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7화

Author: 소경절
서도훈은 엄마가 자신을 공기처럼 대하는 것을 보고 미간이 점점 더 깊게 찌푸려졌다.

‘엄마가 집에 온 거야? 언제 온 거지? 나는 전혀 몰랐는데?’

예전이라면 강시원이 집에 돌아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저택을 샅샅이 돌아다니며 그를 찾는 것이었고, 찾기만 하면 다정한 미소를 머금고 그를 꼭 안아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다 나중에 그는 임지민을 좋아하게 되었고, 매번 그가 강시원과 친근하게 굴 때마다 임지민이 아주 실망한 표정을 짓는다는 걸 알아차렸다.

점점 그는 강시원과 멀어졌고, 그녀가 자신에게 입 맞추는 것도 더는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강시원은 그를 보기만 하면 여전히 눈빛 가득 기쁨으로 넘쳤다. 지금처럼 이렇게 무심하지는 않았다.

임지민이 말했다.

“도훈아? 아직 듣고 있어?”

“이모, 우리 내일 다시 얘기하자.”

말을 마치고 서도훈은 통화를 끊고는 강시원을 향해 소리쳤다.

“엄마!”

강시원은 걸음을 멈추고 담담히 뒤돌아봤다.

서도훈은 소파에서 폴짝 내려와 두 손을 등 뒤로 하고, 아이치고는 조금 어른스러운 걸음으로 엄마 앞까지 와서 말했다.

“엄마, 돌아왔으면서 왜 나한테 한마디도 안 했어?”

강시원은 잠시 말이 없었다. 목소리에는 어떤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너랑 너희 이모가 통화하는 데 방해하고 싶지 않았어. 그게 네가 늘 바라던 거 아니니?”

서도훈은 입술을 꾹 눌렀다.

강시원의 말이 맞았다. 매일매일 즐겁게 임지민을 만날 수 있고, 강시원의 기분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며, 임지민과 마음껏 얘기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지금 그가 가장 바라던 삶이었다.

그런데 왜인지, 오늘 강시원이 평소와 달리 아주 순순해지자 오히려 마음이 이상하게 뒤틀렸다. 무척 어색했다.

서도훈은 못마땅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엄마, 내가 이모랑 가까이 지낸다고 나랑 아빠한테 삐진 거야?”

강시원의 뜨거웠던 마음은 거의 다 식어 버렸다. 그녀는 지친 듯 미소 지었다.

“앞으로는 너랑 임지민이 지내는 일에 끼어들지 않을 거야. 오히려 너희가 늘 사이좋게 지내길 바랄게.”

‘어차피 걔는 네 새엄마가 될 테니까.’

“서도훈, 잘 자. 안녕.”

강시원은 5년 동안 지켜 온 아들에게 정중한 어조로 작별을 건네고는 막 한 발 내디뎠다. 그때 서도훈이 단호한 얼굴로 그녀를 불러 세웠다.

“엄마!”

원래는 떠나기로 마음을 굳힌 강시원이었지만, 그 앳된 부름에 다시 한번 발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비록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더라도, 최소한 아들이 생일 축하한다는 한마디는 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만으로도 헛수고는 아닐 테니까.

그러나 다음 순간 서도훈의 말은 머리 위에서 퍼붓는 찬물처럼 그녀의 뼛속까지 시리게 했다.

“오늘 이모가 병원에서 엄마 때문에 놀라서 울었어. 나는 엄마가 이모한테 전화해서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해.”

강시원이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서도훈의 어투는 더 차갑고 단단해졌다.

“엄마가 평소 나한테 늘 가르쳤잖아. 사람은 한 일을 책임지고, 잘못을 용감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그런데 왜 엄마는 스스로 그렇게 못 해?”

“그런 말 한 적 있어. 하지만 전제는 내가 정말 잘못했을 때야. 나는 잘못하지 않았어. 그런데 무슨 사과를 해?”

강시원의 아몬드 빛 눈동자는 싸늘히 가라앉았다.

