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고아라의 시선에서 보면, 지나윤이 먼저 고진수의 품으로 파고든 것처럼 보였다.마치 스스로 안겨 들어간 것처럼.경적이 울리지 않았더라면, 고아라는 그대로 도로 한가운데에 멍하니 서 있었을 것이다.그리고 고아라가 가까이 다가갔을 때는 이미 지나윤과 고진수가 떨어진 뒤였다.“아라야...”지나윤이 먼저 말을 걸었지만, 고아라는 대답하지 않았다.시선은 곧장 고진수에게 향했다.고진수의 표정은 어딘가 어색했고 시선도 미묘하게 피하고 있었다.이미 가장 친한 친구와 자신의 남자친구가 가까이 있는 장면을 보고 마음이 흔들린 상태였다.그런데 지금의 반응은 방금 본 장면이 착각이 아니라는 듯 확신을 더 해 주는 느낌이었다.백이천은 잠깐 회사에 들렀다가 온 탓에 가장 늦게 도착했다.“미안해, 좀 늦었지?”말을 꺼내자마자 세 사람 사이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아라야, 무슨 일이야? 왜 그렇게 기분이 안 좋아 보여? 내가 늦어서 그래?”백이천이 고아라 앞에 다가갔다.고아라의 모습은 확실히 평소와 달랐다.예전에는 네 사람이 함께 나가면 고아라가 가장 들떠 있었고 말도 제일 많았다.“아니야.”고아라는 짧게 답하고는 지나윤을 힐끗 쳐다보고는 곧장 고진수의 팔을 끼었다.“들어가자.”고아라와 고진수가 앞서 걸었고 지나윤과 백이천이 뒤따랐다.백이천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아라 왜 저러지? 좀 화난 것 같은데?”“나도 모르겠어.”지나윤은 고개를 저었다.“아라가 오자마자 저런 표정이었어.”백이천은 가볍게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네 사람은 앞뒤로 나뉘어 놀이공원 안으로 들어갔다.어색했던 분위기는 놀이기구를 하나둘 타면서 조금씩 풀렸고, 고아라도 마음속에 남아 있던 걸 내려놓은 듯 보였다.지나윤과 백이천은 자연스럽게 고진수를 관찰했다.고진수는 고아라를 잘 챙겼고, 태도도 매너 있고 배려심이 있었다.시간이 흐르자 모두 조금씩 지쳐 갔다.자극적인 놀이기구보다는 덜 부담스러운 것을 찾고 싶어졌다.“나윤아, 우리 귀신의 집 갈래?”
유현진 변호사가 떠난 뒤, 병실은 숨 막힐 듯 고요해졌고 장우영은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몇 번이나 훔쳐야 했다.유시진이 과거 채연서에게 보였던 집요할 정도의 태도를 떠올리면, 부부 관계가 이미 파탄났다는 증거로는 충분했다.다만 A시에서 이혼 소송을 진행한다면, 지나윤이 승소하기는 쉽지 않은 구조였다.그래서 장우영은 유시진이 지금까지 이혼 소송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도 결국 그 나름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지나윤이 C국에서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이 경우라면 결과는 거의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차라리 이혼 협의서에 서명하는 편이 유시진에게도, HF그룹에도 더 나은 선택일 수 있었다.장우영은 굳은 얼굴로 앉아 있는 유시진을 바라보며 몇 번이나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사실은 서명하라고 말하고 싶었다.소송까지 가봤자 결국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 말아야 했다고.하지만 그 말만큼은 감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유시진은 오랜 침묵 끝에, 이혼 협의서를 천천히 덮었다.“장 비서.”불린 장우영은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허리를 곧게 세웠다.“말씀하세요.”“지나윤이 어떻게 유현진 변호사랑 연결됐는지 알아봐.”“네.”장우영이 병실을 나가고 나자, 공간에는 다시 유시진 혼자만 남았다.유시진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지나윤이 공개적으로 이혼을 요구했다는 소식에 대한 온라인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대부분의 여론은 지나윤 편에 서 있었다.그동안 채연서와의 관계가 지나치게 밀접하게 비쳤고, 채연서의 이미지가 무너지면서 여론은 자연스럽게 유시진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이게 되었다.사람들은 거의 확신하듯, 유시진이 결혼 생활 중 외도를 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원한다면 유시진은 충분히 이 여론을 정리할 수 있었지만 남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채연서가 몇 번이나 지나윤을 함정에 빠뜨리고, 온라인 공격 속에 몰아넣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이것에 비하면 지금 자신에
