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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화

Author: ikkuyot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4 14:05:13

잠들지 못하는 밤.

​

침대맡 조명은 꺼졌고, 혜정의 얼굴만 휴대폰 액정빛에 떠 있었다. 뉴스도 질리고, 연예인들의 기사도 시큰둥했다. 무의식처럼 손가락이 쇼츠 영상을 향했다.

​

“한국 드라마가 남미에서 먹히려면 막장을 넣어야 돼요.”

​

얼굴이 긴 남미의 미녀, 한국어가 꽤나 유창했다. ‘한국 막장이 더 유명한 거 아냐?’ 라고 생각하는 찰나, 영상 속 여자는 태연스럽게 말했다.

​

“딸이랑 결혼했다가, 그 엄마랑 결혼하고 며느리는 시아버지와 눈맞고…”

​

너무 자연스럽게 던지는 농담에 혜정은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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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얘네들… 미쳤네, 정말.”

​

짧은 쇼츠 클립이었다. ‘황당한 설정이네…’ 웃음 뒤, 속 어딘가가 묘하게 찔린 듯 아릿했다. 작은 자극. 하지만 혜정의 몸 어딘가에는 이미 그 감각이 씨앗처럼 심겨 있었는지도 몰랐다.

​

새벽의 감수성은 자꾸만 오늘 밤의 품을 떠올리게 했다. 조금 전 자신을 안았던 단단한 손, 목선에 스치던 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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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남자였다는 사실을 지금까지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오늘 밤은 자꾸만 떠오르고 있었다.

​

시간은 새벽 3시를 넘었다.

​

혜정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눈꺼풀을 감았지만, 그 안쪽에서 상상은 여전히 꿈틀거렸다.

​

꿈속의 그녀는 누군가의 손길을 느꼈다. 티셔츠 너머,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닿음. 차가운 손끝이 아니라 익숙한 체온.

​

“흐읏…”

​

한 줄기 숨이 새어나갔다.

​

“어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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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하게 들리는 목소리. 가까워지는 숨결. 눈꺼풀은 무겁게 잠겨 있었고, 몸은 마치 얇은 안개 속에 잠긴 듯 감각만이 표류하고 있었다.

​

“어머님…”

​

희미하게 쿡— 젖가슴을 찌르는 듯한 느낌. 간지러운 기분이었다. 처음엔 그저 꿈속의 나른한 감각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 손길은 조금씩, 너무나 분명하게 자신을 매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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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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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해야 했다. 하지만 자신을 간지럽히는 이 손길을 뿌리칠 수 없었다.

​

그 순간 조금씩 말려 올라가는 셔츠 자락. 피부에 스치는 손의 온도. 손바닥의 무게가 피부결 위로 또렷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

‘아니… 더는 안 돼…’

​

혜정은 안간힘을 다해 차분해지려 했다. 애써 회피하려 질끈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

가슴을 부드럽게 누르는 손, 다른 쪽 젖가슴에는 사위의 입술이 닿아 있었다. 딸에게 젖을 먹이던 때와는 달랐다. 젖꼭지가 미칠 듯이 간지러워지는 그 순간, 사위의 눈이 위로 올려지며 눈이 마주쳤다.

​

놀라움보다 순간적인 얼어붙음이 먼저 찾아왔다.

​

“허억—!”

​

짧은 비명이 터졌고, 숨이 헐떡였다. 눈앞에 남아 있는 건 어두운 천장과 천천히 식어가는 심장의 고동뿐. 주변은 고요했고, 준호의 그림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

‘꿈이었어… 정말?’

​

하지만 피부 아래에 남아 있는 잔열은 분명 그 손길을 기억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여자’로 만져졌다는 오랜만의 자각. 그것이 몸의 깊은 곳을 깨워버린 듯했다.

​

침대맡에 앉아 혜정은 뺨을 감쌌다. 입술은 말라 있었고, 다리는 저릿저릿 떨렸다.

