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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오래 알고 지낸 사람입니다

Penulis: 훌리아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8-05 13:40:30

11화

지빌라가 신전에 들어선 모습은, 신화 속에서 걸어 나온 듯했다. 황금처럼 찬란한 머리카락은 자연스럽게 흘러내렸고, 정교한 은세공의 신성문양 왕관핀이 옆머리를 단정히 고정하고 있었다.

목에는 진주처럼 부드럽게 빛나는 백금의 초커를 둘렀고, 중앙에는 작고 날렵한 사파이어 한 점이 박혀 있었다. 그 사파이어는 황녀의 눈과 꼭 같은 푸른색이었고, 누구도 그 보석과 그녀의 시선을 구별할 수 없었다.

오늘은 신전에서 황실의 일원들과 대공이 처음으로 정식 인사를 나누는 날이었다. 교황에게 축복을 받은 황녀와 대공은 황후와 일황자, 이황자를 차례로 마주하며 인사를 올렸다.

병환으로 누워만 있는 황제를 대신해 황후가 대공에게 덕담을 했다.

“대공에게 선친이 안 계시다는 점이, 지금에 와선 새삼 마음에 걸립니다. 그러니 내 아들처럼, 곁에 두고자 합니다.”

프레데리크가 그 말을 받아 답했다.

“결혼식을 당겼으면 합니다.”

황후는 축복연회가 여름 초입이니 결혼식은 일러야 가을 끝자락이 될 거라고 말했다.

“아무리 속히 진행한다고 해도 그 이상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수도에 있을 동안 황녀와 오붓한 시간을 가지셔야 합니다. 모두가 기대하는 바가 큽니다.”

약혼식 후에는 물밀듯이 귀족 연회 초대장이 들어올 터였다. 대공이 황실의 일원으로서 약혼녀인 황녀와 함께 대외적으로 얼굴을 자주 비추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황후와 이황자의 입지가 견고히 다져질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일황자는 고개만 까딱하고는 신전을 빠져나갔고, 이황자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일황자의 뒤를 이었다.

“다음 축복연회에서, 정식으로 맞아들이겠습니다. 그 자리야말로, 모두가 지켜볼 대답이 될 테지요.”

황후도 다음을 기약하며 떠났다.

황녀 또한 대공과 더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인사를 하고 뒤돌아섰다.

“황녀, 할 말이 있습니다.”

프레데리크의 저음의 목소리가 신전의 대리석 바닥에 낮게 깔렸다. 그녀의 발걸음을 붙들 만큼, 결코 가벼이 들리지 않는 부름이었다.

지빌라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대공의 깊고 어두운 눈빛은 뜻을 알기 어려웠다. 하지만 정중하게 다듬어진 인내의 표정 너머, 눈동자 아래 단단하게 얼어붙은 불편한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는 없었다.

“대공. 말씀하세요.”

“섣부른 행동은… 삼가셔야 할 것입니다.”

그 말에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무얼 말하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얕게 웃으며 부드러운 눈길을 그에게 주었다.

“황후 폐하께서도 저에게 엄하게 말씀하셨어요. 크게 반성하고 있답니다. 하지만…….”

그녀는 한 발 다가섰다. 그의 그림자와 그녀의 그림자가 겹치는 거리였다. 옷깃 스치는 소리마저 크게 들릴 만큼. 그리고 속삭이듯 말했다.

“하지만 저로 인해서 누군가 슬퍼하는 이를 두고 볼 수가 없었어요. 그녀가 수도원에라도 틀어박히면, 그땐 어쩌실 건가요?”

대공의 시선이 잠시 흔들렸다. 짧은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흘렀다.

“레오노라는…….”

그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땐, 목소리가 한층 더 낮아져 있었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입니다. 그녀가 그저 누군가의 시녀가 되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지빌라는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되레 그 시선을 곧게 받아냈다.

“특별히 두 사람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제게 필요한 사람은 충심을 품은 사람이에요. 레오노라라면 믿을 만한 사람이지 않나요? 저는 과거보다는 지금 저를 어떻게 대하는지가 중요하답니다.”

그리고 아주 짧게,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엔 자신감과 의중이 모두 담겨 있었다.

“단지 시녀로 두지 않을 것이에요. 그녀가 진심으로 제 곁에 있으려 한다면…… 저는 그 진심을 존중할 겁니다. 하지만 마음이 다른 쪽에 있다면, 그 또한 놓아줄 준비도 되어 있지요.”

대공의 눈빛이 더 깊어졌다. 그는 아무런 대답 없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마침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받아들인다는 의미보다는 판단을 유보한다는 무감정한 인정이었다.

그 또한 레오노라를 단념시키기 위해 황녀와의 정략결혼을 거부하지 못 했다. 내심 레오노라를 잘라내지 못한 마음이 한편에 있었다. 그로서는 인간적인 동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황녀가 어떤 식으로든 오해를 하고 레오노라를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고, 레오노라도 그녀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라면 그가 반대할 이유가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지빌라가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등을 돌리려는 순간, 대공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황녀.”

잠시 망설인 듯, 그의 부름이 지빌라를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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