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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블루
혜니는 기분이 확 상해 곧바로 말했다.

“대표님, 비서가 세 명이나 있잖아요. 박 비서에게 동행하라고 하셔도...”

‘아무리 그래도 나만 붙잡고 끝까지 갈아 넣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인우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한마디를 던졌다.

“윤 비서가 대표야, 내가 대표야?”

“그야 당연히 대표님이십니다.”

혜니는 이를 악물고 두 글자를 짜냈다.

‘악덕 자본가.’

“47분 남았어.”

인우가 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덧붙였다.

혜니는 토끼보다 빠르게 뛰쳐나갔다.

‘젠장...’

집까지 가는 데 30분.

화장하고 옷 갈아입는 데 17분.

목을 매달라고 재촉하는 것보다 더 빡빡한 일정이었다.

혜니는 뛰어가며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엄마, 오늘 저녁에 나래 좀 데리러 가 줘. 나 대표님이랑 접대 자리에 가야 해.”

[그래.]

...

혜니가 아파트 밖으로 나오자, 눈에 확 띄는 롤스로이스가 이미 길가에 멈춰 서 있었다.

어느 자리에 앉아야 하나 잠시 망설이던 때, 뒷좌석 문이 열렸다.

혜니가 차에 오르자, 인우가 고개를 돌려 혜니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지나치게 공격적이었다.

감출 생각도 없이 혜니의 얼굴에서 쇄골로... 다시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혜니는 오늘 푸른색 튜브톱 롱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새하얀 어깨는 가녀린 뼈대가 살짝 드러나 더 아슬아슬해 보였고, 가슴 앞 라인은 과하지 않게 아름답게 잡혀 있었다.

허리선은 완벽하게 들어가 있어, 혜니의 몸 선을 고스란히 살려주었다.

정성껏 손본 얼굴까지 더해지니,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부하 직원을 빤히 보는 건 좀 예의가 아닌 것 같은데요.”

혜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무 집요한 인우의 눈빛에, 혜니는 괜히 겁이 날 정도였다.

인우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윤 비서, 그동안 남자친구 없었나?”

“그건 또 어디서 보신 건데요?”

혜니가 눈을 가늘게 뜨며 싸늘하게 쏘아보았다.

“완전 말라비틀어진 막대기가 됐잖아. 예전엔 손에 잡히는 맛이 꽤 있었는데.”

인우의 독설은 여전히 무적이었다.

“대표님은 재산은 늘어난 줄 알았지만, 시력은 나빠지셨나 봅니다.”

혜니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제가 무슨 막대기든 아니든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어차피 대표님 차례는 안 오니까요.”

인우는 웃는 듯 아닌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입은 여전히 매섭네.’

혜니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대학교 시절의 한 에피소드를 떠올렸다.

콩나물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대학교 2학년 때, 혜니가 룸메이트들이 자기 몸을 두고 평평한 막대기 같다고 놀렸다고 투덜거리자, 인우는 혜니에게 여자로서 성장하도록 돕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혜니를 데리고 예쁜 언덕으로 갔다.

그곳은 두 사람이 처음으로 선을 넘었던 장소였다.

언덕 위에는 아름다운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었고, 머리 위로는 별빛이 가득했다.

혜니는 펑펑 울었고, 인우는 이틀 동안 혜니를 달랬다.

그곳은 두 사람만의 약속 같은 장소가 되었다.

이혼 후 2년 동안, 혜니는 기념일이 되면 그곳을 찾아갔다.

하지만 나중에 그 땅은 어느 신비로운 재력가에게 팔렸다.

그 위에는 개인 별장이 들어섰고, 주변에는 담장이 둘러졌다.

그 뒤로 혜니는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었다.

멀리서 바라볼 수 있을 뿐이었다.

다행히 그 은행나무는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

인우는 주머니에서 눈부시게 반짝이는 목걸이를 꺼냈다.

그러고는 갑자기 혜니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가 가까워지자, 특별히 조향한 듯한 옅은 시트러스 향기가 훅 밀려왔다.

혜니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예전의 혜니가 가장 좋아하던 향이었다.

“대표님, 선은 지키시죠.”

“목걸이 해. 내 얼굴에 먹칠하지 말고.”

