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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같은 불편을 보는 눈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6 18:42:44

서윤은 참석자 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참관인도 제품 설명 전에는 개입 자제.

민재가 화면을 보고 웃었다.

“사장님한테도?”

“그래야 같은 조건으로 보지.”

“그 말은 네가 해.”

“응.”

서윤은 일정표를 저장했다. 월요일에 가져갈 물건을 떠올렸다. 용기 샘플. 관찰표. 마른 수건.

도현에게 직접 말해야 했다. 설명하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서윤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일하는 건데, 뭐.」

민재가 상자 안을 들여다봤다.

“씻고 정리하는 과정도 보려면 기존 용기가 있어야 하지 않아?”

“참여자들한테 평소 쓰는 걸 몇 개 가져와 달라고 하자. 뚜껑도 같이.”

“우리 샘플이랑 비교하려고?”

“일단 어떻게 쓰는지 보려고.”

서윤은 안내문에 준비물을 추가했다. 번거로우면 가져오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그다음 관찰표의 첫 질문을 지웠다.

뚜껑을 잃어버려 불편했던 적이 있습니까.

빈칸을 넓혔다. 먼저 보고, 나중에 물을 생각이었다.

◇

3월 10일 아침, 서윤은 빌려 둔 공유 주방의 테이블을 닦았다.

싱크대 옆에 수건을 펼쳤다. 같은 규격에 높이만 다른 용기를 놓고, 뚜껑은 따로 모았다.

민재가 참여자 이름표를 내려놓았다.

“다들 오신대. 한 분은 조금 일찍 가셔야 하고.”

“그분부터 보자.”

“물 마셨어?”

“아직.”

민재가 생수병을 밀어 줬다.

“시작하면 또 안 마셔.”

서윤은 병뚜껑을 열었다.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자 출입문 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도현이었다.

검은 코트 아래로 짙은 회색 정장이 보였다. 고개를 조금 숙이고 들어온 도현이 테이블 앞에서 멈췄다.

서윤은 생수병을 샘플에서 멀리 옮겼다. 병을 놓은 손은 바로 거두지 못했다.

“오셨습니까.”

“준비는 다 됐습니까?”

가까이서 들으니 목소리가 낮았다. 서윤은 병에서 손을 뗐다.

“네. 참여자분들 오시면 시작하겠습니다.”

민재도 인사했다. 도현은 두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코트를 벗어 벽 쪽 옷걸이에 걸었다.

코트가 벗겨지자 정장 소매와 손목이 보였다. 서윤은 그 손이 테이블 끝의 의자를 당길 때까지 보고 있었다.

「종이부터 드려.」

서윤은 관찰표를 건넸다.

“설명 전에는 사용 방법을 안내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려워하셔도 먼저 지켜봐 주시면 됩니다.”

“저도 설명하지 않으면 됩니까?”

“네.”

대답이 너무 빨랐다. 서윤의 손끝에 아직 종이 모서리가 걸려 있었다.

도현은 종이를 잡고도 당기지 않았다. 서윤이 손을 놓자 받아 들었다.

“알겠습니다. 어디에 앉으면 되죠?”

서윤은 싱크대가 보이는 자리를 가리켰다.

“거기서 보시면 됩니다.”

도현이 자리를 옮겼다. 서윤의 동선과 겹치지 않는 쪽이었다.

지나갈 자리가 넉넉해졌다. 서윤은 그 빈자리를 한 번 보고 관찰표를 정리했다.

첫 참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서윤은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

◇

“신제품을 잘 쓰시는지 평가하는 자리는 아닙니다.”

참여자들이 앉자 서윤은 안내문을 펼쳤다.

“평소에 보관 용기를 어떻게 쓰시는지 보려고 합니다. 불편하시면 그대로 말씀해 주세요.”

한 참여자가 천 가방을 들었다.

“이거 다 꺼내면 돼요?”

“네. 평소 정리하시는 대로 놓아 주시면 됩니다.”

용기와 뚜껑이 테이블 위로 쏟아졌다. 투명한 몸체는 겹쳐져 있었다. 색이 다른 뚜껑은 가방 안쪽에서 따로 나왔다.