“내가 보기에 사과해야 할 사람은 너, 서도훈이야. 오늘 왜 사람들 앞에서 거짓말을 했어? 거기에 진 기사님까지 모함했지?”

서도훈은 어머니의 아름답고 위엄 있는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작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마음은 불안해졌다.

강시원은 늘 온순한 성격이었지만, 엄중해질 때의 위압감은 서정혁 못지않았다. 그는 조금 겁이 났다.

그에 비하면 역시 임지민이 나았다.

무얼 해도 임지민은 다 응원해 주고, 뭘 먹고 싶다 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엄마가 이모를 곤란하게만 안 만들었으면, 나도 거짓말 안 했어!”

서도훈은 콧소리를 내며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엄마는 평소에 내가 이모랑 어울리는 걸 싫어하잖아. 매번 화내고. 나 중간에서 너무 힘들어!”

“네가 거짓말을 한 건, 네 이모를 지키려는 마음에서였겠지. 하지만 다른 방법도 분명 있었는데, 하필이면 가장 부적절하고, 가장 부끄러운 방법을 택했어.”

강시원은 소년을 똑바로 바라보며 눈빛을 서서히 식혔다.

“정말로 네 이모를 지키고 싶다면, 먼저 네가 떳떳하고 당당한 사람이 되어야 해. 그래야 누군가를 지킬 자격이 생겨.”

그녀는 더 나무라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낮처럼 화가 나지도 않았다.

어차피 앞으로는 그를 제대로 가르칠 기회가 없을 테니까. 그는 서씨 가문의 후계자고, 서씨 가문은 당연히 자신 같은 무용지물이 하늘의 총아를 가르치는 일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강시원은 말을 덧붙이지 않고 돌아서 대문 밖으로 걸어 나갔다.

서도훈은 홀로 선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큰 캐리어를 끌고 있는 것도 보였다. 입술이 달싹였고 어디로 가느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아빠가 가르쳤다.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말라고, 좀 더 성숙하라고, 엄마가 없다고 해서 울고불고하는 쓸모없는 어린애가 되지 말라고.

그는 돌아서서 강시원과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어차피 강시원이 어디를 가든, 마지막에는 다시 자신과 아빠 곁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녀는 애초에 갈 데가 없으니까.

이후 사흘 동안, 강시원은 집에서 몸을 추슬렀다.

서정혁과 서도훈, 부자 중 누구도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오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그녀가 바라던 바였다. 드디어 삶이 조용해졌다고 느꼈다. 매일 집안 잡일에 치여 정신없이 바치고, 비굴할 만큼 내주고도 한 톨의 보답도 받지 못하는 날들을 벗어났으니까.

이제는 온전히 학문과 연구에 몰두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었다.

“아가씨, 이혼 협의서 벌써 서정혁한테 줬어?”

테이블 위 휴대폰에서 남자의 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응. 그런데 언제 사인할지는 아직 모르겠어.”

강시원은 책상 위의 자동차 모델을 정성스레 만지작거렸다. 비록 모형이지만 이미 멋지고 눈에 띄는 면모가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몇 년째 말했지. 다시는 나를 아가씨라고 부르지 마. 너무 민망하다고. 네가 그렇게 부를 때마다, 다음 순간 못 말리는 아가씨 하나 틀어 줄 것만 같아.”

남자는 웃었다. 목소리는 귓가를 간질였고 단어마다 애정이 묻어났다.

“그거 좋아해? 내가 춰 줄게.”

강시원은 딱딱딱 모델에 부품을 끼워 넣었다. 열 손가락은 경쾌하고도 민첩했다.

“됐어. 너는 사지가 따로 놀아. 네 춤 볼 바에는 차라리 주유소 풍선이 바람에 흔들리는 걸 보겠다.”

남자는 웃다가도 한숨을 쉬었다.

“시원아, 너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네. 독설, 예리함, 활발하고 장난기 많은 그 모습. 정말 좋다.”

강시원의 손끝이 살짝 떨렸고 옅은 분홍빛 입술이 씁쓸하게 올라갔다.