인우는 그렇게 말하며, 혜니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 주려 했다.

혜니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눈빛까지 움찔 흔들렸다.

이 목걸이는 오후에 혜니가 직접 받아 온 바로 그 목걸이였다.

무려 112억 원대.

혜니가 감히 목에 걸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혹시라도 망가지기라도 하면, 혜니는 평생 인우의 노예처럼 살아도 다 갚지 못할 것이다.

그 순간, 혜니의 머릿속에 초등학교 때 읽었던 유명한 단편 하나가 스쳤다.

제목이 하필이면 ‘목걸이’였다.

“대표님, 이건 너무 귀한 거예요. 저는 못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망가지면 정말 감당 못 합니다.”

혜니는 명절에 어른이 억지로 쥐여 주는 세뱃돈을 끝까지 사양하는 사람처럼 두 손으로 밀어냈다.

“고의로 망가뜨린 것만 아니면 변상 안 시켜.”

인우가 혜니를 못마땅하게 내려다보았다.

“내 파트너가 이렇게 별 볼 일 없게 차려입고 나타나면, 내 체면은 어쩌라고.”

혜니가 멈칫했다.

‘그래...’

혜니는 가난했다.

당연히 이번 시즌 하이엔드 드레스를 살 돈도 없었다.

지금 입은 드레스도 작년에 대표를 따라 만찬에 참석할 일이 있어, 눈물을 머금고 산 것이었다.

가격만 1,700만 원이 넘었다.

그마저도 딱 한 번 입은 게 전부였다.

“그럼... 행사 끝나면 바로 돌려드리겠습니다.”

혜니는 더는 밀어내지 못했다.

어쨌든 이건 인우의 체면과도 관련된 일이었다.

인우가 다시 몸을 숙여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따뜻한 숨결이 혜니의 목덜미에 닿았다.

남자의 손끝이 닿을 듯 말 듯 피부를 스쳐 지나가자, 혜니의 어깨가 아주 잘게 떨렸다.

인우는 붉어진 혜니의 귓가를 바라보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윤혜니.”

“지난 몇 년 동안 아직도 나 못 잊고 산 건 아니지?”

혜니는 인우를 힐끗 쳐다보았다.

“무정한 전남편을 뭐 하러 못 잊어요?”

하늘만 알 것이다.

혜니는 그동안 소개팅을 열일곱 번이나 했다.

하지만 단 한 명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인우라는 남자가 남긴 후유증은 생각보다 훨씬 깊고 지독했다.

“말투에 사적인 감정이 섞였는데.”

인우는 혜니를 자극하는 법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한테 미련이 남은 것 같은데?”

“대표님, 착각도 병입니다. 제대로 된 전남편이 되는 법, 모르세요?”

혜니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죽은 사람처럼 조용히 사라져 주는 거.’

“대표님 정도 몸값이면, 줄 서서 다가오는 여자들도 꽤 많을 텐데요?”

혜니는 차갑게 웃으며, 사람 홀리게 잘생긴 인우의 얼굴을 흘겨보았다.

인우가 여유롭게 물었다.

“번호표라도 뽑을래? 윤 비서라면 우선권도 줄 수 있는데.”

혜니가 눈을 치떴다.

“저는 상사랑 선 넘는 취향 없습니다. 회사에서까지 인생 꼬이게 할 생각은 없거든요.”

“그럼 외로울 땐 어떻게 해결하지?”

혜니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우리 지금 이런 얘기를 나눌 사이가 맞아?’

혜니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그럴 땐 적당한 사람 만나면 되죠. 체력 좋고, 감각 있고, 재미있는 사람으로.”

“윤 비서, 생각보다 재미있게 노네.”

인우의 시선이 혜니의 붉은 입술에 잠시 머물렀다.

그 순간 인우는 깨달았다.

자신이 아주 오랫동안 혜니에게 닿지 못했다는 것을.

벌써 4년이었다.

혜니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표님만 하겠어요? 사흘 밤낮 동안 연락 끊고 재미있게 노셨던 분이...”

인우의 눈빛에 희미한 흥미가 떠올랐다.

“지금 여기서 그 얘기를 꺼내?”

낡은 상처를 들추겠다는 건가.

