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얼마 지나지 않아 G시의 두 유력 가문이 동시에 강이주가 가진 지분에 관심을 보인다는 소식이 다시 퍼졌다.강이주는 그 소식을 보고 또 한 번 어리둥절해졌다.옆에 있던 구기빈을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이 흘린 소문이야?”상식적으로는 그럴 리가 없었다.구기빈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한 거 아니야.”이번 일은 정말 구기빈이 꾸민 게 아니었다.구기빈이 사람을 시켜 소식을 흘린 곳은 구호민 쪽뿐이었다.자신의 부상 상태에 관한 내용도 함께였다.구기빈은 척추를 심하게 다쳐 아직 수술 방법조차 확정하지 못한 상태였다.치료가 늦어질수록 회복 가능성도 낮아진다는 이야기가 함께 퍼졌다.지난 며칠 동안 구호민 쪽에서도 구기빈의 상태를 알아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구기빈은 이왕 시작한 연기를 끝까지 밀어붙이기로 했다.‘기빈 씨가 아니라면 대체 누가 그런 소문을 낸 거지?’강이주가 의아해하던 그때였다.옆에 있던 민서호가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양씨 집안 쪽.”민서호는 핸드폰을 내밀었다.화면에는 양수은이 보낸 메시지가 떠 있었다.내용은 단순하고 직설적이었다. RG그룹 지분을 원하니 민서호가 지분을 손에 넣는다면 두 집안의 인연을 생각해서라도 강이주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 돕겠다는 말이었다.구기빈은 메시지를 읽는 내내 속이 묘하게 불편했다.자꾸만 민서호가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양수은이 아들 양인재의 짝을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는 이야기였다.‘설마... 진짜 이주를 며느릿감으로 마음에 들어 하는 건가?’그 가능성을 떠올리자 구기빈의 표정이 단번에 굳었다.강이주는 구기빈의 못마땅한 시선을 알아차리고 물었다. “왜 그래?”말이 끝나기도 전에 구기빈이 핸드폰을 강이주에게 내밀었다.내용을 확인한 강이주도 다시 한번 놀랐다.이제야 구기빈이 왜 기분이 상했는지 알 것 같았다.‘양수은은 대체 왜 이렇게까지 나를 도우려는 건가?’강이주는 핸드폰을 민서호에게 돌려주며 농담처럼 말했다. “이쯤 되면 집에 가서 부모님께 제가 진짜
민서호의 아버지 민태산도 생전에 양인재 이야기를 자주 입에 올렸다.막내아들도 양인재처럼 속 썩이지 않고 반듯하게 컸으면 좋겠다고 한두 번 말한 게 아니었다.민서호가 진지한 표정으로 구기빈을 바라봤다. “나 진짜 농담 아니야. 제수씨 같은 스타일이 딱 양수은 취향이야. 제수씨를 꽤 마음에 들어 하는 건 확실해.”“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을 왜 저렇게까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겠어? 결국 제수씨가 마음에 들었다는 얘기 아니겠냐?”말하면 할수록 민서호는 제 추측이 꽤 그럴듯하다고 느꼈다.민서호는 제법 논리적인 척 설명을 이어 가며 혼자 고개까지 끄덕였다.결국 참다못한 구기빈의 팔꿈치가 민서호의 옆구리를 제대로 가격했다.민서호는 두 걸음 뒤로 물러나 배를 움켜쥐었다. “야, 친구를 죽이려고 하냐? 넌 양심도 없냐?”“입 닥쳐.” 구기빈이 싸늘하게 민서호를 훑어봤다.한마디만 더 마음에 안 드는 소리를 하면 정말 가만두지 않겠다는 경고가 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민서호는 그 살벌한 시선을 알아차리고 바로 진지한 표정을 되찾았다.강이주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양인재는 왜 ‘양’ 씨 성을 쓰는 거야?”전에 양수은을 조사했을 때 데릴사위를 들였다는 이야기는 없었던 것 같았다.민서호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양수은이 결혼할 때 데릴사위라고 공식적으로 정한 건 아니었는데, 결혼 뒤에는 부부가 계속 처가에서 살았대.”“그때 첫째 아이는 남편의 성을 따르고, 둘째는 양수은의 성을 따르기로 미리 합의했다더라.”G시 쪽에서는 제법 알려진 이야기였다.양수은은 남녀 쌍둥이를 낳았고 딸이 먼저 태어났다.딸은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해 곧바로 신생아 집중치료실로 옮겨졌다고 했다.퇴원한 뒤에도 병원을 제집 드나들 듯 자주 오갔다고 들었다.첫째 딸은 남편의 성을 따랐고, 아들 양인재는 양수은의 성을 따랐다.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큰딸 양희연은 세 살 때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다.양수은은 이후 양인재의 성을 아버지 쪽으