참여자가 작은 용기에 뚜껑 하나를 올렸다. 모서리를 눌렀다가 손을 뗐다.

“이게 아닌가.”

옆에 놓인 뚜껑을 집었다. 이번에는 두 모서리만 닫혔다.

“집에서도 이래요. 들어갈 줄 알았는데 꼭 하나가 안 맞아.”

민재가 관찰표에 적었다.

서윤은 맞는 뚜껑을 골라 주려다 손을 멈췄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하세요?”

“다 꺼내 보죠. 급하면 다른 통 쓰고.”

“못 찾는 건 잃어버린 경우인가요?”

참여자가 가방을 들춰 봤다.

“아뇨. 여기 다 있을 텐데.”

뒤에서 다른 참여자가 웃었다.

“저도요. 버린 줄 알고 새로 샀는데 서랍 밑에 있더라고요. 맞는 건지 몰라서 밀어 둔 거였어요.”

서윤은 지웠던 질문을 떠올렸다.

잃어버린 적이 있느냐고 먼저 물었다면, 방금 일을 분실 경험으로 적었을지도 몰랐다.

관찰표 한쪽에 표시했다.

있지만 찾지 못함.

다음에는 가져온 용기와 뚜껑을 씻고 정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참여자는 익숙하게 수세미를 쥐었다. 씻는 동안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문제는 물기를 턴 뒤였다.

수건 위에 뚜껑이 나란히 놓였다. 참여자는 몸체를 겹쳐 쌓다가 하나를 다시 꺼냈다.

“이건 붙여 놔야겠다.”

“왜요?”

“따로 두면 또 못 찾으니까요.”

“아직 물기가 있는데 닫으세요?”

“다 마르면 닫으려고요. 그런데 누가 정리해 버리면 다시 섞여요.”

서윤은 젖은 뚜껑의 가장자리를 봤다. 크기가 조금씩 달랐다. 나란히 있을 때는 구별할 수 있었다. 포개 놓으니 아래쪽 것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서윤이 민재 쪽을 보자 그도 수건 위를 보고 있었다.

민재가 작게 말했다.

“씻기 전에는 짝이 있었는데.”

“씻고 나면 없어지네.”

도현은 말을 보태지 않았다. 참여자가 마지막 뚜껑을 닫자 휴대전화 화면을 눌렀다.

초 단위 숫자가 멈췄다.

서윤의 눈이 도현의 손끝으로 갔다. 아까 건넨 관찰표가 그 앞에 놓여 있었다.

설명하지 말라는 부탁을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도현이 시선을 들었다. 서윤은 잠깐 눈을 맞췄다가 수건 쪽을 봤다.

「내가 먼저 보고 있었네.」

펜을 고쳐 쥐었다. 적어야 할 말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첫 글자를 쓰기까지 조금 걸렸다.

◇

기존 용기 관찰을 마친 뒤 서윤은 샘플 상자를 열었다.

“이번에는 저희가 준비한 용기를 써 보실게요. 개발 중인 샘플이라 마감은 실제 판매 제품과 다릅니다.”

높이가 다른 몸체와 뚜껑을 놓았다. 사용 방법은 설명하지 않았다.

한 참여자가 낮은 용기에서 뚜껑을 빼 높은 용기에 올렸다. 손바닥으로 눌러 보고 다시 들었다.

“이건 둘 다 맞네요?”

서윤은 대답 대신 물었다.

“어떻게 확인하셨어요?”

“입구가 비슷해서요. 혹시 몰라서 끼워 봤어요.”

다른 참여자는 뚜껑 밑면을 돌려 봤다.

“표시가 있으면 좋겠어요. 규격별로.”

“어떤 표시요?”

“크게요. 작은 숫자는 물 묻으면 잘 안 보여요.”

서윤은 그 말을 적었다.

설명 전 과정을 끝낸 뒤에야 제품의 의도를 말했다.

“같은 규격이면 높이가 달라도 뚜껑을 함께 쓰도록 기획했습니다. 모든 크기에 하나가 맞는 건 아닙니다.”

“그럼 높은 통, 낮은 통마다 뚜껑 찾을 필요는 없는 거죠?”

“네. 입구 규격이 동일하다면요.”