인우가 느리게 웃었다.

“그럼 전남편은 어때?”

“다시 한번 만나 볼 생각 없나?”

혜니가 대답하기도 전에, 인우의 큰 손이 갑자기 다가와 혜니의 목덜미를 감싸 쥐었다.

그대로 혜니를 제 쪽으로 끌어당긴 인우는 그녀의 붉은 입술을 덮었다.

“읍...”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혜니는 그대로 정신이 흔들렸다.

이어 두 손으로 인우의 가슴팍을 밀어냈지만, 인우는 다른 손으로 혜니의 손목을 붙잡았다.

입맞춤은 거칠고 깊었다.

“한인... 읍...”

인우는 혜니의 숨결까지 삼켜 버릴 듯 놓아주지 않았다.

묵직하게 내려앉은 손끝은 아무렇게나 닿은 듯했지만, 닿는 곳마다 혜니의 감각을 흐트러뜨렸다.

‘4년만이야...’

4년 만의 키스는 거칠고 익숙했다.

김 기사는 재빨리 차 안의 파티션을 올렸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귀머거리이자 장님이었으면 했다.

혜니는 가슴이 크게 흔들렸다.

이를 악물 듯 세게 깨물자, 비릿한 맛이 입안 가득 번졌다.

그제야 인우가 혜니를 놓아주었다.

“한인우, 너 진짜 뻔뻔해.”

인우는 뜻을 이룬 사람처럼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렸다.

“너도 꽤 싫지만은 않았던 것 같은데?”

혜니는 말문이 막혔다.

‘이 개 같은 인간하고는 더 말 섞고 싶지 않아!’

...

20분 뒤, 롤스로이스는 최고급 팰리스호텔 정문 앞에 멈춰 섰다.

차가 완전히 멈추자마자, N시 상공회의소 회장 이장섭이 가장 먼저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그는 직접 차 문을 열며 인우를 맞이했다.

인우가 태유그룹을 인수하고 N시에 강렬하게 복귀한 것은... 상류층 전체를 뒤흔드는 큰 사건이었다.

중요한 건 태유그룹이 아니었다.

한인우라는 사람 자체였다.

인우가 해외에서 세운 HY캐피탈은 수십조 원대 자산을 움직이는 거대한 투자 회사였다.

손댄 프로젝트마다 엄청난 이익을 거두며, 업계에서는 이미 전설 같은 존재로 불렸다.

오늘 밤, N시의 기업인들은 모두 자기 이름을 얼굴에 새겨서라도 인우에게 기억되고 싶어 했다.

이전 N시에는 재계 4대 가문이 있었다.

심씨 가문, 고씨 가문, 류씨 가문, 백씨 가문.

하지만 백씨 가문과 류씨 가문이 해외로 기반을 옮기면서, 지금은 심씨 가문과 고씨 가문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제 인우가 돌아왔다.

그리고 인우는 스스로 자리를 차지했다.

경제 전문지는 현재 인우의 자산을 약 40조 원대로 추산했다.

사람들은 그를 투자계의 저승사자라고 불렀다.

한밤중에 찍힌 회사는 새벽이 오기 전 무너진다는 말까지 돌 정도였다.

인우의 눈에 든 회사는 둘 중 하나였다.

날개를 달고 비상하거나, 완전히 추락하거나.

제3의 가능성은 없었다.

그래서 인우가 N시에 발을 들인 그날부터, 재계는 크게 요동쳤다.

해외로 나갔던 우량 스타트업과 투자사들까지 줄줄이 국내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제 N시 재계의 중심에는 인우의 한씨 가문이 서 있었다.

...

차에서 내리자, 인우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이어 자연스럽게 팔을 내주었다.

혜니의 가슴이 세게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혜니는 선뜻 손을 올리지 못했다.

“윤 비서, 프로답게.”

‘그래. 어차피 업무일 뿐이야.’

혜니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인우의 팔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었다.

얇은 정장 원단 너머로 익숙한 체온이 전해졌다.

인우만의 온기였다.

그 가까운 접촉에 혜니의 심장이 이유도 없이 세차게 뛰었다.

뺨까지 뜨겁게 달아올랐다.

