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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도도보
지나윤은 병원에 한 달 가까이 누워 지냈다.

밤마다 꿈꾸었다.

꿈속에서 유시진이 병실로 찾아와 침대맡에 앉아 있었고, 하루 종일 자신의 곁을 지키며 배 속 작은 아이의 움직임에 귀를 기울이며 웃곤 했다.

눈을 뜰 때마다 눈물부터 고였다.

‘아이가 이제는 없어.’

그리고 그 한 달 동안 유시진은 단 한 번도 병원에 오지 않았다.

출장 때문에 M국에 갔다고 했고, 대신 비서인 장우영이 두 번 꽃을 가져다준 게 전부였다.

모두 핑크 장미였고 치료비는 이미 정산이 되어 있었다.

몇 번이고 지나윤은 그 꽃을 간호사에게 넘기려다가, 막상 또 아까워서 도로 끌어안았다.

차라리 매일 재채기를 하더라도 그대로 두고 싶었다.

임신 8주 차라 육체적으로 큰 통증은 남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늘 습관처럼 배를 쓰다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의 몸 안에 잠깐이나마 머물렀던 작은 생명을 떠올리며 코끝이 시큰거렸다.

첫 아이였고, 10년을 사랑해 온 남자와의 아이였던 그 아이는 그렇게 사라졌다.

밤마다 눈물로 베개를 적시느라 몸도 잘 회복되지 않았다.

결국 병원에서 새 환자 때문에 병실을 비워 달라고 하자, 지나윤은 천천히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때 문이 열렸고 낯선 여자가 병실로 들어왔다.

단정한 이목구비에 공들인 화장, 바비 핑크 끈 벨벳 원피스에 몸을 맡긴 채, 목에는 강렬하게 빛나는 핑크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지나윤은 한눈에 알아보았다.

우원재가 소셜 네트워크에서 자랑하던 FY주얼리 전 세계 한정 핑크 다이아몬드 목걸이였다.

여자는 자연스럽게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채연서예요. 시진이랑 고등학교 동창이에요.”

이름을 듣자마자 지나윤은 속으로 초성을 떠올렸다.

‘CYS. 맞는 것 같네.’

채연서가 손을 내밀자 지나윤도 예의 있게 맞잡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지나윤이에요. 시진 씨 아내죠. 사모님이라고 부르셔도 되고요.”

순간, 채연서의 표정이 아주 짧게 흔들렸지만, 금세 아무 일 없었던 듯 다시 미소를 되찾았다.

“오늘은 사과드리려고 왔어요.”

채연서는 시선을 떨구며 한층 연약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날 병원에 오신 게 임신 때문인지 몰랐어요. 알았다면 절대 시진이랑 FY 행사 같이 가자고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날 제가 좀 취했는데 다 우원재가 억지로 전화해서 그런 거예요. 정말로, 시진이 절 데리러 올 줄은 몰랐어요.”

“지나윤 씨가 유산하게 된 점은 정말 미안해요.”

채연서는 과장되지도, 그렇다고 너무 담백하지도 않은 표정으로 과일바구니를 내밀었다.

“제 사과예요. 꼭 받아 주세요. 안 그러면 너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아요.”

지나윤은 그 연기가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헛웃음이 났다.

“10만 원짜리 과일바구니를 못 받을 이유가 있나요? 목에 걸린 그 목걸이를 주는 것도 아닌데요.”

채연서가 손끝을 꽉 움켜쥐었다.

“오늘 퇴원하신다고 들었어요.”

“네.”

“그런데 조금 더 쉬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시진이 지나윤 씨를 보면 그 아이 생각나서 마음이 너무 아플 거예요.”

“병원 계시는 동안에도 계속 우울해 보여서 제가 많이 챙겼어요. 해외도 같이 갔고, 요트 타고 바다도 나가서 일출도 보고...”

도취된 듯한 채연서의 표정을 보며 지나윤은 사실 여부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렇죠. 제 남편은 친구한테 참 잘해요. 고등학교 친구들은 특히 잘 챙기죠. 일주일에 한 번씩 요트도 태워주니까요.”

“제 친구한테는 20억 원짜리 다이아 목걸이도 준 적 있어요.”

사실 지나윤은 거짓말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런 유형의 사람에게는 거짓말 몇 개쯤은 괜찮을 것 같았다.

그 말에 채연서의 손이 떨렸다.

“그 정도로 마음이 넓으시다니 다행이에요.”

문을 나서던 채연서는 다시 뒤돌아왔다.

“아, 시진이는 오늘 데리러 못 올 거예요. 너무 피곤한지 지금 제 집에서 자고 있거든요.”

그 말을 남기고 채연서는 병실을 나섰다.

