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25화. 마탑주의 알현다음 날, 황궁 알현실에는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셀레스티아는 아드리안의 옆자리, 황후로서의 자리에 앉아 그 순간을 기다렸다.⁃ 침착하게.⁃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드러내게 만들어야 해.곧, 문이 열리고 키리안이 들어섰다. 평소의 여유로운 미소를 띤 채, 그는 정중히 예를 갖췄다."폐하를 뵙습니다. 그리고— 황후 마마님도, 함께 계셨군요.""보고할 게 있다고 들었다."아드리안이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는, 평소보다 더 냉랭한 기색이 실려 있었다."예. 최근 북부 지역에서, 세계수 오염의 이상 징후를 발견했습니다."키리안이 품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들었다."오염의 확산 속도가, 예년보다 눈에 띄게 빨라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자연스러운 확산이 아니라,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부추기는 듯한 패턴으로요."셀레스티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 정보, 사실일까. 아니면— 우리를 다른 방향으로 끌어들이려는 미끼일까."증거는."아드리안이 짧게 물었다."여기 있습니다."키리안이 두루마리를 펼쳐 보였다. 정교한 지도 위에, 오염 확산 경로가 표시되어 있었다."이 패턴을 보면— 오염이 퍼지는 방향이, 마치 누군가 특정 경로를 '유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셀레스티아는 그 지도를 유심히 살폈다.⁃ 확실히, 자연스러운 확산 패턴은 아니야.⁃ 그런데 이걸, 왜 굳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거지."마탑주께서는."셀레스티아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이 정보를, 왜 저희에게 알려주시는 겁니까."키리안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옮겨갔다. 옅은 미소가 걸린 채였다."황후 마마님께서도, 세계수의 오염과 무관하지 않은 분이시니까요.""제 성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정확합니다."그의 대답은 지나치게 매끄러웠다.⁃ 준비된 답변이야. 이미 예상했던 질문이라는 듯이."이대로 방치하면, 조만간 대규모 오염 확산이 일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 결국—""제 힘이, 다시 필요해질 거라는 뜻이겠군요."셀레스
24화. 작은 균열의 그림자호숫가에서 돌아온 다음 날, 셀레스티아는 평소처럼 황후 수업을 받고 있었다."마마님, 오늘은 무역 조약 관련 서류를 좀 봐주셔야 할 것 같아요."마사가 두꺼운 서류 뭉치를 안고 들어오며 말했다."무역 조약이요?""네! 최근에 남부 상단들이랑 관세 문제로 좀 시끄럽다더라고요. 폐하께서 마마님 의견도 듣고 싶으시대요."셀레스티아는 서류를 펼치며 옅게 웃었다.⁃ 이런 것까지 나눠주시다니.⁃ 정말로, 계약자 이상으로 대해주시는구나.그녀가 서류를 검토하던 중, 마사가 문득 목소리를 낮췄다."마마님, 근데— 요즘 궁 안에 좀 이상한 소문이 돌아요.""소문이요?""북부 마탑주님이, 최근 들어 황도에 자주 오신대요. 원래는 몇 달에 한 번 올까 말까였는데."셀레스티아의 손이 순간 멈췄다.⁃ 키리안이, 자주 온다고."이유는요?""그건 모르겠어요. 그냥— 공식적으로는 학술 교류라던가 뭐라던가."⁃ 학술 교류라. 편리한 핑계네."마마님, 왜 그렇게 심각한 표정이세요?""……아닙니다. 그냥, 궁금해서요."그날 오후, 셀레스티아는 아드리안의 집무실을 찾았다."레이먼드가 조사한 건, 어떻게 됐습니까.""별다른 건 없다."아드리안이 서류를 내려놓으며 답했다."키리안의 최근 행적은 딱히 수상할 게 없어. 마탑 업무, 학회 참석, 그 정도.""그런데, 요즘 황도 방문 빈도가 늘었다고 들었습니다."아드리안의 눈매가 좁아졌다."……그건 나도 몰랐군. 어디서 들었나.""마사에게서요. 시녀들 사이에 도는 소문이라고 합니다.""확인해보지."셀레스티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직접 만나보는 건 어떻습니까."아드리안이 순간 그녀를 바라보았다."……위험할 수 있다.""압니다. 하지만— 계속 뒤에서 살피기만 하면, 상대가 뭘 준비하는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그자가 노리는 게, 정확히 그대일 수도 있다.""그러니까 더더욱, 제가 나서야죠."셀레스티아는 담담히 답했다."먼저 움직이는 쪽이, 판
