تسجيل الدخول“당신 왔어?”강이주가 책을 내려놓고 다가오는 구기빈을 바라보았다.구기빈이 강이주 앞에 멈춰 섰다. 곁에 앉아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나 일자리 구했어.”“정말?” 강이주가 반가움과 놀라움이 섞인 눈으로 구기빈을 보았다.구기빈이 정말 취직했다는 사실이 선뜻 실감 나지 않는 듯했다.아직 마음이 놓이지 않은 강이주가 물었다. “어디 보자. 이렇게 능력 있는 구 대표님을 알아본 회사가 어디래? 안목이 높은데?”구기빈이 어디서 일하게 됐는지 정말 궁금했다.구기빈이 목을 가다듬었다. “제로 와이너리야. 신제품 홍보 문구를 쓰는 일을 맡으면 돼.”“기본급은 월 300만 원이고, 성과급도 따로 있어.” 급여 조건까지 강이주에게 알려 주었다.강이주가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와이너리?”‘이름이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데...’곧 기억이 났다.J시의 작은 기업에서 운영하는 와이너리였다.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고 장사도 늘 그저 그랬다.그 회사의 창업자는 성이‘하’ 씨였다.구기빈이 그렇게 작은 회사에 들어간다는 말에 강이주의 마음이 복잡했다.구기빈의 능력이라면 어디서든 인정받을 수 있었다. 구호민이 사사건건 가로막지만 않았다면 그런 작은 회사에서 일할 이유가 없었다.‘홍보 문구를 쓴다고?’왜인지 구기빈이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강이주가 다시 물었다. “300만 원에 성과급까지? 믿을 만한 회사 맞아? 임설한테 한번 알아보라고 할까?”홍보 문구를 쓰는 일만으로 기본급 300만 원에 성과급까지 준다니.어쩐지 마음에 걸렸다.다른 의도가 있거나, 아니면 겉으로만 내세운 자리일 수도 있었다.구기빈이 강이주를 말렸다. “진호한테 벌써 알아보라고 했어. 문제없어. 규모가 좀 작을 뿐이야.”“기본급이 그 정도인 건, 바쁘지 않을 때 기획안 쓰는 일도 도와야 해서 그래. 와이너리 홍보를 여러모로 맡아 줬으면 하더라고.”구기빈은 와이너리의 사정을 강이주에게 자세히 설명했다.배진호가 이미 알아봤다는 말을 듣고서야 강이주의 걱정
구기빈은 밖에서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남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았다.다만... 구기빈이 강서규에게 말했다.“장인어른, 제가 누리던 지위는 구씨 집안에서 받은 겁니다. 이제 그쪽에서 거둬 갔으니 제게 남은 건 없죠.”“지금 J시에는 세상 무서울 것 없던 구 대표가 없습니다. 가진 것 없이 빈손으로 밀려난 구기빈만 있을 뿐입니다.”구기빈은 눈앞의 현실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권력도 재산도 지금의 구기빈에게는 손이 닿지 않는 것이었다.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RG그룹의 후계자로 살 수는 없었다.적어도 확신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평범한 사람이 된 지금이 전보다 훨씬 즐겁고 행복하다는 것.강서규는 내색하지 않고 구기빈을 살폈다.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자신을 속이려는 말도 아니었다.구기빈은 지금의 생활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었다.평범하지만 하루하루가 충실한 삶이었다.그런데도 강서규에게는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이런 생활을 해 본 적이 없어 잠깐의 새로움을 즐기는 건 아닐까 걱정됐다.구기빈은 강서규의 속마음을 읽고 차분히 말했다. “저도 처음부터 높은 자리에 앉아 있던 건 아닙니다. 고생도 해 봤고요. 지금은 그걸 다시 겪는 것뿐입니다.”정말로 처음 걸어왔던 길을 다시 밟는다는 마음이었다.구기빈은 그게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강서규도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금씩 구기빈의 말에 설득됐다.그러고는 결국 한발 물러섰다. 나중에는 생각을 완전히 바꿔 구기빈이 일자리를 찾는 걸 적극적으로 응원했다.구호민이 방해하더라도 할 일이 생겨 다른 곳으로 생각을 돌릴 수 있다면 나쁘지 않았다.구기빈의 취업을 지지하는 대신, 강서규도 구기빈이 자기 부탁 하나를 들어주길 바랐다.강이주가 집을 파는 데 동의하도록 설득해 달라는 것이었다.딸인 강이주도 자기 생각을 이해하고 지지해 줬으면 했다.구기빈은 결국 그러겠다고 약속했다.방에 돌아온 구기빈은 거실에서 강서규와 나눈 대화를 강이주에게 모두 전했다.