4년이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만으로도 혜니는 긴장해 손바닥에 식은땀이 맺힐 지경이었다.

인우는 혜니의 미세한 반응이 꽤 마음에 든 듯했다.

입가에 알아채기 힘들 만큼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두 사람이 연회장 안으로 들어서자, 모든 시선이 탐조등처럼 한꺼번에 쏟아졌다.

“세상에, 저 사람이 한 대표야? 진짜 잘생겼다. 드디어 N시에서 실물을 보네!”

“나 예전에 J시까지 가서 보름이나 기다렸는데, 얼굴 한 번 못 봤잖아.”

“옆에 있는 여자분도 분위기 장난 아니다. 엄청 예쁘네. 여자친구인가?”

“저 사람이 바로 투자계 큰손이잖아. 지금 N시 재계에서 제일 뜨거운 인물이라던데. 심씨 가문이랑 고씨 가문 후계자들까지 밀어냈다잖아.”

“이제 N시는 완전히 한 대표 세상이네.”

“...”

사방에서 감탄 섞인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장섭이 곧장 앞으로 나서더니, 사람들을 향해 큰 목소리로 소개했다.

“여러분, 이분이 바로 HY캐피탈의 창립자이신 한인우 대표님입니다! 한인우 대표님의 N시 복귀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뜨거운 박수가 연회장 안을 가득 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각계 기업인들이 겹겹이 인우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 사이에는 화려하게 꾸민 예쁜 여자애 세 명도 섞여 있었다.

손목에 찬 시계만 봐도 웬만한 아파트 한 채 값은 되어 보였다.

딱 봐도 어느 집안의 귀한 딸들이었다.

혜니는 적당한 핑계를 대고, 조용히 사람들 틈에서 빠져나왔다.

...

혜니가 막 문밖으로 나와 숨을 돌리려던 때였다.

하이엔드 맞춤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혜니 앞을 막아섰다.

“한인우 대표님 비서죠?”

“안녕하세요.”

혜니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곧장 수표 한 장을 내밀었다.

“한인우 대표님의 앞으로 한 달 일정이 필요해요. 이건 사례비고요.”

혜니는 수표를 힐끗 내려다보았다.

6천만 원.

손이 참 컸다.

그리고 혜니는 곧 눈앞의 여자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Q시 민씨 가문의 외동딸, 민은유.

신생 주얼리 브랜드를 운영하는 대표였다.

“죄송하지만, 한 대표님의 사생활을 지키는 건 비서의 기본 원칙입니다.”

“적어요?”

은유가 비웃듯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손목에 차고 있던 값비싼 팔찌를 풀어냈다.

“이거 2억 원대 제품이에요. 이것도 줄게요. 한 달 일정만 있으면 돼요.”

혜니가 문득 웃었다.

혜니는 손을 들어, 제 목에 걸린 찬란한 블루 다이아몬드를 가볍게 건드렸다.

“주얼리 업계에 계신다면, 제가 목에 건 이 물건이 어느 정도 가치인지 알아보시겠네요.”

은유는 눈을 가늘게 뜨고 혜니의 목걸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깊은 바다처럼 짙은 푸른빛.

흠잡을 데 없는 커팅.

전설처럼 떠돌던 ‘블루 하트’였다.

“말도 안 돼요! 진짜일 리가 없어요!”

은유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혜니는 더는 상대하고 싶지 않아 그대로 몸을 돌렸다.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돈 있는 척하는 것도 꽤 통쾌하네.’

은유는 멀어지는 혜니의 뒷모습을 독기 어린 눈으로 노려보았다.

‘고작 비서 주제에 저런 목걸이를 어떻게 해?’

‘설마... 한인우 침대에 오르기라도 한 거야?’

‘천한 것. 그래서 일정을 안 넘기겠다는 거였어? 한인우를 독차지하려고?’

은유는 손짓으로 남자 웨이터 하나를 불렀다.

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수표를 그대로 웨이터의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

혜니가 다시 홀 안으로 돌아오자, 등 뒤에서 낮고 자성 있는 비웃음이 들려왔다.

“윤 비서, 남의 위세를 빌리는 솜씨가 꽤 괜찮던데.”

혜니의 가슴이 철렁했다.

‘들었나?’