23화. 몰래 한 산책서고 사건 이후, 아드리안은 부쩍 더 자주 황후궁을 찾았다."오늘은 또 무슨 핑계십니까."셀레스티아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핑계라니. 순수한 계약자의 안부 확인이다.""어제도 오셨는데요.""어제와 오늘은 다른 날이다.""그런 논리가 어디 있습니까.""방금, 내가 만들었다."셀레스티아는 순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 사람, 이제 아예 뻔뻔해지기로 한 모양이네."오늘은, 뭐 하실 겁니까.""산책.""또요?""이번엔 다르다."아드리안이 창밖을 가리켰다."오늘은, 궁 밖으로."셀레스티아의 눈이 살짝 커졌다."궁 밖이요?""황도 외곽에, 작은 호수가 있다. 경치가 나쁘지 않지.""경호는……""최소한으로만. 신분도 숨기고."셀레스티아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이런 제안을 먼저 하실 줄은 몰랐는데."거절할 이유가 없네요."두 사람은 평범한 귀족 부부처럼 변장을 하고, 간소한 마차를 타고 궁을 나섰다. 호위는 레이먼드 한 명뿐이었다."……이런 옷차림도, 나쁘지 않으시네요."셀레스티아가 수수한 옷차림의 아드리안을 살피며 말했다. 화려한 예복 대신, 평범한 여행자용 외투를 걸친 그는— 어딘가 낯설고, 그래서 더 눈에 띄었다."그런가.""네. 훨씬— 편안해 보이십니다.""그대도."아드리안이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그렇게 입으니, 어디 평범한 마을 아가씨 같군.""평범한 마을 아가씨치고는, 너무 잘생긴 남편을 뒀지만요.""……"아드리안은 순간 말문이 막힌 듯,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 반응에, 셀레스티아는 속으로 조용히 웃었다.⁃ 방금, 내가 이겼다.호수는 생각보다 아름다웠다. 잔잔한 물결 위로 오후 햇살이 부서지고, 주변에는 야생화들이 드문드문 피어 있었다."여긴, 자주 오십니까?""아니. 어릴 때, 딱 한 번."아드리안이 호숫가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보았다."……누구와 오셨습니까.""기억이, 잘 안 난다."그의 목소리에 옅은 씁
22화. 움직이는 체스판서고를 나선 뒤, 아드리안은 곧바로 레이먼드를 불렀다."『태초의 계약사』의 열람 기록을 전부 가져와라. 최근 반년 치로.""……갑자기, 무슨 일이십니까?""찢긴 페이지가 있었다."레이먼드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황실 서고 최심부의 자료가요? 그건 열람 권한을 가진 사람이 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만.""그러니 확인해야지."셀레스티아는 그 대화를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었다.⁃ 열람 권한이 제한되어 있다면— 범위는 좁혀지겠군.⁃ 그리고 그 좁은 범위 안에, 분명 그 이름이 있을 거야.잠시 후, 레이먼드가 낡은 장부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열람 기록입니다. 지난 반년간, 이 서가에 출입한 인물은 총 세 명뿐입니다."아드리안이 장부를 넘겨받아 살폈다. 셀레스티아도 옆에서 함께 들여다보았다.첫 번째 이름은 궁정 사서. 두 번째는 황실 역사학자. 그리고 세 번째—"북부 마탑주, 키리안 노스페라."셀레스티아의 예상이 정확히 들어맞았다.⁃ 역시.아드리안의 손끝이 그 이름 위에서 멈췄다. 표정은 담담했지만, 손등에 드러난 힘줄이 그의 속내를 말해주고 있었다."……날짜를 보십시오."셀레스티아가 조용히 짚었다."열람 날짜가, 저희가 계약을 맺은 지 사흘 뒤입니다.""그게 무슨 의미인지.""제가 제국에 왔다는 소식이 퍼지자마자, 곧바로 이 기록을 뒤졌다는 뜻이죠."아드리안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처음부터, 노리고 있었다는 건가.""단정하기는 이릅니다."셀레스티아는 신중하게 답했다.⁃ 감정적으로 판단하면 안 돼.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어."하지만 적어도— 그가, 제 저주와 폐하의 광기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그날 테라스에서, 그자가 그대의 저주를 언급했었지."아드리안이 낮게 중얼거렸다."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꺼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이미 오래전부터, 조사해왔다는 뜻이겠죠."셀레스티아는 장부를 다시
