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저 여자보다 예뻐지게 해주세요. 그년이 거울 볼 때마다 욕 나오게요.”
의사는 한서리가 내민 사진을 보더니 안경을 벗었다.
“환자분, 여기는 성형외과입니다.”
“알아요.”
“저주 대행업체가 아니고요.”
“그럼 얼굴만 담당해 주세요. 저주는 제가 직접 할게요.”
사진 속 백세나는 신혼여행지 수영장에서 강태오의 목에 매달려 있었다. 웃는 입 옆에 하트가 3개. 서리는 하트만 봐도 속이 뒤집혔다.
의사는 사진을 돌려놓았다.
“다른 사람 얼굴을 복사할 수는 없어요. 수술은 검사 후 가능한 범위를 판단해야 하고, 부작용과 회복 기간도 고려하셔야 합니다.”
“얼마나 걸리는데요?”
“서두르시면 안 됩니다.”
“아, 복수도 예약제로 받네.”
상담실을 나올 때 서리는 안내문부터 꼼꼼히 접었다. 이번에는 누군가에게 예쁘다는 말을 듣겠다고 무턱대고 몸을 망칠 생각은 없었다. 태오 때문에 이미 결혼생활을 갖다 버렸으니까.
문제는 운동이었다.
“회원님, 딱 10번만 더 해볼까요?”
“선생님.”
“네?”
“전남편 죽도록 싫어하는 건 근력으로 안 쳐줘요?”
“안 쳐줘요.”
“세상 참 각박하네.”
서리는 매트에 드러누웠다가 트레이너의 손에 이끌려 일어났다. 첫 달엔 근육통에 계단이 무서웠고, 3개월째엔 예전 바지가 헐렁해졌다. 숫자가 잘 움직이지 않는 주도 있었지만, 그녀는 식사를 거르거나 운동 시간을 무작정 늘리지 않았다.
“오늘도 오셨네요.”
“네. 저 인간 얼굴보다 제가 오래 살아야죠.”
운동복 주머니에서 태오의 결혼식 사진이 삐져나오자 트레이너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직도 이걸 가지고 다니세요?”
“보면 욕이 나와서 힘이 나요.”
“운동 동기 치곤 특이하시네요.”
“그럼 액자에 걸까요? 헬스장 공용으로?”
“제발 본인 가방에 넣어두세요.”
수술과 시술도 한 번에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검사받고, 설명을 듣고, 결정하고, 회복을 기다렸다. 붓기가 가라앉지 않아 거울 앞에서 울컥한 날도 있었다. 그때마다 서리는 병원에서 받은 주의사항을 다시 읽었다. 아픈 몸을 억지로 일으켜 봐야 내일 일정만 밀렸다.
회복기 어느 날, 서리는 거울에 대고 물었다.
“야, 한서리. 너 이 얼굴로도 못생겼다는 소리 들으면 어쩔래?”
입이 답했다.
“그럼 그놈 시력을 검사해야지.”
서리는 혼자 웃다가 당긴 얼굴 때문에 인상을 찌푸렸다. 웃는 연습은 나중으로 미뤘다. 병원에서 정한 회복 일정에는 남편 망신 주는 날 따위 없었다.
반년이 지났을 무렵, 마트 계산원이 물었다.
“멤버십 번호가 예전 거 맞으세요?”
“네. 번호는 성형을 안 했거든요.”
계산원이 당황해 입을 벌리자 서리는 푸핫 웃었다. 오랜만에 남의 표정 때문에 웃은 날이었다.
잔고는 더 처참했다. 월급을 아끼고 물건을 팔아 마련한 돈이 병원비와 생활비로 사라졌다. 서리는 영수증을 늘어놓고 말했다.
“돈지랄도 남편이 해야 로맨스지. 내가 하면 가계부 스릴러네.”
그래도 통장 옆에 붙인 메모는 떼지 않았다.
[저택에 들어가는 날까지 버틸 것.]
외모가 달라질수록 더 고약한 문제가 생겼다. 습관이었다.
뜨거운 컵을 잡을 땐 손잡이를 왼쪽으로 돌렸다. 태오가 오른손으로 바로 집게 하려고 몸에 밴 버릇. 남자가 말을 끊으면 자신도 모르게 “미안해”부터 나왔다.
“미안은 개뿔.”
서리는 컵을 반대로 돌렸다. 거울 앞에서 입꼬리를 올려 보다가 자기 이마를 쳤다.
“그 새끼 앞에 서서 또 ‘자기야’ 하면, 얼굴만 바꾼 멍청이 되는 거야.”
