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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Penulis: 이야기보따리
저녁 식사 자리에서 고이한은 소예지에게 오늘 밤 출장 갔다가 일주일 후에 온다고 했다. 소예지는 어디로 가는지 묻지도 않았지만 고하슬은 아빠를 일주일 동안 못 본다는 소리에 밥도 먹지 않고 울음을 터뜨렸다. 고이한이 선물을 사주겠다고 달래고 나서야 겨우 그쳤다.

그 후 일주일 동안 소예지는 일하면서 딸을 돌보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실험실 설립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어느덧 금요일이 되었다. 소예지는 고하슬을 데려다준 다음 곧장 A시 의대로 향했다. 오늘 회의가 있기 때문이었다.

실험동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뒷모습의 누군가가 문 앞에서 다른 사람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걸 보았다. 소예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그 사람을 쳐다봤다.

바로 강준석이었다.

그는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얘기를 나누면서 긴 손가락으로 습관적으로 금테 안경을 올렸고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에 강준석이 고개를 돌리자 소예지와 눈이 딱 마주쳤다.

소예지는 감격에 겨워 눈시울이 붉어졌고 강준석이 한 걸음 한 걸음 그녀에게 다가갔다.

“예지야, 또 만났구나.”

그녀는 재빨리 감정을 억눌렀다.

“준석 선배.”

강준석이 웃으면서 그녀를 훑어보았다.

“저번에 봤을 땐 네 아빠랑 닮았다는 걸 잘 몰랐는데 오늘 보니까 참 많이 닮았구나. 특히 눈이.”

소예지도 웃어 보였다.

“선배는 여기에 무슨 일로 왔어?”

“국내에 세계 최대 유전자 검사 기지가 세워진다는 소식을 듣고 왔지. 온 김에 임용 절차도 밟고.”

소예지가 흥분한 얼굴로 한 걸음 다가왔다.

“여기서 일하게 된 거야?”

강준석이 안경을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번 연구에 참여하기로 했어”

“환영해. 선배랑 일하게 돼서 너무 기뻐.”

소예지는 손을 내밀어 그와 악수했다.

강준석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운 좋게 너의 아빠랑 일했었고 또 너랑 동문도 되었는데 이번에는 동료가 돼서 나도 너무 기뻐.”

그때 옆 복도에서 두 사람이 서류를 안고 서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안채린이었는데 강준석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저 남자한테 첫눈에 반했어?”

옆에 있던 여자가 그녀를 툭 쳤다.

안채린의 예쁜 얼굴에 수줍음이 감돌았다.

“저 남자가 누군지 알아?”

“누군데?”

“강준석이라고 M국 의학계 천재야.”

안채린의 두 눈에 흠모하는 빛이 가득했다.

“뭐야? 지금 강준석이랑 얘기하고 있는 사람이 소예지 아니야? 둘이 어떻게 아는 사이지?”

안채린이 싸늘한 눈빛으로 소예지를 훑어봤다. 최근 회의마다 참석하는 걸 보면 소예지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게 분명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가 아버지 덕에 겨우 들어온 거라고 추측했다.

의학 분야에서는 무엇보다 실력이 중요했다. 소예지의 실력이라면 언젠가는 쫓겨날 거라고 생각했다.

회의에서 강준석은 실험팀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의학계의 젊은 천재가 자발적으로 귀국하여 이 실험에 참여했다는 건 실로 뜻밖이고 놀라운 일이었다.

“예지야, 토요일 저녁에 강 박사 환영회를 열기로 했는데 꼭 참석해. 알았지?”

윤혁의 말에 소예지가 웃으며 답했다.

“당연히 가야죠.”

“강 박사 덕분에 정말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아.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

그때 강준석이 선배들과 얘기를 마치고 이쪽으로 걸어오자 윤혁이 웃으며 말했다.

“강 박사님, 그럼 전 다른 일을 처리하러 가볼게요. 오늘 밤 환영회에서 다시 얘기 나누고 술도 한잔해요.”

“그럽시다.”

강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강준석이 놀란 표정으로 소예지에게 물었다.

“종양이 미세 환경에서 CAR-T 세포 생존 시간을 90일 이상으로 늘릴 수 있다는 생각을 어떻게 한 거야?”