고아라는 고진수가 무엇을 하려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여, 여긴 진수 씨 사무실이잖아요. 이러면 안 돼요.”“뭐가 안 된다는 거예요?”고진수는 고아라를 놓고 자신의 사무실 문을 잠갔다.“진수 씨...”“자기라고 불러, 그리고 말도 놓고.”“자, 자기야...”고아라의 얼굴이 금세 터질 것처럼 붉어졌다.고진수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고, 남자는 고아라를 자신의 의자 위로 밀어 눕혔다....병원.지난번 유시진이 했던 말을 들은 이후로, 이안영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이는 유시진에게는 좋은 소식이었지만 나쁜 소식도 있었다.그것은 바로 지나윤도 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며칠 동안이나 지나윤은 직접 병문안을 오기는커녕, 전화 한 통, 메시지 하나도 보내지 않았다.그뿐만 아니라 유시진은 오늘 인터넷에서 온통 도배된 실시간 검색어를 보게 되었다.[HF그룹 안주인 지나윤, 유시진에게 공식적으로 이혼 요구.]전부 같은 내용의 기사들이었고, 누가 돈을 주고 퍼뜨린 것이 분명했다.유시진은 병상에 누워 휴대폰을 보고 있을 때, 병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대표님...”들어온 사람은 장우영이였다.유시진은 장우영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고, 남자의 뒤에는 또 한 사람이 서 있었다.그 남자를 보자 어딘가 낯이 익었다.“대표님, 안녕하세요.”상대는 공손하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유현진 변호사님?”유시진은 입가에 미소를 띠었지만, 눈빛에는 차가운 거부감이 스쳐 지나갔다.“대표님께서 저를 알아보실 줄은 몰랐어요. 영광이에요.”유현진이 명함을 내밀자 장우영이 대신 받았다.“C국에서 이름난 변호사가 굳이 여기까지 온 이유가 뭐죠?”유시진은 겉으로는 묻는 척했지만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그러자 유현진은 공손하게 답했다.“저는 제 의뢰인을 대신해 대표님을 찾아왔어요.”유현진은 그렇게 말하며 서류 봉투를 내밀었고, 그것 역시 장우영이 대신 받았다.봉투를 열어 내용을 확인한 장우영의 얼굴이 굳어졌지만, 그는 서류를 유시진
“여보세요, 나윤아?”고아라는 목소리를 낮추며 전화받았고 말투에는 약간의 원망이 섞여 있었다.지금 고진수와 분위기가 막 좋았는데, 지나윤의 전화가 타이밍 좋지 않게 걸려 와 둘만의 시간을 방해했기 때문이었다.전화기 너머에서 지나윤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아라야, 무슨 일이야? 지금 통화하기가 불편해?]“나...”“누구 전화야?”그때,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지나윤은 고진수의 목소리를 잘 아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 시간에 고아라 곁에 있을 남자는 한 명뿐이라고 생각했다.[진수 씨, 옆에 있어?]지나윤이 자연스럽게 물었다.“아, 응...”[그럼 잘됐네.]“잘됐다고?”지나윤의 말에 고아라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진수 씨한테 이번 주말에 시간 되는지 물어봐. 우리 넷이 같이 만나면 좋을 것 같아서.]“넷이?”고아라는 눈을 깜빡였다.[응, 나랑 이천이, 너랑 진수 씨. 요즘 별빛 놀이공원 다시 개장했거든. 사람 많으면 더 재밌을 것 같아서.]지나윤의 목소리는 고아라 옆에 서 있던 고진수의 귀에도 또렷하게 들어갔고,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미소를 지었다.“나윤아, 근데...”고아라는 목소리를 최대한 낮췄다.“너 아직 유시진 대표랑 이혼 안 했잖아. 그 상태에서 이천이랑 이렇게 당당하게 다녀도 괜찮아?”고아라는 속으로는 지나윤이 백이천을 선택하길 바랐다.