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10
헌터는 리셉션에서 아내에 대해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그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본 한 의사가 간호사와 이야기하던 중이었는데, 맥킨타이어 제국의 후계자를 그의 아내가 있는 병실까지 안내하기 위해 대화를 중단했다.
당연히 클레어는 VIP 층으로 옮겨졌고 가장 큰 병실에 머물게 되었다. 헌터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의 몸은 땀으로 젖기 시작했고 심장은 가슴 속에서 요란하게 뛰었다.
이 감정은 영혼이 몸을 떠나는 느낌과 같았다. 그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자신이 진정한 연인과 함께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내치려 했던 아내 때문에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대체 뭐야!' 충격에 욕설을 내뱉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자 목구멍에 덩어리가 생긴 듯했다.
그의 앞에는 테아와 콜이 벤치에 앉아 있었다. 나이 든 여인은 긴장한 채 자신의 손을 비비고 꽉 쥐고 있었고, 그의 가장 친한 친구는 감정 없는 얼굴로 신발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피였다.
두 사람의 옷은 마치 빨간 페인트를 가지고 장난친 것처럼 피로 얼룩져 있었다.
헌터의 큰 발걸음 소리가 그의 도착을 알렸다. 콜의 얼굴은 곧바로 분노의 가면처럼 굳어졌고, 테아는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또다시 거센 눈물을 쏟아냈다.
"도련님." 테아는 예의를 갖춰 일어났지만,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는 헌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는 병실의 닫힌 문을 바라보며 클레어가 얼마나 심한 고통을 겪었을지 가늠하려 했다. 그녀가 다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였을까?
마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콜은 친구의 눈에 떠오른 불확실함을 알아차리고 비웃듯 말했다.
"테아, 네 사장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 싶어 할 거야. 네 연락을 무시하고 나중에는 휴대폰까지 꺼버렸지만 말이지. 그래도 최고의 가정부답게 모든 걸 보고해야 하지 않겠어."
헌터는 침묵했다. 그는 콜이 자신을 경멸하는 시선을 보내는 것을 지켜보았다. 전화를 받지 않았더라면 그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콜이 자리를 비우고 헌터와 테아만 남겨두자, 나이 든 여인은 입을 가리고 흐느꼈다.
그동안 헌터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기를 기대하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 마님께서 계단 위에서 정신을 잃으시고 굴러 떨어지셨어요, 도련님. 머리를 다치셨고, 저희가 여기로 모셔왔을 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셨어요."
헌터의 어깨가 축 처졌다.
그는 망설이는 듯 눈을 깜빡이며 병실 문을 바라보았다. 콜이 클레어가 스스로 굶었다고 언급했던 것이 떠올랐다.
"클레어가 굶고 있을 때 넌 대체 어디 있었어, 테아? 네 의무는 집을 관리하고 그녀 곁을 지키는 거야. 그녀가 끼니를 거르고 있을 때 왜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저… 저도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도련님. 하지만 마님께서는 제가 보고하려 할 때마다 막으셨어요. 두 분 사이의 일이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도련님께서 함께 앉아 식사를 하지 않으시면 절대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하셨어요."
그녀는 흐느끼며 말을 이어갔다.
그녀가 말했을 때 헌터의 심장이 순간 멈추는 듯했다.
"마님께서는 도련님께서 오실 거라고 확신하셨어요. 마님에게 도련님은 다정한 남편이세요. 도련님께서 메시지를 읽으시면 자신에게 달려오실 거라고 믿으셨기 때문에 자신 있게 식사를 거르셨어요."
잠시 후 그녀는 덧붙였다.
"예전에는 도련님께서 마님을 위해 제시간에 집에 오셨잖아요. 도, 도대체 무엇이 바뀐—"
테아는 헌터가 경고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자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언제 입을 다물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고용주가 보여준 마님에 대한 따뜻함이 자신의 눈에도 진심으로 보였기에 참을 수 없었다. 궁금증은 가득했고,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그녀 역시 왜 그가 자신에게 그렇게 헌신적이었던 여인에게 이렇게 무정해졌는지 의문이었다.
반면 헌터는 불안하게 숨을 내쉬었다. 그는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의 심장이 무너지고 있었다.
