차 키를 챙겨 아래로 내려가 회사로 향했다.도착하자마자 김태훈과 마주쳤다.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주차장에 도착했고, 차에서 내린 김태훈이 먼저
연미혜가 수연의 생일에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에 하승태는 다소 아쉬움을 느꼈지만 곧 이해한 듯 말했다.“괜찮아요. 중요한 일이 먼저죠. 수연이도 이해할 거예요.”전화를 끊고 연미혜가 막 세안을 마치려는 찰나,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하승태에게서 걸려 온 영상통화였다.지금까지 하승태의 핸드폰으로 영상통화가 걸려 온 경우는 모두 수연이었다. 연미혜가 전화를 받자, 이번에도 역시나 수연의 귀여운 얼굴이 화면에 나타났고, 연미혜는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그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수연이 먼저 말했다.“미혜 이모, 좋은 아침이에
그 순간, 임지유는 눈앞의 광경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한참 동안 멍하니 서있었다.‘내가 잘못 본 건가?’하지만 연미혜가 수연의 손을 잡고 환히 웃는 얼굴, 그리고 하승태가 연미혜를 보며 웃는 모습까지 너무 또렷하게 보였다. 임지유는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 현실임을 자각했다.‘연미혜가 정말로 하승태, 그리고 수연이와 함께 있다니...’세 사람 사이의 자연스러운 분위기, 그리고 수연이 하승태가 아닌 연미혜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은 세 사람이 오늘 처음 만난 사이가 아니라는 걸 분명히 보여주고 있었다.그 순간, 임지유의 뇌리에 한
경다솜은 사실 분홍색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예쁘고 귀여운 거라면 분홍이든 뭐든 다 좋아했다.수연이 신나게 자랑을 늘어놓자, 경다솜은 고개를 끄덕이며 기분 좋게 맞장구쳤다.“그러네? 진짜 귀엽고 예쁘다.”경다솜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준비해 온 선물을 수연에게 건넸다.수연은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나서도 자랑이 채 끝나지 않은 듯, 다시 경다솜에게 말했다.“이모가 직접 케이크도 만들어줬어! 파란색인데 진짜 예뻐!”말을 마치자마자 수연은 하승태에게 케이크 상자를 열어달라고 부탁했다.수연이 ‘이모’라는 말을 연거푸 꺼내는
연미혜는 기술 센터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바쁜 업무에 투입됐다.AI와 인간 조종사 간의 대결을 완성도 높게 구현하려면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필요했다.연미혜가 기술 센터에 도착한 지 이틀째 되는 날, 센터에서는 또 한 번의 인간과 AI 간 공중전 시뮬레이션이 시행됐다.그날 저녁, 연미혜는 늦은 시간에야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엔 이미 사람이 거의 없었다.식판에 음식을 담고 자리에 앉으려던 찰나, 마침 식사를 끝낸 지현승과 마주쳤다.지현승이 멈칫하더니 가볍게 웃으며 다가왔다.“미혜 씨, 안녕하세요. 언제 오셨어요?”“현승 씨
‘김태훈 어머니가 연미혜를 좋아한다고? 그게 말이 돼? 진짜라면... 어제 김태훈 어머니한테 했던 말들은 대체...’임지유는 갑자기 이미연이 대화 도중 갑자기 통화하러 다녀온 일이 떠올랐다.머릿속에 전화를 받는다며 자리를 비운 장면이 스치자, 묘한 불안감이 다시 가슴을 짓눌렀다.그녀의 낯빛이 안 좋아진 것을 본 경민준이 곁에서 물었다.“왜 그래? 어디 아파?”그 말에 임지유는 정신을 가다듬고 애써 미소를 지었다.“아니야. 나 괜찮아.”그날 저녁, 임지유는 이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렸다.이미연이 연미혜를 마음에 들어 하고
다음 날 아침, 경민준은 임지유, 경다솜과 함께 일찍부터 경기장에 도착해 있었다.잠시 후, 하승태와 수연도 도착했다.경다솜이 그들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승태 삼촌, 안녕하세요!”“수연아, 와줘서 고마워!”수연이 경다솜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이제 곧 경기 시작되잖아. 다솜아, 많이 긴장돼?”경다솜은 고개를 저으며 또렷하게 말했다.“긴장되긴, 당연히 긴장 안 되지!”하승태는 다른 일정이 있어 경기엔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그는 수연이를 데려다주러 잠깐 들른 것이었다.경민준이 그의 사정을 알고 먼저 말했다.