서정혁과 결혼하기 위해, 그녀는 해외 최고 학부에서 박사 과정을 밟을 기회를 포기했고, 자신의 연구의 꿈을 포기했고, 사회적 관계도 포기했다.

이름을 숨기고 서정 그룹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직원으로 일하며 자신에게는 그야말로 생명을 낭비하는 일만 했다.

그녀의 능력과 재능이라면 충분히 서정의 연구개발팀 핵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인공지능으로 서정의 신에너지 자동차에 동력을 더해, 서정의 제품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서정혁은 단 한 번도 기회를 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행정 부서에 박아 두더니, 그녀가 온갖 방법을 써서 거듭 청하고 또 청하자 그제야 연구개발부로 보내 주었다.

2년 동안, 강시원은 성실하게 버티며 보통 사람이라면 견디지 못할 직장 내 괴롭힘을 참아 냈다. 오로지 그곳에 남아 언젠가 핵심에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때 그녀는 아직도 꿈꿨다. 자신이 얌전히 구는 덕목을 지키고, 영리하고 살뜰하게 굴며, 가정과 일을 균형 있게 꾸려 나가면, 서정혁이 자신을 새롭게 보지 않을까? 태도가 달라지지 않을까?

사실은...

눈웃음을 장님에게 보내는 꼴이었다.

혹은 서정혁의 눈에는 임지민만 들어오고, 그 외에는 아무도 자리할 곳이 없었거나.

“시원아, 너희 이제 곧 이혼할 것 같은데 서정혁은 네 진짜 정체를 알아?”

남자가 문득 캐물으며 그녀의 생각을 끊었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Comments (1)
goodnovel comment avatar
이호정
2025. 11. 26. AM. 05:52
VIEW ALL COMMENTS

Latest chapter

  • 이혼 후 전설이 된 여자   제218화

    “임지민 씨는 미모뿐만 아니라 재능 또한 뛰어나요. 정말 보기 드문 분이죠.”심지경은 서정혁보다 더 자랑스러운 얼굴로 사람들 앞에서 소개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을 보면 볼수록 더욱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세상에! 서 대표님이 천년에 한 번 만나기 어려운 보물을 얻으셨으니 천군만마가 두렵지 않겠어요.”임지민은 서정혁을 응시하며 눈빛을 반짝였다.“사실 저도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에요. 주로 서 대표님께서 제게 능력을 발휘할 무대를 마련해 주셨기 때문이에요. 그 부분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을 뿐입니다.”이때 누군가 웃으며 물었다.“두 분을 보니 곧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네요. 두 분의 결혼 소식을 언제 듣게 될까요?”눈을 가늘게 뜬 서정혁은 입가에 걸렸던 미소도 순간 사라졌다.서정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난처해진 사람은 서로 얼굴만 번갈아 봤다.술만 마시는 심지경은 그들 대신 설명하려는 의사가 전혀 없어 보였다.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서정혁과 강시원은 이혼할 사이이고 조만간 서정혁이 임지민을 아내로 맞이할 것은 정해진 사실이나 마찬가지였다.‘미리 예열하는 것이니 괜찮지 않을까?’“서 대표님!”이때 운도 테크의 회장 임성호가 아내 박영주와 함께 걸어왔다.“아빠, 엄마!”임지민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맞이하며 다가갔다.옆에 있던 서정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회장님, 오랜만이에요.”임성호는 안색이 잔뜩 어두워졌다.서정혁이 단 한 번도 임성호를 ‘아버님’이라고 부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임성호는 서정혁이 자신을 우습게 보기에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강시원, 그 계집애가 제일 쓸모없어, 서 대표 마음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하지만 다행히 서정혁이 강시원보다 임지민을 더 많이 신경 쓰면서 임씨 가문에 오는 횟수도 늘어났다.비록 강시원도 임성호의 친딸이었지만 마음속으로는 강시원이 서정혁과 이혼하고 임지민에게 기회를 주기를 바랐다.그래야 임씨 가문

