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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돌아가면서 자라는 거죠?(2)

Author: 유청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5 11:15:36

"앉으세요."

아무도 안 앉았다.

"앉으시라고요."

넷이 앉았다. 각 부족 사신들도 주춤주춤 앉았다.

"한 분씩 하겠습니다. 손 드시고요."

"……손이요?"

"네, 손. 안 들고 말씀하시면 안 받습니다."

대전이 다시 조용해졌다. 이번엔 어이없어서 조용한 쪽이었다. 그때 손이 하나 올곧게 올라왔다. 청운이었다.

'……저 사람 진짜 손 들었네.'

"네, 말씀하세요."

"아까 하다 만 말이 있습니다."

"하세요."

청운이 숨을 한 번 쉬었다. 이 궁에 온 뒤로 그는 여러 번 말을 시작했다가 여러 번 잘렸다. 어리다고, 서툴다고, 아직 모른다고. 하라는 말은 처음 들었다.

"저희 부족이 고생하는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런데요?"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럼 뭐 때문인데요?"

"……"

청운이 입을 다물었다. 귀가 다시 빨개졌다.

"됐습니다. 다음 분 하십시오."

'뭐야 저거. 말을 하다 말아, 자꾸.'

넷이 차례로 말했다. 손을 들고, 한 명씩.

그리고 넷이 다 말하고 나서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넷 다 자기가 먼저여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지. 발언 기회를 공평하게 주면 결론이 날 줄 알았지. 안 나지.'

"그럼 이거, 서로 얘기해서는 못 정하는 거네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못 정하시는 거 맞죠?"

"……"

예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마마. 제비를 뽑으시는 건 어떠하올지."

"제비요?"

"예. 넷이 한자리에 모여 뽑으시면, 하늘의 뜻으로 돌릴 수 있사옵니다."

'하늘의 뜻은 무슨. 아무도 책임 안 지겠다는 소리지.'

소원은 넷을 둘러봤다. 태율은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지환은 웃고 있었는데 눈은 안 웃었다. 청운은 또 뭔가 말하려다 말았고, 묵현만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좋습니다."

"묵현공은 아까부터 다 좋으시네요."

"제가 뽑힐 확률은 넷 중 하나니까요. 저 셋이 다투는 동안에도 넷 중 하나였고, 지금도 넷 중 하나입니다. 달라진 게 없습니다."

아무도 반박하지 못했다.

"……그럼 제비로 하시지요."

태율이 마지못해 말했다. 나머지 셋도 차례로 고개를 숙였다.

'정리하면. 넷이 한 시진 동안 싸웠고, 결론이 안 나서 제비를 뽑기로 했네. 한 나라의 후계가 달린 일을 제비로.'

소원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리하겠습니다. 태율공은 순리를 말씀하셨고, 지환공은 제 사정을 물으셨고, 청운공은 하다 마셨고, 묵현공은 날짜를 말씀하셨습니다."

"……"

"그리고 아무도 못 정해서 제비를 뽑기로 했고요."

소원이 잠깐 멈췄다.

"근데 여기서 하나가 빠졌는데요. 저한테 하겠냐고 물어보신 분은 아직 한 분도 없습니다."

대전이 완전히 멎었다. 예관이 결국 두루마리를 놓쳤다.

단 위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났다.

"소원."

모후였다.

'아 맞다. 저 사람 계속 있었지.'

"예, 폐하."

모후는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난 얼굴도, 웃는 얼굴도 아니었다. 어제 인장을 건네주던 그 깊은 눈이었다.

"할 말은 끝났느냐."

'……끝내야 하는 분위기네.'

"예."

"그럼 답하겠다."

모후가 일어섰다.

"화친의 의는 오늘부로 발효된다. 순서는 제비로 정하고, 첫 제비는 달이 바뀌는 날 뽑는다."

"……그게 답입니까?"

"그게 답이다."

모후는 그 말만 하고 대전을 나갔다.

소원은 선 채로 그 뒷모습을 봤다.

'……졌네. 결국 서열에 밀렸네. 애들 조용히 시키는 것까진 됐는데, 정작 내 얘기는 아무도 안 들었어.'

대면식이 파했다.

태율이 제일 먼저 나갔다. 나가면서 한 번도 소원 쪽을 보지 않았는데, 문턱에서 딱 한 번 걸음이 느려졌다.

묵현은 일어서다가 소원 쪽을 봤다. 인사도 예도 아니었다. 그냥 지나가면서 한마디 던졌다.

"한 달에 사흘입니다."

"……예?"

"아까 날짜 말씀드린 것이요. 궁금해하시는 것 같아서."

묵현은 그 말만 하고 나갔다.

'아니 사흘이 뭐냐고! 알 수 없게 맥락 없이 던지고 가지 말란 말이야!'

지환은 나가는 길에 청운 옆을 스쳤다.

"오늘은 말씀이 많으셨습니다, 청운공."

"……예."

"나이도 두 살이나 느셨고요."

"……"

지환은 그 말만 하고 지나갔다.

청운은 그 자리에 서서 한참 있었다. 그리고 뒤늦게 알았다.

'나 지금 견제당한 건가?'

깨닫고 나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견제를 당한다는 건 상대가 자기를 셈에 넣었다는 뜻이니까. 청운은 마지막으로 단 쪽을 한 번 돌아봤다. 거기 선 여자는 아직도 뭔가 못 들은 얼굴로 서 있었다. 청운은 고개를 숙이고 웃다가 밖으로 나갔다.

----------------------------------------------

그날 밤, 혼자 남은 소원은 침상에 앉아 한참 천장만 봤다.

'정리하자.

하나, 나는 한 달에 스무사흘을 남의 처소에서 잔다.

둘, 그 순서는 제비로 정한다. 첫 제비는 달이 바뀔 때.

셋, 사흘이 뭔지는 아직도 모른다.

넷, 저기 청운이라는 연하는 나이를 속였다.

다섯, 내 동의는 아무도 안 물었다.'

정리할수록 기분이 나빠졌다.

'그래, 뭐. 어차피 나 돌아갈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 편이 편했다. 이 세계가 어떻게 굴러가든 남의 나라 사정이다. 개입하지 말고, 튀지 말고, 얌전히 있다가 눈 뜨면 학원이겠지.

……그런데 오늘 대전에서 한 시진을 허비한 건 뭔가.

'아니, 개입 안 하더라도 파악은 해야지. 넷이 뭘 원하는지도 모르고 한 달을 보내면 그건 시험 범위도 안 보고 시험 치는 거잖아.'

소원은 문 쪽에 대고 불렀다.

"서령."

"예, 마마."

바로 문이 열렸다.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의 속도였다.

"공들을 한 분씩 만나고 싶어요. 따로, 개별로."

"……하문하시옵니다. 어느 분부터 청하시겠사옵니다."

"부족 큰 순서로요. 첫 번째는……"

소원은 잠깐 입을 다물었다. 문턱에서 걸음이 느려지던 큰 등이 떠올랐다.

"……늑대요."

"태율공이시옵니다. 내일 저녁으로 전하겠사옵니다."

서령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혼자 남은 소원은 이불을 끌어당겼다.

'파악만 하자. 파악만. 어차피 돌아갈 거니까. ……근데 돌아가는 방법은 누가 알려주지?'

그 질문에 답해줄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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