이건 소예지가 지난 6년 동안 계속 연구해온 과제였다.

“아빠가 제공해주신 몇 가지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 견해를 대담하게 제시해봤어. 물론 지금은 단지 탁상공론에 불과하고 실험을 통해 증명해야 한다는 걸 알아.”

소예지의 말에 강준석의 두 눈에 존경심이 가득해졌다.

“너의 분석 보고서를 봤는데 모두 매우 선구적이고 실험 가능성이 높아. 사실 내가 귀국한 이유도 너 때문이야.”

그녀가 깜짝 놀라자 강준석이 서둘러 해명했다.

“오해하지 마. 내 말은 너의 견해에 관심이 생겼단 말이야.”

소예지가 피식 웃었다.

“선배랑 함께 일하게 돼서 너무 기뻐.”

저녁, 소예지는 딸에게 줄 풍경을 만들었다. 알록달록한 별이 흔들리며 맑은 소리를 내자 고하슬은 매우 좋아했다.

그때 대문 밖에서 차 소리가 들려왔다. 고하슬이 기뻐하면서 벌떡 일어났다.

“아빠가 왔나 봐요.”

소예지가 뒤쫓아 나왔을 때 고하슬은 이미 고이한의 품에 안겨 있었다.

“아빠 보고 싶었어?”

“네. 아빠, 선물은요?”

고이한은 다시 차 트렁크로 돌아가 예쁜 인형을 꺼냈다.

“마음에 들어?”

“와. 너무 마음에 들어요.”

고하슬이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이한의 시선이 소예지에게 향했다.

“네 선물은 내일 줄게.”

그러자 소예지가 무심하게 거절했다.

“필요 없어.”

고이한의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지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딸의 선물을 뜯어주려고 가위를 찾았다.

소예지는 말없이 위층으로 올라갔다. 지금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고이한이 돌아와 고하슬과 놀아줘서 잠시 일할 틈이 생겼다.

저녁 식사 시간 고이한이 고하슬에게 말했다.

“할머니랑 왕할머니가 귀국하셨어. 내일 만나러 갈까?”

소예지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스쳤다.

‘출장 갔다더니 어머님이랑 할머니를 모시고 온 거였어?’

고하슬이 눈을 크게 떴다.

“정말요? 그럼 할머니 집에서 지내도 돼요?”

“내일 주말이니까 아빠가 데려다줄게.”

고이한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곧 설이 다가와 함께 설을 쇠려고 고이한이 시어머니와 할머니를 미리 모셔왔고 설 이후에 국내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소예지는 생각했다.

저녁, 소예지는 고하슬을 재운 다음 서재에 가려 했다. 그때 고이한이 안방에서 나오면서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상대를 달래고 있었다.

“무서워하지 마. 지금 갈게. 몇 분 안에 도착할 거야.”

잠시 후 창밖에서 차 소리가 들렸다.

‘별장에서 몇 분 거리면 심유빈의 집이겠지.’

...

아침 식사 시간, 양희순은 무심코 고이한이 새벽 2시에 들어왔다고 말해버렸다. 말한 후에는 소예지의 표정을 몰래 살폈다.

소예지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그때 고이한이 아래층으로 내려왔고 양희순은 재빨리 주방으로 들어가 일을 봤다.

소예지는 고하슬에게 사랑스럽고 예쁜 헤어스타일을 해주고 핑크 패딩을 입혔다. 젤리가 옆에서 신나게 뛰어다녔는데 아이와 많이 친해 보였다.

“아빠, 젤리도 같이 데려가면 안 돼요?”

고하슬이 큰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고이한은 몸을 숙여 고하슬의 패딩 지퍼를 올려주었다.

“할머니 집이 너무 커서 혹시라도 젤리를 잃어버리면 어떡해? 젤리는 요 며칠 엄마한테 맡기자.”

고하슬은 약간 시무룩했지만 어쩔 수 없이 승낙했다. 고이한이 차를 몰고 집을 나섰고 소예지는 그의 차가 떠나는 걸 지켜봤다.

“아주머니, 점심이랑 저녁 다 집에서 안 먹으니까 내 건 하지 않아도 돼요.”

소예지가 뒤돌아 양희순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사모님.”