“씻고 나서 그냥 한곳에 모아 둬도 되겠네요.”

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분이 실제로 편한지 다시 해 봐 주시겠어요?”

참여자는 샘플을 가볍게 헹궜다. 물기를 턴 몸체를 쌓고 뚜껑은 옆에 모았다. 다시 꺼내 닫을 때는 먼저 집은 뚜껑을 그대로 썼다.

도현이 화면을 눌렀다. 종이에 시간을 적고 시선을 들었다.

서윤은 참여자의 말을 듣고 있었다.

“안 잃어버리는 것도 좋겠지만, 저는 안 찾아도 되는 게 더 좋네요.”

펜이 멈췄다.

처음부터 뚜껑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씻고, 말리고, 따로 넣는 동안 맞는 것을 구분하지 못했다.

서윤은 분실 항목 옆에 선을 그었다. 지우지는 않았다. 아래에 새 항목을 적었다.

세척 후 규격 구분.

도현은 서윤이 질문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참여자가 다른 테이블로 이동한 뒤에야 종이를 밀어 놓았다.

“시간 기록입니다.”

“직접 재신 겁니까?”

“용기를 바꿔 끼우는 구간만 쟀습니다. 전체 정리 시간은 아니고요.”

서윤은 종이를 받았다. 설명 전후의 시간과 측정 구간이 짧게 적혀 있었다.

종이 끝을 잡은 도현의 손이 가까웠다. 서윤은 빈 쪽을 골라 잡았다. 닿지 않았는데도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참여자마다 익숙한 용기가 달라서 그대로 비교하기는 어렵겠습니다.”

“네. 기존 용기와 샘플의 차이도 있고요.”

도현이 바로 답했다.

“결론보다 관찰 근거로 쓰면 될 것 같습니다.”

서윤은 마지막 줄을 읽었다.

설명 후에는 뚜껑을 고르기 전에 몸체 높이를 확인하지 않음.

서윤도 방금 본 움직임이었다. 그 문장을 검지로 짚었다.

“이 부분은 영상에서도 확인해 볼게요.”

“기록이 틀렸으면 수정해 주십시오.”

서윤은 고개를 들었다.

도현은 서윤의 얼굴이 아니라 종이 위 손가락을 보고 있었다. 짚은 항목을 확인한 뒤에야 눈을 맞췄다.

서윤은 말을 하려다 숨부터 들이쉬었다. 도현이 기다렸다. 서두르라는 기색이 없었다.

「둘 다 그걸 보고 있었구나.」

서윤은 종이를 관찰표 아래에 끼웠다.

“감사합니다.”

아침에 자리를 정해 주던 때보다 말이 쉽게 나왔다. 목소리도 조금 부드러워졌다.

도현을 보던 눈을 내리고 나서도, 입가에는 힘이 덜 들어가 있었다.

◇

마지막 참여자가 손을 씻는 동안 민재는 사용한 용기를 상자 옆으로 옮겼다.

“이쪽은 닦고 넣으면 되지?”

“응. 뚜껑은 별도로 두자. 사진 한 번 더 찍게.”

서윤은 싱크대에서 헹군 샘플을 들었다. 몸체 안에 물이 조금 남아 있었다.

수건 위에 내려놓으려는데 젖은 바깥면이 손바닥에서 미끄러졌다.

서윤이 손가락에 힘을 줬다.

용기가 기울었다.

테이블 모서리에 부딪히기 직전, 아래에서 손이 받쳤다.

“잠깐만요.”

가까운 곳에서 도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용기가 도현의 손바닥 위에 멈췄다. 서윤은 몸체 옆면을 다시 잡았다.

검지 끝이 도현의 손가락에 닿았다.

두 사람의 손이 함께 느려졌다.

서윤은 숨을 짧게 멈췄다. 젖은 플라스틱은 차가웠다. 닿은 손가락은 그렇지 않았다.

도현도 움직이지 않았다. 용기를 받친 손에 힘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손부터 떼야 하는데.」

서윤이 먼저 용기를 바로 세웠다.

“잡았습니다.”

말끝이 작아졌다.

도현은 바로 손을 빼지 않았다. 서윤이 수건 위에 내려놓는 것을 확인하고 물러났다.