메시지들. 그는 기억했다.
헌터는 휴대폰을 꺼냈다. 그녀의 이름을 눌러 대화창에 들어가려는 순간 손가락이 떨렸다.
뒤섞인 감정의 폭풍이 그를 덮쳤다. 그녀는 많은 말을 남겼고, 그중 하나는 마치 자신이 그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자랑스럽게 적혀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썼다.
나는 네가 신경 쓴다는 걸 알아, 헌터. 그래서 음식 섭취량을 줄이고 있어. 하루에 과일 하나 먹던 걸 하루에 한 입으로 줄일 거야. 네가 집에 와서 나와 함께 먹지 않는 한 음식은 절대 먹지 않을 거야.
"너…"
그는 다른 손을 꽉 쥐고 돌아서서 그녀의 병실 문을 향해 좌절감 어린 눈빛을 던졌다.
그녀의 메시지 중 하나는 이랬다.
배가 고파서 내장이 조여 오는 것 같아, 헌터. 가슴의 이 통증이 아니더라도 굶어 죽을 것 같아. 빨리 집에 와줘.
"헌터, 네 얼굴이 창백해졌어. 죄책감을 느끼는 거야? 네가 이 일에 대해 스스로를 탓하는 거야…?"
콜이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 그는 자신을 가리키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의 파란 셔츠에 묻은 피를 가리키며.
그의 얼굴은 어두워졌고, 눈에는 가장 친한 친구의 아내를 향한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네 이름을 계속 불렀어, 헌터. 더 이상 그녀를 아프게 하지 마."
콜은 부드럽게 말했다.
"봐, 난 자라가 매우 특별하다는 걸 알아. 하지만 그녀는 과거에 특별했던 사람이야. 그녀가 떠난 2년 동안 클레어는 아기처럼 너를 돌봤어. 네가 좌절해서 화를 내거나 그녀를 무시해도 그녀는 인내했고 계속 웃었어. 그녀는 마치 넘어지지 않기 위해 바위나 너무 자라난 뿌리를 붙잡는 사람처럼 너를 붙들고 있었어."
콜은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걸음에는 피곤함이 묻어 있었고, 그가 말할 때는 친구가 친구에게 이야기하는 듯했다.
"클레어는 네 사랑과 연민을 받을 자격이 있어, 헌터. 그녀는 네 현재와 미래에 있어야 해. 너를 두고 떠나 다른 사람과 결혼한 연인이 아니라."
헌터는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차가운 시선은 많은 것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녀가 아직 너에게 애정을 쏟고 있을 때 그녀를 품어줘.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네가 그녀의 관심을 갈망하게 되고,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인 날이 올 거야."
귀가 먹먹할 정도의 침묵이 흐른 뒤 콜은 문을 가리켰다.
"지금은 그녀가 잠들어 있어. 그래도 들어가서 볼 수 있어."
헌터는 조용히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가 들어가기 전, 콜이 말했다.
"내가 한 말 생각해봐, 친구. 우리 모두 네가 잘되길 바라고 있어. 그리고 네게 가장 좋은 것은 클레어의 품 안에 있어."
헌터가 문을 살짝 열자 침대에 누워 있고 주변에 기계들이 놓인 클레어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눈은 그 광경에 굳어버렸다.
그는 의자에 앉아 링거 바늘이 꽂힌 그녀의 손을 희미하게 쓰다듬었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장밋빛 생기가 사라졌고, 입술은 시든 장미 꽃잎처럼 말라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눈부시게 아름다워 보였다. 그녀의 이목구비를 망가뜨리는 것은 이마 위의 하얀 붕대였다. 왼쪽 중앙에는 피가 보이는 둥근 얼룩이 있었다.
헌터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만졌다. 자신도 모르게 몸을 숙여 그녀의 마른 입술에 입을 맞췄다. 순간 그의 몸이 깨어나는 듯했다. 그는 그녀의 뺨을 쓰다듬으며 놀란 표정으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가 느끼고 있는 이 감정—평온함—은 그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자라에게 키스했을 때조차 이런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는 그녀의 이마에 키스하고 속삭였다.
"일어나, 클레어. 네가 나와 싸우는 게 좋아. 일어나서 나에게 도전해."