그날부터 연습이 시작됐다.
“성함이?”
“윤시아입니다.”
“전남편 있으세요?”
“없는데요. 남의 남편도 별로 안 좋아합니다.”
“어떤 일을 잘하시죠?”
“쌓인 먼지 털기요. 특히 오래 묵은 거요.”
혼자 묻고 혼자 대답하다가 청소기를 발로 건드렸다. 기계가 윙 소리를 내며 움직이자 서리가 펄쩍 뛰었다.
“악! 야, 너까지 재벌 편이냐?”
청소기는 대답 대신 양말 한 짝을 삼켰다.
가끔은 일부러 전화 통화를 연습했다.
“태오 씨요? 모릅니다.”
“얼굴 보면 알지도 모르잖아요?”
“모르는 남자 얼굴을 왜 외워요. 연예인이에요?”
“재벌인데요?”
“재벌이면 집에 먼지도 금으로 쌓입니까?”
혼자 웃다 휴대폰 녹음 파일을 재생하자, 목소리 끝에 옛 말투가 묻어 있었다. 서리는 즉시 다시 녹음했다.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서리는 휴대폰에 뜬 백세나의 새 게시물을 보았다. 번쩍이는 저택 거실 사진 아래, 글이 한 줄 달려 있었다.
[우리 집에는 못생긴 건 없다♡]
서리는 잠시 화면을 내려다봤다.
“있지. 성격.”
그녀는 댓글을 남기지 않았다. 대신 다용도 걸레를 집어 들고 거울 앞에 섰다.
“사모님, 인테리어보다 성격부터 좀 닦으셔야겠어요.”
한 번 더.
“네? 제가 선 넘었다고요? 사모님은 선이 뭔지 아세요? 지금까지 발로 밟고 다니시던데.”
말을 마친 서리는 거울 속 여자를 살폈다. 웃는 표정도, 고개를 드는 각도도 예전과 달랐다. 그런데 한 가지는 그대로였다. 강태오라는 이름만 떠올리면 욕부터 나오는 입.
“좋아. 이건 굳이 안 고쳐도 되겠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강태오 저택 가사도우미 채용 담당입니다. 윤시아 님, 1차 면접 일정 안내드립니다.]
서리는 문자를 두 번 읽고 앞치마 끈을 묶었다.
“자, 백세나.”
거울 속 낯선 여자가 씩 웃었다.
“청소비는 네 남편한테 받을게.”
“평생 네 편? 웃기고 자빠졌네. 내 편은커녕 사진 찍을 때도 한 발짝 떨어지던 새끼가.”윤시아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한서리는 낡은 웨딩 사진을 뒤집었다.[평생 네 편.]강태오의 글씨였다. 삐뚤어진 ‘평’ 자도, 마지막 마침표를 두 번 찍던 버릇도 그대로였다.‘한서리, 네가 뚱뚱해서 쪽팔려.’이혼하던 날 들은 말까지 함께 떠오르자 속에서 욕이 끓었다.“편은 무슨. 편의점 삼각김밥도 너보단 의리가 있겠다.”서리는 사진을 버릴 상자에 넣으려다 손을 멈췄다. 웃고 있는 여자는 분명 자기인데, 몇 년 전의 낯선 바보 같았다.사진 속 남편은 어깨를 그녀 쪽으로 조금도 기울이지 않았다. 신부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는 얼굴로 혼자 몸을 붙이고 있었다. 결혼사진 찍던 날 사진사가 ‘두 분 더 가까이요’라고 하자 태오는 사람들 앞에서 말했다.‘더 붙으면 렌즈에 안 들어와요.’그때는 농담인 줄 알고 같이 웃었다. 아, 씨. 웃긴 건 내가 아니라 그 말을 믿은 나였네.그때 뒤에서 비명이 터졌다.“아아악! 이게 아직도 있어?”백세나였다. 하필 머리에는 고급 실크 헤어밴드, 손에는 커피잔, 얼굴에는 누굴 잡아먹기 딱 좋은 표정을 장착하고 있었다.“너 뭐 해? 그 돼지 사진을 왜 들고 있어!”서리는 사진을 가슴에 붙였다.“폐기 물품 분류 중입니다.”“분류는 개뿔! 당장 찢어!”“사진은 그냥 버리라고 하셨는데요.”“내 집에 저 여자가 웃고 있는 것 자체가 재수 없다고!”서리는 세나를 한 번 훑었다.“사모님, 사진 속 사람한테까지 질투하세요? 경쟁자가 종이 한 장이면 좀 서운하겠는데.”“누가 질투해! 저 얼굴에 내가?”“그러니까요. 이길 자신 있으시면 놔두시지.”세나가 커피잔을 선반에 내려치고 달려들었다.“내놔!”“놓으세요. 찢어지면 기록해야 해요.”“기록? 네 장례 날짜나 기록해!”세나가 사진 오른쪽을 움켜쥐었다. 서리는 반대쪽을 붙들었다. 한쪽엔 과거의 신랑, 다른 쪽엔 과거의 신부가 매달린 모양새였다.“이게 내 남편 사진이지
