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그 모습이 이상하게 사랑스러웠다.“네. 제대로 들으셨어요.”도준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서윤 씨가 그런 말을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왜요? 도준 씨는 매번 좋아한다고 하면서요.”그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그건 제가 좋아하는 거니까요. 서윤 씨 마음까지 제 뜻대로 되는 건 아니잖습니까.”서윤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녀가 먼저 도준의 눈을 바라봤다.“그런데 저도 도준 씨가 좋아요.”도준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강재헌과 마주 앉았을 때도 흔들리지 않던 눈빛이 지금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손을 들어 서윤의 뺨 가까이 가져갔다가 잠시 멈췄다.“안아도 되겠습니까?”서윤은 대답 대신 한 걸음 다가섰다.도준의 팔이 그녀의 등을 감쌌고, 서윤은 그의 가슴에 이마를 기댔다. 단단한 체온과 규칙적인 심장 소리가 가까이 느껴졌다.도준은 그녀를 세게 끌어당기지 않았다. 다만 서윤이 물러서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 조금 더 깊이 품었다.“오늘 이 말을 들을 줄 알았다면 아침부터 이렇게 침착하게 일하지는 못했을 겁니다.”그가 낮게 웃자 서윤도 따라 웃었다.“권도준 대표님이 그렇게 쉽게 흔들리는 분이셨어요?”“다른 일에는 별로 그렇지 않습니다.”그는 그녀의 머리 위로 턱을 살짝 기울였다.“서윤 씨한테만 자꾸 이러네요.”서윤은 그의 품에서 고개를 들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시선이 마주치자 두 사람 모두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도준은 그녀의 뺨에 닿아 있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넘겨주었다.“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서윤이 눈을 깜빡였다.“왜요?”도준의 눈빛이 깊어졌다.“더 가까워지고 싶지만, 서윤 씨가 지친 날 제 욕심부터 앞세우고 싶지는 않아서요.”서윤은 그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다시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조금만 더 이러고 있을래요.”도준은 그녀를 품은 채 낮게 대답했다.“얼마든지요.”***같은 밤, 강성그룹 대표이사실에는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재헌은 한서윤에게
그녀가 돌아서자 재헌이 낮게 불렀다.“한서윤, 권도준이 네 생각처럼 좋은 남자인지 두고 보자.”서윤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그 사람을 시험할 생각이라면 하지 마세요. 제 연구를 이용해서 누군가를 압박하는 일은 더 이상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이에요.”그녀는 안내 직원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엘리베이터로 향했다.재헌은 닫히는 문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서윤이 자신의 손을 피한 순간보다 다른 남자가 좋다고 말하던 순간이 더 선명하게 남았다.***저녁 무렵, 권도준은 연구센터에서 보낸 시험 결과를 확인하고 있었다.새로운 보정 방식으로 반복 시험을 통과했다는 보고서였다. 기술담당 임원은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덧붙였지만, 도준은 서윤이 정리한 실험 과정을 읽으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강성이 장비를 선점하려고 움직인 사이, 서윤은 오히려 기존 장비로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냈다.그는 수정된 사양을 기준으로 구매 계획을 다시 올리라고 지시했다. 연구센터에 필요한 장비를 우선 배정하도록 확인한 직후에는 보안 책임자에게서 연락이 들어왔다.“대표님, 오늘 강성그룹 강재헌 대표가 예약 없이 방문했습니다.”도준의 손이 멈췄다.“한 박사님은 괜찮으십니까?”“직접 내려오셔서 응대하셨습니다. 물리적인 접촉은 없었고, 방문객은 이후 돌아갔습니다.”도준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당시 상황은 기록대로 보존해 주세요. 한 박사님께서 요청하지 않은 별도 조치는 하지 마시고요.”통화를 마친 그는 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서윤은 두 번째 신호가 울리기 전에 받았다.—도준 씨.“강 대표가 연구센터에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불편한 일은 없었습니까?”—괜찮아요. 제가 해야 할 말은 했어요.평소처럼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조금 지친 기색이 느껴졌다.도준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아직 연구센터에 계십니까? 식사는 하셨고요?”—아직이요. 정리할 자료가 조금 남았어요.“그럼 제가 저녁을 가져가겠습니다. 같이 먹어주실 수 있습니까?”서윤이