가까웠던 정장 소매가 멀어졌다. 그제야 서윤은 어깨에 들어간 힘을 풀었다.

“물기가 남아 있네요.”

“네.”

서윤은 빈손을 내려다봤다. 검지에 붙인 밴드 끝이 젖어 있었다.

도현이 마른 수건 하나를 가까이 밀었다.

이번에는 손이 닿지 않았다. 수건이 서윤의 손 앞에 멈췄다.

서윤은 수건을 집었다. 손바닥을 닦고 검지 옆을 눌렀다. 닿았던 자리를 자꾸 확인하게 됐다.

도현이 받쳐 준 용기는 흠집 없이 서 있었다.

민재가 상자에서 완충재를 꺼냈다.

“깨질 뻔했어?”

“놓칠 뻔했어.”

“젖은 건 내가 닦을게. 넌 마지막 질문 받아.”

민재는 용기를 가져가 물기를 닦았다.

서윤은 관찰표를 들었다. 도현 쪽을 보려다 참여자에게 몸을 돌렸다.

손끝이 아직 조금 따뜻했다.

◇

조사는 점심 전에 끝났다.

민재가 감사 인사를 하고 참여자들을 출입문까지 안내했다. 서윤은 테이블에 남은 이름표를 걷었다.

도현은 작성한 종이를 순서대로 모았다.

“결과는 언제 공유할 수 있습니까?”

“오늘 관찰 기록부터 정리하겠습니다. 영상으로 확인할 부분은 따로 표시하고요.”

“기획안 문구도 바뀌겠네요.”

“네. 분실보다 세척 후 구분 문제가 더 자주 나왔습니다. 오늘 참여하신 분들만으로 전체 고객을 단정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렇게 적어 주십시오.”

서윤은 빈 상자를 접었다.

도현의 손이 상자 한쪽으로 다가왔다. 서윤은 잡고 있던 손을 조금 옮겼다. 도현이 잡을 자리를 남겼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테이블 위 화면이 밝아졌다.

어머니.

서윤의 손이 멈췄다.

오래전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아들 앞길 막지 말아요.

상자를 너무 세게 눌렀다. 종이가 구겨지는 소리가 났다.

도현이 휴대전화를 들었다. 발신자를 확인하고 화면을 껐다.

“한 대리.”

서윤은 상자 모서리를 폈다. 눌린 부분이 잘 펴지지 않았다.

“네.”

“손 다친 겁니까?”

“아닙니다.”

도현이 구겨진 부분을 봤다. 서윤은 손을 거뒀다. 상자를 내려놓고 관찰표를 집었다.

“이 자료는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그러세요.”

목소리는 조금 전과 다르지 않았다. 그게 더 낯설었다.

방금까지 손의 움직임을 함께 보고 있었다. 동일한 불편을 적고 있었다. 손끝이 닿았을 때는 도현도 잠깐 멈췄다.

그런데 전화가 울린 뒤부터 서윤은 도현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잊고 있었어.」

관찰표 아래에 도현의 기록이 보였다. 서윤은 종이 끝을 맞췄다. 이번에는 손끝에 닿는 감촉만 확인했다.

민재가 돌아왔다.

“차에 먼저 실을까?”

“응.”

서윤은 샘플 상자를 들어 올렸다.

도현이 문을 잡아 줬다. 문을 쥔 손과 정장 소매가 가까이 보였다.

서윤은 고개를 짧게 숙이고 지나갔다. 좁은 문 앞에서 몸을 조금 틀었다.

도현과 닿지 않을 만큼.

◇

회사로 돌아오는 동안 서윤은 관찰표를 읽었다.

샘플 상자의 뚜껑이 들썩일 때마다 민재가 손으로 눌렀다. 도현은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서윤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서윤은 종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고개를 들면 앞자리가 보였다. 들지 않는 편이 나았다.

새 항목 옆에 문장을 적었다.

뚜껑이 존재해도 규격을 구분하지 못하면 사용하지 못함.

한 번 읽고 밑줄을 그었다. 오전에 확인한 사실이었다.

펜을 움직이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을 덜 할 수 있었다. 서윤은 관찰표를 다시 읽었다. 도현이 적은 시간도 확인했다.