“한서리? 당신 지금 새 마누라 앞에서 전처 이름을 불러?”백세나가 빈 잔을 쿵 내려놨다. 강태오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청소부를 바라봤다.“시아 씨한테 물었잖아. 한서리 알아요?”서리는 은쟁반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망할 놈. 결혼했을 땐 하루 종일 이름 한 번 안 불러주더니, 새 마누라 앞에서 아주 출석 체크를 한다.“그분이 유명한 분인가요? 제가 사인이라도 받아드릴까요?”“전처예요.”“아. 그럼 사인 대신 이혼 도장 받으셨겠네요.”태오의 입가가 씰룩였다. 세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야! 지금 누구 편을 드는 거야?”“청소부 편이요. 여기선 제가 제일 바빠 보이거든요.”세나는 테이블에 놓인 자기 결혼사진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우리 오빠는 과거 같은 거 없어. 내가 첫사랑이고 끝사랑이야. 알았지?”서리는 눈을 깜빡였다.“끝사랑이면 다행이네요. 그 뒤에는 더 안 생길 테니까.”“당연하지!”‘지금 웃지 마. 아직 저년한테 네가 누구인지 말하면 안 돼.’“당신도 미쳤어, 오빠? 내 앞에서 그 여자 이야기가 왜 나와!”태오가 어깨를 으쓱했다.“그냥 생각나서. 시아 씨가 예전에 알던 사람하고 좀 닮았거든.”서리의 목덜미가 뻣뻣해졌다.“어디가요?”“컵 치우는 버릇 같은 거.”“청소부가 컵 치우는 건 직업병 아닌가요? 대표님은 회사에서 서류 치우면 전 직원이 전처로 보여요?”복자가 은수저를 정리하다 고개를 푹 숙였다. 태오는 기어이 웃음을 터뜨렸다.“말하는 것도 묘하게 비슷하네.”“와, 씨! 둘이 아주 첫사랑 찾기 놀이하네!”세나가 손을 뻗어 태오의 턱을 자기 쪽으로 돌렸다.“똑바로 봐! 당신 아내는 나야. 지금 여기 서 있는 초절정 미녀, 백세나!”“알아. 볼 때마다 본인이 말해주잖아.”서리는 쟁반을 턱 밑까지 올렸다. 조금만 내리면 웃는 얼굴이 들킬 것 같았다.“사모님, 자기소개는 다음 손님 오셨을 때 한 번 더 하세요. 잊어버릴까 봐 걱정되거든요.”“윤시아, 입 다물어!”“어제부터 다물고 있
“윤시아! 청소부 주제에 내 남편 이름을 왜 써 놨어?”백세나가 찢어진 메모를 흔들었다. 윤시아, 아니 한서리는 당장 그 종이를 삼켜 버리고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강태오 이름까지 먹었다간 체할 게 뻔했다.서리는 반쪽짜리 종이를 슬쩍 쳐다봤다. 이름 하나에 저 난리라니. 세나가 만약 자기가 전처라는 걸 알면 저택 기둥을 뽑아 들고 달려들지도 몰랐다. 상상만 해도 무서웠다. 아니, 조금 재미있기도 했다.“제가 대표님 이름 적었다고 벌금 내나요?”“내 남편이잖아!”“아, 그렇죠. 제 남편은 없고 사모님 남편은 있으니까요. 호적 검사 끝났습니까?”“입 닥쳐! 뭐라고 써 놨는지 말해!”세나가 종이 반쪽을 강태오 코앞에 들이밀었다. 태오는 소파 등받이에 기대 앉더니 웃음을 삼켰다.“자기야, 직원 이름표 검사라도 해?”“당신 이름이잖아! 이년이 당신 이름을 적어 놨다고!”“내 이름이 뭐, 금지어야?”“둘이 아주 쌍으로 지랄하네!”서리는 주머니에서 남은 메모 반쪽을 꺼냈다.[강태오님 와인 금지.]세나가 코웃음을 쳤다.“뭐야? 우리 남편 술 마시는 것까지 네가 관리해?”“사모님이 말하지 말라고 하셔서 적어 놨습니다. 읽는 것도 죄면 다음엔 그림으로 그려 드릴까요?”“그려 봐. 당장!”서리는 메모판에 삐뚤빼뚤 술잔을 그린 뒤, 거기다 커다란 엑스를 쳤다. 옆에 태오처럼 가르마를 탄 졸라맨을 그렸다.“자, 사모님. 대표님이 와인 안 드시는 그림입니다.”오복자가 입을 가렸다. 태오는 아예 박수를 쳤다.“머리 모양까지 똑같은데?”“당신 왜 좋아해!”“나보다 잘생겼잖아.”세나는 휴대폰을 꺼내 그림을 찍으려다 멈췄다.“이거 증거로 남겨야겠어. 직원이 남편 얼굴을 몰래 그렸다고!”“사모님, 제 그림 실력이 그렇게 탐나세요?”“증거라고!”“그럼 액자에 넣으세요. 대표님 사무실에 걸면 직원들이 출근하기 싫어지겠네요.”세나가 종이를 구겨 던졌다. 하필 아침에 정리 중이던 와인잔에 퐁당 빠졌다.“아, 씨! 내 결혼반지보다 비싼 잔인데!”