잠깐 생각한 끝에 구기빈은 곧장 본론을 꺼내기로 했다.강서규를 보며 말했다. “아직 이 집을 꼭 파셔야 할 만큼 어려운 상황은 아닙니다.”이 문제에 관해서는 구기빈도 강이주와 생각이 같았다.집까지 팔 필요는 없었다.강서규에게 남은 집은 이제 두 채뿐이었다.하나는 지금 살고 있는 넓은 집이었다.다른 하나는 외곽의 조금 외진 곳에 있는, 방 세 개와 거실 하나를 갖춘 2층 단독주택이었다.지금 사는 집보다는 면적이 훨씬 작았다.그래도 강서규가 아내와 딸, 구기빈까지 데리고 들어가 살기에는 충분했다.주변 환경도 괜찮아 조용히 몸과 마음을 돌보며 지내기 좋은 곳이었다.자신을 설득하러 온 게 분명한 구기빈을 보며 강서규가 천천히 말했다. “집을 파는 문제는 이주 엄마랑 오래전부터 여러 번 의논했어.”“그동안은 망설였지. 이번에 마음을 굳힌 건 물론 이주 때문이기도 해. 하지만 다른 이유도...”말끝을 늘인 강서규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이윽고 말을 이었다. “사실은 우리를 위해서이기도 해. 집이 너무 크니 살면서도 쓸쓸하더라. 외곽에 있는 집은 조용해서 좋고.”“나이가 들고 이런저런 일을 겪다 보면, 다들 한적한 곳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어지는 모양이야. 우리라고 다르겠나?”강서규와 장숙연은 노후에 관한 이야기도 여러 번 나눴다.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니 마음가짐도 자연스럽게 달라졌다.강서규가 구기빈을 보며 웃었다. “자네 조부모님처럼 말이야. 나도 죽을 고비를 한번 넘겼잖니. 그러고 나니 많은 걸 내려놓게 되더군.”“이제 다른 바람은 없어. 이주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자네랑 행복하게 잘 지내기만 하면 돼.”부모가 바라는 건 결국 자식이 탈 없이 평안하게 사는 일이었다.구기빈은 강서규의 말을 듣고 선뜻 반박할 수 없었다.오히려 강서규가 구기빈에게 부탁했다. “집 파는 건 자네가 이주를 좀 설득해 주게. 이주 엄마랑 나는 어차피 그쪽으로 옮겨 갈 생각이었어. 시기의 문제일 뿐이지, 이주 때문이 아니야.”“자네도 일자리 구하는
구호민이 쉽게 물러서지 않으리라는 걸 짐작했기에 강이주는 더 화가 났다.결국 그 감정의 밑바닥에는 구기빈에 대한 염려가 있었다.구기빈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나도 당하고만 있을 사람은 아니잖아.”말이 끝나자 강이주가 몸을 기울여 구기빈의 어깨에 살며시 머리를 기댔다.방 한쪽에 초점 없는 시선을 둔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끔은 내가 정말 쓸모없는 사람 같아. 일이 벌어지는 걸 뻔히 보고도 해결할 능력이 없으니까.”말에는 깊은 자책이 배어 있었다.그보다 더 짙은 건 무력감이었다.‘내가 조금만 더 수완이 좋았으면...’‘구호민 회장한테 맞설 힘이 더 있었으면 좋을 텐데.’ 강이주는 그런 생각까지 했다.구기빈은 팔을 뻗어 강이주를 끌어안고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당신은 이미 충분히 대단해.”강이주는 늘 자신이 부족하다고 했다.하지만 실상은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기준이 너무 높을 뿐이었다.그 기준 때문에 일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했다고 느끼는 것이었다.정작 다른 사람들 눈에는 이미 충분히 훌륭하다는 걸 강이주 본인만 몰랐다.강이주는 구기빈이 자신을 위로해 주는 거라고만 생각했다.구기빈이 장점을 하나씩 짚어 주는 말을 조용히 들으면서, 마음속으로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헤아렸다.‘더 잘할 수도 있었어.’아직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더 노력해야 했다.강이주가 살짝 고개를 들어 구기빈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어렸다.구기빈은 한동안 방에서 강이주와 함께 있었다.그러다 강이주가 전화받는 사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거실에는 소파에 앉아 한숨을 쉬는 강서규만 있었다.장숙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구기빈이 강서규 맞은편에 앉았다. “장인어른, 아직 집 파는 일 생각하고 계십니까?”식탁에서 꺼낸 이야기가 강이주만 속상하게 만든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강서규도 어찌해야 할지 몰라 하고 있었다.아버지의 처지에서 딸의 짐을 조금이라도 나눠서 지고