***
"일어나, 클레어."
그 목소리는 쉰 기색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존재 안에 평온한 감정을 불어넣었다. 클레어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깊은 곳에서는 자신의 심장이 행복으로 빛나고 있다고 느꼈다.
"일어나서 나에게 도전해."
그 말은 그녀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녀는 무거운 몸과 싸웠다. 눈꺼풀이 아팠지만 억지로 눈을 뜨려 했다. 결국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아무도 없는 것을 발견했다.
클레어가 주변을 살피고 있을 때 다시 그 목소리가 들렸다.
"내 일정 취소하고 모든 회의는 온라인으로 전환해. 아내가 병원에 있으니 며칠 동안 출근하지 않을 거야."
클레어는 그가 걸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숨 쉬는 것조차 잊었다. 그녀의 눈은 빛났고 만족감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헌터, 네가 왔구나."
그녀는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보며 혼잣말처럼 속삭였다.
그때 헌터는 전화를 끊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고, 그들이 느낀 감정은 두 사람의 몸을 모두 떨리게 만들었다.
클레어의 마른 입술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피어났지만, 헌터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그는 그녀의 메시지를 떠올리며 눈에 분노를 담았다.
나는 음식 섭취량을 줄이고 있어, 헌터. 하루에 과일 하나 먹던 걸 하루에 한 입으로 줄일 거야. 네가 집에 와서 나와 함께 먹지 않는 한 음식은 절대 먹지 않을 거야.
"너…"
그가 말을 시작했지만 휴대폰 벨소리가 끊었다.
으르렁거리는 표정을 지은 헌터는 발신자 정보를 확인했다. 자라를 돌보도록 자신의 펜트하우스에 배치한 경비원 엔조였다.
그 순간 클레어는 그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전화를 받는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자라밖에 없었다.
"여보세요."
"도, 도련님."
엔조의 목소리는 극도로 긴장되어 있었다.
"레빈 양이 납치됐습니다."
"말도 안 돼!!! 내 자라가… 안 돼…"
헌터는 정신을 잃은 듯했다.
클레어는 자라의 이름을 듣고 얼굴을 찌푸린 채 그를 바라보았다.
"헌터, 무슨 일이야?"
그녀는 방금 깨어났는데 남편에게서 처음 들은 말이 전 연인의 이름이라는 사실에 속상했다.
그녀의 실망과 달리, 헌터는 마치 자신이 아내가 아니라 관심 받을 가치도 없는 아무 여자나 되는 것처럼 병실을 나가버렸다.
계속…
헌터는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모으고 있는 거 아닌가요?
하지만 불쌍한 클레어, 이제 그냥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전 연인을 위해 이혼하려는 이런 남자와 함께하기 위해 노력하시겠어요? 댓글로 알려주세요.
Chapter 60자라의 시점 (Zara's POV)믿기지 않는 현실의 파도가 내 안에서 요동쳤다. 손에 쥐고 있는 명의 이전 서류를 구겨버리지 않으려 손가락을 경련하듯 떨었다. 현실 같지 않았다. 이럴 수는 없었다. 헌터가 나를 이런 식으로 쫓아낼 수는 없었다."헌... 헌터, 날 쫓아내려는 거예요?" 나는 목소리 톤을 한참 낮추며 상처받은 척 시늉을 했다."난 그저 내 가슴속에서 날마다 커져가는 감정을 외면하고 싶지 않을 뿐이야. 그리고 그 감정은 당신을 향한 게 아니지." 헌터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내 입술이 떨렸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충격이 너무 컸다. 그의 예상치 못한 행보에 내 이성은 거센 폭풍을 맞은 듯 흔들렸다.서류를 멍하니 바라보자, 불과 10분 전에 내가 엔조에게 자만심에 차서 뱉었던 말들이 환청처럼 귀에 울렸다.'난 여왕으로 태어났어. 헌터 맥인타이어가 이 나라의 왕이니까 날 여왕으로 만들어 줄 거라고.'내가 감수했던 모든 위험과 범죄들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나 때문에 파산했던 남편의 살해부터 스스로 꾸며낸 강간 자작극까지. 