오늘 실험실에서 강준석의 환영회를 열기로 했기에 저녁은 밖에서 먹어야 했다. 점심은 실험실에 갔다가 학교 식당에서 해결할 생각이었다.

소예지는 의대 실험동에 도착해 가방을 들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윤혁을 만났다. 윤혁이 흥분한 표정으로 다가와 말했다.

“예지야, 좋은 소식이 있어. 여러 회사에서 협력 의향서를 보내왔는데 모두 실력 있는 대기업들이야.”

소예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가 수고가 많네요.”

“수고는 무슨. 아 참. 네 남편도 의약계에 관심이 있어? 의약 쪽에 투자할 의향은 없대?”

그녀가 발걸음을 멈췄다. 가장 먼저 바라지 않았던 게 바로 고이한이 이 실험실에 투자하는 것이었다. 소예지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관심 없을 거예요. 그 사람은 과학기술과 석유 쪽 투자를 좋아하거든요.”

“시간 되면 우리 프로젝트에 대해 얘기 좀 해봐. 관심을 가질지도 모르잖아.”

“네. 그렇게 할게요.”

소예지는 일단 알겠다고 답했지만 속으로는 고이한이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지 않기를 바랐다.

오후 5시 30분, 실험팀 전체가 윤혁이 예약한 고급 호텔 안의 식당으로 출발했다.

소예지는 계획서를 쓰느라 늦어진 데다가 교통사고 때문에 길이 막혀 7시가 돼서야 호텔에 도착했다. 윤혁의 재촉 전화가 또 걸려오자 소예지가 전화를 받았다.

“호텔 로비에 도착했어요. 금방 가요.”

그런데 엘리베이터 쪽으로 오자마자 소예지는 걸음을 멈췄다. 심유빈이 중요한 연회라도 참석하려는지 섹시한 샴페인 골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 옆에 훤칠한 남자가 서 있었는데 바로 소예지의 남편 고이한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심유빈과 고이한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탔다.

‘아침 일찍 하슬이를 어머님 댁에 데려다준 게 혹시 심유빈이랑 단둘이 주말을 보내기 위해서였어?’

비록 지금 고이한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지만 그의 외도 장면을 직접 목격하니 여전히 치가 떨렸다.

소예지가 룸 안으로 들어갔다. 음식이 이미 테이블 위에 차려져 있었고 윤혁이 그녀를 맞이했다.

“예지야, 빨리 와. 다들 기다리고 있었어. 얼른 강 박사님 옆에 앉아. 이따가 술도 한잔 따라드려야지.”

소예지가 강준석의 옆에 앉자 몇몇 사람들이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안채린도 그 자리에 앉고 싶었지만 윤혁이 말린 바람에 앉지 못했다. 알고 보니 소예지를 앉히려고 일부러 강준석의 옆자리를 남겨둔 것이었다.

그녀는 강준석의 옆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조명 아래 소예지는 더욱 아름다워 보였고 강준석은 더욱 멋있고 젠틀했다. 나란히 앉아 있으니 꽤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안채린은 질투 섞인 눈빛으로 소예지를 째려봤지만 앞으로 일하면서 전문 지식으로 소예지를 압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조급해하지 않았다.

윤혁이 일어나 잔을 들었다.

“실험실을 설립한 건 매우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일단 가장 큰 공을 세운 소예지 씨에게 한잔 올립시다. 소예지 씨가 있었기에 실험실을 설립할 기회가 있었으니까요.”

안채린이 속으로 비웃었다.

‘대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애가 그런 방안을 세웠다고? 아버지가 남긴 오래된 방안을 베낀 거겠지.’

소예지는 웃으면서 일어나 동료들과 함께 잔을 들었다. 나이는 젊어도 침착하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있었고 겸손하면서 비굴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오늘 밤의 남자 주인공에게 한잔 올리겠습니다. 바로 천재 의학 박사 강준석 씨입니다. 강준석 씨의 합류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모두가 다시 일어나 강준석에게 술을 올렸다. 강준석은 안경을 올리며 남다른 분위기로 잔을 들었다.

모두 젊은 사람들이라 흥겹게 얘기를 나눴고 앞으로 실험실을 운영해나갈 방향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다.