방에 돌아온 강이주는 창가의 긴 의자에 앉았다.아무 말 없이 창밖만 바라보았다.구기빈이 물컵과 약을 들고 다가왔다. “약부터 먹어.”강이주가 약을 받아 들자 구기빈은 몸을 돌려 욕실로 향했다.잠시 뒤 물을 담은 대야를 들고나왔다.물에는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재 팩이 들어 있었다.강이주의 발은 잘 낫고 있었지만, 아직은 꾸준히 병원에서 준 약재를 넣어 족욕을 해야 했다.그동안은 대체로 구기빈이 준비를 맡았다.오늘 저녁도 다르지 않았다.구기빈은 몸을 낮춰 대야를 내려놓고 강이주의 발을 잡았다.물은 아직 뜨거웠다.구기빈은 강이주의 발을 받쳐 들고 따뜻한 김을 쐬어 주었다.앞에 한쪽 무릎을 꿇은 구기빈을 내려다보니 일자리를 구하러 다녔다는 말이 다시 떠올랐다. 속이 상한 강이주는 발을 빼려 했다.구기빈은 취직 문제를 자신과 전혀 상의하지 않았다.말하지 않아도 지난 며칠 동안 어디를 가든 거절당했을 구기빈이 모습이 그려졌다.‘자존심이 그렇게 강한 사람이... 어떻게 그 수모를 다 참았을까?’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움직이지 마.” 구기빈은 강이주가 발을 빼려는 걸 알아차리고 부드럽게 다시 끌어왔다.고개를 들어 강이주를 보았다. “아무리 나한테 화가 나도 당신 몸까지 함부로 하면 안 되지.”강이주는 구기빈의 진지한 얼굴을 마주하고도 입술만 다물었다. 여전히 기분이 풀리지 않은 표정이었다.구기빈도 곧장 변명하지는 않았다.강이주가 더는 피하지 않고 얌전히 맡겨 주는 게 느껴졌다.김을 조금 더 쐰 뒤 물이 적당히 식자 구기빈이 강이주의 발을 조심스럽게 담갔다.구기빈은 일어나 강이주의 곁에 앉았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도 화났어?”그러면서 살짝 부푼 강이주의 볼을 손끝으로 건드렸다.강이주가 못마땅한 듯 얼굴을 돌렸다. 대답도 퉁명스러웠다. “그럼 화 안 나겠어?”‘일자리를 구하는 게 작은 일도 아닌데...’‘말 한마디 안 했잖아. 내가 화내는 게 이상해?’강이주가 정말 화가 났다는 걸 알자 구기빈은 웃
구기빈을 위해 구호민을 적으로 돌리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잘못했다가는 이유도 모른 채 회사가 무너질 수 있었으니까.구기빈은 자신을 바라보는 강이주에게 설명했다.“응. 계속 집에서 노는 것도 심심하잖아. 당신한테 기대 살면서 당연하다는 듯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큰 그룹을 관리할 필요가 없으니 편하기는 해. 그래도 매일 이렇게 지내는 건 재미없어서. 차라리 일이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 싶었어.”장숙연이 믿기 어렵다는 듯 물었다. “자네가? 그래도 명색이 RG그룹 대표인 자네가 남의 밑에 들어가 일하겠다고?”의구심이 가득한 목소리였다.구기빈의 입사 지원서를 받은 회사들이 얼마나 당황했을지 저절로 상상이 됐다.구기빈이 바로잡았다. “장모님, 전 대표입니다. 이미 물러났으니까요.”구기빈은 달라진 처지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말했다.그 뜻을 이해한 장숙연이 고개를 저었다. “전 대표라고 해도 그렇지. 누가 자네를 선뜻 쓰겠나? 놀라서 얼어붙을 텐데.”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실제로 면접관들은 찾아온 사람이 정말 구기빈이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몇 번이고 확인한 끝에야 구기빈이 장난을 치러 온 게 아니라 진짜 면접을 보러 왔다는 사실을 믿었다.몇 차례 면접을 치른 구기빈의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하지만 어느 회사도 구기빈을 선뜻 채용하지 않았다. 아예 면접조차 보지 않은 곳도 있었다.자기들처럼 작은 회사에서 구기빈 같은 분을 모시기는 어렵다고 대놓고 말하는 곳도 있었다.구기빈이 취업할 곳을 찾지 못하고 연거푸 거절당한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졌다.다만 다른 화제가 곧 쏟아지면서 얼마 안 가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구기빈은 이 일을 강이주에게 말하지 않았다.하지만 입을 다문다고 강이주가 영문도 모른 채 넘어갈 리는 없었다.강이주는 구기빈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핸드폰을 켜 이름을 검색했다.예상대로 여러 매체에 관련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기사를 일부러 내리게 하지는 않았다. 구기빈은 제 이름이 박힌 제목들을 그대로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