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병실 침대는 비어 있었다. 링거는 뽑혀 있었고, 아버지는 슬리퍼를 끌고 걸어서 사라졌다. 심장이 터질 듯 달려 내려간 병원 앞에서 바리가 본 것은 어묵 꼬치를 든 채 세상 평화롭게 앉은 오구였다. 생명수 한 모금의 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소동이 가라앉은 포장마차 의자에서 길례는 처음으로 속마음을 꺼낸다. 정혼을 풀던 날 그가 했던 대답, "비어 있는 자리가 있소." 하지만 웃음 뒤에는 시한부 같은 경고가 있었다. 흰 한복의 노인이 오구에게 건넨 말. 백 일 안에 일곱 모금을 모두 마시지 못하면 첫 모금도 거품처럼 사라진다.
병실 침대는 비어 있었다. 시트는 아직 따뜻했고, 링거 줄이 바늘 쪽에서 뽑힌 채 침대 난간 아래로 흔들렸다. 바리는 문턱에서 다리가 풀렸다. 곁에서 무장승이 팔을 잡아 주었다. 이마에서 땀이 흘러 턱까지 내려왔다. 민원실 계단을 몇 층이나 뛰어 내려온 얼굴이었다. 천 실장은 두 사람을 내보내기 전에 서류에 도장을 쾅 찍어 주었다. 병원 민원은 실제 상황이니 서른 건을 채운 것으로 본다고, 8관문은 통과라고 했다."환자분이 십 분 전까지 분명히 계셨어요! 잠깐 화장실 다녀온 사이에..."간호사가 손으로 입을 막고 서 있었다. 옆 침대 할아버지는 신문을 거꾸로 든 채 말했다."저 양반, 걸어서 나갔어. 슬리퍼를 끌고 아주 씩씩하게.""걸어서요?""그래, 걸어서. 내가 말릴 새도 없었지."바리가 병실 창가로 달려갔다. 아래 보도 위에 노점의 노란 천막이 보였다. 어묵 김이 피어오르는 그 앞 간이 의자에, 환자복 위에 점퍼를 걸친 노인이 앉아 있었다. 한 손에는 어묵 꼬치, 다른 손에는 종이컵. 옆에서 아주머니가 연신 국물을 따라 주고 있었다."...저기요.""예?""저 아래요."무장승이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숨을 한 번 내쉬고 낮게 말했다."...어르신이 맞소.""맞는데 왜 저렇게 평화로워요.""...어묵을 드시고 계시기 때문이 아니겠소."두 사람은 복도를 달렸다. 엘리베이터가 오지 않아 계단을 택했다. 일 층 로비를 가로질러 자동문을 밀치고 나가자, 어묵 국물 냄새가 훅 풍겼다. 오구가 두 사람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왔구나. 너희도 먹을래?""아빠!""소리 지르지 마. 어묵 식는다.""링거는요! 병실은요! 의사 선생님이 뭐라고...""의사야 뭐라고 하든 내 몸은 내가 알아. 걸어 보니 되더라."오구가 의자에서 일어섰다. 비척거리지도 않았다. 환자복 바지 밑의 슬리퍼가 약간 어긋나 있었을 뿐이었다. 걸음걸이는 몇 달 전의 오구, 병이 들기 전의 아빠였다. 바리는 말을 잃고 서 있었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
"저승 민원실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바리가 수화기에 대고 상냥한 목소리를 낸 순간, 건너편 책상에서 낮은 헛기침이 났다. 무장승이었다. 입회인석이라고 적힌 팻말 뒤에 앉아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입에는 노란 테이프가 반쯤 붙어 있었다. 천 실장이 말은 못 하게 한다며 직접 붙여 준 것이었다. 그는 눈빛으로 '이 정도면 규정 위반 아니오?'라고 항의하고 있었다. 천 실장은 못 본 척했다."네? 할머니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사진이요?""내 영정사진이 너무 못 나왔어. 이렇게 팔자주름이 깊게 나오면 어떻게 저승 입장을 해.""아, 사진 때문에 입장이 안 되시는 거예요?""입장은 되는데 마음이 안 좋아서. 내 손주가 잘 나온 걸로 다시 올려 줬으면 해. 이승에 전달 좀 해 줘.""저승 민원실이 이승에 전달은 못 하는데...""그럼 꿈에 나가서 말하면 되겠네.""그건 제가 권한이...""그럼 권한 있는 사람 바꿔 줘."바리는 수화기를 어깨에 끼운 채 천 실장을 바라보았다. 천 실장은 헤드셋을 쓴 채 한 손으로 서류를 넘기며, 다른 손으로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 계속하라는 뜻이었다. 8관문 '민원 응대 심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규칙은 간단했다. 서른 건의 민원 전화를 받고, 만족도 80퍼센트 이상. 마흔아홉 개 관문 중 가장 평범해 보이는 관문이었다. 그래서 더 의심스러웠다."할머니, 일단 제가 메모해 둘게요. 정말 걱정되시는 게 사진 때문만은 아니죠?""어머, 어떻게 알았어?""뭔가 더 하고 싶은 말씀이 있는 것 같아서요."수화기 너머에서 한참 말이 없었다. 이윽고 가냘픈 목소리가 이어졌다."우리 손주가 요새 나를 안 찾아와. 사진 바꾸는 건 핑계야. 얼굴이 보고 싶은 거지.""그럼 꿈에 나가는 방법은 제가 못 쓰지만, 손주분이 할머니를 떠올릴 수 있는 걸 말씀해 주세요.""우리 손주가 내 된장찌개를 좋아했어.""그럼 된장찌개 냄새를 이승으로 보내는 건 가능한지 확인해 볼게요.""그런 게 돼?""저도 모르