​

‘설마 진짜…’

​

이불을 들춰보았다.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그런데— 희미한 촉감은 손끝에 남은 체온처럼 계속 떠나지 않았다. 꿈이라는 결론에도 가슴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

돈에 대한 스트레스와 사위에 대한 미안함, 남편에 대한 죄악감과 사위에게 범해진다는 배덕감, 여자로 보여진다는 기쁨과 오랜만의 행위에 대한 기대감이 복잡하게 뒤섞여서일까…

​

가슴께에선 열이 피어오르고, 그 부위를 조심스레 덮은 얇은 티셔츠가 답답해졌다. 혜정은 조심스레 손을 들어 그 부위를 어루만졌다.

​

한동안 잊고 지냈던, 아니, 잊었다고 믿었던 감각. 둥글게 손을 말고, 살짝 눌러보았을 뿐인데도 몸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

어렴풋이 떠오르는 오래전 누군가의 손길, 젖가슴에 남았던 입김, 꿈속임에도 그 숨막히는 망설임 뒤에 시작되던 서툰 탐닉들.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되살아났다.

​

실제 꿈의 주인공은 두 개의 벽 너머에 있다. 딸의 남편. 자신의 사위.

​

손끝은 어느덧 배 아래를 향하고 있었고, 혜정은 자기도 모르게 그 안쪽으로 스르르 미끄러져 들어갔다. 작은 숨소리에 이어 번지는 아찔함.

​

‘안 돼… 이러면 안 돼…’

​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손이 멈추지 않았다. 가슴 끝의 민감한 울림과 속에서 퍼져나오는 이 묘한 끈적임은 점점 더 그녀를 죄의식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

‘사위야… 그 사람은…’

​

아랫배 어딘가가 허전하게 조여왔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였다.

​

“… 미쳤지, 내가.”

​

​

​

​

​

—

​

​

​

​

​

쪼르르—

​

물이 흘러도 답답한 방광은 좀처럼 긴장을 풀지 않았다. 갑작스레 밀려든 소변이 마려운 느낌, 마치 무언가가 빠져나오는 듯한 몸의 신호에 급하게 화장실로 달려나왔지만 정작 나오지는 않았다.

​

혜정은 손끝에 남은 비릿한 기운을 씻어내며 고개를 떨구었다.

​

‘…대체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야…’

​

손가락 끝에 감긴 끈적이는 느낌이 죄의 증표처럼 느껴졌다. 몇 년 만이었을까. 욕망과 상상이 이렇게까지 몸을 휘감은 것은.

​

거울 앞, 자신의 얼굴을 마주한 그녀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

“하…”

​

눈가에 드리운 그림자, 나이 든 얼굴이 한층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주름이 뺨 아래까지 늘어진 기분이었다.

​

방금 전까지 꿈속에서 사위의 손이 그 아래를 더듬고, 입술이 훑던 것이 떠오르자 온몸이 움찔 떨렸다.

​

‘진짜 미쳤나봐…’

​

물에 적신 손으로 볼을 두어 번 두드리며 스스로를 다잡는다.

​

“정신 차려… 미친년아…”

​

그리고, 문을 열었다.

​

철컥—

​

바로 앞에 검은 실루엣이 서 있었다.

​

“꺄악!!”

​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린 혜정보다 오히려 그림자가 더 놀란 듯했다. 낮게 울린 익숙한 목소리.

​

“…어머님?”

“어휴… 놀래라…”

​

소리를 지르긴 했지만 마주할 사람이래봤자 한 사람뿐이었다. 준호였다. 막 씻고 나온 듯 젖은 머리에서 물방울이 흘러내려 목덜미에 맺혔다. 상의는 걸치지 않아 어깨와 가슴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

“아… 물… 물 좀 마시려고요.”

​

준호는 황급히 손으로 가슴을 가리며 시선을 돌렸다. 가족여행에서 수영복 차림을 본 적은 있어도 이렇게 가까이에서의 노출은 서로에게 생경했다. 혜정은 서둘러 시선을 거두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그래… 나도 자다가 화장실 좀 가려고…”

​

말을 흐리며 그녀는 한 발 먼저 몸을 돌렸다.