혜니는 몸을 돌렸다.

얼굴에는 완벽한 업무용 미소를 걸고 있었다.

혜니는 인우에게 가까이 다가가, 두 사람만 들을 수 있을 만큼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대표님은 지금 N시의 신 같은 분이시잖아요. 제가 비서인 이상, 그 빛을 조금쯤 빌려 쓰는 건 당연하죠.”

혜니는 몰랐다.

자신은 살짝 고개를 든 채 눈빛을 반짝이는 지금 자신의 모습이, 인우에게 얼마나 위험하게 보이는지...

인우는 당장이라도 혜니를 품에 가둬 버리고 싶었다.

4년이었다.

인우는 4년을 참았다.

이번에 돌아온 이상, 더는 그렇게 살 생각이 없었다.

인우는 몸속에서 들끓는 열기를 억지로 눌러 삼켰다.

그때 또 다른 기업인이 다가왔다.

“한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하동테크의 하동승입니다.”

인우는 고개를 돌려 혜니에게 말했다.

“가서 뭐라도 좀 먹어. 이따가 내가 찾아갈 테니까.”

“네.”

혜니는 몸을 돌려 케이터링 테이블 쪽으로 향했다.

사실 혜니는 꽤 배가 고팠다.

샴페인을 든 웨이터가 지나가자, 혜니는 자연스럽게 한 잔을 집어 들었다.

두 모금 정도 마신 뒤, 정갈하게 놓인 작은 디저트 몇 개를 접시에 담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지러움이 밀려왔다.

온몸에서 힘이 빠지는 듯하더니, 이상한 열기가 몸 안쪽에서부터 번져 올라왔다.

‘취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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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편은 ‘나’바라기   제30화

    “강제후 본부장, 본인이 직접 정예 인력으로 팀원 다섯 명 더 뽑으면 돼.”제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표정은 진지했다.“네, 대표님.”인우의 시선이 이번에는 새연에게 향했다.“소 비서는 프로젝트팀 지원을 맡아. 모든 진행 상황은 대표실로 직접 보고하고.”“네, 대표님.”새연의 마음속에는 기쁨이 확 번졌다.회의실 안은 조용했다.남성도 프로젝트는 투자 규모만 수천억 원대에 달하는 사업이었다. 인우가 태유그룹을 맡은 뒤 처음으로 추진하는 대형 프로젝트였으니, 중요도는 말할 것도 없었다.혜니는 인우가 제후를 밀어내기는커녕 오히려 중책을 맡길 줄은 몰랐다.마지막으로 인우가 발표했다.“이달 말, 프로젝트팀 전원은 남성도로 현장 답사를 간다.”회의가 끝나자 혜니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그래도 회사 일에 사감은 안 섞었네. 그 정도 그릇은 되나 보지.’...비서실로 돌아오자 새연은 행복한 새처럼 거의 뛰어오를 기세였다.“너무 좋아! 앞으로 강제후 본부장이랑 마주칠 일이 많아지겠네!”새연은 들뜬 얼굴로 혜니의 팔을 붙잡았다.“혜니야, 화 안 나지?”새연은 옆에 있던 미나도 바라보았다.“미나야, 너도 화 안 나지?”새연은 잘 알고 있었다. 이 사무실에 제후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혜니는 웃었다.“화 안 나. 프로젝트 잘 따라가.”미나는 아쉬운 얼굴로 턱을 괴었다.“대표님... 완전 사랑의 큐피드 아니야? 사람들 인연 이어주려고 내려오신 줄 알았네. 내 인연은 언제쯤 이어주시려나?”혜니의 가슴이 세게 움츠러들었다.‘아, 속셈이 여기 있었구나.’인우는 새연과 제후를 엮어 주려는 것이었다.‘쯧쯧, 그 미친놈...’미나가 다시 물었다.“혜니야, 내일 네 생일이잖아. 어떻게 보낼 거야?”“다 같이 회전식 레스토랑 가자. 내가 맛있는 거 살게.”혜니가 웃으며 말했다.“진짜?”새연이 맨 먼저 벌떡 일어났다. 손발 다 들어 찬성하는 표정이었다.그때 내선 전화가 울렸다.혜니는 전화를 받았다. “네, 알겠습니다.”