병실로 돌아가는 길에 강이주는 유만정의 상태를 물었다.임설은 그 말을 듣자 곧바로 대답했다. “크게 다친 건 없어요. 연세가 있으셔서 넘어지면 여기저기 아프실 수밖에 없죠. 집에 가서 파스 붙이고 쉬시면 될 것 같아요.”유만정이 부린 소란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임설은 진이 빠졌다.강이주에게 또 찾아가 시비를 걸까 봐 참은 것이지, 아니었다면 진작 인내심이 바닥났을 것이다.조금만 더 참았다가는 몸에서 사리가 나올 것 같았다.불평이 가득한 임설의 말에 강이주는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설이 고생했네. 이번 달 월급 올려 줄게. 두 배로.”제 비서를 얼마나 들볶았으면 임설이 저 지경인가 싶었다.지금 임설의 급여는 구기빈 쪽에서 지급하고 있었지만, 급여를 더 챙겨 주는 정도는 강이주에게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민서호가 직접 내려온 것도 유만정이 강이주를 찾아갔다는 사실을 구기빈이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구기빈이 직접 나서려 했지만 민서호가 말렸다.결국 민서호가 대신 내려왔다.막상 와 보니 강이주는 이미 일을 깔끔하게 정리한 뒤였다.민서호는 임설과 함께 카페로 와서 강이주를 데리고 병실로 돌아갔다.병실에 도착한 뒤 강이주는 굳이 숨기지 않았다.양수은이 자신을 찾아왔던 일도 구기빈에게 그대로 이야기했다.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던 말까지 빠짐없이 전했다.민서호는 그 말이 양수은에게서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낮게 물었다. “진짜 그렇게 말했다고?”양수은답지 않은 행동이었다.G시에서 양수은의 수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괜히 ‘여장부’라는 소리를 듣는 게 아니었다.양수은은 무슨 일을 하든 철저히 이해득실부터 따지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그런 사람이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강이주를 돕겠다고 나선 건 아무래도 이상했다.강이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구기빈이 민서호를 바라봤다. “너 양은별이랑 약혼 얘기 있잖아. 양씨 집안 좀 알 거 아니야. 양수은이 왜 이러는 것 같아?”질문받은 민서호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다행히 강이주는 오늘 검은색 롱 원피스를 입고 있어 커피 얼룩이 크게 티 나지는 않았다.다만 쏟아진 음료가 아이스커피인 데다 매장 안 냉방까지 강해서 조금 추웠다. 팔에는 어느새 소름이 돋아 있었다.강이주는 자신에게 커피를 쏟은 사람이 앳되고 귀여운 여자라는 걸 알아차렸다.어깨까지 내려오는 잔잔한 곱슬머리를 반묶음으로 올리고 검은색 크리스털 머리핀을 꽂고 있었다.옷은 무릎까지 내려오는 흰색 원피스였다.여자는 당황한 얼굴로 가방에서 급히 티슈를 꺼내더니 울상이 된 채 강이주의 옷에 묻은 커피를 닦기 시작했다.눈가까지 붉어진 여자가 다급하게 말했다. “정말 죄송해요. 혹시 이 옷 얼마인지 알려주시겠어요? 제가 변상할게요.”여자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강이주의 옷을 계속 닦았다.강이주는 그 손길에 오히려 당황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제가 할게요.”강이주는 여자가 건넨 티슈를 받아 들며 부드럽게 웃었다.고개를 숙여 옷을 닦던 강이주가 조용히 말했다. “검은색이라 크게 티도 안 나요. 집에 가서 세탁하면 돼요. 정말 괜찮아요.”강이주는 고개를 들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히 덧붙였다. “별일 아니에요.”그제야 여자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다행이에요. 그래도 정말 죄송해요. 다시 한번 사과드릴게요.”말을 마친 여자는 강이주를 향해 허리를 깊이 숙였다.예상치 못한 행동에 강이주는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려 했다.그제야 강이주는 자신의 휠체어가 통로 쪽으로 조금 나와 있어 여자가 걸려 넘어진 거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강이주는 오히려 미안해졌다. “다 그쪽 잘못은 아닌 것 같아요. 제 휠체어가 너무 나와 있었네요. 다친 데는 없어요?”강이주의 걱정에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네, 괜찮아요.”여자는 강이주의 휠체어를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리를 많이 다치셨어요? 아까 제가 부딪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에요.”“저는 양... ‘양한별’이에요. 반가워요.” 여자가 밝은 얼굴로 강이주에게 손을