9시 30분,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환영회가 끝이 났다. 강준석은 소예지의 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두 사람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면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 문이 땡 하고 열렸다.

부드럽게 열린 문 뒤로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누군가가 나타났는데 바로 고이한이었다.

엘리베이터의 조명이 그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고이한이 깊은 눈빛으로 문밖에 있는 소예지와 강준석을 보면서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고이한 씨, 여기서 다 뵙네요.”

강준석은 고이한에게 침착하게 인사를 건넸다.

고이한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예지 씨, 먼저 가세요. 다음에 또 봐요.”

강준석은 소예지에게 폐를 끼칠까 봐 함께 가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네. 안녕히 가세요.”

소예지는 손을 흔들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부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자 두 사람은 나란히 내렸다.

소예지는 차를 가져왔기에 고이한과 함께 집에 갈 필요가 없었다. 실외 주차장으로 가서 잠금을 해제하고 차에 타고는 시동을 걸고 집으로 향했다.

빌라 단지 입구에 도착했을 때 소예지는 갑자기 아랫배가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생리인 걸 알아채고는 차를 빌라 단지 옆의 백화점 앞에 세워두고 생리대를 사러 들어갔다.

집으로 들어온 후 양희순이 다가와 물었다.

“사모님, 오셨어요? 오늘 밤 휴가 낼 수 있을까요? 제 딸이 아파서요.”

소예지가 서둘러 말했다.

“얼른 딸한테 가보세요.”

양희순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사모님.”

양희순이 나가고 소예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방으로 돌아가 샤워했다. 그리고 꿀물을 타서 다시 위층으로 올라가 연구 계획서를 쓸 준비를 했다.

시간이 덧없이 흘러 어느새 새벽이 되었다. 소예지는 피곤한 나머지 미간을 주물렀다. 그때 1층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이한이 들어온 것이었다.

오늘 밤은 고하슬도 집에 없고 양희순도 휴가를 내어 집에 그녀와 고이한 둘뿐이었다.

문득 불편해진 소예지는 빨리 아래층으로 내려가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방이 2층에 있어 3층에서 내려가는데 고이한과 딱 마주치고 말았다. 소예지는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인사를 건넸다.

“왔어?”

고이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옆을 지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심유빈의 향수 냄새가 풍겨왔다. 소예지는 미간을 찌푸리고 서둘러 방으로 들어갔다.

방 문을 닫고 욕실로 들어가 세수하고 이를 닦았다. 책을 잠깐 보다가 잘 생각이었다.

20분 후 책을 덮고 잠자리에 들려던 그때 누군가 문을 열었다.

고이한이 검은색 잠옷 가운을 걸치고 들어왔다. 검은 머리카락이 살짝 젖은 채 뒤로 젖혀져 있었는데 막 샤워를 마친 듯했다.

“무슨 일이야?”

소예지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하슬이 집에 없으니까 각방 쓸 필요 없지.”

고이한이 덤덤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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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그리멍
양육권 가지려면 직업도 있어야하고 딸하고 유대감도 쌓아야하니 엄청 뒤에나 이혼이 시작하려나요? 당당히 바람피우고 온 시댁 식구들 한테 무시당하면서 남편과 강제 잠자리까지 하는건 아니겠죠? 이제 100화 좀 넘은듯 한데 이거 지금 시작안하는게 나을듯.속만 터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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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이한의 시선이 순간 더욱 깊어졌다.소예지는 편한 캐주얼 차림이었다.부드러운 옅은 색감의 옷은 평소보다 소예지를 한층 더 부드럽고 따뜻하게 보이게 했다.그때 양희순이 돌아왔다.양희순은 소예지가 집에 있는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사모님, 잠깐 앉아 계세요. 제가 바로 만두 빚어드릴게요.”“제가 도와드릴까요?”소예지가 물었다.“아니에요. 아직 시간도 충분하니까 저 혼자 할 수 있어요.”양희순은 세 사람이 오랜만에 함께 있는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말을 마치고 곧바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세 사람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문까지 닫아주었다.소예지는 딸 곁에 조용히 앉아 고하슬이 블록을 맞추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때 고이한이 소예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모레 저녁... 시간 있어?”소예지는 순간 고이한이 무엇을 묻는지 알아차렸다.‘모레가 고이한의 생일이었지.’“있어.”소예지가 대답했다.고하슬이 고개를 들어 아빠를 바라보았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아빠, 왜 그냥 엄마한테 모레가 아빠 생일이라고 말 안 해요? 엄마가 저한테 아빠 선물 준비해 준다고 약속했는데.”고이한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놀라움과 감추지 못한 기대가 눈빛에 스쳤다.“그래?”소예지도 조금 어색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응.”고이한의 입가에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사실 고이한은 소예지가 굳이 선물을 준비해 주길 바란 적이 없었다.생일날 소예지가 찾아와 함께 식사 한 끼만 해줘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고하슬이 먼저 생일을 알려준 덕분에 소예지가 여전히 자신을 위해 선물을 준비하려 한다는 사실을 고이한은 뜻밖에 알게 되었다.“기대할게.”고이한이 조용히 말했다.소예지는 시선을 피하듯 눈길을 내리고 젤리의 커다란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때 고하슬이 곧바로 고이한 옆으로 다가가 목을 끌어안고 작은 목소리로 귀 가까이에 대고 물었다.“아빠, 무슨 선물 갖고 싶어요? 저한테 먼저 말해주세요. 제가 몰래 엄마한테 알려줄게요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537화