  • 전남편은 ‘나’바라기   제29화

    혜니의 머리가 3초쯤 정지했다. 눈앞이 새하얘졌다.‘망했어! 사람을 잘못 봤어!”‘왜 하필 제후 씨였어?’혜니는 제후의 젖은 검은 머리카락을 바라보았다. 물방울이 매끄러운 턱선을 따라 굴러내리더니, 물에 젖어 색이 짙어진 셔츠 깃 안으로 스며들었다.넓은 어깨, 잘록한 허리.그 존재감은 화면을 뚫고 나올 만큼 강했다.경서는 옆에서 거의 넋을 놓고 있었다.혜니의 뺨이 확 달아올랐다. 뜨거운 기운이 목덜미에서 귓가까지 번졌다.“죄... 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혜니는 겨우 목소리를 되찾고 허둥지둥 손을 내저었다.“저는 다른 사람인 줄 알고...”제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을 들어 얼굴에 묻은 물을 한 번 닦아 냈다. 검은 눈동자는 조용히 혜니를 바라보고 있었다.눈빛은 깊었다. 감정을 읽기 어려웠지만, 혜니는 제후가 분명 화가 났을 거라고 생각했다.누가 갑자기 물벼락을 맞고 기분이 좋겠는가?“잠....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혜니는 그 말만 남기고 곧장 침실로 뛰어갔고, 장롱을 뒤져 새 목욕타월을 꺼냈다. 이어 다시 바람처럼 돌아와 제후의 품에 밀어 넣었다.“빨리 닦으세요! 감기 걸리면 어떡해요!”수건은 크고 부드러웠다. 막 빨아 햇볕에 말린 듯 폭신한 감촉이 느껴졌다.제후는 수건을 받아 들었다. 고개를 숙여 머리카락을 닦는 동작은 서두르지 않고 차분했다.제후가 움직일 때마다 은은한 향기가 공기 중으로 번졌다.아카시아꽃 향기였다.맑고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향기였다.“괜찮습니다. 오히려 시원하네요. 오늘 밤이 조금 후텁지근했거든요.”제후의 첫마디는 혜니의 죄책감을 절반 이상 씻어 냈다.물기에 젖은 제후의 목소리에는 살짝 낮은 쇳소리가 섞여 있었다.깊고 듣기 좋았다.제후는 머리를 반쯤 말린 뒤, 수건을 팔 위에 걸쳤다. 시선은 혜니에게 닿아 있었다.“혜니 씨가 답장이 없어서 걱정됐어요. 무슨 일 생긴 건 아닌가 해서 올라와 봤고요. 다음부터는 꼭 도어락 화면 확인하고 문 여세요.”“네...”

  • 전남편은 ‘나’바라기   제28화

    “한 번만 더 답장해 봐. 내일 바로 강제후를 N시에서 사라지게 만들 테니까.”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파괴력은 엄청났다.혜니는 인우를 바라보았다. 충격과 불신이 눈에 가득 차올랐다. 이어 말없이 핸드폰을 내려놓았다.‘이 남자가 어떻게 내가 제후 씨랑 메시지 주고받는 걸 안 거지?’혜니는 차 안을 둘러보았다. 숨겨진 카메라가 있는 게 아니라면, 인우의 속셈이 보통 많은 게 아니었다.“설마 그런 식으로 회사 일에 사적인 감정을 섞는 사람은 아니겠지.”“맞아.”인우는 이를 악문 듯 두 글자를 밀어냈다. 눈 밑의 음산한 기운은 더 짙어졌다.“강제후 본부장은 태유그룹의 핵심...”“윤혜니.”인우가 차갑게 혜니를 바라보았다.“강제후 편드는 말 한마디만 더 해 봐.”혜니는 화가 나 온몸이 떨렸다. 가슴이 거칠게 오르내렸다.‘개X끼! 나한테만 이러지.’“앞으로 강제후랑 거리 둬.”인우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내가 정한 선 넘을 생각 하지 말고.”“왜?”혜니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 네가 내 뭐라도 돼?”“내가 가졌던 여자는 아무나 건드릴 수 없어.”인우가 차갑게 웃었다.“설령 내가 버렸다고 해도 남들이 주워 갈 자격은 없지.”그 말은 혜니에게 평생 다시 누구와도 결혼할 생각은 하지 말라는 뜻처럼 들렸다.혜니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혜니는 갑자기 차갑게 웃었다.“그래? 그런데 어떡하지. 지난 4년 동안, 나... 남자 꽤 많이 만났는데?”인우의 손이 거칠게 뻗어 와 혜니의 손목을 붙잡았다. 눈 안에는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타오르고 있었다.“그 농담 재미없어.”인우는 제대로 화가 나 있었다.차가 갑자기 멈췄다. 김 기사가 또 한 번 큰 싸움을 막아 낸 셈이었다.“놔!”혜니는 힘껏 뿌리쳤지만 빠져나갈 수 없었다.인우가 갑자기 몸을 기울여 다가왔다.고개를 숙인 인우는 혜니의 새하얀 어깨를 그대로 깨물었다.“한인우, 너 변태야? 아프다고!”혜니가 소리쳤다.김 기사는 놀라 허

