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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10 02:25:13

제03장

“표정이 왜 그래, 딜런? 엄청 울적해 보인다.”

사촌의 말을 들은 딜런의 미간이 더욱 찌푸려졌다. 아이버슨이 그의 옆자리에 털썩 앉으며 와인 한 잔을 건넸다. 딜런은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고개를 살짝 내젓고는 잔을 받아 들었다.

“원하는 게 뭐야?” 그가 천천히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아이버슨이 나지막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냥 같이 앉아있는 데도 이유가 필요한 거냐? 와. 사람 참 민망하게 만들 줄 아네,” 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딜런이 코웃음을 쳤다. “그럼 여기 왜 앉은 건데?”

“다니엘이랑 모리스가 형한테 가보라고 하더라고. 누군가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해 보인다고 하면서.”

딜런이 다시 고개를 내저었다. 그 두 녀석도 참. “내가 정말 누군가와 이야기할 필요가 있어 보여?” 그가 씁쓸한 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형 밤새도록 거기 혼자 앉아 있었잖아. 몇 시간 동안이나 스트레스받아 보였다고,” 아이버슨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무슨 일인데? 일 때문이야? 그 사건? 클레멘테 상원의원 관련된 그 사건?” 그가 손을 내저었다. “나도 이미 알아. 우리 아빠도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받아 하시거든. 요새 잠도 거의 못 주무셔. 어젯밤에는 엄마한테 한소리 들으셨다니까. 솔직히? 엄마한테 좀 혼나실 만했어.”

“일 때문은 아니야,” 딜런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 문제는 아니야.”

정말로 아니었다. 일은 그의 삶에서 유일하게 순조롭게 풀리고 있는 부분이었다. 그는 잘해내고 있었다. 승진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모든 것이 안정적이어야 정상이었다.

“아.” 아이버슨이 몸을 돌려 그를 제대로 바라보았다. “그럼 여자 문제라는 소리네.”

묻는 투가 아니었다. 완전히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딜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가슴을 짓누르는 무게감은 더욱 무거워졌다. 마침내 클레멘테 상원의원을 철창신세 지게 만들 날이 머지않아 있었다. 그리고 그는 사건이 끝나면 결혼하자고 브리엘과 약속했었다.

“브리엘은 어때서?” 아이버슨이 물었다. “또 싸웠어?”

딜런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놀랍게도, 아니야. 요즘 며칠 동안은… 괜찮았어. 내 직업 가지고 나한테 화내지도 않았고.”

“어라.” 아이버슨이 한쪽 눈썹을 올려 세웠다. “그럼 뭐가 문제인데?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야? 여자친구가 웬일로 떼를 안 쓰는데 말이야.”

딜런은 침묵을 지켰다.

그것도 문제의 일부가 아니겠는가? 그는 안도해야 했다. 고마워하기까지 해야 했다. 하지만 그 대신, 무언가 이질감이 들었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데 그 이유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사건 끝나고 결혼하자고 약속했거든.”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아이버슨이 눈을 벅벅 감았다 떴다. “뭐? 하지만 형 올해는 결혼할 생각 없다고 하지 않았어?”

딜런이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없었지. 하지만 그 친구가 원해. 그리고 우리 오래 만났잖아. 어쩌면 엄마 말이 맞을지도 몰라… 이제 때가 된 걸지도.”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전혀 아니었다. 아직 해보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았다. 때로는 자신과 브리엘이 서로를 완벽하게 알지도 못한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하지만 그녀를 잃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결혼을 자꾸 미루는 바람에 그녀는 이미 여러 번 화를 냈었다. 여기서 또 거절한다면, 이번에야말로 정말 그녀가 떠나버릴지도 몰랐다.

“왜 억지로 자신을 밀어붙이는 것처럼 들리지?” 아이버슨이 물었다.

딜런은 한숨을 쉬며 와인을 한 모금 더 마셨다. “억지로 하는 게 아니야. 그냥… 준비가 안 된 것뿐이지.”

“하지만 브리엘이 형 경찰하는 거 싫어한다고 하지 않았어?” 아이버슨이 추궁했다. “그건 어쩌고?”

딜런이 고개를 끄덕였고, 와인을 다시 마시며 턱에 힘을 주었다. “그것도 문제의 일부지. 내가 사직하고 모리스한테서 '이나라'를 넘겨받기를 원하고 있어. 알다시피 그 친구가 우리 사촌들이랑 사이 안 좋은 거 알지? 그리고 진심으로… 내 직업을 어떻게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어. 난 지금 위치에서도 잘해내고 있다고. 단지 돈을 적게 번다는 이유로 사업을 물려받고 싶지는 않아. 그런 삶엔 관심도 없고… 하지만 그 친구는 내가 직업을 포기해야 한다고 계속 고집을 부려.”

아이버슨은 침묵에 빠졌다.

딜런은 잔에 남은 와인을 비워냈다.

“정말로 그 여자랑 결혼할 생각이고 그 여자가 형 커리어를 그렇게 본다면,” 아이버슨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신중하게 다시 생각해 봐야 해.” 그는 딜런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형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과 함께해야지. 형 꿈을 존중해 주지도 않는 사람 곁에 머물 필요는 없어. 사랑은 그저 매순간 행복한 게 다가 아니잖아. 우리 부모님을 봐. 두 분이 하시는 사랑의 형태를 보라고.” 그가 말을 잠시 멈추었다. “솔직히 형이랑 브리엘 사이에 있는 게 그런 거라고 생각해?”

딜런은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머릿속에서 답답함이 쿵쿵거렸다. 당연히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브리엘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 누구보다도.

과연 자신의 야망 때문에 그녀를 기꺼이 잃을 수 있을까?

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할 시간은 아직 남아있어,” 그가 말했다. “사건이 다 끝나고 나면 정리할게.”

“현명하게 선택해야 해,” 아이버슨이 떠나가는 그의 뒤에 대고 소리쳤다. “형을 사랑해 줄 사람이 브리엘 한 사람만 있는 건 아니잖아. 만약 다른 사람이 나타나면 어쩌려고? 형의 직업이 왜 형에게 중요한지 이해해 주는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딜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숨을 가쁘게 내쉬며 걸음을 옮겼고, 방으로 향하는 길에 인사를 건네는 사촌들을 무시했다. 괜찮은 척 연기하기엔 너무나 피곤했다.

잠들기 전, 그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브리엘에게서 온 메시지는 없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마 바쁜 모양이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끊임없이 진동하는 핸드폰 소리에 깨어났다. 쏟아지는 메시지와 부재중 전화 알림에 혼란스러워하며, 그는 하나씩 메시지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간, 그의 세상이 멈춰 섰다.

마치 얼음물이 그에게 쏟아부어진 듯한 기분이었다. 메시지를 읽어 내려가는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어떤 이들은 브리엘을 향해 분노하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그를 위로하려 애쓰고 있었다. 처리하기엔 너무 많은 메시지, 너무 많은 단어들이 한데 얽혀 충돌했다. 그의 머리로는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었다.

모두가 그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가 알고 있던 모든 것을 산산조각 내버리는 뉴스 한 줄.

그의 여자친구, 브리엘 클락슨이 다른 사람과 결혼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그리고 그 상대는, 자신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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