종이를 잡은 검지에 밴드가 보였다.

「일만 생각하자.」

4층에 도착했을 때 박 팀장은 사무실 입구에 서 있었다.

“조사는 잘 끝났어?”

“네. 정리해서 공유드리겠습니다.”

민재가 상자를 내려놓았다.

“분실보다 씻고 나서 섞이는 문제가 많이 나왔습니다. 공용 뚜껑 반응도 괜찮았고요.”

박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넥타이 매듭을 잡았다가 놓았다.

서윤은 관찰표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무슨 일 있습니까?”

“오전에 인사팀에서 연락이 왔어.”

민재도 손을 멈췄다.

박 팀장은 사무실 안을 한 번 보고 목소리를 낮췄다.

“내일 구조조정 검토 명단 공개한대.”

서윤은 지난주 확인한 재무 자료를 떠올렸다.

수익성 개선 검토 대상.

그때는 팀 이름 옆에 붙은 표시였다. 내일은 명단이 된다는 뜻이었다.

“부서 단위입니까?”

“조직 통합하고 인원 조정. 둘 다 검토한다는 것만 들었어.”

“대상은요?”

박 팀장이 넥타이를 다시 만졌다.

“그건 내일 봐야지.”

서윤은 책상 위 관찰표를 봤다. 고객이 직접 한 말과 도현이 기록한 시간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조금 전까지 그 기록을 볼 때마다 도현의 손이 떠올랐다.

이제는 적힌 말을 읽었다.

안 찾아도 되는 게 더 좋네요.

오늘 확인한 불편을 제품으로 바꾸려면 아직 할 일이 많았다. 그 일을 할 팀이 남아 있어야 했다.

서윤은 관찰표 끝을 눌렀다.

“팀장님.”

박 팀장이 서윤을 봤다.

“오늘 조사 결과는 어디까지 보고하면 됩니까?”

박 팀장이 대답을 망설였다.

잠시 뒤 내선 전화가 울렸다. 박 팀장은 발신 번호를 보고 넥타이에서 손을 뗐다.

인사팀이었다.

서윤은 의자를 당기지 않았다. 서 있는 채로 박 팀장이 수화기를 드는 것을 지켜봤다.

(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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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현은 태블릿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빈 의자 뒤에 머물던 손이 천천히 내려갔다. 손끝이 의자에서 떨어지는 순간까지 서윤은 보고 있었다.“회사에 온 이유를 묻는 겁니까?”“둘을 다르게 대답할 거예요?”서윤은 책상 모서리에 손을 대지 않았다. 손을 뻗으면 다시 일 이야기로 돌아갈까 봐 망설였다. 손가락을 가볍게 접었다.도현이 입술을 열었다가 닫았다. 대답 전에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 가까워서 들리는 소리였다.“다르게 대답해야 합니다.”“그럼 오늘은 됐어요.”서윤이 몸을 돌렸다. 도현은 붙잡지 않았다. 그런데도 등 뒤에 시선이 남아 있었다.서윤이 의자를 당기기 전에 도현이 다시 말했다.“대답을 피하려는 건 아닙니다.”아까보다 목소리가 낮았다.서윤은 돌아보지 않았다.“지금 못 하는 대답이면 준비해서 해요.”의자에 앉자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반품 비용표가 떠 있었다. 서윤은 글자를 읽으려 했다. 읽던 줄에서 눈이 멈췄다.도현의 손이 태블릿 위에 닿았다. 바로 집어 들지는 않았다. 화면 가장자리에 놓인 손끝이 가만히 있었다.“한 대리.”서윤은 화면을 본 채 기다렸다. 대답하면 목소리가 달라질까 봐 입을 다물었다.“업무가 끝난 뒤에 시간을 부탁해도 되겠습니까?”서윤은 그제야 도현을 봤다. 도현은 태블릿이 아니라 서윤을 보고 있었다.「업무가 끝난 뒤.」그 짧은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목요일에 패널 시험이 잡히면, 결과부터 정리해야 해요.”“그 뒤라도 괜찮습니다.”도현은 재촉하지 않았다. 서윤이 답할 때까지 손도 움직이지 않았다.서윤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그제야 도현이 태블릿을 가져갔다. 책상 위에서 손이 멀어졌다. 서윤은 시선을 화면으로 돌렸다.발소리가 사무실 밖으로 멀어지고 나서야 등받이에 등을 댔다. 짧게 참고 있던 숨이 나왔다.화면 아래로 빵 포장이 조금 나와 있었다.서윤은 남은 빵을 꺼냈다. 포장을 접는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무슨 대답을 하려고.」한 입을 먹고, 식어 버린 물을 마셨다. 목