김태훈의 부모님이 자리를 뜬 뒤, 경민준이 물었다.“사모님이랑 얘긴 잘했어?”임지유는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응. 그런 것 같아. 고마워.”임지유는 속으론 생각했다.‘방금 사모님 얼굴 보니까 연미혜에 대한 불만이 점점 커지는 것 같던데....’사실 세인티와 넥스 그룹 사이에서 벌어진 일은 이미연도 이미 알고 있었다. 김태훈이 미리 설명을 해뒀기 때문이었다.조금 전 임지유와 이야기를 나눌 때 울린 전화는 사실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대화를 미리 녹음해 두고, 자리를 비켜선 후 멀리서 경민준과 임지유 쪽을 슬쩍
임지유는 며칠은 기다려야 소식이 올 줄 알았다. 그런데 그날 오후, 경민준에게서 먼저 전화가 걸려 왔다.“김 회장님이랑 사모님께서 내일 경매 행사에 참석하신대. 우리도 같이 가보자.”그 말에 임지유는 미소 지으며 답했다.“좋아.”다음 날 저녁, 경매장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민준은 임지유를 데리고 곧장 김태훈의 부모님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직접 임지유를 두 사람에게 소개했다.김태훈의 부모는 이미 경민준과 연미혜의 관계를 알고 있었고, 연미혜와 임지유 사이에 있었던 일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들은
지현승이 뭔가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을 하고 있을 때, 염성민이 다시 물었다.“성민아, 철호 아저씨나 아버지 말고, 네가 아는 사람 중에 유명욱 교수님 연락처 아는 사람 또 없어?”“없는 것 같아.”지현승이 대답했다.그렇게 말한 뒤, 무언가 떠오른 듯 다시 말을 이었다.“근데, 너 전에 임지유 씨가 유명욱 교수님을 만난 적 있다고 하지 않았어? 아마 지유 씨는 교수님이 연락처를 갖고 있을 것 같은데? 교수님한테 직접 연락해서 해결될 일이라면, 임지유 씨가 알아서 연락하지 않았을까?”염성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도
염용석이 도와줄 생각이 없자, 염성민은 직접 유명욱에게 연락하려 했다.하지만 문제는, 그에겐 유명욱의 연락처가 없었다.결국 염용석에게 연락처를 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는데, 돌아온 답장은 단 두 글자였다.[꿈 깨.]반응할 틈도 없이, 염용석은 메시지를 하나 더 보냈다.[철호 아저씨 쪽에도 내가 이미 얘기해 뒀으니까, 괜히 힘 빼지 마.]염성민은 그 문자를 보는 순간 진심으로 화가 치밀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곧장 전화를 걸었지만, 염용석은 더 이상 받지 않았다.‘아버지도, 철호 아저씨도 이 일을 도울 수 없다면 누구를 찾아야
아직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염용석이 먼저 말을 잘랐다.“그래서 또 김태훈 대표가 연미혜 편 들어서, 임지유를 괴롭혔다는 거냐?”너무 정확하게 들어맞는 말에 염성민은 순간 놀라서 되물었다.“아버지, 어떻게 아셨어요? 무슨 얘기 들으신 거예요?”“들은 건 없어. 그냥 짐작한 거다.”염용석은 해탈한 듯 나직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잘 생각해 봐라. 너랑 연미혜, 김태훈은 나 때문에 어렵게 얼굴 맞대고 일하는 사이인데, 서로 대놓고 엇나갈 일이 뭐 있겠냐. 네가 일로 문제를 일으킬 사람도 아니고, 두 사람이 괜히 너만 콕 집
김태훈은 다리를 꼬고 앉아 눈을 가늘게 뜬 채 말했다.“교수님께서 어떤 이유로 달가워하지 않으실 거란 말씀이죠? 제가 여자한테 눈이 멀어 이성도 잃고, 옳고 그름도 구분 못 하게 됐다는 말이 하고 싶으신 건가요?”‘아주 잘 알고 있네!’염성민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 밖으론 내지 않았다.하지만 김태훈은 마치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근데 말이죠, 제가 보기엔 그렇게 이성 잃고 분별 못 하는 사람은 제가 아니라 따로 있는 것 같은데요.”염성민이 반박할 틈도 없이, 김태훈은 곧바로 말을
김태훈의 변호사는 지난주 세인티와의 계약 해지를 논의하기 위해 직접 회사를 찾았지만, 결국 협의는 결렬되었고 넥스 그룹은 그날 바로 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다.그 무렵 연미혜와 임지유 사이에 세인티에서 벌어진 마찰은 업계에 이미 소문이 퍼진 상태였고, 당시 김태훈은 지방 출장을 떠나 있었기에 자리에 없었다.김태훈과 아직 직접 대면하지 못했기에, 임지유는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보였다.월요일 아침, 출근한 연미혜는 회사 1층에서 다시 임지유와 마주쳤다.두 사람은 서로를 보는 순간, 눈길만 짧게 마주치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