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유시진은 눈을 뜨자마자, 자신이 병원 침대에 누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기억이 분명하게 끊긴 부분이 있었고 아무리 떠올려 보아도 생각나지 않았다.자신이 어떻게 병원에 오게 된 것인지 유시진은 알 수 없었다.전혀 기억나지 않았다.기억은 어젯밤, 차를 몰고 지나윤의 뒤를 따라가다 지나윤이 백이천의 차에 타는 장면에서 멈춰 있었다.자신이 위가 너무 아파 핸들 위에 엎드려 있었다는 사실은 기억났다.그러나 그 뒤로는 통증 때문에 정신을 잃었는지, 잠이 들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어젯밤 내내, 유시진은 차 안에 있었고, 지나윤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머물러 있었다.곧 유시진은 천천히 눈을 들어 올렸다.병실 문이 노크 소리와 함께 열리고 간호사가 들어왔다.“저기요?”유시진은 입을 여는 순간, 자신의 목소리가 이렇게나 힘이 없다는 사실에 자신도 놀랐다.“누가 저를 병원으로 데려왔나요?”간호사는 고개를 갸웃하며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대답했다.“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지나가다가 발견했다고 하면서 환자분은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어요.”“지나가다가...”유시진은 미간을 찌푸리고 다시 물었다.“그분은 남자였나요? 여자였나요?”간호사는 잠시 입을 열었다가 말했다.“남자였어요.”유시진의 눈빛이 순간 가라앉았고 미간도 더 깊게 구겨졌다.“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간호사가 나간 뒤, 유시진은 눈을 감았다.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스스로도 설명할 수가 없었다.잠시 후, 병실 문이 다시 열렸고 이번에는 장우영과 경호원, 수행 인원들이 함께 들어왔다.“내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어?”유시진이 의아하게 물었다.“병원에서 저한테 연락이 왔어요.”장우영이 대답한 뒤, 유시진의 얼굴에 스친 실망스러운 표정을 보았다.“병원에서는 네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대?”“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장우영이 고개를 저었다.유시진의 이마에 잡힌 주름은 마치 구겨 놓은 종이처럼 더 깊어졌다.장우영은 유시진이 왜 갑자기 입원하게 되었는지
지나윤은 오후 내내 쉬지 않고 바쁘게 움직이다가, 밤이 되어서야 겨우 일을 마쳤다.BYC라는 이름이 이렇게까지 큰 영향력을 가질 줄은, 솔직히 지나윤도 예상하지 못했다.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차량에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지나윤은 어쩔 수 없이 견인차를 불러 차를 먼저 정비소로 보내기로 했다.이곳은 삼호거리와 그리 멀지 않아 지나윤은 걸어가기로 했다.어차피 시내 한복판이었고 또다시 양아치나 불량배를 만날까 봐 겁낼 필요도 없었다.그런데 이번에도 누군가에게 뒤를 밟히고 있다는 걸 느꼈다.그리고 이번에 자신을 따라오는 차는 지나윤에게도 익숙한 차였다.블루 벤틀리, 바로 유시진의 차였다.지나윤은 코트를 여미고 앞으로 걸어갔고, 블루 벤틀리는 뒤에서 같은 속도로 따라왔다.결국, 지나윤은 발걸음을 멈추고 유시진의 차 창문을 두드렸다.“나한테 볼일 있어?”운전석에 앉아 있던 유시진은 아무 말이 없었다.지나윤은 유시진이 자신을 유심히 훑어보는 시선을 느끼고,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지나윤은 그 눈빛이 무슨 의미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사실 유시진은 지나윤에게 묻고 싶은 말이 많았다.왜 그동안 BYC 디자이너라는 정체를 끝까지 숨겼는지, 왜 하필 백이천의 이름 이니셜을 따서 네임을 만들었는지.백이천이 말한 자신을 대타로 삼았다는 말이 사실인지, 그리고 자신이 모르는 일이, 또 얼마나 더 있는지.하지만 유시진이 내놓은 대답은 하나였다.“없어.”유시진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볼일 없어.”지나윤은 뜻밖이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그럼 왜 따라온 거야?”“따라온 거 아니야.”유시진의 대답에 지나윤은 다시 한번 멈칫했다.“같은 방향일 뿐이야.”유시진의 목소리는 늘 그렇듯 담담했고 차가워 아무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그 어떤 감정도 읽히지 않은 게 마치 겨울밤 사이로 가끔 스쳐 가는 바람 같았다.지나윤은 순간 괜히 먼저 다가와 물어봤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러면 자신이 아직도 혼자 오해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고
