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시원은 긴 속눈썹을 내려뜨렸다.“몰라.”“열다섯에 대학 간 천재니, 최연소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박사니, 머리 위에 걸린 허울 좋은 명성이 아무리 많아도, 눈뜬장님이라는 사실은 못 바꿔!”남자는 분을 이기지 못한 채, 또 그녀가 걸어온 길의 고단함을 아파했다.“시원아, 너는 서정 그룹이 만드는 신에너지 자동차의 시장을 넓히려고 얼마나 큰마음과 노력을 쏟았는지, 내가 다 기억하고 있어. 네가 그 인간들을 위해 디자인한 JS9 Mate 시리즈가 출시되자마자 대박이 나서 서정 주가가 미친 듯이 치솟았고, 서정혁은 돈을 한가득 쓸어 담아 의기양양했지. 그런데도 네가 뒤에서 온 힘을 다해 애썼다는 걸 전혀 모르더라! 너는 자동차 디자인계의 뮤즈 Nora, AI 분야의 천재야. 그 인간을 위해 창창한 앞길을 접고 부엌에 들어가 국을 끓였는데, 네 여동생이랑 질척대면서 너를 깔본다고? 거울 좀 보고 자기 주제나 파악해라, 대체 뭔 꼴인지!”“됐어, 그만 말해.”강시원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고개를 저었다.“선배, 다 지나간 일이야.”“시원아...”“그때 나는 정말로 그 사람을 돕고 싶었어. 그 사람이 잘되길, 서정이 잘되길 바랐어. 다 내가 기꺼이 한 일이야.”차가웠던 5년의 혼인을 떠올리며 강시원의 눈빛이 어둑해졌다.“인생은 바둑 같아. 내가 둔 걸음 하나하나가 다 계산서에 올라. 불평할 것도 없어.”이때, 연구개발부에서 유일하게 가까운 동료 윤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2년 전, 서정혁은 업계가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의 천문학적 디자인 비용을 내걸고 삼고초려 끝에 Nora를 모셔 왔다.그리고 Nora 역시 십여 개의 실력 있는 그룹 가운데 서정을 선택했고, 게다가 가격도 그렇게 높게 부르지 않았다.그해 서정과 Nora의 협업은 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서정혁은 한동안 독보적인 주목을 받았다.지난 2년 동안 연구소에서 Nora와 직접 일정을 맞대던 사람이 바로 윤슬이었다.“선배, 나 여기 일이 있어서 이따 다시 전화할게.”강시원은 전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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