"아가씨는 또 누구요? 사위 전 여자친구요?"오구의 첫마디에 병실 문 앞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길례는 서류철을 가슴에 안은 채 우아한 미소를 유지했다. 미소의 근육이 일 초쯤 떨리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바리는 눈을 질끈 감았고, 무장승은 손에 든 참기름병을 떨어뜨릴 뻔했다."아빠, 이쪽은 인사팀장님이세요. 오늘 관문 감독관으로...""전 약혼자라고 하는 게 정확해요, 어르신."길례가 스스로 밝혔다. 오구의 눈이 동그래졌다. 옆 침대 할아버지가 신문을 반으로 접었다. 간병인 아주머니는 걸레를 든 채 문턱에 멈춰 섰다. 바리는 병실이 이렇게 관객이 많은 곳인 줄 몰랐다."전, 이라고 하셨소?""네. 오래전에요. 지금은 감독관입니다.""그럼 사위 될 사람이, 약혼을 한 번 깼다는 거요?""깬 쪽은 제 쪽이에요.""잘하셨소.""네?""우리 사위는 서른 장짜리 인사말 쓰는 사람이오. 같이 사는 건 보통 일이 아니라니까."길례가 처음으로 입을 열어 웃었다. 소리 내어 웃는 모습은 바리도 처음 보았다. 눈가가 접히고 어깨가 들썩였다. 무장승은 그 모습을 곁눈으로 보더니 아주 조금 귀를 붉혔다. 서른 장이라는 숫자가 병실 밖으로까지 퍼진 것이 분했는지, 쑥스러웠는지 알 수 없었다."...사실이 아니오.""서른 장이었죠?""...압축하여 한 줄로 만들었소.""그건 인정해 드릴게요."오구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침대 옆 서랍을 열었다. 안에서 귤 한 알을 꺼내 길례에게 내밀었다. 길례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받아 들었다."먹어요. 병문안 온 사람은 뭐라도 먹고 가야지.""저는 업무 중이라...""업무는 귤 먹으면서 하는 거요."길례는 귤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바리는 그 손가락이 아주 조심스럽게 껍질을 벗기는 것을 보았다. 이 사람도 평소에 귤을 먹을 틈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인사팀장의 책상 위에는 서류만 쌓여 있을 것이고."자, 그럼 관문을 시작할까요."길례가 귤 한 쪽을 입에 넣고 서류철을 펼쳤다. 병실 한가운데로 걸
"선 넘으셨습니다. 사탕 두 알 압수예요."새벽 여섯 시, 관사 문이 열리자마자 민 주임이 줄자를 들고 들어왔다. 바리는 이불 속에서 눈도 뜨지 못한 채 신음을 냈다. 베개가 분필선을 넘어 이십 센티미터 구역 한가운데에 떨어져 있었다. 팔은 한술 더 떴다. 선 너머로 쭉 뻗은 손끝이 곰 인형의 발을 움켜쥐고 있었다."저 잔 거 맞죠? 그럼 고의가 아니잖아요.""규정 24조 3항에는 고의 여부를 따지는 문구가 없어요.""그 조항도 주임님이 만드셨죠.""어젯밤에요. 침대에 누워서요."바리는 이불을 뒤집어쓰려다 반대편을 보고 멈췄다. 무장승은 벽에 등을 붙이고 앉아 있었다. 정장 차림 그대로였다. 이불은 접힌 채 발치에 놓여 있었다. 눈 밑이 어제보다 검었다."팀장님, 안 주무셨어요?""...숨을 세다가 새벽 세 시에 그만두었소.""숨을 왜 세요.""당신의 숨소리와 박자를 맞추지 않으려면 계산이 필요했소.""그럼 더 이상하잖아요.""그래서 포기했소."민 주임이 줄자를 접으며 둘을 번갈아 보았다. 입술이 달싹이다가 결국 터져 나왔다."기록해도 되나요? '피관찰자 무, 수면 불이행'.""...하지 마시오.""그럼 사탕 한 알로 하죠."바리가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려는데 문 밖에서 헛기침이 났다. 국장이 낚시 조끼 차림으로 서 있었다. 손에는 붉은 도장이 찍힌 공문이 들려 있었다."자네들, 자는 중에 미안한데 급한 용건이야.""국장님, 노크는요.""했지. 세 번이나. 자네들이 못 들은 거야."국장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곰 인형 두 마리를 일별하고 눈썹을 올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공문을 펼쳐 탁자 위에 놓았다."어제 심의회 결정문 그대로야. 공동 관찰 유예 기간은 백 일. 그런데 세 번째 조항에 한 줄이 붙었어."바리가 목을 길게 빼고 읽었다.제3항. 유예 기간 중 피관찰자는 중단된 관문 심사를 재개하여야 한다. 불이행 시 유예는 취소된다."관문이요?""그래. 자네 쪽 정치가 하도 시끄러워서 우리도 잊고 있었지.
