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저승에도 맛집이 있다고요?" 3관문을 통과한 두 사람, 처음으로 함께하는 축하 저녁. 500년 전통의 국밥집에서 무장승은 처음으로 옅게 웃음을 참는다. 하지만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다. "대부분 소멸했소."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이들의 결말을 듣고, 바리는 자신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운명 위에 서 있었는지 실감한다. 그리고 밤하늘 위로 펼쳐지는 이야기, 죽은 이들의 간절한 소원이 별이 되어 빛난다는데. "당신을 다시 만나는 것." 오백 년 동안 묵혀온 소원의 정체가 드디어 밝혀지는 순간, 바리의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다음 날 아침, 바리가 출근하자마자 사무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덕순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바리 책상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언니, 큰일 났어요.""뭔데요, 아침부터 왜 이렇게 심각해요?""어제저녁에 언니 책상에 이상한 사람이 다녀갔대요. 경비팀 CCTV에 찍혔는데."바리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책상 위를 내려다보니, 평소와 다르게 낯선 명함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새하얀 명함에는 아무 글자도 없이 단순한 눈동자 문양 하나만 새겨져 있었다."이게... 뭐예요?""저도 몰라요. 근데 경비팀에서 그 사람 얼굴을 확인하려고 CCTV를 돌려봤는데, 이상하게 화면에 아무것도 안 잡혔대요. 사람 형체는 분명히 지나갔는데 얼굴만 뿌옇게 흐려져서."바리는 명함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손끝에 닿는 순간, 서늘한 냉기가 훅 끼쳤다. 뒤집어봐도 앞면과 마찬가지로 아무 글자도 없었고, 그저 눈동자 문양만이 마치 이쪽을 노려보는 것처럼 또렷하게 새겨져 있었다."덕순 씨, 이거 진짜 확실해요? 다른 직원이 실수로 놓고 간 건 아니고요?""에이, 언니. 저희 팀에 이런 명함 쓰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게다가 경비팀 반장님 말로는, 그 사람 걸음걸이가 진짜 이상했대요. 바닥에 발이 안 닿는 것처럼 스르륵 지나갔다고."바리는 그 말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팀장님한테 바로 보여드려야겠어요."무장승은 명함을 보자마자 표정이 굳었다. 그는 명함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관측자 조직의 신호요.""신호요? 그냥 경고 같은 게 아니라요?""관측자들은 직접적인 접촉을 극도로 꺼리오. 이렇게 명함을 놓고 가는 건, 이미 우리 움직임을 알고 있다는 걸 알리는 행위요."바리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그럼... 어제 지하 3층에 간 거, 그것도 다 알고 있다는 거예요?""...그럴 가능성이 높소."그때 국장이 다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평소의 능글맞은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큰일 났다. 나도 방금 같
관사로 돌아온 바리는 소파에 그대로 널브러졌다. 눈은 퉁퉁 부어 있었고, 목소리는 잔뜩 잠겨 있었다."팀장님, 저 지금 완전 방전됐어요. 오늘 하루 감정 소모가 인생 통틀어 제일 심한 것 같아요.""...쉬시오.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해도 되오."무장승이 조심스럽게 담요를 가져다 바리 어깨에 덮어주었다. 평소라면 어색해했을 손길인데, 오늘은 이상하게 자연스러웠다. 손끝이 어깨에 닿았다 떨어지는 그 짧은 순간에도, 무장승은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애꿎은 창밖만 쳐다봤다. 바리는 그 어색함이 귀엽다고 생각하며, 담요를 끌어당기며 픽 웃었다."팀장님, 저 배고파요. 근데 밥 차릴 힘이 하나도 없는데.""...뭘 먹고 싶소.""라면이요. 그냥 뜨끈한 라면 하나면 다 나을 것 같아요."무장승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무 즉각적인 반응이라 바리가 오히려 당황할 정도였다."제가 끓일게요, 그냥.""아니오. 내가 하겠소.""팀장님이 라면을 끓인다고요? 팀장님 요리할 줄 아세요?""...규정집 읽는 것보단 쉬울 거요."바리는 그 말에 웃음이 픽 터졌다. 무장승이 부엌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냄비를 꺼내 물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손놀림이 어딘가 어색했다. 물 양을 재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감으로 붓다가, 냄비 뚜껑을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맸다."