현석이 보완을 요청할지 묻자 서윤은 다른 회사들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라고 지시했다. 특정 회사라고 예외를 둘 생각은 없었다.그녀는 직접 검토 의견을 작성했다.*원천기술 소유권 및 후속 연구 성과의 귀속 범위를 명확히 기재해 주시기 바랍니다. 연구개발 방향과 검증 결과에 대한 독립성은 필수 조건입니다.*문서를 전송하자 현석이 작게 웃었다.“강성에서 이 정도 조건을 내밀었는데도 박사님은 별로 놀라지 않으시네요.”서윤은 책상 위에 놓인 시험 결과를 정리했다.“돈이 많으면 좋은 장비를 살 수는 있겠죠. 하지만 어떤 연구를 해야 하는지까지 대신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예전에는 연구비를 구하지 못해 장비 하나를 빌리는 일도 어려웠다. 이제는 여러 기업이 먼저 찾아와 투자하겠다고 했지만, 그럴수록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이 분명해졌다.서윤은 다시 모니터 앞으로 돌아왔다.그날 오후 진행한 다섯 차례의 시험 결과가 모두 같은 범위 안에 들어와 있었다.“현석 씨, 이번 결과는 정리해서 외부 검증 준비까지 해두세요. 우리가 성공했다고 말하는 것보다 다른 연구진도 같은 결과를 얻는 게 중요하니까요.”현석이 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할 무렵, 연구센터 안내 데스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박사님, 강성그룹 강재헌 대표님이 오셨습니다.”서윤의 손이 멈췄다.“방문 예약이 있나요?”—아니요. 직접 만나서 말씀하실 일이 있다고 하십니다.서윤은 예약 없는 개인 방문은 받지 않겠다고 전해 달라고 했다. 사업 제안과 관련된 내용이라면 담당자에게 전달하면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그러나 몇 분 지나지 않아 안내 데스크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강재헌이 돌아가지 않고 잠깐만 내려오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서윤은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제가 직접 이야기할게요.”***연구센터 로비에는 강재헌이 서 있었다.그는 서윤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곧바로 다가왔다. 안내 직원과 보안 담당자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한서윤, 왜 전화를 안 받아?”서윤
서윤은 결과를 한 번 더 확인한 뒤 같은 조건으로 다섯 번 반복하도록 지시했다. 재현 여부를 확인하는 동안에는 전날 작성한 구매 목록을 열어 새 방식으로 대체할 수 있는 장비를 표시했다.고가 장비 가운데 일부는 더 이상 당장 필요하지 않았다.그녀는 도원의 사업본부장에게 수정된 사양서를 보냈다.*초기 검증 장비 사양을 다시 조정했습니다. 오늘 시험 결과가 재현되면 해당 기준으로 발주해 주세요.*전송을 마친 순간 권도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네, 도준 씨.”—연구는 잘되고 있습니까?서윤은 화면을 바라보며 웃었다.“좋은 결과가 나왔어요. 그런데 지금 회의 중 아니세요?”—끝났습니다. 강 대표와 만났고, 협력 제안은 정식 절차에 따라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비공개 자료가 포함된 경위도 별도로 확인하기로 했고요.서윤은 잠시 말을 멈췄다.“재헌 씨가 뭐라고 하던가요?”—투자 조건을 더 좋게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다만 원천기술에 대한 권리는 아직 정리되지 않았더군요.서윤은 모니터에 표시된 시험 결과를 바라봤다.“그럼 제가 검토할 수 있는 제안은 아니겠네요.”—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판단은 서윤 씨가 하시면 됩니다.그의 말에 서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도준은 늘 자신이 결정해야 할 일을 대신 결정하려 하지 않았다. 필요한 정보를 정리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으며, 그녀의 판단이 내려지면 그에 맞춰 움직였다.“고마워요. 오늘 연구 결과도 곧 보내드릴게요.”—기대하겠습니다.통화를 마치려던 순간 도준이 다시 그녀를 불렀다.—서윤 씨, 어제 저녁 저도 즐거웠습니다. 다음에는 연구 이야기 없이 조금 더 오래 만나고 싶습니다.서윤은 손에 쥔 펜을 내려놓았다. 현석은 시험 결과를 확인하느라 통화에 관심이 없었다.“저도요.”잠시 침묵이 흐른 뒤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그 말, 잊지 않겠습니다.***도원 본사 회의가 끝난 뒤 강재헌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강성의 투자 제안서를 다시 펼쳤다.