  • 이혼 후 전설이 된 여자   제217화

    강시원의 입은 헝겊으로 막혀 있었고 목구멍에서는 울먹이는 소리가 흘러나왔다.속눈썹에는 아직도 굳은 핏덩이가 매달려 있었고 머리는 터질 듯이 아팠으며 시야는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하지만 절망적이고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강인한 의지를 내보였다. 수정처럼 맑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몸부림치면서 주변 상황을 끊임없이 살폈다.비록 불빛이 어두웠지만 희미하게나마 여기의 구조가 폐공장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알아챘다.게다가 구석에 흩어진 부품들도 몇 개 보였다.강시원은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며 천천히 그 부품들 옆으로 기어갔다.비록 손발이 단단히 묶여 있었지만 열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었다. 주위가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엄청난 힘을 들여야 겨우 부품 하나를 더듬어 찾을 수 있었다.이 물건은...어릴 적 강부안 곁에서 자라며 온갖 기계 부품을 접해봤기에 이것이 구식 인쇄기의 베어링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식은땀이 가득 맺힌 채 터질 듯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혼자 생각하던 강시원은 갑자기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북쪽 교외에 있는 역리 인쇄공장?!”갑자기 지하실의 무거운 철문에서 철컥하는 소리가 났다.음산하게 울려 퍼지는 메아리는 마치 지옥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았다.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한편, 음악이 흐르고 웃음소리가 가득한 연회장 안.임지민은 서정혁의 곁에서 샴페인 잔을 손에 쥐고 술을 권하러 오는 손님들과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야말로 서씨 가문 사모님의 폼을 다 잡고 있는 셈이었다.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는 미소로 맞이하고 자기만 못한 사람에게는 거만하고 도도한 척하며 마치 범접할 수 없는 높은 산의 꽃처럼 아첨꾼들의 알랑거림을 즐겼다.“하, 저 남자들이 임지민 주변을 맴도는 모습 좀 봐. 개 같다니까. 여자를 처음 본 것처럼 굴잖아. 임지민 씨가 어느 정도 예쁘긴 하지만 그렇다고 선녀도 아니고 말이야. 엄청 품위가 떨어져 보이네!”주변의 재벌가 사모님 중 임지민을 눈에 거슬려 하는 이가 나타났다.“임지민이 저렇게 우

  • 이혼 후 전설이 된 여자   제216화

    지난번에 한 비서가 박영주 앞에서 서정혁이 강시원과 함께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다고 과대 포장해서 떠들어댔지만 아마 전혀 그런 게 아니었나 보다.서정혁이 정말로 강시원을 사모님 신분으로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면 어떻게 결혼반지를 안 낄 수 있겠는가?서정혁이 이번에 강시원을 파트너로 데려온 건 박해순이 뒤에서 강제로 시켜서 한 일일 것이다.여기까지 생각하자 속이 완전히 후련해진 임지민은 서정혁이 눈치채지 못하는 틈을 타 몰래 핸드폰을 꺼내 박영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엄마, 강시원 그년이 아직 나타나지도 않았어요.][지민아, 엄마가 완벽하게 일 처리했단다. 네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엄마가 반드시 다 치워 주마!][고마워요. 엄마. 엄마밖에 없어요.][아, 참. 딸아, 너 지금 어디 있니? 아까 네 아빠가 너를 찾느라 여기저기 돌아보던데.]임지민의 얼굴에 우쭐하면서도 음흉한 미소가 번졌다.[저 정혁 오빠 차 안에 있어요. 오늘 밤도 정혁 오빠 파트너로 있을 거예요.][어머나! 넌 정말 엄마의 착한 딸이구나! 좀 이따 네 아빠한테도 말씀드려서 준비를 하라고 해야겠다. 공개석상에서 예비 장인이 사위 될 사람을 보는 게 흔치 않은 일이라 분수를 잘 지키라고 해야지!]바로 그때 남자의 목소리가 곁에서 들려왔다.“지민아, 무슨 급한 일 있어? 자꾸 휴대폰 보네?”“아, 별거 아니야.”급히 화면을 가린 임지민은 눈가에 미소를 가득 담아 말했다.“엄마야. 나를 못 찾겠다고, 어디 있냐고 묻네.”“응.”임지민은 붉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 참. 오빠. 언니가 나랑 오빠가 같이 입장한 걸 알면 엄청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요?”“기분 나빠한다고? 기분 나빠할 자격이 있긴 하고? 신경 쓰지 마.”말을 마친 서정혁은 목을 뒤로 젖힌 뒤 눈을 감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이 모든 건 본인이 자초한 일이야.”...서정혁의 팔짱을 끼고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임지민은 우아하게 레드카펫 위를 걸었다. 두 사람은 순간 대낮