양수은의 뜻 자체는 단순했다.앞으로 강이주가 구씨 집안과 맞서는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자신도 힘을 보태겠다는 말이었다.강이주가 이해하지 못하는 건 양수은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였다.‘혹시 양수은 여사님이 정말 원하는 건 RG그룹인가?’‘여사님도 RG그룹에서 자기 몫을 얻으려는 건가?’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양수은은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관심이 전혀 없지는 않아요. 다만 그렇게 큰 욕심은 아닙니다.”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고 담담히 인정했다.강이주는 지금 기분을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찾지 못했다.분명 이상한데, 정확히 어느 부분이 이상한지는 짚기 어려웠다.양수은이 말을 이었다. “연락처도 이미 교환했으니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제게 연락하세요. 부담스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기꺼이 도와드릴 거예요.”말을 마친 양수은은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죄송해요. 제가 G시로 돌아가야 해서 이제 출발해야 해요. 병실까지 모셔다드릴까요?”양수은은 주변을 둘러봤다. 아직 강이주의 비서는 돌아오지 않은 듯했다.강이주는 휠체어에 앉아 있어 혼자 움직이기에는 불편해 보였다.양수은은 강이주를 보기 위해 일부러 J시로 곧장 왔고, 여기서 다시 이동해 G시로 돌아갈 예정이었다.일정 사이에 시간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다.‘다음에는 시간을 충분히 내서 이주 씨와 더 얘기해야겠어.’강이주는 정중히 거절했다. “괜찮습니다. 제 비서가 곧 돌아올 거예요. 저도 답답해서 조금 더 밖에 있고 싶기도 하고요. 제 다리가 지금 이 상태라 직접 배웅도 못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괜찮아요. 그럼 저는 먼저 가 볼게요.” 양수은이 인사를 건넸다.강이주가 바라보는 가운데 양수은은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나섰다.양수은의 비서는 이미 병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양수은을 발견하자 곧바로 다가왔다. “여사님.”양수은은 주머니에서 작고 투명한 서류 봉투 하나를 꺼내 비서에게 건넸다. “G시에 돌아
양수은은 당시 강중그룹에 상당한 규모의 자금을 투자할 의사가 있었다.그 자금에 YQ그룹의 이름까지 더해지면 강중그룹을 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RG그룹도 섣불리 압박하기 어려워졌을 것이다.G시의 YQ그룹은 배경과 사업 규모 면에서 RG그룹에 밀리지 않는 곳이었다.YQ그룹이 강중그룹 뒤에 서면 RG그룹 역시 공격을 이어 갈 때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강이주의 눈에 의문이 떠올랐다.양수은이 강중그룹에 투자하려 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기억을 더듬어 보니 당시 임설이 누군가 투자 의사를 밝혔다고 말한 적은 있는 것 같았다.하지만 그때 강이주는 당시에 이미 강중그룹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뒤였다. 그래서 임설에게 제안을 거절하라고 했다.그 투자자가 양수은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양수은이 직접 이야기를 꺼내자 강이주는 난처하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그때는 여사님이 투자하려 하신다는 걸 몰랐어요.”“회사도 이미 몇 번 큰 타격을 입은 뒤였고, 예전 수준으로 다시 끌어올리는 게 너무 어려울 거라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정리하는 쪽을 택했습니다.”겉으로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설명이었다.강이주가 다시 경영을 맡은 뒤 회사를 가까스로 일으켜 세우기는 했지만, RG그룹이 몇 번이나 반복해서 압박하자 버티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었다.강이주와 강서규가 여러 상황을 따져 보고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기도 했다.양수은은 강이주를 가만히 바라보다 말했다. “제가 그때 투자하기로 했다면, 적어도 이주 씨가 지게 두지는 않았을 거예요.”“이주 씨, 제게 그런 이유를 대는 건 조금 억지스럽게 들려요. 저도 사업을 오래 했습니다. 이주 씨가 맡은 회사에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도 판단 못 할 사람은 아니에요.”양수은의 한마디가 강이주의 설명에서 허술한 부분을 정확히 짚었다.실제로 양수은은 강이주의 이유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강이주 본인에게 강중그룹을 다시 일으킬 역량이 있었고, 뒤에는 구기빈까지 있었다. 필요하다면 구기빈도 회사를 지키는 데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