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그는 지난밤 발견한 자료 제출 확인서를 떠올렸다.한서윤이 연구자료를 제출했고, 자신이 직접 확인했다는 기록이었다. 서명까지 남아 있었다.그 종이를 발견한 뒤부터 정우석은 연구실의 오래된 서류를 다시 뒤지고 있었다. 다행히 자신이 보관한 보고서에는 연구실 외부로 반출된 기록이 없었다.하지만 한서윤이 당시 제출한 자료의 사본을 가지고 있다면 문제가 달라졌다.“한서윤이 제출한 자료 중에 설계 수정 기록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봐.”조교수가 고개를 들었다.“학회에서 양측의 제출 자료를 아직 공개하지 않았습니다.”정우석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그럼 공개 검증 자리에서 확인하면 되겠군.”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변호사를 바라봤다.“자료가 없으면 증명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세요. 오래된 노트 몇 장으로 국가 연구 성과를 뒤집을 수는 없으니까.”변호사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정우석은 이미 결론을 정한 사람처럼 말을 이었다.“그리고 검증위원들에게도 알려. 한서윤이 주장하는 기술은 내가 발표한 논문을 기반으로 발전한 것이라고.”그의 목소리에는 오랜 세월 학계에서 자신의 말이 통했던 사람 특유의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그는 아직 한서윤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 검증 당일 아침, 한국과학기술대학교 대강당 앞에는 취재진과 연구자들이 몰려들었다.공식적으로는 학회가 주관하는 연구윤리 공개 검증이었지만, 국가 핵심 기술과 관련된 사안인 만큼 관심이 컸다.서윤이 현석과 함께 건물에 도착했을 때 입구에는 이미 방송 카메라 여러 대가 설치되어 있었다.기자들이 그녀를 알아보고 움직이기 시작했다.“한서윤 박사님, 오늘 결과에 자신 있으십니까?”“정우석 교수 측에서는 박사님 자료의 출처를 문제 삼고 있는데요!”서윤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출입 등록대로 향했다. 현석이 서류 가방을 내려놓고 신분 확인을 하는 동안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다가왔다.권도준이었다.짙은 남색 정장에 넥타이를 느슨하게 맨 도준
공개 검증을 사흘 앞둔 오전, 서윤은 한국과학기술대학교에서 보내온 공문을 읽고 있었다.학회가 구성한 검증위원회는 양측에 연구 원자료와 설계 과정에 대한 증빙을 제출하도록 요청했다. 검증 당일에는 연구 기여도에 관한 질의와 기술적 재현 가능성에 대한 확인도 진행할 예정이었다.문제는 마지막에 첨부된 조건이었다.원자료의 작성 시점과 출처가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을 경우, 해당 자료는 연구 기여도를 판단하는 보조 자료로만 활용한다.현석은 그 문장을 읽자마자 얼굴을 찌푸렸다.“이거 정우석 교수한테 유리한 조건 아닙니까? 그 사람은 이미 논문을 발표했고 정부 과제까지 수행했잖아요. 박사님은 당시 연구실 학생이었고요.”서윤은 공문을 내려놓고 책상 위에 펼쳐진 자료를 살폈다.7년 전 연구 노트 세 권과 개인 저장장치에 남아 있던 설계 파일, 수정 날짜가 기록된 작업 내역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그래서 설계 과정을 보여주려는 거예요.”“그런데 상대가 원자료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나오면요?”서윤은 오래된 노트를 펼쳐 한 페이지를 가리켰다.“이건 제가 처음 만든 구조예요. 그리고 이쪽은 실험하면서 수정한 구조고요. 두 설계가 왜 다른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실제로 연구한 사람이겠죠.”현석이 노트를 들여다보는 동안 서윤은 정우석의 논문을 다시 열었다.그가 발표한 설계에는 자신이 오래전 폐기했던 구조가 남아 있었다. 당시 서윤은 그 오류를 해결하지 못하면 실제 장비에 적용할 수 없다는 사실까지 확인했지만, 정우석의 논문에서는 오히려 그 구조를 핵심 성과로 소개하고 있었다.서윤은 수정된 설계도와 실험 기록을 별도 파일로 묶었다.“공개 검증 때 이것도 보여주실 겁니까?”“필요하면요. 다만 처음부터 전부 공개하지는 않을 거예요.”서윤은 국가 핵심 엔진과 연결된 자료를 따로 분리했다. 공개할 수 있는 초기 연구와 보안이 필요한 후속 기술은 구분해야 했다.현석은 그녀가 자료를 정리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박사님, 화나지 않으세요?”