팀장님, 뚜껑은 그 옆 찬장에요.""...알고 있었소.""방금 세 번째 찬장 열었다 닫으셨잖아요."무장승은 대답 없이 헛기침만 했다. 바리는 소파에 누운 채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웃음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500년 저승 최고 엘리트 심사관이 라면 하나에 저렇게 쩔쩔매는 모습이라니, 아까까지의 무거운 기분이 조금씩 풀리는 것 같았다.'저 사람, 규정집은 삼백이십 페이지도 하루 만에 외우면서 라면 봉지 하나는 왜 저렇게 헤매지.'바리는 그 부조화가 웃기면서도 어쩐지 마음이 따뜻해졌다. 완벽해 보이던 사람의 서툰 구석을 발견하는 게, 이상하게 반가웠다.물이 끓기 시작하자 무장승은 면과 스프를 넣
"거기 누구요?"노인의 목소리가 복도에 쩌렁쩌렁 울렸다. 바리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뭐라도 말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저, 저희요? 청소하러 왔는데요!"바리가 먼지떨이를 흔들며 어색하게 웃었다. 노인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세 사람을 훑어봤다. 국장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사탕 봉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고, 무장승은 헬멧 챙을 더 눌러 내렸다."청소? 이 구역은 청소 일정이 화요일인데. 오늘 목요일 아니오?"바리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때 국장이 나섰다."아이고, 영감님. 저희 신입이라 일정을 잘못 알고 왔지 뭡니까. 죄송합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국장이 능청스럽게 돌아서려는데, 노인의 눈이 가늘어졌다."잠깐만."세 사람의 발이 동시에 멈췄다. 노인이 천천히 다가오더니, 국장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봤다."당신, 국장 아니오?""...아, 아니요, 저는 그냥 평범한 시설관리 직원인데.""국장 맞구먼. 내가 500년 전에 신입 시절 결재판 들고 다니던 얼굴을 어떻게 잊어. 그 사탕 냄새도 똑같고."국장은 결국 한숨을 푹 내쉬며 변장을 포기했다."...들켰네요.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입니다."노인의 표정이 의외로 부드러워졌다."오랜만이오. 그동안 승진도 못 하고 여전히 국장이구먼.""승진할 마음이 없어서 그런 겁니다.""핑계는. 예전에도 승진 시험 앞두고 도망 다니더니, 그 버릇 아직도 못 고쳤나 보오.""영감님도 여전하시네요. 잔소리도 500년 전 그대로시고."노인이 픽 웃었다. 그 웃음에 바리는 조금 안도가 됐다. 적어도 적대적인 상대는 아닌 듯했다."근데 이 시간에 여기까지 웬일이오? 그것도 이렇게 어설픈 변장까지 하고."국장이 바리와 무장승을 흘끗 쳐다봤다. 더 이상 숨길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듯, 그는 목소리를 낮췄다."영감님,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 이 아가씨가 찾는 사람이 있어서요."노인의 시선이 바리에게로 향했다. 바리는 침을 꼴깍 삼키며 앞으로 나섰다."저, 제 엄마를 찾고 있어요. 이름
"그러니까, 변장을 해야 한다는 거죠?"바리는 국장이 던져준 종이봉투를 열어보다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안에는 낡아빠진 청소부 조끼와 먼지떨이, 그리고 이름표가 삐뚤빼뚤하게 붙은 명찰이 들어 있었다."지하 3층은 아무나 못 들어가. 근데 청소 용역은 예외거든. 아무도 신경 안 써.""저기요, 이 명찰 이름이 '순자'인데요? 저 순자 아니거든요?""그럼 오늘부터 순자야. 순자 씨, 잘 부탁해."국장이 능글맞게 웃으며 사탕을 또 하나 까 물었다. 바리는 헛웃음을 흘리며 조끼를 걸쳐 입었다. 사이즈가 안 맞아 소매가 손등을 다 덮었다."근데 이 조끼 왜 이렇게 냄새나요? 이거 몇 년 된 거예요?""글쎄, 한 이백 년쯤? 폐기물 창고에서 찾은 거라 좀 그럴 거야.""이백 년이요? 세탁은 하고 보관하신 거 맞아요?""세탁이라는 개념이 저승엔 좀 느슨하게 적용되거든."바리는 코를 틀어막으며 조끼 지퍼를 겨우 채웠다. 먼지떨이를 흔들어보니 케케묵은 먼지가 풀풀 날렸다. 이 상태로 잠입은커녕 재채기부터 터질 것 같았다."팀장님은요? 팀장님도 변장하세요?"무장승 쪽을 돌아본 바리는 순간 말을 잃었다. 그는 이미 시설관리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서 있었는데, 문제는 그 표정이었다. 평소와 똑같이 무표정한 얼굴로 헬멧까지 쓰고 있으니, 변장이 아니라 그냥 코스프레 화보처럼 보였다."...뭘 그렇게 보시오.""아니, 팀장님 그 얼굴로 시설관리팀이라고 하면 누가 믿어요? 딱 봐도 대기업 임원 코스프레하는 건데.""업무에 지장 없소.""지장 있다니까요? 팀장님, 조금이라도 웃어보세요. 아니면 좀 구부정하게 걸으시든가."무장승은 진지하게 자세를 낮추려 시도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구부정한 자세로 뻣뻣하게 걷는 모습이, 오히려 더 수상해 보였다. 바리는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아니 그거 완전 로봇이 고장 난 줄 알겠어요! 팀장님, 그냥 평소대로 걸으세요, 제발.""...평소대로 걸으면 티가 난다 하지 않았소.""그건 그런데, 지금은 더 티가 나거든요