    한국은 어느새 새벽이 되어 있었다.소예지는 어젯밤 야근 때문에 끝내지 못했던 자료들을 정리해 노트북 가방 안에 넣었다.아래층으로 내려가니 고하슬이 젤리와 함께 소파에 앉아 퍼즐을 맞추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소예지의 마음 한구석이 미안해졌다. 여전히 일 때문에 딸과 보내는 시간은 부족했다.소예지는 노트북 가방을 내려놓고 딸 옆으로 다가갔다.“오늘은 엄마가 조금 일찍 퇴근해서 하슬이랑 같이 놀아줄게.”“엄마, 아빠 생일 곧이잖아요. 아빠 생일 선물 준비해 줄 거예요?”고하슬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 소예지는 순간 멈칫했다.8월 12일은 고이한의 생일이었다.결혼 생활을 할 때는 매년 빠뜨리지 않고 챙겼지만 이혼한 지 벌써 3년이 지나면서 소예지도 어느 순간 그 날짜를 잊고 있었다.아니, 이제는 굳이 그날을 특별히 기억하지 않게 된 것뿐이었다.“그래, 엄마가 선물 준비해 줄게.”소예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딸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럼 하슬이 선물은 엄마가 도와줘야 하나?”“괜찮아요. 제가 직접 카드 만들 거예요.”고하슬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제야 소예지는 딸이 정말 많이 컸다는 걸 느꼈다. 생각도 깊어졌고 예전보다 훨씬 철이 든 얼굴이었다.소예지는 몸을 숙여 딸에게 입을 맞췄다.“그래, 그럼 엄마 먼저 출근할게.”“다녀오세요! 이따 아빠가 데리러 올 거예요.”어젯밤 고이한도 소예지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딸을 데리고 골프장에 가서 스윙을 가르쳐주겠다고 했었다.출근하는 내내 소예지는 고이한에게 줄 생일 선물을 고민했다.넥타이나 벨트, 면도기 같은 것들이 먼저 떠올랐지만 왠지 그런 선물을 고르고 싶지는 않았다.‘그렇다면 뭘 줘야 할까.’고민 끝에 소예지는 만년필을 떠올렸다. 실용적이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선물이었다. 결정을 내린 소예지는 그제야 운전에만 집중했다.마침내 8월 12일 토요일이 되었다.소예지가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고이한은 이미 고하슬을 데리고 돌아와 있었다.고이한은 소파에 앉아 TV로 경기 중계를 보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536화