서윤은 마이크를 들고 가장 앞에 서 있던 기자를 바라봤다.“정우석 교수님이 공식 검증을 요청하셨다고 들었습니다.”기자들이 일제히 조용해졌다.“네, 박사님. 검증에 응하실 생각입니까?”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응하겠습니다.”카메라 셔터 소리가 연달아 터졌다.“그럼 표절 의혹을 부인하시는 겁니까?”“제가 연구한 내용을 다른 사람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데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말로 다투고 싶지는 않습니다.”기자 한 명이 앞으로 마이크를 내밀었다.“어떤 방식으로 해명하실 생각입니까?”서윤은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공개 검증을 요청하겠습니다. 원자료와 설계 과정을 모두 확인할 수 있는 자리에서요.”그 순간 기자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번졌다.“정우석 교수님과 같은 자리에서 검증받겠다는 말씀이십니까?”“네. 그분도 자신의 연구라고 말씀하셨으니까요.”서윤은 기자들을 차례로 바라봤다.“누가 먼저 발표했는지가 아니라, 누가 그 연구를 만들었는지 확인하면 됩니다.”그 말을 끝으로 서윤은 보안요원들의 안내를 받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현석은 그녀를 따라오며 여전히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박사님, 정말 공개 검증을 하실 생각이세요? 상대가 정우석 교수인데요. 학회에서도 영향력이 상당한 사람입니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서윤은 안으로 들어서며 현석을 바라봤다.“그래서 더 공개적으로 해야죠.”한 시간 뒤, 정우석의 연구실에도 서윤의 발언이 전달됐다.정우석은 기자회견 영상을 보다가 화면을 멈췄다.모니터 속 한서윤은 카메라 앞에서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은 얼굴이었다.“공개 검증이라…….”그가 낮게 중얼거리자 옆에 서 있던 조교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교수님, 이건 조금 신중하게 대응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한서윤 박사가 원자료를 갖고 있을 수도 있어서요.”정우석은 안경을 벗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원자료가 있다고 해서 그게 전부 자기 연구가 되는 건 아니야.”“하지만 설계 과정까지 검증하겠다고 했습니다.”정우석은
“의심하셔도 됩니다. 대신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확인해 주세요. 저도 그걸 원합니다.”차정혁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참고로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오늘 오전 연구 지원 심의에 참여하는 외부 자문위원들 사이에서 같은 의견이 나왔습니다.“어떤 의견인가요?”—한 박사님의 연구 성과에 대한 검증이 끝나기 전까지 지원 결정을 서두르지 말자는 내용입니다.서윤은 책상 위의 메모지를 바라봤다.“그 의견을 낸 분들이 누군지 알 수 있을까요?”—아직 공식적으로 공개된 내용은 아닙니다. 다만 일부 위원들이 정우석 교수와 오랫동안 함께 연구과제를 수행했던 분들이라는 사실은 확인했습니다.서윤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이제야 여러 기관에서 비슷한 말을 꺼낸 이유가 이해됐다.정우석은 단순히 자신의 연구를 가로챈 데서 그치지 않았다.서윤이 독립 연구를 시작할 기회까지 막으려 하고 있었다.“알겠습니다, 실장님. 일정은 그대로 진행해 주세요.”통화를 마친 서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현석 씨, 원자료 목록 다시 정리해 주세요. 개인 저장장치에 남아 있는 파일뿐 아니라 당시 연구실 서버에 제출했던 기록도 확인해야겠어요.”“학교 쪽에서 협조해 줄까요?”“정식으로 요청해 봐야죠.”서윤은 가방에서 오래된 연구 노트를 꺼냈다.누렇게 변한 종이 사이에는 손으로 그린 설계도와 실험 과정에서 수정한 수식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정우석의 논문에는 완성된 결과만 있었다.하지만 서윤의 노트에는 그 결과에 도달하기까지 수없이 실패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처음에는 왜 그런 구조를 선택했는지, 어떤 문제가 발생해 설계를 바꾸었는지, 무엇을 확인하지 못해 연구를 중단해야 했는지까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서윤은 페이지를 넘기다가 한곳에서 손을 멈췄다.정우석의 논문에 실린 설계도에는 자신의 초기 설계에서 이미 수정했던 오류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현석 씨, 이것 좀 보세요.”서윤이 노트와 논문을 나란히 놓자 현석이 가까이 다가왔다.“같은 구조인데요.”