“그러니까 너는 내가 채연서를 괴롭혔다고 생각하는 거야?”지나윤이 입을 여는 순간, 목소리에 가시가 서려 있었다.유시진은 가슴이 묵직하게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유시진은 고개를 저으며 그런 뜻이 아니라고 말하려 했다.하지만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지나윤이 먼저 말을 끊었다.“네 첫사랑이 그렇게 마음에 쓰이면 얼른 쫓아가. 여기서 내 시간 낭비하지 말고.”담담하게 그 말을 던진 뒤, 지나윤은 몸을 돌려 주신해 일행과 인사를 나누러 갔다.지금의 지나윤은 BYC 디자이너였다.주얼리 디자인 업계에서, 누구나 한마디라도 말을 섞고 싶어 하는 인물이 되어 있었다.유시진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지나윤이 점점 멀어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그리고 자신이 그 무리 속으로는 도저히 끼어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유시진은 사실 지나윤이 양아치들에게 쫓겼던 일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묻고 싶었다.그때, 유시진의 뒤에서 온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나윤이가 위험한 상황을 겪은 건 맞아요. 하지만 제가 제때 도착해서 구했어요. 그밖에 또 뭐가 궁금하세요?”백이천의 부드러운 목소리였는데 유시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돌아섰다.“BYC...”입을 열자마자 유시진의 목소리는 그대로 멈춰 섰다.이 질문은 굳이 할 필요가 없었는데 이미 답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다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BYC.지나윤이 사용하던 이 세 글자는, 바로 백이천의 이름 영문 이니셜에서 따온 약자였다.유시진의 두 손이 주먹으로 꽉 쥐어진 것을 힐끗 본 백이천은 미소를 지었다.그리고 몸을 숙여, 유시진의 귀 가까이에서 낮게 속삭였다.“나윤이가 왜 처음에 유시진 씨랑 결혼했는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어요?”그 말에 유시진의 눈꺼풀이 움찔했고 백이천의 온화한 목소리가 그대로 귓가로 스며들었다.“혹시 말이에요, 나윤이가 원래 좋아하던 사람은 저고 제가 사고로 쓰러져 입원하게 되니까, 차선택으로 당신을 선택한 거라면요? 대타로?”유시진은 홱 고개
박시현은 고개를 홱 돌려 채연서를 사납게 노려본 뒤, 지나윤을 향해 코웃음을 치고는 분을 이기지 못한 채 그대로 회장을 떠났다.채연서는 지금 완전히 고립된 상태였다.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채연서를 향해 수군거리며 평가하고 손가락질했다.손을 다친 지나윤보다도 못하다는 말이 들려왔고, 입만 열면 거짓말을 늘어놓는 사기꾼이라는 말도 들려왔다.채연서는 두 귀를 틀어막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아도 소용이 없었다.사람들이 채연서를 바라보는 시선만으로도 모든 것이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채연서는 자신이 끝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원래는 이번 주얼리 복원 대결을 통해, 지나윤의 커리어를 완전히 무너뜨릴 생각이었다.그러나 무너진 것은 지나윤이 아니라 채연서 자신의 커리어였다.그리고 자신의...채연서는 떨리는 눈으로 유시진을 바라보았다.유시진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유시진은 고개를 돌려 버렸다.그 순간, 채연서는 머리 위에서 찬물이 쏟아진 듯 온몸이 얼어붙었다.‘지금 유시진의 눈에 나는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있을까?‘패배자일까? 거짓말쟁이일까? 계산적인 여자일까? 아니면 어리석은 사람일까?’이내 맑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그래서 채연서는 얼굴을 가린 채 출입문 쪽으로 달려 나갔다.너무 급하게 달리다 보니 하이힐이 삐끗하며 발목을 접질렸다.지나윤은 절뚝거리며 달려가는 채연서의 뒷모습을 차갑게 바라보고 있었다.‘이게 바로 자업자득이라는 말이겠지.’채연서의 우스꽝스럽고 초라한 모습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야, 지나윤은 시선을 거두었다.그리고 몸을 돌리는 순간, 유시진과 정면으로 마주쳤다.“손이 다친 게 아니었네.”유시진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지나윤은 천천히 눈을 들었다.지나윤의 손은 당연히 다치지 않았다.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디자이너라고 해도, 손이 정말로 골절을 입었다면 오늘 같은 완벽한 결과는 절대 불가능했다.그날 밤, 지나윤은 차량 두 대에게 추적당하고 있었다.직감적으로 상대는 분명 지나윤을 노리고 있다고 느꼈고 이는 사