나는 클레어의 삶을 망가뜨렸고 그녀의 유산 원인이 되었다.이 모든 짓을 겨우 아무것도 아닌 결말을 맞으려고 한 게 아니었다.순금과 비싼 보석으로 장식된 왕관을 내 머리 위에 쓰기 위해 저지른 일이었다. 평생 쓰레기처럼 취급하던 아내에게 갑자기 새로운 감정이 생겼다며 헌터가 이렇게 느닷없이 나타날 수는 없는 법이다. 그가 그녀와 사랑에 빠질 수는 없었다.내 안에서 광기가 치밀어 오르며 창자가 비틀리는 듯했다. 남편을 죽인 후 며칠 동안 내가 자아낸 모든 꿈들이 거친 회오리바람처럼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 꿈들이 어둠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 보였다.나는 눈을 감고 그 꿈들을 꽉 잡았다. 내 꿈이 어둠 속으로 흩어지게 둘 수는 없었다. 클레어가 내 왕관을 차지하게 둘 수는 없다. 헌터가 내 왕관을 그의 전처 머리 위에 씌우도록 방치할 생각은 절대 없었다.내 길을 가로막는 것을 치우기 위해
Chapter 59자라가 킥킥거리며 응수했다. "그리고 그 남자 성기 때문이기도 하지. 이만큼 길고 이만큼 두껍거든." 그녀는 손으로 헌터의 성기 크기와 두께를 가늠해 보였다."너 같은 놈 성기 10개를 합쳐 놓아도 그 사람 것처럼 두껍게는 못 만들어. 게다가 침대 위에서 끝내주거든.""나보다 더?" 엔조는 그녀를 돌아 눕혀 한쪽 유두를 입에 머금었다.자라는 신음을 내뱉었다. 그녀는 그의 다른 한 손을 끌어당겨 젖혀진 반대쪽 유두에 얹어주고 손가락 사이에 쥐여주었다."내 솔직함으로 너의 피나는 노력을 욕되게 하고 싶진 않은데!" 자라가 킥킥거리며 웃자, 엔조가 유두를 깨물어 가슴에 지릿한 고통이 몰려왔다.고통을 되갚아주려 그 남자의 성기를 손으로 꽉 쥐려던 순간, 엔조가 다시 그녀의 몸속을 가득 채우며 거세게 들이치기 시작했다."그렇게 잘한다면서 왜 나랑 이 침대에 누워있는 건데?"자라는 웃음을 지으며 그의 억센 어깨를 끌어안았다."그야 그 멍청이가 전처를 향한 숨겨진 사랑을 이제야 깨닫기 시작했으니까 그렇지. 나한테 손 하나 대지 않으려 하고, 그 여자가 떠난 후로는 시체처럼 걸어 다니고 있거든."그녀는 계속해서 그가 들이치는 쾌감을 느끼며 그의 허리에 다리를 감싸쥐었다. "내가 그날 밤 젖은 몸에 란제리만 입고 돌아왔을 때, 난 뜨거운 밤을 보낼 준비가 다 되어 있었어. 거부할 수 없는 성적 호르몬을 자극하는 약까지 음식에 탔단 말이지. 그런데 그 거대한 성기를 가진 왕이 나와 섹스하지 않으려고 서재에 들어가 문을 잠궈버리더라고.""그래서 그 남자가 전처에게 돌아갈까 봐 두려운 거겠지, 안 그래?" 자라의 입술이 가늘어졌다."하지만 넌 네 맘대로 박아줄 큰 놈을 갖고 있잖아. 그 남자 걱정 따위는 할 필요 없다고."자라의 눈동자가 흥미로움으로 커졌다. 그녀가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엔조가 먼저 답했다."얼마 전에 시내에 있는 BDSM 클럽으로 널 따라간 적이 있거든. 제법 더러운 짓을 즐기는 어린 양이었더군, 응?"엔조는 음흉하게
Chapter 58헌터의 시점 (Hunter's POV)사흘 뒤,헌터는 열려 있는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지만, 그의 눈은 화면을 빤히 바라보고 있을 뿐 정신은 올드 머피 저택에서 피를 흘리고 있던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지나치던 클레어의 그 순간에 멈춰 있었다."내가 그녀에게 무엇을 기대한 거지— 걱정이라도 해줄 줄 알았나?" 그는 비웃음을 터뜨리며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내가 한 짓을 생각하면 내 낭심을 차버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히 신사적이었어.”그는 머릿속에서 그녀를 지울 수 없었다. 헌터는 업무에 전혀 집중할 수 없었다. 그날 밤의 그녀의 잔상과 서늘했던 말들이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맴돌았다.그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 실수를 갚으려 해도 턱없이 부족할 터였다."미안해, 클레어. 내가 너무 멍청했어. 네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어."그는 눈가를 비비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난 게 차라리 다행이야. 자라가 우리 삶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난 너에 대한 내 사랑을 깨닫지 못했을 테니까. 