  • 전 남친이 새 사장으로 왔다   12화. 밤의 두 자리

    서윤은 메일을 끝까지 읽고 4층 버튼을 눌렀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파일을 받친 손가락에 종이 모서리가 눌렸다.설문만으로는 안 된다는 말은 맞았다. 서윤도 그 말을 했었다.그런데도 화면에서 눈을 떼는 데 조금 걸렸다.사무실에 돌아오자 민재가 의자를 돌렸다.“어떻게 됐어?”“검토 일정은 그대로래.”“원가가 낮아져도?”“실제로 팔린 건 아니니까.”서윤은 파일을 내려놓고 메일을 전달했다. 민재가 화면을 아래로 내렸다.“그럼 지금 판매부터 하라는 거야?”“품질 확인이 남았어. 그 순서는 못 바꿔.”“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자.”민재가 빈 문서를 열었다.서윤도 의자에 앉았다. 손을 올렸지만 바로 글자를 치지는 못했다.메일에서 읽은 말이 아직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틀린 말은 아니야.」서윤은 문서 제목부터 적었다.고객 패널 시험안.◇3월 18일 아침, 서윤은 시험안 첫 장에서 구매 의향이라는 말을 지웠다.옆에 적었던 예상 주문도 지웠다.민재가 가방을 내려놓으며 화면을 봤다.“아예 안 물어보게?”“물어볼 거야. 그냥 사고 싶냐고만 묻지는 않고.”서윤은 빈 용기와 뚜껑을 책상 위에 놓았다. 종이 가격표도 옆에 세웠다.“제품을 써 보고, 가격을 보고, 자기 집에 가져갈 구성을 고르게 할 거야.”“안 고르는 것도 가능하게?”“응. 지금 쓰는 걸 계속 쓰겠다는 선택도 있어야 해.”민재는 뚜껑을 집었다가 내려놨다.“좋다고 해 놓고 가격 앞에서는 안 고를 수도 있겠네.”“그걸 봐야 해.”진행 순서는 간단히 정했다. 평소 쓰는 용기를 확인한 뒤 샘플과 가격을 보여 준다. 마지막에는 선택을 바꾸거나 모두 취소할 수 있게 했다.민재가 마지막 칸을 가리켰다.“여기서 결제는 안 받고?”“안 받아. 주문으로 기록하면 안 돼.”“그럼 매출 증거는 여전히 없네.”“맞아. 매출을 대신할 수는 없어.”서윤은 문서 맨 위에 적었다.비판매형 시험. 결제와 주문 접수는 진행하지 않음.선택한 구성과 구매를 포기한 이유는 따로