회장 안은 무려 3초 동안 정적에 잠겼다가 곧 폭풍우가 치듯 술렁이기 시작했다.심소희는 피터가 여전히 태연한 표정인 것을 보고서야 뒤늦게 깨달은 듯 말했다.“아, 설마 피터는 이미 지나윤이 BYC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피터는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피터야 당연히 알고 있었다.대학 시절, 지나윤이라는 원석을 처음 알아본 사람이 바로 피터였다.백이천 역시 거의 유일하게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은 사람 중 하나였다.이에 백이천은 스스로 짐작해 냈다.피아노 시리즈의 디자인 스타일을 처음 봤을 때부터, 디자이너가 지나윤일 거라고 생각했다.피아노와 자동차 바퀴를 결합하고, 거기에 파편감이 살아 있는 디자인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백이천의 머릿속에 지나윤밖에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래서 한국에 돌아와 지나윤에게 선물할 때도, 피아노 시리즈의 최신형 오르골을 골랐다.그 디자인이 바로 지나윤의 작품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지나윤은 이번 복원 대결에서 자신이 BYC라는 사실을 밝힐 생각이 원래 없었다.하지만 채연서와 박시현이 이 지경까지 몰아붙였으니, 흐름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예전에 정체를 숨기고 싶었던 이유는 백이천 때문이었다.피아노 시리즈의 디자인 영감은, 백이천이 지나윤의 피아노 콩쿠르를 보러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되었던 그 사건에서 비롯됐다.그때 지나윤은 너무 괴로웠고 너무 미안했다.백이천이 그렇게 누워 있는 현실을 마주할 수 없었고, 한때 가장 사랑했던 피아노 역시 다시 볼 수 없었다.그래서 마음속에 쌓인 감정을 전부 디자인에 쏟아부었다.곡면 무봉 전면 히든 세팅 기술을 연구하고 만들어낸 것도, 자신의 독특한 디자인 철학을 구현하기 위해서였다.뜻밖에도 지나윤의 디자인과 기술은 단번에 업계와 소비자 모두의 인정을 받았다.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지나윤은 BYC라는 이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백이천이 병상에서 생사를 오가고 있는데, 자신만 그 영감을 이용해 큰돈을 버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하지만
“지나윤 씨, 지금 사용하신 기술이 BYC의 독점 특허 기술이 맞나요?”주신해는 지나윤을 똑바로 바라보며 진지하게 묻자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아요.”지나윤이 이렇게 인정하자, 채연서는 기쁨을 참지 못하고 거의 뛰어오를 뻔했다.“관장님, 보셨죠? 제가 말한 게 맞잖아요. 지나윤은 이미 특허를 침해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번 시합은 지나윤이 진 걸로 처리해야 하죠.”채연서는 주신해에게 말한 뒤, 다시 지나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지나윤 씨, 제 스승님의 특허기술을 썼으면 그분께 사용료를 내셔야 하죠.”채연서가 이빨을 드러내듯 몰아붙이는 모습을 바라보는 지나윤의 표정은 조금 복잡했다.특히 채연서가 ‘그분’이라는 표현을 쓸 때, 얼굴이 잠시 굳었다.객석은 금세 조용해지지 않았다.사람들은 서로 고개를 맞대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이 일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유시진 또한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오른손을 무릎 위에 얹은 채, 검지와 엄지를 천천히 문지르고 있었다.겉으로 보기에는 지나윤이 완전히 몰린 것처럼 보였다.유시진은 힐끗 시선을 돌려 백이천을 바라봤으나 남자는 늘 그렇듯, 부드럽고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BYC의 제자로서 제가 대신 특허 사용료를 받을 권리가 있죠.”채연서는 당당하게 손을 내밀며 말하자 지나윤은 여자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물었다.“계속 BYC의 제자라고 하시는데, 그걸 증명해 줄 사람이 있나요?”채연서는 잠시 멈칫하더니 휴대폰를 꺼냈다.“당연히 있죠.”잠시 후, 한 사람이 도착했다.박시현이 낯선 남자와 함께 나타난 모습을 보는 순간, 지나윤은 어리둥절해졌다.“이분은 누구예요?”지나윤이 조심스럽게 묻자 박시현은 턱을 치켜들고 말했다.“BYC의 개인 변호사예요. 채연서가 정말 BYC의 제자라는 사실과, 그리고...”박시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옆에 있던 남자가 서류가방에서 한 장의 문서를 꺼냈다.“지나윤 씨, 귀하는 제 의뢰인의 독점 특허권을 침해한 혐의가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