"해온."무장승이 그 이름을 다시 한번 되뇌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팀장님, 아까부터 그 이름 되게 심각하게 말씀하시는데, 저 진짜 불안한데요."바리는 국장실 문 앞에 선 채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봤다. 국장은 이미 낡은 서류함 앞에 쪼그려 앉아 뭔가를 뒤지고 있었다. 평소 사탕이나 물고 빙글빙글 웃던 얼굴이 지금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찾았다."국장이 먼지 쌓인 서류철 하나를 꺼내 들었다. 표지에는 붉은 도장이 여러 개 찍혀 있었는데, 하나같이 오래되어 색이 바래 있었다."이거 열람 등급이 원래 이급 이상만 가능한 건데... 에잉, 지금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니지."국장이 서류철을 펼치자 바리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첫 장에 적힌 이름 석 자가 눈에 들어왔다.해온 — 이급 관측자, 파견 임무 중 실종 처리"이급... 관측자요?"바리의 목소리가 떨렸다. 무장승이 그 옆에서 서류를 낚아채듯 가져가 읽어 내려갔다. 눈빛이 점점 어두워지는 게 바리 눈에도 보였다."파견 임무 중 실종. 이게 무슨 뜻이에요? 설마 우리 엄마가...""죽었다는 뜻은 아니오."무장승이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실종 처리는 소멸이나 강제 소환과는 다른 절차요. 규정상 명확히 구분되어 있소.""그럼 뭔데요, 그 실종이라는 게."국장이 한숨을 푹 내쉬며 소파에 털썩 앉았다. 평소 같으면 낚시 트로피 자랑이라도 늘어놓을 법한데, 오늘은 그럴 기색이 전혀 없었다."실종 처리라는 건 말이지, 본인이 스스로 규정 밖으로 사라졌다는 뜻이야. 강제로 끌려가거나 소멸당한 게 아니라, 자기 발로 관리국 체계에서 벗어난 거지.""자기 발로요? 왜요? 왜 그런 짓을 해요?""그야 나도 정확힌 몰라. 근데."국장이 바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눈빛이 평소의 능글맞음은 온데간데없이 진지했다."관측자와 인간 사이에서 아이가 생기는 거, 그거 원래 있어선 안 되는 일이야. 규정으로 철저히 금지돼 있거든. 발각되면 관측자는 즉시 소환되고,
"저 이승 다녀와야겠어요."바리의 폭탄선언에, 무장승은 서류를 내려놓고 그녀를 바라봤다. 어젯밤 한숨도 못 잔 얼굴로, 바리는 이미 마음을 굳힌 듯했다."...이승에 말이오?""네. 아빠한테 직접 물어봐야겠어요. 엄마에 대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여쭤본 적이 없었어요. 항상 아빠가 힘들어하실까 봐 피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것 같아요.""...가능한 일이오?""덕순 씨가 그러는데, 관문 통과자에 한해서 짧은 시간 이승 방문이 허가되는 특례가 있대요. 위독한 가족 면회 같은 경우요."무장승은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국장님께 여쭤보겠소."국장은 그 요청을 듣고 흔쾌히 승인해줬다."...마침 잘됐어. 아버님 의식도 돌아오셨으니, 직접 만나서 여쭤보는 게 나을 거야. 다만 두 시간 안에 돌아와야 해. 규정상 그 이상은 위험하니까."바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두 시간이면 충분했다. 아니, 충분해야만 했다.이승으로 돌아가는 절차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특수한 문을 통과하자, 익숙한 병원 복도가 눈앞에 펼쳐졌다. 형광등 불빛, 소독약 냄새, 모든 게 그대로였다. 오랜만에 맡는 이승의 공기가 낯설면서도 반가웠다.병실 문을 열자, 침대에 앉아 있던 아빠가 놀란 얼굴로 바리를 바라봤다. 며칠 전보다 훨씬 혈색이 좋아진 얼굴이었다."...바리야?""아빠!"바리는 눈물을 쏟으며 아빠에게 달려갔다. 손을 맞잡는 순간,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진짜였다. 꿈이 아니었다. 죽은 이후 처음으로, 아빠를 직접 만지고 있다는 사실이 벅차게 다가왔다."아빠, 저 진짜 보고 싶었어요.""나도, 나도 우리 딸 정말 보고 싶었다. 근데 어떻게 이렇게...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구나.""설명하려면 길어요. 근데 아빠, 저 시간이 별로 없어서 급하게 여쭤볼 게 있어요."아빠는 딸의 다급한 표정을 보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얼굴에는 여전히 어리둥절함이 남아 있었지만, 딸이 진지하다는 걸 느낀 듯 표정을 가다듬었다."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