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한수현은 겉으로는 미친 듯이 잘못을 인정했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되뇌었다.‘아무리 봐도 대표님이 배 대표님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은데요...’“가서 사람 한 명 조사해.”한수현이 급히 물었다.“누구요?”“배기훈!”“아? 배, 배 대표님을 조사하라고요?!”한수현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배 대표님이 어떤 분인데... 조사하는 게 쉬울까요. 경찰 잠복 수준일 겁니다.”“그럼 배강 그룹 쪽부터 조사해. 배강수, 배명욱 사이에 뭔가 없는지 조사해. 찾을 수 있는 모든 것들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서정혁의 눈빛은 음침하고 차가웠다.“인간이라면 빈틈이 있기 마련이야. 시원이에게 접근하는 이유가 분명 있을 거야!”...서정혁은 자정이 넘은 후에야 무거운 표정으로 연안 빌리지에 돌아왔다.막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걸음이 뚝 멈췄다.어두운 거실에 소파에 흰 원피스를 입은 가느다란 실루엣이 앉아 있었다.심장이 멎을 듯 떨리는 느낌에 침을 꿀꺽 삼켰다. 낮은 소리로 천천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강...시원?”서정혁이 밖에서 고객 접대로 늦게 돌아오거나, 출장을 갔다가 돌아온 밤이면 강시원은 이렇게 잠옷으로 갈아입지도 않은 채 거실에 앉아 조용히 서정혁을 기다렸다.“오빠, 드디어 왔네!”임지민이 즉시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서둘러 서정혁을 향해 달려갔다.눈앞의 환상이 순간 사라진 서정혁은 눈빛이 차가워졌다.“지민아,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집에 가서 쉬라고 했잖아?”“오빠가 갑자기 인사도 없이 가서... 너무 걱정돼서 왔어.”입술이 새하얗게 질린 임지민은 눈에 걱정하는 기색이 다분했다.“게다가 출장 간 며칠 동안 도훈이를 못 봤잖아. 너무 보고 싶어서 아이도 볼 겸 온 거야.”서도훈이 걱정돼 왔다는 말에 서정혁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너도 많이 피곤할 텐데 얼른 쉬어, 사람 시켜 데려다주라고 할게.”당연히 이대로 갈 생각이 없었던 임지민은 얼른 화제를 돌렸다.“오빠, 도대체 무슨 일이야? 언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
“비열한 자식! 네가 무슨 꿍꿍이를 품고 있는지 내가 모를 줄 알아!”서정혁의 눈빛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당장이라도 배기훈의 얼굴을 베어버릴 듯했다. 하지만 배기훈은 시종일관 담담함을 유지했다.서정혁은 아직도 깨닫지 못했다. 아무도 자신의 마음을 어지럽힐 수 없다고 늘 자부했지만 지금은 소유욕, 질투, 분노에 점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하고 있었다.“내가 속셈을 품고 있는 걸 알고 있다니 다행이네요.”배기훈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지만 눈빛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시원 씨를 완전히 잃었을 때 분에 못 이겨 완전히 미쳐버릴까 봐 걱정했거든요.”“배기훈, 마지막 경고야!”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선 서정혁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다시 한번 감히 내 여자를 넘보면 그때는 나도 가만히 있지 않아!”배기훈이 코웃음을 쳤다.“넘보면 어쩔 건데요?”‘넘본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배기훈은 서정혁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강시원만 바라봤다.‘10년도 넘게 참다가 마침내 이 여자 앞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물러서라고? 꿈 깨!’“염치없는 개자식!”서정혁은 봉황 같은 눈이 새빨개졌다. 그러다가 결국 참지 못한 듯 배기훈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딱!배기훈은 재빨리 손을 들어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서정혁의 단단한 주먹을 감쌌다. 하지만 표정은 시종일관 덤덤했다.서정혁은 손목을 비틀며 손을 빼내려 했지만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그제야 배기훈이 주먹도 좀 쓰는 사람임을 알았다. 힘 또한 무서울 정도로 강렬했다.“염치없는 사람은 오히려 서 대표 아닌가요?”배기훈이 어두운 눈빛으로 서정혁을 바라봤다. 다섯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자 뼈마디가 불끈 솟아올랐다.“시원 씨 시간 5년 넘게 허비했잖아요. 시원 씨가 서 대표 때문에 인생의 청춘도 버렸어요. 시원 씨가 서 대표를 가장 사랑했던 그 시간에 서 대표는 다른 여자만 바라봤죠. 임지민과 가까이 지낼 때 본인이 비열하고 염치없다는 생각은 안 했나 봐요? 그런데 지금 시원 씨 주변에