회의실에는 양측 실무진이 앉아 있었다. 재헌이 사업 이야기를 개인적인 관계로 끌고 가려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도준은 물잔을 내려놓았다.“제가 어디에 있느냐는 강 대표님께 설명할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는 한 박사님의 사생활을 논할 이유도 없습니다.”“권 대표는 자신이 무슨 자격으로 그 여자 옆에 서 있는지 생각해 본 적 있습니까?”도준의 표정이 서늘해졌다.“적어도 강 대표님의 허락이 필요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그는 사업본부장에게 손짓했고, 대형 모니터에는 도원의 국내외 시험설비 현황과 신규 발주 계획이 나타났다.“강성에서 세명정밀에 제시한 금액은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도원은 그 장비를 기존 사양대로 구매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재헌의 시선이 화면에 고정됐다.“무슨 뜻입니까?”“한 박사님이 시험 방식을 개선하셨습니다. 기존 장비로 초기 검증을 진행할 수 있게 됐고, 새로 필요한 장비의 사양도 달라졌습니다.”도준은 수정된 구매 계획을 가리켰다.“도원은 이미 다른 공급처와 계약 절차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강성이 세명정밀에 어떤 조건을 제시하든 연구 일정에는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재헌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졌다.“이번 일을 계기로 도원은 특정 업체에 대한 의존도도 줄이기로 했습니다. 국내 공급처 두 곳과 해외 법인의 장비를 함께 활용할 겁니다.”도준은 재헌을 바라봤다.“강 대표님이 한 업체를 움직여 연구를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하셨다면 계산을 잘못하신 겁니다.”회의실에 묵직한 침묵이 내려앉았다.재헌은 반박하려 했지만 화면에 표시된 계약 진행 현황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도준은 이미 대체 공급망을 마련했고, 서윤의 기술 개선까지 반영해 투자 규모를 조정해 놓았다. 강성이 거액을 제시하며 선점하려 했던 장비는 더 이상 도원의 약점이 아니었다.도준은 마지막 자료를 띄웠다.“강성의 협력 제안은 한 박사님께 전달하겠습니다. 다만 이 문서의 정보 출처에 대한 답변은 별도로 받겠습니다.”그의 목소리는 끝까지
강재헌이 도원에너지테크 본사에 도착한 것은 오전 아홉 시 오십 분이었다.검은 세단 두 대가 지하 주차장에 들어서자 대기하던 안내 직원이 방문증을 건넸다. 재헌은 그것을 받아 들고도 곧바로 목에 걸지 않았고, 오세진이 대신 재킷 주머니에 넣으려 하자 보안 담당자가 정중하게 제지했다.“방문증은 건물 안에서 착용해 주셔야 합니다.”재헌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강성그룹 본사에서는 누구도 자신에게 이런 요구를 하지 않았지만, 이곳은 권도준의 건물이었다. 그는 불쾌한 기색을 감춘 채 방문증을 목에 걸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대표님, 오늘은 협력 제안 조건을 설명하는 자리입니다. 법무팀에서도 불필요한 언쟁은 피하는 편이 좋겠다고 했습니다.”오세진의 조심스러운 당부에 재헌은 닫힌 엘리베이터 문을 바라봤다.“내가 싸우러 가는 줄 알아? 권도준이 먼저 만나자고 했으니까 무슨 자신감인지 들어보려는 거야.”그러나 전날 밤부터 그의 신경을 건드린 것은 협력 조건이 아니었다. 한서윤이 권도준과 저녁을 먹었다는 보고를 받은 뒤로, 자신에게는 단 한 시간도 내주지 않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식사했다는 사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회의실 앞에 도착했을 때 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권도준은 창가에서 서류를 확인하고 있었다. 검은 정장에 넥타이까지 단정하게 갖춘 모습이었고, 곁에는 도원의 법무팀장과 사업본부장이 앉아 있었다.재헌이 들어서자 도준은 서류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악수를 청했다. 재헌은 잠시 그 손을 바라보다가 마주 잡았으나, 도준은 먼저 손을 놓는 순간까지도 표정이 달라지지 않았다.“직접 보자고 할 만큼 급한 일이 있나 봅니다.”“급한 일은 맞습니다. 서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편이 좋겠군요.”도준이 상석에 앉자 재헌도 맞은편 의자를 당겼다. 곧이어 대형 모니터에 세명정밀로 전달된 강성그룹의 제안서가 나타났다.재헌은 화면을 훑다가 시선을 멈췄다. 도원의 시험장비 도입 일정과 내부 예상 비용이 적혀 있었다.“강성에서 세명정밀에 보낸 자료입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