  • 이혼 후 전설이 된 여자   제215화

    “부모님과 함께 왔어. 오늘 밤 출품작 중에 아빠가 무척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게 있어서 꼭 낙찰받고 싶어 하시거든.”남자 앞에 선 임지민은 아름답고 가녀린 몸에 서정혁이 원래 강시원에게 선물하려 했던 하얀색 드레스를 살짝 걸치고 있었다.청순하고 귀여운 작은 얼굴에 애처로우면서도 사랑스러운 사슴 같은 메이크업을 했다. 긴 속눈썹을 살짝 깜빡이면 호소하는 듯한 눈빛은 당장이라도 별이 쏟아질 듯했다.“이 옷, 네게 잘 어울리네.”무심히 임지민을 훑어본 서정혁은 얇은 입술을 살짝 올렸다.“정말?”임지민은 봄꽃처럼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남자를 애처롭게 바라보았다.“아까 오빠가 내 키와 몸무게를 물어보길래 내게 깜짝 선물을 주려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내 짐작이 맞았네. 드레스 정말 마음에 들어. 고마워. 오빠!”서정혁은 저도 모르게 왼손 새끼손가락에 낀 반지를 만지작거렸다.“마음에 든다니 다행이야.”얌전하고 영리한 임지민의 모습에 서정혁은 왠지 마음이 뿌듯했다.강시원처럼 본인 주제도 모른 채 상대방을 거역하면서 일부러 남자의 마음을 괴롭게 하지도 않았다.서정혁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강시원은 내가 우리 부부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변하고 있는 게 안 보이는 걸까? 양보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걸까?’이 세상에 서정혁으로 하여금 먼저 화해를 구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아마 강시원밖에 없을 것이다.하지만 강시원이 주제도 모르고 감히 함부로 나댄다면 서정혁도 이 인간성 없는 여자를 위해 더 이상 자세를 낮추고 싶지 않았다.기회는 이미 충분히 줬지만 본인이 싫다고 내던지니 그건 누굴 탓하겠는가?옆에서 임지민의 말을 들은 한수현은 정말 울고 싶었다.자기 대표가 임지민의 몸매를 기준으로 사모님께 옷을 사 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어떻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할 수 있어?’5년 동안 같은 침대에서 잔 부부인데 자기 아내의 몸매조차 모르다니... 한수현은 강시원이 너무 안타까웠다.‘대체