그 사랑은 항상 우리 사이에 있었어. 넌 나를 네 남자로 다뤄왔는데 난 그걸 전혀 몰랐지. 알지도 못한 채 평생 너와 행복한 남편 놀이나 하며 살았을 거야. 그러니까 이렇게 된 게 차라리 잘된 일이지.” 그의 입꼬리가 작은 미소를 그려냈다.“어떤 사건들은 삶에서 중요한 교훈을 주기 위해 일어나는 법이니까. 난 교훈을 얻었어. 지독하게 아픈 방식으로 배웠지. 미안해, 맥인타이어 부인. 죽은 우리 아이를 다시 돌려줄 수는 없겠지. 그건 내 능력이 밖의 일이지만, 우리가 다시 화해하고 정착하면 십여 명은 더 낳아줄 수 있어. 절대 너 혼자 두지 않겠다고 약속할게. 네가 날 죽어서도 보기 싫어한다 해도, 넌 늘 네 주변에서 날 보게 될 거야.” 그는 매일 출근할 때마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클레어의 결혼반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중얼거렸다.가슴은 불안하게 쿵쾅거렸고 눈은 피로로 가려웠다. 그는 단
Chapter 57헌터의 시점 (Hunter's POV)그가 내 뺨을 만지려 다가왔다. 나는 손을 뻗어 그의 턱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그에게서 피가 너무 많이 흘러내려 그의 발밑에는 이미 붉은 피웅덩이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흐트러짐 없이 당당하고 단단한 자세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널 사랑했던 내 자신이 지독하게 혐오스러워. 넌 내 인생 최고의 실수야. 널 만나지 말았어야 했어."그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시선을 내리까벼렸다. 그 모습에 내 가슴이 아려왔다. 저렇게 거대하고 막강한 남자가, 내 말 한마디에 어쩌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넌 나한테 할 만큼 고통을 줬어, 헌터. 다시는 내 앞에 얼굴 비밀 생각 마. 감히 또 내 눈앞에 나타나면 난 자살해 버릴 거니까."그의 고개가 팍 들려 졌고, 그의 눈이 충격으로 크게 벌어졌다."너 그럴 수—""내가 할 수 있다는 거 너도 잘 알잖아. 죽은 내 아이를 걸고 맹세하는데, 난 정말 할 거야."그는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더 가까이 다가왔다."너 절대로 그런 짓 못 해.""할 거야. 그리고 네가 내 아이를 죽인 책임이 있듯, 내 죽음에 대한 책임도 전부 네가 지게 될 거다."그가 무어라 반박하려 했지만 내가 먼저 말을 막아섰다. "가버려, 헌터. 그냥 당장 가라고.""가라고, 제발!" 나는 머리를 감싸 쥐며 소리쳤다.더 할 말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 지독한 통증이 온몸을 괴롭혔다. 나는 벽에 기대어 서럽게 오열했다. 벽에서 몸을 떼어내어 다시 내 방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그러다 헌터와 다시 마주쳤다. 그는 멀리 가지 못했다. 벽에 기대어 선 채, 코트 아래쪽 갈비뼈 부근을 살피고 있었다.나는 기둥 뒤로 숨어 그가 입술을 뒤트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고, 그 모습에 내 가슴속에서 일렁임이 일어났다. 이내 그가 낮은 신음과 함께 왼쪽 갈비뼈에 박혀
Chapter 56무언가가 깨지고 파열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나는 그자리에 얼어붙었다. 헌터와 타일러는 서로의 목숨을 노리듯 맹렬하게 덤벼들었다. 헌터가 타일러를 벽으로 밀쳐치는가 싶더니, 다음 순간에는 타일러가 헌터를 밀쳐내고 있었다.단 몇 초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았지만, 두 사람 모두 온통 피칠갑이 되어 있었다.타일러가 헌터의 머리에 화병을 깨뜨리는 것을 목격하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이 퍼뜩 들었다. 충격으로 헌터가 몇 걸음 뒤로 휘청거렸다. 그는 중심을 잡으려 애쓰더니, 균형을 되찾자마자 미친 늑대처럼 울부짖으며 바닥에 떨어진 날카롭고 뾰족한 유리 조각을 낚아챘다."헌터, 안 돼!" 나는 그를 막아서며 온몸으로 그를 내던졌다.