  • 전남편은 ‘나’바라기   제27화

    “네가 시범 보여 달라며? 행동이 말보다 설득력 있잖아.”인우는 원하는 대로 됐다는 듯 입꼬리를 끌어올렸다.혜니는 말문이 막혔다.“한 대표님, 안녕하십니까.”부드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두 사람 뒤에서 들려왔다.인우와 혜니가 함께 고개를 돌렸다. 혜니는 깜짝 놀랐다.‘제후 씨가 왜 여기 있어?’‘혹시 방금 봤나?’제후는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와 팔짱을 낀 채 두 사람 곁에 서 있었다. 여자는 정교한 메이크업에 우아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천 대표, 안녕하십니까.”인우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한 대표, 보내 주신 투자 계획안은 잘 검토했습니다.”천리야는 진지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인우는 천리야의 말을 성의 있게 들었다. 이어 몇 가지 전문적인 용어로 답했다.혜니는 몹시 민망했다. 지금 이 와중에도 혜니는 여전히 인우의 품 안에 붙잡혀 있었다.마지막에 인우가 제후를 향해 말했다.“천 대표님께 잘 응대해 주세요. 태유그룹의 진심과 성의를 충분히 느끼실 수 있도록.”“네, 대표님.”제후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눈동자 깊은 곳에는 억눌린 감정이 스쳤지만, 제후의 표정에는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았다.인우는 혜니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 혜니는 뒤돌아볼 용기조차 나지 않고, 뒤통수가 화끈거렸다.인우는 혜니를 테라스로 데려갔다. 이어 난간과 두 팔 사이에 혜니를 가둔 채 내려다보았다.“한인우, 일부러 그런 거지?”“뭘 일부러 해?”인우는 모르는 척 물었다. 인우의 얼굴이 혜니 가까이 다가왔다. 또 기습이라도 할 것 같은 거리였다.혜니는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아니지. 이 사람... 제후 씨가 나한테 고백한 걸 어떻게 알아?’사실 인우는 혜니가 밤에 국수 한 그릇을 끓였고, 그 위에 청경채가 몇 줄 올라갔는지까지 똑똑히 알고 있었다. 진정이 사진까지 찍어 보냈기 때문이었다.‘감히 다른 남자한테 국수를 끓여 줘?’하나하나 다 기억해 둘 작정이었다. 나중에 한꺼번에 모아서 벌을 줄 생각이었다.“놔.