“도둑은 아니고요. 사모님이 기억력을 잃으신 것 같은데요?”윤시아의 말이 끝나자 연회장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백세나는 대리석 위에 떨어진 열쇠를 발로 가렸다.“이거 내가 훔친 거 아니거든!”서리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사모님 가방에 무단 침입했나 보네요. 열쇠를 경찰에 신고할까요?”“이 재수 없는 년이!”“사모님, 손님들 보세요. 오늘의 주인공이시잖아요.”그 말에 세나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하필 손님 하나가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웃음을 참는 중이었다.“방금 찍었어요?”“아뇨, 사모님. 음식 사진…….”“열쇠는 반찬이야? 뭘 찍어!”강태오는 바닥에 떨어진 열쇠를 집어 들었다.“세나야, 그냥 사과해. 네가 잘못 봤잖아.”“내가 왜 청소부한테 사과해!”“방금 손님들 다 들었어. 네가 도둑이라고 했잖아.”태오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서리는 그 얼굴을 보고 속으로 욕했다.‘이 새끼는 마누라 망신도 팝콘 씹으면서 보네.’복자가 식기장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열쇠는 제가 보관하겠습니다. 이제 식기 준비를 마쳐야 합니다.”서리는 얼른 허리를 숙였다.“사모님, 저는 일하겠습니다. 사과는 나중에 계좌이체로 받겠습니다.”“사과를 계좌로 받아?”“현금도 괜찮은데요.”“사모님, 사과 인증 사진이라도 찍어드릴까요?”서리의 농담에 손님 하나가 진짜 카메라를 들었다. 세나가 냉큼 얼굴을 가렸는데, 손가락 사이로 찌그러진 표정이 고스란히 보였다.“찍지 마! 그거 삭제해!”“아직 안 찍었습니다만…….”“그럼 찍을 생각도 하지 마!”손님들이 다시 웃었다.세나는 태오의 팔을 세게 꼬집었다.“오빠! 저년 입 좀 막아!”“당신이 미안하다고 하면 끝날 일을 왜 키워?”“알았어! 미안해! 됐냐?”서리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네.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지갑에 안 들어가겠지만, 잘 받았습니다.”세나의 얼굴이 홍시보다 빨개졌다.그날 밤, 파티가 끝나자 세나는 복자를 불러 직원 휴게실로 쳐들어왔다.“내일부터 이 집 직원은 나한테 먼
“청소부 주제에 내 파티에 숟가락 얹겠다고?”백세나가 식기 점검 신청서를 탁자에 내리쳤다.윤시아, 아니 한서리는 그 숟가락을 실제로 들고 있었다.“숟가락은 이미 얹혀 있는데요. 사모님, 이건 식기예요.”“나 놀려?”“그럼 숟가락한테 사과하라고 할까요?”“이 미친 청소부가!”서리는 속으로 박수를 쳤다. 결혼기념 파티까지 한 달. 강태오와 백세나가 사랑을 과시하는 날, 자신은 그 사랑의 밑바닥부터 닦을 참이었다.“식기 상태만 확인하겠습니다. 은제품은 손님 오시기 전에 광을 내야 해서요.”“광? 네 얼굴에나 내!”“이미 났는데요. 거울 못 보셨어요?”세나의 웃음이 증발했다.“좋아. 식기는 닦아. 대신 서빙은 절대 금지야. 내 손님 앞에 그 낯짝 들이밀지 마!”