그리고 문이 닫히자 지나윤은 힘이 탁 빠졌다.

화가 나야 할 순간인데, 이상하게도 김빠진 공마냥 마음속에 남은 것은 허탈함뿐이었다.

그래서 장우영에게 확인하자 유시진은 지금 회사에 있다고 했다.

역시나 채연서는 거짓말을 했고 지나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저 직접 확실하게 묻고 싶었다.

퇴원하기 전, 한의원에 들러 유시진의 위장약을 처방받았다.

시진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늘 한약만 먹여서 지나윤은 결혼 후 줄곧 약을 달여 왔다.

그래서 약재 비율과 불 조절도 익숙했다.

집에 있던 약이 거의 떨어져서 원래대로라면 며칠 전 이미 준비해야 했는데 모든 게 어긋난 건 최근의 일들이 터지고 나서였다.

한약 봉투를 가득 들고 HF그룹 사옥에 도착하자, 프런트에서 지나윤을 알아봤다.

일전에 유시진에게 밥을 갖다 준 적도 있었기에.

다만 프런트 직원은 그녀를 유시진의 도우미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지나윤 씨, 대표님께서 지금 손님을 접대하고 계시니까 장 비서님에게 전해주시면 되세요. 비서님은 지금 사무실에 계시거든요.”

“그래요.”

지나윤은 지금 일개 프론트 직원에게 자신이 그저 ‘지나윤 씨’가 아닌 ‘사모님’이라는 신분을 강조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꼭대기 층에 도착한 뒤, 자연스럽게 장우영이 아닌 유시진을 찾아갔다.

대표실 앞,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아 틈 사이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유시진과 우원재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 언제는 채연서 못 잊는 거 아니라며? 근데 지금 자기 아이도 그렇게...”

그 말에 지나윤의 몸이 굳어 버렸다.

“걔랑은 상관없어.”

“그러니까 채연서가 귀국하든 말든 걔 때문에 애 낳기 싫다는 건 아니고?”

“나는 지나윤이랑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어. 애가 생기면 모든 게 달라져.”

“지금은 아버지도 좋아하시고 어머니도 인정했지만, 애까지 생기면 그 다음부터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야.”

유시진은 느긋하게 담배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리고 그 미소는 지나윤이 알던 미소와 전혀 달랐다.

처음으로 그 미소가 칼날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임신한 거 알고 일부러 거칠게 했어. 자궁에 무리가 가게. 의사가 그러더라. 앞으로 애 갖기 힘들 거라고.”

얼어붙은 듯한 목소리로 하는 그 말은 칼날보다 더 날카롭고 얼음보다 더 차가웠다.

문밖에서 듣고 서 있던 지나윤은 손끝까지 피가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형, 지금 아내한테 그렇게까지 했으면 그럼 형네 집 대를 잇는 건 누가 해? 결국엔 채연서가 해야지.”

그 말에 시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담배 연기가 문틈으로 흘러나왔다.

그때 문 쪽을 훑어보던 유시진은, 곧바로 문틈 아래 놓인 한약을 확인했다.

지나윤은 벗어나듯 사무실 앞을 떠났다.

...

주경요양병원.

지나윤은 거의 도망치듯이 나와서 곧바로 여기로 왔다.

지나윤은 유시진의 사무실 앞에서, 아니 그 회사에서 1분이라도 더는 있기 힘들었다.

더 있었다간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유시진 입에서 나온 말들은 글자 하나하나가 구역질이 나게 싫었다.

애초에 유시진이 자신과 결혼을 했던 건 다른 여자에게 복수를 하기 위함이었고, 자기 손으로 두 사람의 아이를 죽인 것도 다른 여자를 위해서였다.

10년의 사랑과 3년간의 결혼 생활은 그저 광대 짓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지나윤은 흘러내리는 눈물을 쓱쓱 닦은 뒤 요양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결혼 후 어머니가 옮겨온 곳이었다.

어머니는 기억을 잃고 이름조차 떠올리지 못했지만, 지나윤은 오늘 꼭 해야 할 말이 있었다.

행복하길 바랐던 어머니에게 자신이 결국 이렇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엄마, 난 불효녀야.’

어둠이 내린 후, 요양병원에서 나온 그녀는 곧장 가까운 법률사무소로 향했다.

A시의 저녁 불빛이 하나둘 켜지자 도시는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그 시각, 집으로 돌아온 유시진은 어둠에 휩싸인 채 조용한 집 안의 전등을 켰다.

한약 봉투와 핑크 장미 한 다발만 현관에 놓여 있었고, 집안에는 따뜻한 밥 냄새도, 누구의 기척도 없었다.

그리고 지나윤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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