서정혁은 강시원이 아무 반응이 없자 준수한 눈썹을 확 찌푸렸다.“왜? 이걸로 부족해? 그럼 네가 말해, 얼마든 다 줄 수 있으니까. 다만 앞으로 서씨 가문의 안주인으로서 다시는 비굴하게 남에게 빌지 마. 네가 이러는 거 더는 못 보겠으니까. 내...”‘가슴이 아프니까...?’하지만 진짜로 가슴 아픈지는 확신이 없었다.강시원이 영원 테크에 투자를 받기 위해, 투자 업계에서 악명 높은 안해준을 만나러 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도무지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강시원과 말싸움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강시원이 더 이상 이렇게 비굴하지 않기를 바랐다.“나를 무시하니까, 아니야?”강시원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그 말에 서정혁은 큰 손을 꽉 움켜쥐었다.‘그런 게 아니야.’하지만 혀가 꼬인 것인지, 아니면 목구멍에 뭐가 걸렸는지 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그렇게 일분일초마다 내가 서씨 가문의 안주인이라는 것을 상기시킬 필요 없어, 당신과의 약속은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 약속은 지킬 거야. 그러니 전전긍긍할 필요 없어.”이 한마디에 배기훈은 살짝 움찔했다. 하지만 마음속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그윽한 강시원의 목소리에 차가운 기운이 스며 있었다.“서 대표, 그래도 투자해 주겠다니 고맙네. 하지만 당신 돈은 필요 없어. 한 푼도 받을 생각 없으니까.”서정혁은 순간 심장이 바늘에 찔리는 듯했다.이혼한 후 서정혁이 이것을 빌미로 강시원에게 돈을 갚으라고 할까 봐, 그래서 남자의 마음을 받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서정혁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달란 말 안 할게. 내가 준 이상, 당신 거니까. 나 그렇게 비열한 놈 아니야.”강시원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당신은 비열한 게 아니야, 당신은 그저 이해득실을 따지는 걸 좋아할 뿐이야. 운도 테크에 비해, 영원 테크는 확실히 가치가 없지. 나와 당신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사실 당신의 선택이 잘못된 건 하나도 없어.”강시원은 서정혁을 욕하지도 원망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해한다고
순간 심장박동이 빨라진 강시원은 배기훈의 타고난 다정다감한 눈을 감히 바라볼 수 없었다.‘무슨 뜻이지...? 내 식성을 알고 싶은 거야, 아니면 내 마음을 잡고 싶은 거야?’강시원은 두 볼이 점점 발그스레해졌다. 바로 그때 배기훈이 또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잘 보이고 싶은 거, 당연하지 않을까? 내가 Nora 씨의 마음을 잡지 못한다면 어떻게 협력 기회를 얻을 수 있겠어? 나 지금 매우 진지해.”강시원은 긴 속눈썹이 떨렸다.“배 대표님, 남의 약점을 잘 이용하시네요.”배기훈이 강시원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기회를 잡을 뿐이야.”이 말에 강시원은 마음속 깊은 곳이 살짝 흔들렸다.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임씨 가문과 관계를 끊기로 결심한 강시원이 설민환의 제자가 된 것도 ‘쏘울 케이지’팀에 들어간 것도. 오랫동안 짝사랑해 온 서정혁과 결혼한 것도, 나아가 영원 테크의 대표이사가 된 것도... 그때 상황에서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잡았던 것뿐이었다.강시원 또한 기회주의자였으니까.하지만 모든 기회가 수확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예를 들어 서정혁과의 결혼은 결국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괜찮아, 급할 거 없어. 계약서는 일단 여기 둘 테니까 강 대표가 충분히 고려한 후에 결정해도 돼.”배기훈은 강시원의 망설이는 표정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니, 나머지는 순리에 맡기지 뭐.”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병실 문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황근우가 말했다.“서 대표님, 강시원 씨는 지금 몸조리 중입니다. 방해가 되니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네가 뭔데 꺼져!”분노 가득한 서정혁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려왔다.깜짝 놀란 강시원은 순간 멍해졌다.서정혁은 귀신보다 더 무서운 악귀였다. 밖에서는 도도하고 우아한 척하지만 강시원에게는 시베리아 고릴라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발톱을 세우며 으르렁거렸다.서정혁이 이럴수록 강시원은 이 남자가 더욱