그는 다시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대신 정우석이 어떤 사람인지,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지 전부 알아봐. 한서윤한테 손댄 대가가 뭔지는 알아야 할 테니까.”오세진이 나간 뒤에도 재헌은 한동안 보고서를 들여다봤다.화면 속 서윤은 대전에서 촬영된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그 사진 아래에 붙은 '표절 의혹'이라는 글자가 유난히 거슬렸다.도원인베스트먼트에서는 이미 오전부터 관련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도준은 회의실 대형 화면에 띄워진 기사를 바라보며 실무진의 보고를 들었다.“정우석 교수 측에서 연구윤리위원회 소집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문제가 장기화되면 공동 프로젝트 일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도준은 서류를 넘기며 물었다.“도원 쪽 계약에는 어떤 조항이 있습니까?”“원천기술의 권리 관계에 중대한 분쟁이 발생할 경우 공동 연구의 일부를 보류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법무팀에서는 해당 조항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습니다.”도준은 서류를 덮었다.“법무 검토는 진행하세요. 다만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의혹만으로 한 박사의 연구 참여를 제한하지는 마십시오.”회의실이 잠시 조용해졌다.도준은 이어서 관련 자료를 직접 확인하겠다고 말했다.그는 한서윤이 어떤 연구자인지 알고 있었다.2년 동안 함께 일하면서 서윤이 기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과 연구자료를 다루는 태도를 지켜봤다. 그렇다고 개인적인 신뢰만으로 모든 의혹을 무시할 생각도 없었다.오히려 이번 일은 정확하게 밝혀져야 했다.서윤이 자신의 연구를 증명할 수 있다면 그보다 확실한 반박은 없었다.회의가 끝난 뒤 도준은 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몇 차례 신호가 울린 끝에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네, 대표님.“기사 봤습니다. 필요한 자료가 있습니까? 도원 쪽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라면 찾아보겠습니다.”잠시 침묵이 흘렀다.—지금은 괜찮아요. 제가 먼저 확인할 게 있어서요.도준은 창가로 걸어가며 넥타이를 조금 느슨하게 풀었다.“알겠습니다. 대신 공동 프로젝트 때문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쌓여 있었다. 학회 관계자와 과거 함께 연구했던 동료들, 최근 제안서를 보낸 연구기관 담당자들의 이름이 화면에 떠 있었다.그중에는 강성그룹 오세진의 이름도 있었다.서윤은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가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정우석이 먼저 움직였다는 사실은 분명했다.문제는 그가 단순히 언론에 의혹을 제기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강성그룹 본사에서도 관련 기사가 빠르게 공유되고 있었다.재헌은 오전 임원회의를 마친 뒤 오세진에게 보고서를 건네받았다.“대표님, 한서윤 박사 관련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7년 전 연구 성과와 관련된 표절 의혹인데, 정우석 교수 측에서 먼저 공식 입장을 냈습니다.”재헌은 서류를 넘기다가 서윤의 이름이 보이자 손을 멈췄다.“한서윤이 남의 연구를 가져갔다고?”“정확히는 연구 기여도와 원천기술 소유권에 대한 문제 제기입니다. 다만 일부 언론에서는 이미 표절 의혹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재헌은 기사를 읽으며 미간을 좁혔다.그는 서윤이 대학 시절 어떤 연구를 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결혼 생활 동안 서윤이 연구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대체로 바쁘다는 이유로 흘려들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기술 설명이 길어지면 다른 화제로 돌리기도 했다.그런데 이제는 자신이 모르던 그 시절이 서윤을 공격하는 무기가 되어 있었다.“정우석이라는 사람, 알아봐.”“이미 확인 중입니다. 강성 계열사에서도 과거 기술자문을 받은 이력이 있습니다.”재헌은 보고서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지금도 거래하는 곳이 있어?”“현재 직접적인 계약은 없습니다. 다만 일부 계열사 연구진과 학술 교류가 있습니다.”“관련 자료 전부 가져와. 그리고 이 문제 때문에 한서윤 박사가 참여한 프로젝트에 불이익이 생기지 않도록 해.”오세진은 지시를 적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박사님께 직접 연락하시겠습니까?”재헌의 시선이 휴대전화로 향했다.서윤에게 당장 전화를 걸고 싶었다.누가 이런 일을 벌였는지, 왜 자신에게 먼저 이야기하지 않았는지 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