어지러움을 느끼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헌터의 피를 보는 순간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그의 이마는 붉게 물들어 있었고, 왼쪽 눈썹 끝이 찢어졌으며, 입술 오른쪽은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그의 입술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떨리고 있었다. 괴물처럼 변해버린 그의 모습에 가슴속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 밀려왔다."제발..."내가 왜 애원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가 행동을 멈추기를 바라서였을까? 아니면 그의 피가 그렇게 빠르게 흘러내리는 것을 멈추기를 바라서였을까?헌터는 내 떨리는 몸짓을 본 듯, 유리 조각을 쥔 손에 세게 힘을 주어 손바닥을 깊게 찔렀다. 유리 조각을 내던지고 신음하기 전, 그의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는 옆에 있던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타일러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었던 무기를 그가 내려놓았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분노가 진정된 것은 아니었다. 그 분노가 그의 안에서 끓어오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 폭발하기 전에 그를 여기서 끌고 나가야 했다. 나는 그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하지만 요란한 발소리가 가까워지면서 내 수고는 덜어졌다. 여러 사람의 발소리였고, 예상대로 제 오빠와 페넬로페, 그리고 타일러의 가족들이 달려왔
Chapter 55클레어의 시점 (Claire's POV)두 남자가 서로를 노려보는 모습을 바라보는 내 머릿속은 지독한 두통으로 깨어질 듯 아파왔다. 꿈에서조차 이 두 사람이 이렇게 정면으로 맞붙는 상황 따위는 결코 바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그들이 서 있었다. 나를 사이에 두고. 대체 무엇을 위해서? 서로의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해서?나는 기가 막혀 실소를 터뜨리며 눈을 감았다 떴다. 두 사람 중 그 누구도 성인군자는 아니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 그들 모두 손에 피를 묻히고 사는 이들이었다.부자들이 더 큰 부를 쌓는 방식이 바로 그랬다. 피를 흘리는 것. 때로는 자신의 피를, 때로는 타인의 피를.비록 그들이 직접 범죄에 가담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은 없었지만, 그들이 어둠의 세계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쯤은 확신할 수 있었다. 애초에 하수인이나 세력 기반이 없는 남자라면 그렇게 지독한 적의를 품고 타인을 위협하지는 못할 테니까. 그리고 놀랍게도, 두 사람 모두 그런 세계에 발을 걸치고 있었다.그렇기에 나 때문에 그들이 물리적인 주먹다짐까지 벌이게 되는 상황이 끔찍하도록 두려워 몸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너 지금 남의 집 안방에 들어와서 설치고 있다는 거 알고는 있냐?" 타일러가 양손을 불끈 쥐며 지독하게 찌푸린 음성으로 조롱하듯 중얼거렸다.헌터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비웃었다. 하지만 그의 침묵 뒤에 숨겨진 치명적인 위험함이 공기를 통해 그대로 전해져 왔다.헌터가 순간 이성을 잃고 타일러의 목이라도 꺾어 내 손에 쥐여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라면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그가 할 수 있다는 걸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타일러," 나는 헌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그를 막아서며 타일러를 향해 섰다.경련하듯 떨리는 내 손가락이 타일러의 손목을 잡았고, 나는 떨리는 미소로 그를 다독이려 애썼다."잠깐 밖에서 기다려 줄 수 있어? 제발."내 등 뒤에서 낮은 으르렁거림이 울려 퍼져 목덜미의 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