​

“얼른 들어가. 자야 내일 출근하지…”

​

급히 방으로 향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좀처럼 장면이 지워지지 않았다. 이불처럼 넓게 펼쳐진 어깨선, 은근히 도드라진 팔의 힘줄. 그리고— 조금 전, 자신을 안고 옮기던 바로 그 품.

​

​

​

​

​

—

​

​

​

​

​

약의 방해가 없는 날이라면, 아무리 피곤해도 눈이 떠졌다. 혜정이 살아온 방식이었다. 늘 같은… 변하지 않는.

​

사위와 손자를 내보내고 나니 집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혜정은 부엌에 머물던 발걸음을 소파까지 끌고 가더니 천천히 몸을 내려앉혔다.

​

‘잠깐만… 진짜 잠깐만 앉자.’

​

등받이에 기대자 등줄기를 따라 피로가 쭉 흘러내렸다. 아침부터 아이 챙기고 사위 챙기느라 몸이 축축하게 가라앉았다. 서늘한 가을 햇살이 커튼 사이로 스며들며 나른함을 부추겼다.

​

그때—

​

— 띠리리링

​

전화 벨소리가 적막을 깨뜨렸다. 혜정은 인상을 찌푸리며 화면을 들여다봤다.

​

[박옥철 사장]

​

그 이름에 입술이 저절로 일그러졌다. 한숨을 내쉬고는 억지로 목소리를 높였다.

​

“아~ 네, 박사장님~ 무슨 일이세요.”

“지 여사~ 이제야 받네. 요즘 왜 그렇게 전화도 안 받고 바쁜 척이야?”

​

걸걸한 저음의 목소리가 기름 묻은 밧줄처럼 느릿하게 혜정의 귓속을 감고 들어왔다. 익숙했지만 불편했다. 반갑다기보다는, 또 시작인가… 싶은 기분.

​

박옥철. 혜정보다 몇 살 많은, 사별한 남자. 그리고 혜정의 인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람. 물려받은 재산이 많은 여느 사장들처럼 그는 그리 공들이지 않아도 사업이 유지되는 듯했다.

​

오히려 사업보다 사람들을 만나며 부동산이나 코인 같은 것으로 돈을 버는 편이었다. 부동산 소장이 주선한 스터디 모임에서 알게 된 그는 혜정에게 재테크의 기회를 몇 번이나 안겨줬고, 실제로 그 덕분에 혜정은 한동안 ‘돈 좀 굴려봤다’는 자부심으로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번 돈을 이번엔 죄다 말아먹어버렸지만.

​

소문만 듣고 무리해서 들어간 서울 외곽의 땅, 왠지 의심스럽다는 박사장의 마지막 조언을 듣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

“요즘 좀 정신이 없었어요. 사장님도 바쁘시잖아요.”

“나는 뭐, 늘 그래. 지 여사만 바쁜 거지. 요즘 좀 어때? 많이 힘들지?”

“그냥… 그렇네요. 이래저래…”

“시간 괜찮으면 점심이나 같이 해. 나와요.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

혜정은 대답을 머뭇거렸다. 그의 말투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부드럽지만 어딘가 미끄럽고, 배려하는 듯하면서도 단단하게 틈을 파고드는 사람.

​

혜정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을 그가 제안하는 점심이 단순한 식사일 리 없다는 걸 모를 정도로 혜정은 순진하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약점을 하나 더 드러내 보이고 싶지 않았다.

​

그를 좋아하는 것은 같이 나이를 먹고 있는 인생의 친구 정도이지, 메마른 탐욕이 덧칠해진 그와 살을 맞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

“…아, 오늘 일이 있어요. 다음에 해요. 다음에.”

​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방 안은 여전히 조용했지만 혜정의 심장은 조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서 울린 휴대폰 벨소리는 그녀를 조용히 내버려두지 않고 다시 밖으로 내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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