백이천은 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지나윤을 좋아해 왔고, 지금까지도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었다.게다가 외모도 뛰어나고 인기까지 많은 사람이었기에, 고아라는 오히려 백이천이 안쓰럽게 느껴졌다.최근에는 해외파 박사인 백이천에게 ‘불륜남’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조짐도 있었기 때문에, 고아라는 괜히 오해받는 상황을 원하지 않았다.그리고 설령 백이천이 아니더라도 지나윤이 비난받게 될 가능성이 컸다.또한 예전에 겪었던 온라인 공격이 떠올랐다.확실한 증거도 없이 사진 한 장만으로 이야기를 지어내며, 지나윤을 부도덕한 사람으로 몰아갔던 일이 아직도 생생했다.고아라는 그 생각만으로도
‘멀리서 일부러 회사까지 찾아와 이런 걸 주려고 온 건가?’게다가 옷차림도 남자 같아서 여성스러운 느낌이라고는 전혀 없었다.고진수는 속으로 비웃음을 흘렸다.“지난번에 말했잖아. 새 시스템 개발이 잘 안돼서 요즘 계속 야근한다고. 그래서 뭔가 선물해 주면 깜짝 놀라면서 기분도 좀 나아질까 싶어서...”“그래요...”고진수의 반응은 담담했다.사실 고진수의 일은 전혀 막힌 적도 없었고 계속 야근하는 것도 아니었다.그렇게 말한 건, 고아라가 문자로 요즘 크게 화제가 된 영화를 같이 보러 갈 수 있냐고 물었기 때문이었다.이런 허술한 핑계도 고아라처럼 단순한 사람만 진지하게 믿고, 심지어 마음에 담아 두기까지 했다.고진수는 시선을 내려 책상 위의 케이크를 바라봤다.이렇게 완성도가 떨어지는 케이크를 선물로 받아도 기쁠 이유는 없었다.“깜짝 놀랐어요. 선물 고마워요.”그러나 고진수는 마음과 다른 말을 내뱉었다.이에 고아라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수줍게 웃었다.“이거 내가 처음으로 만들어 본 케이크라서 맛이 어떨지 모르겠어요.”고진수의 시선이 다시 올라갔다.“이거 직접 만든 거예요?”“맞아요.”고아라는 고개를 끄덕였다.“나윤이처럼 요리를 잘하는 편은 아니라서, 엄청 연습했는데도 이 정도밖에 안 되더라고요.”말끝이 점점 흐려졌다.원래라면 이 케이크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하지만, 만약 정말 고아라가 직접 만든 것이라면 그것은 인생에서 처음으로 받아보는 누군가가 직접 만든 선물이자, 오직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한번 먹어 볼게요.”고진수가 그렇게 말하자 고아라는 곧바로 플라스틱 칼과 포크, 작은 접시를 꺼내 커다란 조각으로 케이크를 잘라 건넸다.이에 케이크를 좋아하지 않는 고진수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방금도 그저 한 입만 맛볼 생각이었을 뿐이었는데 고아라는 이렇게 큰 조각을 잘라 주었다.눈앞의 커다란 케이크를 보자 먹기도 전에 벌써 질리는 기분이 들었다.“자, 아...”고아라는 얼굴을 붉히며 케이크를 고진수의 입 앞으로 내
셀레스트 매드 지사.고진수는 프런트에서 걸려 온 내선 전화를 받았다.“대표님, 고아라라는 여성분이 선물을 전달하고 싶다고 하시는데 예약이 없으세요.”고아라라는 이름을 듣자 고진수는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가, 이내 표정을 풀었다.“들여보내.”전화를 끊은 고진수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지금까지 수많은 여자를 만나 봤지만, 고아라처럼 단순한 사람은 처음이었다.지금까지의 데이트는 전부 호텔에서 이루어졌고, 고진수는 고아라를 위해 특별히 한 일이 없이 단지 욕구를 해소하는 수단으로 이용했을 뿐이었다.그럼에도 고아라는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고 의문조차 품지 않았으며, 고진수가 몇 마디 달콤한 말로 달래기만 하면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었다.고진수의 기억 속에서 고아라가 먼저 회사까지 찾아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회사 외에는 자신을 만날 곳을 몰라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진수는 고아라가 굳이 이곳까지 찾아와 무엇을 주려는지 궁금했다.똑똑.곧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들어와.”문을 연 것은 프런트 직원이었고, 그 뒤로 고아라의 모습이 보였다.봄이 되어 고아라는 더 이상 겨울처럼 두꺼운 옷을 입지 않았다.