  • 전남편은 ‘나’바라기   제26화

    옆에 있던 남자 하나가 아낌없이 찬사를 보냈다.“한 대표님 품에 들어온 분답네요. 정말 보기 드문 미인이십니다.”혜니는 담담하게 한마디했다.“저는 그냥 한 대표님 비서입니다.”혜니는 곧바로 인우와 선을 그었다.인우가 혜니의 허리에 두른 손에 힘을 더했다.“잠시 실례하겠습니다.”인우는 혜니를 데리고 사람이 적은 구석으로 향했다.혜니는 바로 자신의 허리에 두른 인우의 큰 손을 떼어 냈다.“이렇게 붙잡지 마. 불편해.”인우의 눈빛에는 날카로운 기운이 섞여 있었다.“누가 너한테 이렇게 입으래?”혜니는 어이가 없었다.‘무슨 뜻이야?’“이거 네가 진 비서님 시켜서 보낸 드레스 아니야? 난 또 나가서 접대라도 하라는 줄 알았지.”인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인우는 그저 진정에게 가장 최신 디자인의 드레스 한 벌을 골라 혜니에게 보내라고 했을 뿐이었다.그런데 빌어먹을 진정이 이렇게 몸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옷을 골랐을 줄은 몰랐다.그 시각, 침대 옆에 앉아 나래가 잠든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진정은 갑자기 몸을 떨었다.왠지 모르게 등골이 서늘했다.인우의 눈이 가늘어졌다.‘이 계집애, 좀 더 성숙해졌네. 나무토막 같던 애가 제법 여자가 됐어.’인우는 외투를 벗었다. 체온과 은은한 시더우드 향기가 배어 있는 재킷이 그대로 혜니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자신감은 어디서 나와? 네가 그렇게 대단한 줄 알아? 누가 널 쳐다본다고.”혜니는 말문이 막혔다.“한 대표는 시력이 꽤 안 좋나 봐. 나한테 한 번에 100억 원을 부르다니.”혜니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받아쳤다.“윤혜니, 나 지금 네 상사야.”인우의 잘생긴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흥.’‘말로 안 되니까 이제 직급으로 누르겠다 이거지.’‘진짜 엿 같네.’“대표님께서 이렇게 급하게 부르신 이유가 뭔지 여쭤봐도 될까요?”혜니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꼭 혜니여야 한다던 그 급한 일이 대체 뭔지 들어나 보자는 뜻이었다.인우는 느릿하게 소매 끝을 정리했다.“난 다른 여

  • 전남편은 ‘나’바라기   제25화

    혜니는 나래의 머리를 말려 주고 옷까지 입혔다. 그런 뒤 따뜻한 우유를 한 병 데워 나래가 침대에 누워 혼자 안고 먹을 수 있게 해 주었다.그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야 혜니는 체념한 사람처럼 방으로 향했다.10분 뒤, 다시 모습을 드러낸 혜니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고급스러운 금빛 슬립 드레스는 혜니의 가늘고도 균형 잡힌 몸매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길게 늘어뜨렸던 머리는 느슨하게 틀어 올려져, 곧고 예쁜 어깨와 목선이 드러났다.혜니는 8센티미터 굽의 하이힐을 신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칼끝 위를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했다.혜니는 진정에게 주의할 점을 몇 가지 꼼꼼히 일러 준 뒤에 문을 열고 나갔다.집 아래에는 검은색 롤스로이스가 줄곧 기다리고 있었다.혜니가 차 문을 열자 김 기사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제발 오늘 밤에는 문 세게 닫지 말아 주십시오, 윤 비서님.’‘또 그러시면 제가 수리비 청구서를 받아야 합니다.’‘그때는 정말 보기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겁니다.’혜니는 핸드폰을 꺼내 경서에게 카톡을 보냈다.[나 한인우한테 잡혀서 강제로 끌려가는 중이야. 조금 있다가 집으로 와서 나래 좀 봐 줘.]경서는 곧바로 책상을 뒤엎는 이모티콘을 보냈다.[미친! 그 쓰레기... 사람 맞아? 너 오늘 교통사고 났다며?]혜니는 입꼬리를 희미하게 당긴 뒤 답장을 썼다.[본인이 그러더라. 나 아니면 안 된대.][우웩! 완전 가스라이팅이잖아! 내가 사람 데리고 구하러 갈게!]경서의 답은 바로 도착했다.혜니는 화면을 바라보며 마음 한쪽이 따뜻해졌다.[오지 마.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어. 나래나 좀 봐 줘.][알았어.]...차는 결국 한적하고 은밀한 프라이빗 멤버십 클럽 앞에 멈췄다.입구에는 낮고 묵직한 블랙 골드 톤의 대문이 있었다. 간판 하나 없었고, 유니폼을 입은 도어맨들만 양쪽에 공손히 서 있었다.혜니는 도어맨의 안내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부드러운 카펫을 밟고, 구불구불 이어진 복도를 지나갔다.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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