21화. 서고 데이트발작이 있은 지 며칠 뒤, 셀레스티아는 평소보다 이른 아침 집무실을 찾았다.⁃ 오늘은, 확인해야 할 게 있어.⁃ 그날 밤 이후로, 자꾸만 그 순간이 떠올라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으니까."폐하."서류에 파묻혀 있던 아드리안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를 발견하자, 그의 표정이 순간 옅게 풀어졌다."……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부탁이 하나 있습니다.""말해라.""오늘, 저와 함께 서고에 가주시겠습니까."아드리안이 순간 펜을 멈췄다."……서고라면, 전에도 함께 간 적이 있는데.""이번엔 다릅니다."셀레스티아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제가 찾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리고— 폐하께서도, 함께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뭘 찾는데.""광기와 성력에 대한, 오래된 기록입니다."아드리안의 눈매가 좁아졌다."……갑자기, 왜.""그날 밤, 제 성력이 폐하의 발작을 가라앉혔습니다. 그런데 정작, 왜 그게 가능한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지 않습니까."그녀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덧붙였다."폐하께서도,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계약 당시, 제 저주를 완화할 방법이 있다고 확신하셨던 그 근거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사실은, 이유가 하나 더 있어.⁃ 그날 밤, 폐하 품 안에서 느꼈던 그 안도감이— 대체 어디서 온 건지, 나도 알고 싶으니까.그 속내는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았다.아드리안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 낮게 답했다."……오래된 문헌에서, 얼핏 본 기록이 있었을 뿐이다. 정확한 출처는 나도 모른다.""그럼 더더욱, 함께 찾아봐야겠군요."셀레스티아는 옅게 미소 지었다."저 혼자보다는, 폐하와 함께가 훨씬 빠를 테니까요."아드리안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결국 서류를 내려놓았다."……알겠다."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황궁 서고로 향했다.높은 천장까지 빼곡히 들어찬 책장들 사이로, 오후의 햇살이 조용히 쏟아지고 있었다. 걸음을 옮기는 내내, 셀레스티아는 문득 이상한 편안함을 느꼈다.⁃ 이상하다. 정치
20화. 하룻밤 사이다음 날 아침, 셀레스티아는 낯선 침대에서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지.주변을 둘러보니 익숙한 황후궁의 방이 아니었다. 훨씬 넓고, 묵직한 가구들로 채워진— 황제의 침소였다.⁃ 아.어젯밤의 기억이 순식간에 되살아났다.발작, 붉은 눈동자, 성력을 흘려보내던 순간, 그리고 그 품 안에서 잠들었던 기억까지.⁃ 설마, 정말로 여기서 잔 거야?그녀는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옷은 어젯밤 그대로였고,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일어났나."낮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창가에 서 있는 아드리안이 보였다. 평소의 집무복을 갖춰 입은 채, 이미 완전히 정신을 차린 모습이었다."폐하……. 저, 여기서 잔 겁니까?""그대가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제가요?""피곤해서 그런지, 도무지 놓아주질 않더군."셀레스티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그런 기억은, 전혀 없는데."……거짓말이시죠.""믿기 싫으면 마음대로."아드리안의 입가에 옅은 웃음이 스쳤다. 그러나 그 웃음도 잠시, 그는 곧 표정을 가라앉히며 그녀 쪽으로 다가왔다."몸은, 괜찮나.""……괜찮습니다.""손끝은."셀레스티아는 순간 손을 뒤로 슬쩍 숨겼다. 어젯밤 성력을 과하게 쓴 여파로, 손끝이 아직도 조금 저릿했다."괜찮다니까요.""보여줘.""……""보여달라고 했다."결국 그녀는 마지못해 손을 내밀었다. 아드리안은 그 손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고, 손끝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옅게 남은 붉은 자국이, 어젯밤 흘려보낸 성력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었다."……이렇게까지 무리할 필요는 없었다."그의 목소리에는 나무람보다, 걱정이 더 짙게 배어 있었다."필요했습니다.""왜."셀레스티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답했다."계약자가 위험한 상황이었으니까요.""……그것뿐인가.""……"그녀는 그 질문에 곧바로 답하지 못했다. 어젯밤, 그의 품 안에서 느꼈던 그 이상한 안도감이 다시 떠올랐다.⁃ 계약자라서, 그런 거였을까.⁃ 아니면—"셀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