“뭐라고요? 제 아내가요?”서정혁은 얼굴이 굳었다.옆에 있던 임지민은 순간 두 귀를 쫑긋 세웠다. 심장도 쿵쾅쿵쾅 빠른 속도로 뛰었다.한편 전화기 너머의 상대방도 멍해졌다.“서 대표님, 강시원 씨가... 대표님 아내 아니신가요?”서정혁은 순간 목구멍이 꽉 막힌 듯 호흡마저 답답해졌다.“네, 제 아내 맞습니다.”“아, 다행입니다. 사모님 정말 아름다우시더라고요!”전화기 너머의 상대방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임지민의 눈에 원망과 분노가 가득했다.임지민이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온갖 난리를 다 쳐도 그들이 법적 부부라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서정혁이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제 아내가 왜 거기서 카드를 새로 만든 거죠?”“구체적인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 직원한테서 들었는데 사모님께서 만나려고 하신 분이... 원항 캐피탈의 안 대표님인 것 같습니다.”서정혁은 순간 관자놀이의 핏줄이 불끈 서며 머리가 윙윙 울렸다. 심장도 두근두근 미친 듯이 뛰었다.전화를 끊자마자 임지민이 급히 물었다.“오빠, 언니한테 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지민아, 경호원이 너를 집까지 데려다줄 거야.”말을 마친 서정혁은 망설임 없이 차 문을 열고 내렸다.“어? 정혁 오빠!”움직임이 너무 빨라 임지민은 붙잡지도 못했다. 그저 혼자 차에 남은 채 분통을 터뜨리며 의자를 두드렸다.한수현을 데리고 즉시 다른 차로 바꿔 탄 서정혁은 차에 오르자마자 강시원에게 전화했다.하지만 연결이 되지 않자 준수한 얼굴이 음산하게 변했다. 한참 고민하다가 윤슬에게 전화했다.윤슬이 강시원의 비서가 되었다는 것을 안 후 즉시 한수현에게 윤슬의 전화번호를 조사해 오라고 했다. 혹시나 모를 상황을 대비해 휴대폰에 저장해 두었다.그래서 바로 연락을 할 수 있었다.윤슬이 이내 전화를 받았다.“안녕하세요, 누구세요?”“서정혁.”서정혁이 직접 자기 이름을 밝혔다.깜짝 놀란 윤슬은 숨을 들이켰다.“서... 대표님?”“그쪽 강 대표, 지금 옆에
안해준은 도저히 내키지 않은 듯 억센 표정을 지었지만 이불 아래의 두 다리는 멈추지 않고 부들부들 떨렸다.“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여자 하나 때문에, 배 대표가 해준이에게 이렇게까지 하다니? 너무 잔인하잖아!”원지숙은 완전히 멍해졌다.“게다가 배기훈이라는 사람 나 한 번 본 적이 있어. 복숭아꽃 같은 웃음을 머금고 있는 눈이었는데... 꽤 온화해 보이기도 했고.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잔인한 행동을 할 수가 있어?!”“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잖아. 배기훈이 겉으로는 웃을지 몰라도 속으로는 칼을 갈고 있을지도 몰라. 그런 사람을 건드리는 건 잠자는 호랑이를 건드리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우리 집안을 완전히 몰살해 버릴지도 몰라!”안강준은 왔다 갔다 걸으며 초조해 땀을 뻘뻘 흘렸다.“예전에 배기훈에게 돈과 술, 여자 모두 보낸 적 있어. 하지만 배기훈은 아무것도 받지 않았어. 그냥 모든 걸 아주 공적인 태도로 처리하더라고. 그래서 줄곧 배기훈의 약점이 뭔지 찾지 못했어. 드러낸 약점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이제 보니 배기훈의 유일한 약점은 바로 강시원이야!”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격렬한 노크 소리가 울렸다. 문밖에서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안 회장님! 안에 계십니까?! 급한 일입니다!”“들어와!”비서가 발에 불이 떨어진 듯 뛰어 들어왔다.“큰일 났습니다! 회장님, 저희가 M국에서 진행하고 있는 두 프로젝트, 정부 쪽에서 연락이 왔는데 허가가 되지 않아 진행할 수 없다고 합니다!”“허가가 안 나왔다고? 어떻게 이런 일이! 배 대표가 이미 우리를 위해 얘기를 해줬잖아?”눈앞이 캄캄해진 안강준은 온몸에 벼락이라도 맞은 듯했다.배기훈은 M국의 정재계에 깊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전국뿐만 아니라 글로벌까지 넓은 인맥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원항 캐피탈이 이제 겨우 라이트 미라클과 협력 기회를 얻나 했는데 시작도 하기 전에 무산돼 버린 것이다.이 프로젝트를 위해 원항 캐피탈은 삼 년 넘게 고생하며 몇백억을 투자했다. 그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