  • 이혼 후 전설이 된 여자   제214화

    눈빛이 흔들린 유재윤은 다소 쉰 목소리로 말했다.“나는 시원이 오빠야. 시원이는 나를 가족처럼 생각해. 게다가 좋아한다고 반드시 소유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지금처럼 이렇게 자주 만나고 곁에서 지켜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만족해.”...시간이 거의 다 된 것을 느낀 강시원은 집에 가지 않고 혼자 차를 몰아 경매장으로 향했다.이 행사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따로 스타일링을 하지 않은 채 심플한 츄리닝만 걸치고 있었다.솔직히 말하면 강시원은 조금 기대하고 있었다.서정혁이 이런 비루한 차림의 자신을 보고 유명한 사람들 앞에서 그녀를 어떻게 소개할지, 뭐라고 부를지 꽤 궁금했다.아마 모르는 척, 못 본 척, 못 들은 척할 확률이 클 것이다.산송장 취급은 지난 5년 동안 수도 없이 많이 당해왔기에 경험이 풍부했다.검은색 페라리가 질주하고 있는 밤길, 앞쪽 텅 빈 사거리에서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변해 깜빡이고 있었다.신호 한 번 덜 기다리기 위해 강시원은 힘껏 액셀을 밟아 노란불로 바뀐 마지막 순간에 교차로를 통과했다.바로 그 순간 갑자기 눈부시도록 차갑고 하얀빛이 옆에서 번쩍이는 것을 느끼자 눈살을 찌푸리며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그 순간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리며 당장이라도 숨이 멎을 것 같았다.손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핸들을 꽉 움켜쥐었지만 방향을 돌리기에는 이미 늦었다.승합차 한 대가 미친개처럼 돌진해 오는 것이 보였다.쾅!엄청난 굉음이 검은 바다와 같은 어두운 하늘마저 뒤흔들 것 같았다.산산조각이 난 차 앞 유리가 사방에 흩어졌다. 순간 눈앞이 캄캄해진 강시원은 온몸의 내장까지 모두 떨릴 정도의 충격에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듯했다.찰나의 극심한 고통 후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저녁 7시 정각.경시 국제 컨벤션 센터 밖, 끝없이 펼쳐진 레드카펫 양옆에는 기자들과 구경 나온 시민들, 그리고 많은 연예인 팬들이 가득 모여들었다.웅장하고 성대한 경매대회는 마치 칸 영화제의 개막식 현장 같았다.거물급

  • 이혼 후 전설이 된 여자   제213화

    시간은 흘러 어느덧 주말이 되었다.수많은 이들의 이목이 한 곳에 집중되었다. 바로 유명 인사가 모두 참석하는 베이럴 경매대회가 저녁 7시 정각, 경시 국제 컨벤션 센터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다.경매대회 개막 한 달 전부터 각종 미디어 플랫폼에서는 사전 예약을 시작했으며 일주일 전부터는 인플루언서들이 미리 탐방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사전 홍보는 그 어느 때보다도 완벽하게 이루어졌다.오늘 밤, 이곳에 경시의 재벌, 유명 명사, 거물급 스타들이 모두 모일 것이다.강시원은 서정혁으로부터 저녁에 파트너로 행사에 참석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자신만의 삶의 리듬대로 하루 종일 여유롭게 지내며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저녁이 되자, 강시원은 유재윤과 함께 경찰서에 출석하러 갔다.유재윤은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여전히 죄인 신분으로 매일 경찰서에 출석하여 보고를 해야 하는 신세였다. 아직 완전한 자유를 되찾지 못한 상태였다.“시원아, 일부러 와 줘서 정말 고마워. 널 너무 번거롭게 하네. 힘들게 해서 미안해.”경찰서에서 나온 후 유재윤은 무거운 마음으로 아끼는 강시원을 바라봤다.살며시 고개를 저은 강시원은 눈빛에 다소 그늘이 져 있었다.“선배, 이번 일은 결국 나 때문에 시작된 거야. 그런데 내가 어떻게 모른 척할 수 있겠어.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서 선배의 곤란한 일을 해결해야지.”“시원아,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심장이 찔리는 듯한 말에 유재윤은 눈시울이 붉어졌다.“처음부터 서정혁 그 나쁜 놈을 때리고 싶었어. 속 시원하게 한 방 먹였으니까 전혀 후회하지 않아!”황시민이 뒤에서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 때문에 며칠 동안 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없을 정도로 두들겨 맞으셨잖아요. 로펌도 망할 판인데... 대체 어쩌려고 그래요...”유재윤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호통쳤다.“황시민, 한 마디만 더 지껄이면 내일 당장 다른 로펌으로 보내버릴 거야. 나랑 일할 생각 하지 마!”황시민이 애원했다.“안 돼요. 대표님! 대표님은 제 마음속 변호사 업계의 하나밖에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