회사 안에 있는 단정한 정장 차림의 여성들 사이에서 티셔츠와 청바지, 그리고 재킷을 입은 고아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그것은 평소 고아라가 즐겨 입던 스타일로 편하고 활동하기 좋은 차림이었다.하지만 오늘 고진수를 만나기 위해 조금 더 여성스럽게 꾸밀까 고민했다.지난번 지나윤과 함께 옷을 고르며 여러 가지 화려한 원피스를 샀지만, 지나윤이 말했듯 그것들은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었고, 본인도 크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그럼에도 그런 옷을 입으면 남자에게 더 잘 보일 것이라 생각했다.예전의 고아라는 연애에 빠져 자신을 바꾸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또한 남자를 위해 자신을 잃고 상대가 좋아할 모습으로 바뀌는 것을 어리석다고 여겼지만, 고진수를 좋아하게 된 이후로는 그런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지나윤은 그런 변화에 공감
이현철이 난감해하는 얼굴을 보자, 지나윤은 이현철과 그 윗선도 깊게 고민하거나 논의한 것이 아니라 그냥 즉흥적인 결정이었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챘다.“그럼 중간 지점으로 HF그룹 본사에서 하면 어떨까요?”유시진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는 제안이라기보다는 거의 결정에 가깝게 들렸다.이현철은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없었기에, 결국 유시진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그다음 한 달 동안, 지나윤은 거의 매일 HF그룹을 오가게 됐다.HF그룹 직원들은 채연서를 보는 데 아무런 의아함이 없었다.원래도 채연서는 자주 회사에 드나들었으니까.
순간적으로 눈앞의 장면에 이끌린 유시진의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갔다.“시진아, 여기서 뭐 하는 거야?”채연서는 자전거를 세워 유시진 앞에 서자 남자는 정신을 차리며 되물었다.“이건 내가 물어봐야지. 너는 여기서 뭐 해?”“동창이랑 선생님 뵈러 오기로 했지. 오늘 학교 창립기념일이잖아.”채연서는 미리 준비해 둔 이유를 자연스럽게 말했다.오늘의 채연서는 평소의 단정하고 귀여운 스타일과 달랐다.여느 고등학생과 다름없이 발랄하고 산뜻했다.채연서는 유시진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자신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는 것
지나윤은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덮어씌우려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나는 사업가야. 이익을 따지고 계산하는 건 본능이지.”굳이 유시진과 더 말다툼할 생각도 없었다.어차피 유시진은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이 옳다고, 이유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나는 차라리 길게 끄는 것보다 한 번에 끝내는 게 낫다고 봐. 이번에 이렇게 크게 터졌을 때 그냥 이혼하는 게 맞아. 네 부모님도 그걸 원하실걸?”사건이 터진 뒤, 유태산은 직접 아들 유시진을 불러, 사사건건 이혼하겠다고 회사 시가총액을 16조를 날리는 며느리를 집안에 둘 수
지나윤은 손에 쥔 이혼 합의서를 내려다보았다.유시진이 내놓은 HF그룹 지분 10%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이번에는 두 사람의 협의 이혼이 무리 없이 성사될 것이었다.어느 순간, 지나윤은 이 합의서 한 장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손끝에는 저절로 힘이 들어갔고, 불끈 솟은 마디마다에는 핏기가 사라져가고 있었다.“유시진...”지나윤이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는 걸 인지한 유시진이었지만, 여자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곧 알아챘다.지나윤은 그저 시선을 깊이 떨군 채 그저 합의서만 바라보고 있었다.3년의 결혼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