    심유빈의 어린 시절은 매질과 욕설, 어머니의 철저한 외면으로 채워져 있었다.심유빈이 고이한에게 의지하며 삶이 완전히 달라진 뒤에야 심미정은 조금씩 어머니다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하지만 지금 심미정이 내뱉은 말은 심유빈에게 또 다른 사실을 깨닫게 했다.지난 몇 년 동안 심유빈은 좋은 음식과 값비싼 술을 챙기며 어머니를 보살폈다. 하지만 결국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어머니의 진심 어린 관심도 사랑도 아니었다.심유빈은 한때 수천만 명의 팬들에게 사랑받던 사람이었고 국제 무대에서는 피아노 여신이라 불리기도 했다.누구보다 강한 자존심으로 버텼는데 지금 심유빈은 이렇게까지 무너져버렸다.“유빈아, 그 하종호 말이야... 하종호가 예전부터 계속 너 좋아했잖아. 결혼했다고 해도 한번 찾아가 봐. 조금만 도와달라고 하면 이 빚 정도는 갚을 수 있지 않겠어?”“입 다물어요!”심유빈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 목소리는 너무 차가워 등골이 서늘할 정도였다.“엄마가 저지른 그런 더러운 일들, 저는 상관하지 않을 거예요.”“유빈아, 유빈아...”심미정은 몇 초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자신이 방금 내뱉은 말이 얼마나 잔인한지조차 깨닫지 못한 듯했다.심유빈은 휴대폰을 집어 들고 문을 세게 닫은 뒤 밖으로 나갔다.밖에서는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고 하늘에는 밝고 깨끗한 달이 떠 있었다.모든 것이 문득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 하종호의 다정하고 부드러운 얼굴이 떠올랐다.마치 오래전에 끝나버린 한 장면처럼 매일 그녀에게 안부를 묻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처럼 대해주던 그 남자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만약 하종호가 지금 그녀 앞에 나타난다면 심유빈은 아마 그의 눈을 제대로 바라볼 용기조차 없을 것 같았다.그의 눈에서 혐오와 경멸을 마주하게 될까 두려웠다.자신이 이런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그는 결국 자신에게서 멀어질 거라고 생각했다.심유빈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휴대폰을 꺼내 하종호에 관한 소식을 검색했다.최근 하종호가 언론에 포착된 것은 공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535화

    “못 믿겠으면 네 엄마한테 직접 물어봐. 자기가 얼마 빚졌는지 본인이 제일 잘 알 테니까.”심유빈은 이 사장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이 근처에서 칠팔 년 동안 가게를 운영해 온 사람이었다.“제가 대신 갚을게요.”심유빈을 휴대폰을 꺼냈다.사장은 그녀가 돈을 보내려는 모습을 보자 서둘러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입금 처리를 했다.확인이 끝나자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였다.“다음부터는 어머니한테 돈 없으면 도박하지 말라고 해.”문을 닫고 들어온 순간, 심유빈의 마음은 바닥까지 가라앉았다.보름 남짓한 시간 동안 그녀는 이미 두 번이나 어머니 대신 빚쟁이들의 돈을 갚아주었다.남은 돈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돈을 어머니의 도박 빚을 갚는 데 쓰고 싶지는 않았다.삼십 분 뒤, 심미정이 돌아왔다.소파에 앉아 있는 딸을 본 순간 심미정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과 눈치를 살피는 표정이 스쳤다.“유빈아, 뭐 먹었니?”심유빈의 시선이 차갑게 어머니에게 향했다.“밖에서 도대체 얼마를 빚진 거예요? 전부 솔직하게 말해요.”“유빈아, 나... 나 그렇게 많이 빚진 건 아니야.”심유빈은 옆에 있던 쿠션을 집어 그녀에게 던졌다.“빨리 말해요. 안 그러면 엄마가 죽든 살든 저도 더는 신경 안 쓸 거예요.”심미정은 놀라 몸을 움츠렸다.그러고는 침실로 들어가 장롱 안에서 작은 노트 하나를 꺼내 왔다. 딸에게 노트를 건네는 손끝은 조심스러웠지만 끝까지 눈은 마주치지 못했다.심유빈은 그녀의 손에서 노트를 거칠게 낚아챘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노트를 펼치자 안에는 날짜와 빚 목록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몇십만 원부터 수천만 원에 달하는 금액까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총액이 정리되어 있었다.약 십오억이 넘는 금액이었다.심유빈은 온몸에 힘이 빠져 그대로 쓰러질 것 같아 급히 소파를 짚으며 숨을 몰아쉬었다.“엄마...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을 빚질 수가 있어요? 이 돈을 도대체 무슨 수로 갚으려고요?”심미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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