  • 전 남친이 새 사장으로 왔다   11화. 돌아온 견적

    서윤은 종이 끝을 쥔 손에서 힘을 뺐다.도현의 손이 바로 앞에 있었다. 서류를 건네면 손끝이 닿을 만큼 가까웠다.“여기 있습니다.”서윤은 흩어진 서류를 포갰다. 제목이 보인 종이를 따로 빼지도, 다시 들여다보지도 않았다.종이를 내미는 동안 도현은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 서윤이 끝을 놓은 뒤에야 받아 갔다.손끝은 닿지 않았다. 서윤은 빈손을 무릎 위로 내렸다.도현은 서류를 자료철 안에 넣었다.“감사합니다.”가까이서 들으니 목소리가 낮았다. 서윤은 대답 대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차가 곧은 길로 들어섰다. 서윤은 무릎 위의 시험표를 내려다봤다. 마지막 줄까지 적었는데도 펜을 다시 꺼냈다.아버지 회사.알고 있던 이름 옆에 처음 보는 말이 붙어 있었다. 서윤이 모르는 도현의 시간이 그 자료철 안에 있었다.펜을 쥔 손가락을 고쳐 잡았다. 옆을 보면 도현의 얼굴부터 살필 것 같았다.「묻지 말자.」“한 대리.”펜 끝이 종이 위에서 멈췄다. 서윤은 고개만 조금 돌렸다.“파일 드리겠습니다.”도현이 빈 파일을 내밀었다. 파일 끝을 받으려던 서윤의 손이 잠깐 머뭇거렸다. 도현의 손가락이 접힌 부분을 잡고 있었다.서윤은 반대쪽을 받았다. 시험표를 끼우고 가방 안에 넣었다.“네.”묻지는 않았다.도현도 자료철을 닫았다. 좌석 사이에 놓였던 서류가 사라졌다. 두 사람의 손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서윤은 무릎 위에 손을 모았다. 도현의 소매 끝이 시야에 들어왔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보이는 거리였다.숨을 천천히 내쉬었다.서윤은 창 쪽으로 몸을 조금 돌렸다.◇3월 17일 오전, 제조사에서 새 견적서가 도착했다.서윤은 외투를 의자에 걸치다 말고 앉았다. 첨부 파일은 수정 견적서와 포장 변경안이었다.옆자리 민재가 모니터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왔어?”“응. 포장 비용까지.”“드디어 빈칸 없어지겠네.”서윤은 견적서를 열었다.완성품은 2,000세트 생산 조건이었다. 기존 몸체 금형을 쓰고 뚜껑 체결부만 수정했다. 조립과 기본 포장은

  • 전 남친이 새 사장으로 왔다   10화. 남아 있는 습관

    서윤은 방문 손잡이를 잡고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직접 열어 봐야 한다고 했다. 사진도, 측정값도 없었다.복도 끝에서 도현이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서윤은 문을 조금 더 열었다.“대표님.”도현이 고개를 들었다. 서윤을 보자 휴대전화를 쥔 손이 내려갔다.“제조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샘플은 나왔는데 내일 직접 열어 보라고 합니다.”“문제가 있다는 뜻입니까?”“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수치를 받아 보겠습니다.”도현의 시선이 서윤의 휴대전화에 닿았다. 가까이 오지는 않았다. 서윤은 화면을 내밀려던 손을 멈췄다.둘 사이에는 열린 문 하나만큼의 거리가 있었다.“확인되면 공유해 주세요.”낮은 목소리였다. 조용한 복도에서는 끝까지 또렷하게 들렸다.“네.”서윤은 객실로 들어왔다. 상자 위에 파일을 놓고, 외투도 벗지 않은 채 제조사 담당자에게 전화했다.“열 때 걸리는 겁니까?”“닫히는 건 괜찮습니다. 그런데 손으로 열기가 좀 뻑뻑합니다.”“측정은요?”“내일 오전에 하려고 합니다.”“지금 여러 번 열지는 말아 주세요. 처음 여는 샘플도 따로 남겨 두시고요.”통화를 마친 서윤은 시험표에 항목을 더했다. 낙하 뒤 닫힘 상태와 처음 여는 힘, 반복 사용 뒤 변화를 적었다. 도현에게도 내용을 보냈다.답은 곧 왔다.「내일 아침 식사 후 출발하겠습니다. 접수대 앞에서 뵙겠습니다.」서윤은 가방에서 충전기를 꺼냈다. 짧게 답하고 휴대전화를 뒤집었다.객실 벽 너머로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펜을 들던 손이 멈췄다. 복도에서 들었던 목소리가 아직 귀에 남아 있었다.「내일 또 보겠네.」당연한 일을 새삼 생각했다.서윤은 펜을 내려놓았다. 밴드 끝이 조금 들떠 있었다. 손끝으로 눌러 붙인 뒤 시험표를 다시 펼쳤다.◇3월 15일 아침, 시험실 작업대에 수정 샘플이 놓여 있었다.담당자가 뚜껑 가장자리를 짚었다.“걸리는 깊이를 늘렸습니다. 경사도 바꿨고요.”“어제 실패한 샘플과 표시를 다르게 해 주세요.”서윤은 샘플 번호를 확인했다. 도현은 작업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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