오복자가 옆에서 업무표를 접었다.“식기 담당과 서빙 담당은 원래 다릅니다, 사모님.”“오 여사, 꼭 쟤 편을 들어야겠어?”“편이 아니라 업무를 설명드린 겁니다.”서리가 배시시 웃었다.“그럼 전 숟가락이랑만 친하게 지내겠습니다. 사모님 남편하고는 말도 안 섞을게요.”바로 그 말에 세나가 눈을 번뜩였다.“약속했다?”“네. 숟가락은 입이 없어서 바람도 못 피우거든요.”“아, 진짜 재수 없는 년!”세나가 떠난 뒤 복자가 서리에게 속삭였다.“시아 씨, 오래 살고 싶으면 말 좀 아껴요.”“그분이 먼저 제 수명 깎잖아요.”“그럼 말을 줄이고 일을 늘려요.”“벌써 여섯 번 닦은 현관도 또 닦을까요?”복자는 웃지 않으려 서류철로 입을 가렸다.서리는 은수저 하나를 들어 빛에 비춰 봤다. 움푹한 면에 비친 얼굴은 코가 푹 눌리고 입이 옆으로 벌어져 있었다.“와, 전남편이 좋아하던 얼굴이 여기 있네.”수저를 뒤집자 이번에는 턱이 길어졌다.“너도 고생 많다. 얼굴이 뒤집혀도 밥은 떠야 하니.”파티 당일, 저택은 아침부터 뒤집혔다. 꽃 장식, 케이크, 손님 선물, 연회장 식기까지. 직원들은 뛰어다녔고 세나는 의자에 앉아 소리만 질렀다.“은수저는 왜 이쪽이야! 사진 찍으면 내
“저 여자 누구야?”강태오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물었다. 백세나는 젖은 머리를 쥐어뜯다 말고 제 발 앞의 걸레통을 걷어찼다.“청소부! 당신은 그것만 보여?”“청소부가 왜 저렇게 예뻐?”“미쳤어? 마누라가 물에 빠졌는데 청소부 얼굴 감상이나 해?”“안 빠졌잖아. 구두만 빠졌지.”서리는 고개를 숙였다.웃지 마. 한서리, 제발 웃지 마.그런데 세나가 물방울을 뚝뚝 흘리며 남편 쪽으로 다가가는 꼴이 꼭 비 맞은 공작새였다.“대표님, 안녕하…….”입에서 튀어나오려던 말이 목에 걸렸다.태오는 집에 돌아올 때마다 인사부터 요구했다. 예전 서리는 현관에 서서 그의 넥타이를 받아 들며 '우리 자기 오셨어요?' 하고 웃었다. 그가 짜증을 내면 웃는 얼굴로 다시 물었다.‘자기야, 밥 먹었어?’반사적으로 손이 넥타이 쪽으로 향했다.서리는 그 손으로 걸레통 손잡이를 움켜쥐었다.“안녕하십니까. 신입 직원 윤시아입니다.”태오가 걸음을 멈췄다.“윤시아?”“네. 윤리적으로 일하고 시원하게 청소하는 윤시아요.”복자가 얼굴을 감쌌다.“시아 씨, 이름에 설명 붙이지 말아요.”“죄송합니다. 면접 때 말을 너무 많이 해서 버릇됐나 봐요.”태오가 웃었다. 그 웃음까지 그대로였다. 비싼 시계를 찬 손으로 턱을 쓸어내리는 동작도.“청소하다 무슨 일이 있었죠?”세나가 냉큼 끼어들었다.“저년이 나한테 물을 뿌렸어!”“꽃병 물이 쏟아진 겁니다.”서리가 바로잡았다.“저년이라고 부르시면 꽃병도 기분 나쁘겠어요. 걘 잘못 없거든요.”“뭐? 너 지금 누구 편이야?”“꽃병 편이요. 오늘 제일 억울해 보이던데.”태오가 결국 소리 내 웃었다.“재밌네.”서리의 속이 뒤집혔다.그 말. 태오는 전에도 사람을 놀려 놓고 꼭 그렇게 말했다. 재미있다고. 자신이 울면 예능이라도 보는 얼굴로.“대표님께선 웃음이 참 저렴하시네요.”“네?”“아, 직원 복지가 좋다고요. 출근 첫날부터 웃으시니까.”태오는 시아를 한참 바라봤다.“몇 살이에요?”“청소 경력이 궁금하시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