"공동 관찰 유예 관사 규칙 제1조. 두 피관찰자는 동일한 방에서 지낸다."선희가 서류를 읽는 목소리는 평소처럼 평평했다. 바리는 그 평평함이 오히려 불안했다. 관사 문 앞에 서 있던 무장승의 손이 문손잡이 위에서 굳었다. 대회의실의 일은 한나절 만에 정리되었다. 강휘가 처분안을 스스로 철회했고, 한 본부장이 공동 관찰 유예를 제안했고, 위원 여섯 명이 이견 없이 인장을 올렸다. 마지막으로 인장을 올린 은빛 면사포의 위원은 고개를 숙이며 사탕 포장지를 조심스럽게 접었다."...같은 방이라는 것은 이 방을 말하는 것이오?""그렇습니다.""침대는 몇 개요.""하나입니다.""...""농담입니다.""선희 팀장이 농담을 했소?""제 개인 규정입니다. 서명 이후 하루 한 번 농담한다는."도윤이 뒤에서 작게 박수를 쳤다. 선희가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도윤, 박수 금지.""죄송합니다. 습관입니다."선희는 서류를 넘겼다. 관사는 의외로 평범한 방이었다. 창문 하나, 책상 둘, 옷장 하나. 그리고 방 한가운데에 요가 매트 크기의 이불이 두 채 놓여 있었다. 이불 사이의 바닥에는 분필로 선이 그어져 있었다. 선 옆에서 민 주임이 쪼그려 앉아 줄자를 대고 있었다."정확히 이십 센티미터요. 지금 막 쟀어요. 오차 일 밀리미터 이내.""이십 센티미터는 무슨 기준입니까.""규정 24조입니다. 공동 관찰 유예 대상자 사이의 최소 이격 거리.""그건 누가 정한 거예요?""제가요."민 주임이 천진난만하게 손을 들었다. 바리는 한숨을 쉬었다. 이 직장에서 규정의 절반은 누군가의 개인 규정이었다."이 줄을 넘으면 어떻게 돼요?""넘으면... 어, 어떻게 되는지는 안 정했어요.""정하세요.""네! 넘으면 사탕 한 알 압수예요!""그건 벌이 아니라 보상 같은데요.""그럼 두 알이요!"바리는 웃음을 참다가 결국 소리 내어 웃었다. 무장승은 이불 두 채를 번갈아 보며 조용히 서 있었다. 이마에서 땀이 한 줄 흘렀다."...오늘 밤은 어떻게 하면
"휘야."해온의 첫마디는 그것이었다. 오후 두 시, 대회의실 증인석에 반쯤 투명한 여자가 서 있었다. 회색 제복의 소매 끝이 빛에 녹듯 흐려져 있었다. 바리는 방청석 앞줄에서 엄마의 어깨 선이 이전보다 더 얇아졌다는 걸 알아챘다. 이십 년을 붙잡고 있던 실이 한 번 더 닳은 것이다.강휘는 대답하지 않았다. 서류철을 든 손이 허공에서 굳어 있었다. 오 초쯤 지나서야 그가 낮게 입을 열었다."...증인은 규정 순서에 따라 선서하십시오.""그래, 그건 해야지. 나 해온은 거짓 없이 진술하겠다. 이 자리에서 한 말은 모두 기록되어도 좋다.""선서 확인. 신문을 시작하겠습니다.""휘야, 너 밥은 먹었니?""증인은 질문에만 답하십시오.""먹었니.""....""안 먹었구나. 너는 밥 안 먹으면 목소리가 낮아져. 이십 년 전에도 그랬어."강휘의 턱이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방 안은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위원 여섯 명의 면사포가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기울었다. 한 본부장만이 일곱 번째 의자에서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싼 채 눈을 감고 있었다."신문하겠습니다. 증인은 오백 년 전 장승이라는 대상자의 관측 일지를 작성한 사실이 있습니까.""있어.""그 기록의 제3장은 봉인되어 있습니다. 봉인자는 누구입니까.""나와 너."방청석이 술렁였다. 바리는 숨을 삼켰다. 무장승이 옆에서 의자 팔걸이를 붙잡았다."기록하십시오. 증인은 봉인자가 자신과 제1팀 강휘 팀장 두 사람이라고 진술했습니다.""맞아. 그날 밤 우리 둘이 같이 있었으니까.""그날 밤이라 하심은.""눈이 오던 밤. 오백 년 전 겨울."해온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무장승에게 닿았다. 무장승은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낮게 말했다."장승. 이제 읽을 때가 됐어.""...하지만 3장은 두 사람이 함께 요청해야 열린다 하였소.""그래서 바리가 같이 있잖니."바리가 벌떡 일어났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무장승 곁에 가서 그의 손을 잡았다. 손바닥이 얼음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